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120) - 하루도 작은 일생
가을의 시작, 9월이 문을 열었다. 새벽산책길의 풀벌레소리 상쾌하고 들판의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는 등 바야흐로 결실의 계절에 들어선다. 모두들 넉넉하고 풍성한 열매 거두시라.
벼이삭이 고개를 숙인 가을의 들판
매월 받아보는 월간잡지의 낱말퍼즐 맞추기가 흥미롭다. 퍼즐 맞추기는 가로‧세로 열쇠로 주어진 뜻풀이에 맞는 낱말을 맞춘 후 그 중에서 가‧나‧다 등으로 지정된 글자를 연결하여 적절한 합성어를 구성하는 내용이다. 이번 달에 맞춘 합성어는 ‘하루도 작은 일생이다.’ 함께 답을 찾은 아내와 함께 이를 음미하며 그럴 듯한 문구라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하루가 소중한 삶, 이를 잘 가꾸자.
불가리아에서 20년 넘게 봉사하는 선교사로부터 보내온 메시지가 반갑다. 어제 저녁에 받은 내용,
‘그동안도 평안하신지요? 혹심한 여름을 어떻게 견디고 지내셨는지, 폭염과 호우로 모두가 힘들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그래도 조금 있으면 추석이 닥치고 결실의 가을이 다가오니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
저희는 불가리아에서 20여년을 살다보니 나름 잘 적응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한 가지 성가신 일, 최근에 와서 모기 때문에 너무 견디기 힘듭니다. 불가리아는 여름 서너 달은 비가 오지 않아서 풀들도 노랗게 죽고 모기가 없는 나라였는데 3년 전부터 일기가 바뀌어 여름에 비도 오고 모기가 창궐해서 새롭게 큰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얼굴 어깨 등을 물어 아프고 따갑고 가려워서 힘듭니다. 그래서 저희는 어서 추운 계절이 와서 모기가 없기를 바라며 견디고 있습니다.
선교사에게 가장 힘든 일이라면 주재하는 나라에서 생활 하는 것을 허락받는 일입니다. 이민국은 정말 가기 싫은 곳입니다. 이민국 가기 한 달 전부터 마음에 부담이 많이 됩니다. 그러다가 5년에 한 번씩 바꾸어야 하는 새 주민 등록 카드를 받았습니다. 이제 5년간은 이민국 생각은 잊어버리고 살아도 되어 이 더운 여름 얼음냉수와 같이 시원합니다.
한데 어울려 사는 곳에 문제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러려니 하고 잘 견뎌냅니다. 그보다 주민들이 손수 가꾼 옥수수와 피망을 가져오는 친절이 감사하고 뒤늦게 합류한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들 모두 현지생활에 잘 적응하며 함께 가꾸는 일상이 소중합니다.
작년 이맘때 마당에 강아지 한마리가 어디서 왔더니 또 고양이 도 오고 금년에 어느 날 조그만 강아지가 또 들어왔습니다. 버릴 수도 없어 그냥 기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동물 셋도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불가리아 선교를 위하여 후원, 동역 하시는 모든 분들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선교사가 봉사하는 불가리아 지도
불가리아 선교사는 청소년시절의 교회 후배, 60년 넘는 교류로 다져진 우의와 교분이 소중하다. 20여 년 전 불가리아에 정착한 초창기에 20여일 체류하며 가꾼 추억이 엊그제 일 같은데 어느새 모두 8순 전후의 노경에 접어들었다. 20여 년 전 불가리아에 들어섰을 때의 기록 일부를 살펴보자.
‘6월 24일 오후,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 공항에 도착하였다. 불가리아는 유럽동남쪽의 옛 유고, 루마니아, 마케도니아, 그리스, 터키와 흑해에 둘러싸인 남한 면적과 비슷한 국토에 800 여만 명의 인구가 사는 작은 나라이다. 청소년시절부터 가까이 지내던 후배가 선교사로 봉사하고 있어서 이곳을 거점으로 아직 한국인의 발길이 뜸한 동남유럽지역을 돌아볼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비행기의 탑승객이 많지 않아서 간단한 입국수속을 마치고 마중 나온 후배와 함께 택시를 타고 아파트로 향하였다. 택시트렁크에서 가방을 꺼내며 차종을 살펴보니 현대(Hyundai) 마크가 선명하여 반가웠다. 선교사의 이야기로는 우리가 타고 온 택시회사의 택시가 대부분 현대제품이라고 한다. 선교사 내외가 정성으로 마련한 저녁을 먹은 후 불가리아의 역사와 종교, 지리 등에 관하여 거실에 걸려 있는 지도를 보며 설명을 듣고 약 3주간 머무르는 이 지역의 탐방계획을 논의하였는데 선교사가 미리 구상한 코스와 일정이 적절하게 여겨져서 모든 일정을 일임하였다.
다음날 오후에 소피아 시내의 중심가로 향하였다. 러시아정교회의 장엄한 건축물을 비롯한 대규모의 정부청사와 백화점, 1882년 오스만터키가 지배할 당시의 유물인 회교사원, 공산당 통치시절 권부의 상징이던 인민궁전 등을 살펴보고 오페라극장의 공영일정, 국제여행사의 인근 지역 여행정보, 노천카페에서의 시음 등으로 서너 시간을 돌아다녔다.
소피아는 지혜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어지러운 세상을 슬기롭게 헤쳐 가는 지혜가 중요함을 깨우치며 준비하는 삶이되기 바란다.’
며칠 전 속한 교단의 신앙잡지 발행인으로부터 내가 출석하고 봉사하던 교회와 사회복지시설의 연혁을 간략히 알려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마침 십 수 년 전 교회어린이들과 성경 공부할 때 사용한 자료를 책자로 만든 잠언해설집, ‘지혜가 부른다’에 수록한 내용이 적절하여 이 부분을 이 메일로 송부하였다. 어제 받은 불가리아선교사의 메시지를 기화로 오랜 지기와의 평생에 걸친 교분을 회고하며 접한 지혜의 도시 소피아를 떠올리니 짤막한 하루의 사연이 전 생애로 연결되는 섭리가 새삼스럽게 오묘하여라.
'하루도 작은 일생이다'의 낱말퍼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