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0일(주)
* 시작 기도
주님...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는 것을 압니다(롬 8:6).
그럼에도 우리의 삶속에서 잘 실천이 안 되는 것은 우리의 지식과 관념적인 앎뿐이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우리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공동체로 예배하는 주의 날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모아 주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게 하옵소서.
육신의 생각은 내려놓고 오직 우리 주님께로만 향하여 나아가는 살아 있는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기를 소망하오니 주의 영으로 가득 채워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행 24:10-23
제목 : 바울의 증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다.
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2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 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 나의 묵상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몇몇 장로들 그리고 변호사 더둘로가 가이사랴에 도착하여 총독 벨릭스 앞으로 갔다.
그러자 벨릭스는 바울을 불렀다.
변호사 더둘로가 총독 벨릭스에게 바울을 장황하게 고발한다.
그의 고발이 마치자 총독은 바울에게 머릿짓으로 말하라 한다.
이에 바울은 변론을 시작한다.
“벨릭스 당신이 수 년 동안 이 민족의 재판장이 되신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와 관련된 일을 당신께 변론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제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것은 열이틀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조사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를 고소하는 사람들은 제가 성전 뜰에서 누구와 논쟁한 것이나, 회당에서나 도시 안에서나 사람들을 선동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이 지금 나를 고소하고 있지만 당신에게 그 내용에 대한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에게 이 사실을 고백합니다. 저는 유대인들이 소위 이단이라고 말하는 예수의 ‘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우리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며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의 책에 기록된 것도 다 믿는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것과 똑같이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의로운 사람이든 불의한 사람이든 모든 사람이 다시 부활하리라는 소망입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저의 깨끗한 양심을 간직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예루살렘을 떠나 있다가, 저희 민족에게 구제헌금을 전하고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려고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저를 본 것은 제가 성전 뜰에서 정결예식을 행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소동을 일으키지도 않았고 제 주위에 군중들이 모여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는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저를 고소할 일이 있었다면 그들이 직접 당신 앞에 와서 고소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공회 앞에 섰을 때에 이들이 저에게서 무슨 잘못을 찾아냈는지, 여기 서 있는 이 사람들에게 말해 보라고 하십시오. 제가 그들 앞에 섰을 때, 한 말은 오직 하나 곧 ‘오늘 제가 여러분 앞에서 재판 받는 것은 죽은 사람의 부활에 관한 것 때문’이라고 외친 것뿐입니다.”
당시에 벨릭스는 이미 예수의 ‘도’에 관한 것을 자세히 알고 있었으므로, 천부장 루시아가 오면 여러분들이 제기한 고소 문제를 처리하겠노라고 말하고 재판을 연기하였다.
그러고서 벨릭스는 백부장에게 명령하여 바울을 잘 지키되 어느 정도 자유를 주고 그의 친지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였다.
바울의 변론은 더둘로가 자신에 대하여 고소한 세 가지 항목 곧 소요죄, 반란죄 그리고 성전모독죄에 대한 해명이다.
바울은 소요죄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하였다.
즉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온 지 불과 12일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중 5일은 옥중에 있었기 때문에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사람을 소요케 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가 성전에서 사람을 선동하거나 소요케 한 사실을 본 목격자나 증거가 전혀 없으니 더둘로의 고소는 분명 모함이며 누명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다음으로 반란죄와 관련해서는 더둘로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바울 자신이 믿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와 동시에 그 이단이라고 하는 도는 결코 이단이 아니다.
유대교와 같이 구약과 하나님을 믿으며 또한 부활의 소망까지 믿는다고 밝임으로써 그가 전하는 복음이 참신앙임을 강력하게 변론하였다.
세 번째 성전모독죄에 대하여 변론한다.
바울은 결코 자신이 성전을 더럽힌 일이 없으며 다만 민족을 위하여 구제헌금을 가져와서 민족의 전통에 따라 결례를 행했을 뿐임을 밝혔다.
또한 자기가 만일 성전에서 소동을 일으켰다면 그 자리에 있었던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고소인의 자격으로 이 재판에 참석해야 함에도 그런 일이 없는 것은 그것이 모함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변론한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논리 정연한 변론은 결국 벨릭스의 호의를 얻게 된다.
그리고 바울을 해하려는 유대인들의 음모는 다시 한 번 무위로 돌아가고 만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도를 좇는 것이 사실임을 고백하였다.
어찌 보면 이러한 고백은 바울 자신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진술임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사악한 그들이 순수한 바울의 이 말을 또 어떻게 악용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수님은 로마법에 의해 반역자로 몰려 사형을 당하셨다.
따라서 바울이 나사렛당의 우두머리로 자인한다는 것은 곧 얼마든지 로마의 황제에 대한 반역자로 몰릴 수 있다는 소지를 제공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자신이 나사렛 예수를 믿고 추종하는 자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은커녕 오히려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좇는다고 한 것이다.
물론 이 땅에서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바울과 같이 불이익을 당할 위기의 상황에서도 거짓을 진술하지 않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진술할 줄 아는 정직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바울에게 항상 있었던 일은 아니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요 율법에 관한 한 흠이 없을 정도로 의로운 자였다.
(빌 3:5-6)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이처럼 유대인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바리새인으로 생활할 때는 율법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 흠이 없을 정도로 의로운 자였음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런 바울이라도 예수를 만나고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나서는 자신의 의가 아무 것도 아님을 고백하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그의 육신 안에서 죄의 법과 성령의 법이 싸우는 것을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낸다.
(롬 7:18-23)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바울은 이처럼 자신의 육신 안에서 죄의 법과 성령의 법이 사로잡기 위하여 싸운다.
그래서 그는 고백하기를 자신은 곤고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도대체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낼 수 있겠는가, 하고 탄식을 한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울이 고백한 ‘사망의 몸’이란 자기가 살인하여 죽인 시체를 자신의 몸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서 꽁꽁 묶어놓은 상태를 ‘사망의 몸’이라 한다.
한 편에는 죽은 시체인데 그 시체의 얼굴을 마주보고 묶여 있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시체의 얼굴이 썩어갈 때 눈알이 빠지고 구더기가 움직이며 자신의 코로도 들어갈 것이다.
바울은 자기의 죄의 상태를 바로 이 사망의 몸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율법 안에서는 자기의 의로움을 언제든지 자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기의 의를 자랑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일들이 바로 죄악임을 고백한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일컬어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던 것이다.
물론 바울은 행함으로 짓는 죄는 짓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죄를 짓지 않음으로 자신의 교만과 드러내는 의가 자신을 죄악으로 이끌어가는 죄 중에 죄임을 알고 그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유함이 있노라고 선언한다.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육신으로 살아가는 이 땅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온전한 의에 이를 수 없다.
인도 힌두교의 성자인 간디 역시 행위로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하여 매일 같이 성경의 산상수훈을 읽고 이를 실천하며 살았다.
그렇다고 그가 죄인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사람은 내가 의로운 일을 하면 그 의를 자랑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 스스로 자부심을 가진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는 죄이다.
자기를 드러내는 죄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는 의인이 없으되 하나도 없다(롬 3:10).
그것을 깨달은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자유함을 얻게 된 것이다.
나라고 다를 것이 있겠는가?
나는 누구의 정죄를 받을 필요도 없이 행함으로 죄를 먹고 마시는 자였음을 고백한다.
어쩌면 나의 양식이 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죄를 양식으로 삼아 날마다 내 안에서 죄의 싹이 자라고 거목이 되어 그 열매를 따먹고 살았던 자임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다.
하여 내 안에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신앙 양심으로 인하여 괴로움이 갈수록 증폭된다.
이것이 나의 모습이구나, 하는 인정과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날 위하여 사람으로 오신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음을 믿고 오직 주님의 은혜를 붙잡는다.
나의 행함과 육신의 의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자이지만, 창세전 언약을 통하여 나를 아들로 삼아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 앞에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면목없음으로 주님께 한 걸음씩 나아간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우리 기독교는 위인을 세워놓고 그를 본받는 자로 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것이지요.
정말 본 받을 것이 많은 바울이지만, 그 역시 우리가 본 받을 자로 하나님께서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 영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오늘 이 시간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비친 아버지의 영광이 반사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나는 없어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비친 아버지의 영광만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