아래 본문에서의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점점 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조금도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진정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위치와 역할 상 온 세상 천지만물과 모든 인생들의 주인이신 것이고,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의 주재자이신 것이며, 선악 간 심판주이시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전지전능으로 살아 역사하시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게다가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신 것일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 독생자이신 구주 예수님께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며 영원보다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필요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명령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두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하나하나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나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다윗을 점점 강성하게 하신 분은 조금만 통찰해 봐도 근원적으로는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것임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바로 그러한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함께 하시면 그 누구라도 점점 강성해 질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께서는 아무나에게, 아무렇게나 그렇게 강성하게 하시고 기도한 것 이상으로 응답하시며 앞서 가시어 선하게 예비하시고 형통하게 하시지는 않는다는 사실인 것으로..
특히 죄악들을 반복하고 갈수록 심각해 지는 그 백성들에 있어서는 비록 함께 하신다고는 하더라도 그 속에 근심과 탄식들로 적으실 수 없는 것이며, 무엇보다 오히려 더욱 사랑하셔서 라도 그 자녀들이 더 이상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 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서게 될 수 있도록 아비의 심정으로 마냥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만은 않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래 본문의 다윗만 하더라도 거인 장수 골리앗 앞에서도 말씀대로의 하나님을 믿으며 거룩한 분노로 목숨을 걸기까지 했고, 심지어는 3천명의 별동대를 거느리고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단지 하나님에 의해 기름 부으심을 받아 세움 받은 왕이라는 이유만으로 바로 눈앞에서 쉽게 죽일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거 죽이지 않는 등 한 두 구절의 말씀을 위해서도 생명까지 아끼지 않으며 순전함과 전심으로 살아 있고 깨어 있으며 치열하고 뜨거운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으로 살았을 때는..
살아 역사하시는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러한 다윗을 그 누구보다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면서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신실하게 동행하신 것일 뿐 아니라 아래 본문 후로도 계속해서 함께 기뻐 역사하시는 가운데 순간순간 그 다윗을 도우시고 책임지시며 앞서서 싸워주시고 예비하심으로 인해 그가 어디를 가든 이기게 하신 것이었지만 그러나 바로 그 다윗이 그 후에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을 간교하게 죽게 했을 때도 여전히 변함없이 동일하게 행하셨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고, 사실 그러한 때에는 오히려 완전히 반대에 가까웠던 것을 아주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의 죄악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에 따라,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그리고 그러한 다윗의 그릇과 쓰임과 준비 등에 따라 실상 꽤 오랜 시간을 점점 쇠약해지게 하시면서 하나님의 시간까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으로 잔혹하고 비참하게 하신 것을 사무엘하 12장부터 20장에 이르기까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 또한 결코 복잡할 수가 없는 것으로 살아 있는 믿음과 함께 점점 강성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단적으로 말해 말씀 그 자체이신 것인 것이기에,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근본적으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이고, 구주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기 때문이며,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것으로 애초에 그러한 말씀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우리 인생들이 접할 수 있도록 기록되게 하신 직접적, 경험적인 힘과 실제가 되신 분인 것이기 때문이고, 근원적, 본질적으로는 그렇듯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며,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인데..
그와 같은 모든 이치와 원리들은, 특히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과 함께 기뻐 역사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응답과 승리와 복들 등에 있어서의 생생함과 강렬함과 풍성함들은 오늘날 이 시대 우리들에 있어서도 조금도 다를 수 없는 것입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사무엘하5:10)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4월 26일(금)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