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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썩 잘 기억되지는 않는 이름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기존 102장, 새 94장)의 작곡자라면 금방 뇌리에 떠오를 겁니다. 쉐이는 50년 이상 빌리 그래엄을 도와 온 베이스바리톤 독창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엄 전도집회 차 한국에도 여러 번 나들이 했습니다.
나이 100세를 넘기도록 목청이 여전한, 교계와 사회의 명사이지요. 쉐이는 평생 수많은 찬송가와 복음성가들을 불러 왔지만, 이 찬송가 하나만으로도 유명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쉐이보다는 더 귀하게 여겨지는 분이 이 찬송시의 주인공인 예수님 자신이며..그래서 이 찬송가의 가사가 더 귀해 보입니다.
번역 가사의 심각한 문제점들
누구나 그런 체험이 있을 법 하지만, 저도 과거 이 찬송가를 부르며 감격하여 눈물 짓곤 하던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행 한국 찬송가의 번역 가사는 영문 원시 1,2,3 절의 본 뜻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데다 전반적으로 번역보다는 번안/개작에 더 가까워 퍽 아쉽습니다. 특히 한글판 곡은 번역시에다 곡을 두들겨 맞추다 보니 원곡의 일부 리듬조차 달라졌지요[각주:2]!.
이 번역가사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를 제가 처음 들은 것은 1970년대에 다니던 서울의 어느 변두리 교회에서였습니다. 그 교회 청년회장이 부르면서 자신이 "번역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었지요. 그 후 대학시절,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서 '그리스도와는 바꿀 수가 없네'란 번역으로 널리 보급하기도 했습니다만..결국 이 가사가 음열에 더 맞아 든다(?)고 해서 채택됐습니다.
현행 찬송가의 한글 번역은 큰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우선 음악적으로는..음이 아랫 '도'에서 윗 '도'로[각주:3] 한 옥타브 도약진행을 하면서 고조된 강박 부분에 '(귀한) 것.은. 없네'가 떨어져, 아무 중요성도 없는 불완전명사 + 토씨 '것은'이 강조됐기 때문이지요.
이런 졸역은..한국어권 내지 동양어권에서는 몰라도, 라틴어계 언어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부분엔 당연히 어간이 오도록 번역(또는 작곡)돼야 합니다. 라틴어 계열인 영문의 원곡을 존중한다면, 더구나 그렇습니다.
그래서..다음은 제가 나름대로 새로 시도해 본 졸역입니다.
물론 음절을 맞추려다 보니 원시의 뉘앙스를 최대화하기엔 턱도 없지만, 그래도 현 번역판보다는 진일보했다고 자임합니다. 쉐이의 원곡 리듬을 살리는 쪽으로 했습니다. 가사 내용도 현행 찬송가와는 사뭇 다를 터입니다.
나는 예수님이 더 좋아
원시: 레이 F. 밀러
번역: 김삼
1. 나 은과 금보다 주 예수 좋아[각주:4]
큰 부귀보다 주님 것- 되리
내 집과 땅보다 더 귀한 예수
못 박힌 그 손 늘- 따르리
(후렴)
넓은 영토나 왕-위라도
죄의 향락과 무엇도
주 예수님보다 더 귀한 것
이- 세상에 없네.
2. 큰 갈채보다도 더 귀중한
주 말씀에 더욱 충실-하리
큰 영예보다도 더 귀하신
주 이름 앞에 진-실하리
3. 오 모든 꽃보다 더 아름답고
꿀 송이보다 달고 귀한 주
내 영이 바라는 그 모든 것
주 예수 안에 다 있다네
더 나아가, 현행 한글 역 '주 예수보다 더..'의 더 큰 문제점은.. 함부로 번역한 가사에 나타난 정신적/영적인 이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번역자의 율법주의/금욕주의적 신념과 단언 같은 것을 독자나 노래하는 이들을 통해 고백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탓이죠. 원시엔 그런 율법주의가 전혀 없습니다! 이것은 번역에서 오는 큰 폐단입니다.
누구 말마따나 번역자는 자칫 '반역자'가 됩니다.
후렴 앞 부분입니다: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이것을 부를 때마다 교인/신자들은 거짓말을 하는 셈이 돼 버립니다. 우리가 과연 세상 즐거움을 다 버.렸.나.요?
지금 이 시간도 컴퓨터 속 웹 세계나 텔레비전 속의 재미에 탐닉해 있을 교인들이 많을 텐데. 다른 사람들은 둘째 치고 지도자인 목회자들도 인터넽 세상을 두루 헤매고 다니지 않습니까? 목회자들은 TV 안 보나요..? 여유 있는 사람들은 골프도 치지 않나요?
저는 목회자들이 경품추첨에 적극 참여하는 걸 본 일이 있습니다. 고급 자동차를 경품으로 타 가는 분도 봤고요. 명목이야 어떻든. 뭐 나쁘고 자시고, 잘/잘못을 따지련다기보다..그건 세상 즐거움이 아니고 천국 즐거움이던가요..?
하다 못해 맛난 요리를 즐기고 운동을 즐기고 수영을 즐기는 게 세상 즐거움이 아니고 모두 세상 괴로움인가요?
그리고..우리가 세상 자랑을 다 버렸다고요?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과거 언론에 있으면서, 수많은 신자들이 하다 못해 자녀가 무슨 대통령상을 탔다거나 등 자랑하는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뭐,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응당 자랑하고 싶겠지요. 하기야 제 자식도 대통령상이란 걸 탄 적이 있으니까. 상금도 없이 대통령의 (카피)서명을 넣은 종이 상장 한 장 건네는, 흔한 상의 하나입니다만. 그건..세상 자랑이 아닌가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 이 찬송가를 부르며 거짓말을 하고 위선자가 돼 버리는 셈이 돼 버립니다. 그것도 한글 번역 가사 때문에. 그런데도 이 찬송가를 태연자약하게 부르는 신자들 특히 교계 지도자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 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둔감한지요!
"..예수 밖에는 없네"
이 가사도 원시를 잘못 뒤튼 것입니다. 예수 밖에도 우리 가족과 형제자매 친구들, 성도들이 있기야 있지요. 있는 게 잘못입니까? 물론 예수님 밖엔 구세주/메시아가 없고, 참 진리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막연하게 "예수 밖에는 없네" 해 놓으면, 하나님이 주신 우리 가족과 공동체, 우리 주변 사람들은 뭔지 궁금해집니다. 과연 우리가 예수 밖에는 아무도, 아무 것도 없다는 의식 속에 그런 삶을 살아가는지요?
그러기에 이 현행 번역시로 찬송가를 부를 때마다 낯 간지럽습니다. 대부분은 타성과 습관에 젖어 부르겠습니다만.
마치 이 찬송가 가사도 성경 같은 절대적인 영적 권위를 갖고 있는 양. 하지만 찬송 시 자체가 성경 진리일 수가 없지요. 천만예요!
원시는 그런 부분이 거의 없지만, 이 현행 번역시는 우리의 거짓과 위선을 자아냅니다. 물론, 모두 번역시의 잘못이고 탓입니다. 번역시에 비하면 원시는 얼마나 진솔합니까? 그런 위선을 요구하는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원시의 배경
이 찬송시를 지은 분은 레이 밀러 여사(Mrs. Rhea F. Miller, 1894-1966)입니다. 쉬카고의 나자렡 교회 목회자였다가 훗날(1940년) 교단 총회장이 된 하워드 밀러 박사의 부인이었답니다. 1922년(일설: 1925년)에 지었다 전해집니다만.
유감되게도 이 분 자신에 관한 다른 기록은 찾으려야 거의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생애 연도를 보면 과히 그다지 오랜 옛적 분도 아닌데.
웹이든 책이든 밀러 여사에 관한 자료나 정보가 왜 그다지도 거의 전혀 없는지 까닭은 모르나 결과적으로 마치 쉐이의 명성을 위해 여사의 모든 것이 짜부러지고 희생된(?) 듯한 느낌도 듭니다. 마치 누가 고의적으로라도 그렇게 한 인상까지 들 정도로.
그래서 이 찬송가는 마치 레이 밀러 여사를 발판으로 삼아, 온통 조지 베벌리 쉐이만의 찬송가가 되기라도 한 느낌입니다. 밀러의 자료가 워낙 없다 보니..자연히 사람들의 눈길은 작곡가로 향하기 마련이네요.
곡 창작 배경
조지 베벌리 쉐이(1909- )는 본래 캐나다 온타리오 주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좋은 목청 때문에 노래를 좋아했습니다.
원래는 그답지 않게 여성적인 '베벌리 쉐이'가 본명인데, 쉐이의 출생 당시 아버지가 절친한 친구 목회자의 이름을 따 그렇게 지었답니다. 훗날 이 이름이 청중에게 성별의 혼동까지 가져 오자 결국 쉐이 자신이 '조지'라는 이름을 추가합니다. 그러다 훗날 다시 '벱 쉐이'로 애칭됩니다.
젊은 20대에 그는 부모들과 함께 살면서 성악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니던 보험회사의 현황이 어둡고 샐러리도 줄어들 것이란 전망 속에서 지내던 중이었습니다.
그즈음 그가 라디오방송에 출연할 계기가 생기면서 "가스펠송을 부를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가끔 할 순 있지만, 주로 세속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답하더랍니다. 마음이 답답해 왔습니다.
그러던 1932년[각주:5] 어느 주일 아침. 피아노에 앉아 교회에서 부를 찬송가를 연습하기 시작한 쉐이의 눈에 문득 종이 한 장이 띄었습니다. '난 예수님이 더 좋아'란 시였습니다. 필적을 보니 어머니가 베껴 놓아 둔 것이었습니다. 레이 밀러가 쓴 이 시는 그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네요. 목회자의 아내였던 어머니는 쉐이가 거듭나고[각주:6], 마음과 삶을 바꿔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쉐이는 당시 이 시의 다음 구절이 특히 눈에 띄었다고 말합니다.
나는 사람들의 갈채보다 예수님이 더 좋아
그 분의 귀한 말씀에 충실하려네.
장래가 촉망되고 돈이 약속되는 세속 음악가로 활약하려던 그의 계획은 이 구절에서 결정적으로 무너져 내립니다.
그는 이내 시에 맞춰 가락을 흥얼거리기 시작했고, 얼마 후 이 유명 찬송가가 탄생했습니다. 그가 시에 맞춰 가락을 부르는 것을 옆방에서 들은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더랍니다. 어머니는 "교회에서 그걸 부르렴" 하고 타일렀습니다.
쉐이는 방송국의 오퍼를 전격 거부했습니다.
이후 근황
그 후 쉐이는 복음전파를 위한 라디오음악 사역을 시작했습니다만 1940년대에 창설된 빌리 그래엄 전도협회가 훗날 그에게 전속가수가 돼 달라는 요청을 해 옵니다. 1947년 일이죠.
그때부터 쉐이는 50여년간 그래엄 집회를 위해 헌신해 오다 최근에도 그래엄 집이 가까운 북 캐럴라이나의 몬트맅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2009년 2월 1일 쉐이는 100회 생일을 맞았습니다. 명사들을 포함한 수많은 친구와 지인들이 와서 축하잔치를 해 줬고 바로 이 곡이 주제가가 되다시피 했지요.
쉐이는 최근 빌리그래엄전도협회 대표인 프랭클린 그래엄(빌리 그래엄의 장남)으로부터 약 6만달러 짜리 '라저스' 전자오르간을 선사 받아 루이지애나 주 앵골라 교도소의 채플에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거기서 수감자들을 위해 독창을 하던 중 이 곡도 불렀다네요.
벱 쉐이의 목청은 깊고도 무겁지 않고 단순성과 정다움이 있으며, 특히 음색은 오페라/가곡 등 전형적인 클래싴 목청과는 사뭇 다른 경쾌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의 가장 큰 특징은 영문 가사를 매우 또렷하게, 현대식 발음으로 articulate한다는 데 있습니다. 만약 쉐이가 오페라/가곡 등 클래싴 발성과 창법으로 진출했다면 세속음악계에서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쉐이의 생애 나머지
이 찬송가 말고도 몇몇 곡을 쓴 벱 쉐이는 1909년 2월 1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윈체스터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애덤 J. 쉐이는 웨즐리 감리교회 목사였습니다. 어머니 모드 휘트니 쉐이는 명문 '휘트니 가문' 출신으로 아들에게 경건과 음악 양면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쉐이는 아버지에게서는 바이올린을, 어머니한테서 피아노와 오르간을 배웠답니다.
어린 베벌리가 뉴욬과 뉴저지의 목사관에서 자라나면서 가족친지는 물론 친구들이나 동네 사람들이 그의 음악적 재능과 울림이 좋은 목청을 귀담아 듣곤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소년 시절부터 아버지 교회와 이웃 교회에서 독창을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쉐이는 1928-29년 뉴욬 주 하우튼 대학을 다녔지만 집안 사정으로 중퇴, 맨해튼의 뮤추얼오브뉴욬라이프 보험사 의료부 사무원으로 근무하기 시작합니다. 부모가 강 건너 뉴저지 저지시티에서 사역하고 있었기에 그는 매일 목사관과 맨해튼 사이를 오가며 일했습니다.
쉐이의 어머니는 꽃과 새, 시, 고상한 인용구 등을 즐겨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습니다. 특히 책이나 매거진 등에서 시를 베껴 들고 다니다 피아노 음악 바구니에 놓아두곤 했습니다.
쉐이는 보험회사에서 일할 9년 동안 계속 성악공부를 했고, 교회는 물론 지역 기독교방송에서도 노래를 하곤 했습니다.
1931년 어느 날. 뉴욬 NBC 라디오 방송사 프로그램 진행자 프렏 앨런의 주선으로 공개방송에서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약 1,500명의 방청객 앞에서 그가 부른 흑인영가 '가라, 모세'는 전국에 일대 인기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쉐이는 어떤 방향도 결정하지 않습니다. 1933년엔 한 네트워크 라디오 방송 디렠터가 그의 노래를 듣고 오디션을 주선해 '린 머레이 싱어즈'가 NBC 방송망을 통하여 하던 전국 프로그램 '유어 히트 퍼레이드'에서 노래합니다.
쉐이는 오디션에 합격해 일자리 오퍼를 받습니다.
쉐이는 전국적인 명성과 함께 큰 돈을 거머 쥘 수 있다는 생각에 일시 흥분했습니다만 왠지 속으로는 망서러졌습니다. 세속음악을 거부하는 양심이 있어, 뭔가 옳지 않다는 느낌 때문이었지요. 그는 예스냐 노냐 선택을 놓고 고심했습니다.
그는 그 대신 WHN/WMCA/WKBO/WIP 등 여러 방송에서 정기적으로 복음적인 노래나 찬송가를 부르고 기타 여러 방송사를 위해 녹음을 하곤 했습니다.
1934년 6월 16일. 그는 소년 시절에 사귄 얼머 샤프 양과 결혼합니다. 둘 사이엔 라니/일레인, 두 아이가 태어났고, 시카고로 거주지를 옮겨 갔습니다[각주:7]. 그는 1939년 쉬카고에서 CBS 라디오 방송사에 다시 취직을 위한 오디션을 시도했으나 불합격합니다.
그즈음 무디성서대학(MBI)의 학장이던 윌 하우튼 박사의 오퍼로 대학 부설인 국내 최초의 비상업 기독교방송사, WMBI에서 노래와 함께 엠시/대담/뉴스캐스팅/프로그래밍/행정 등의 임무를 맡아 합니다. 1940년엔 전국 67개 방송사를 통해, 훗날엔 전국 45개주와 캐나다/중남미/중국 등의 187개 방송망으로 그의 목소리가 전파를 탔습니다. 1940-50년대엔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서 유스포크라이스트(YFC) 대회에서 노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1944년 빌리 그래엄의 야간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독창으로 인기를 끌면서 그의 재정난 타개에 크게 도움됐습니다. 그해 6월 그는 WMBI에서 사임, 상업방송 찬송가 프로그램인 '클럽 타임'에서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알루미늄 회사 사장이면서 로터리클럽 회원이었던[각주:8] 허버트 J. 테일러가 그의 프로그램을 수년간 후원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방송을 들었습니다. '클럽타임'은 그때부터 7년간 ABC라디오, 미군방송 등을 통해 전국에 뿌려졌고, 쉐이가 전국에 알려지면서 명실상부한 최고의 남성 복음가수로 부각됩니다.
쉐이는 그밖에도 부흥강사 잭 월첸의 전도대회, 유스포크라이스트(YFC) 등의 출연을 거쳐 1947년엔 빌리그래엄전도협회 전속 독창자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쉐이와 그래엄의 문제점
쉐이는 1940년 빌리 그래엄이 담임사역을 하던 일리노이 웨스턴스프링즈의 빌리지교회에서 둘이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그는 31살, 그래엄은 열 살 아래인 21살이었습니다. 편지와 전화로 계속 교제를 나누다가 7년 뒤 합세한 것이지요.
쉐이의 은근하면서도 힘 있는 노래는 그래엄의 설교에 앞서 언제나 청중의 마음을 준비시켜 주곤 했습니다. 그래엄 집회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노래 중 결신 초청"도 쉐이의 아이디어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벱 쉐이는 비록 세속사회에서 명성을 떨치진 않았으나 그래엄 일행을 따라다니며 교계와 사회 상대로 수십 년 간 노래를 해 오면서 역시 명성을 떨치고 쌓아 온 교계 명사입니다. 자작곡 '나는 예수님이 더 좋아', 스베덴에서 창작된 '얼마나 님은 위대하신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등 두 찬송가는 그의 로고이다시피 합니다 .
그는 '그래미상' 등 여러 상을 받았고, 1978년 가스펠뮤짘협회(GMA)에 의해 '가스펠뮤짘 영예의 전당' 멤버 추대를 받습니다. 또 1982년엔 할리우드에서 '컨추리뮤짘 황금천사상'을 수상합니다. 할리우드라..[각주:9]
그밖에도 수많은 교계/세속 상을 받았지요.
그는 그래엄 집회를 통해 '미국의 사랑받은 가스펠 싱어'로 조명을 받으면서 미국 최초의 본격적인 국제 복음성가사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는 총2억2천만명 앞에서 생음악 연주를 한 기록으로 기네스붘에 올라 있습니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채플린"인 그래엄의 명성과 걸맞지 않습니까.
빌리 그래엄은 미국과 전 세계 교계에 신복음주의 물결을 몰고 온 일종의 변질된 부흥사입니다. 언론 대담 등에서 드러나는 그의 신앙은 성경과는 사뭇 다릅니다. 지옥을 성경대로 믿지도 않을 뿐더러, 사람들이 크리스토를 만나지 않고도 구원받을 수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습니다. 실로 그는 오래 변질돼 온 다원론자, 에큐메니스트, 보편구원론자입니다.
그래엄은 또 청소년 프리메이슨 단체, '드몰레이'를 적극 장려하기도 했지요. 그와 친근한 빌 클린턴 전대통령은 드몰레이 단원 출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대통령들의 채플린으로 명성을 떨칠 정도로 세속 정치인들과 가까워, 세상이 신자들을 미워한다는 성경 말씀과는 매우 배치된 삶을 살아 왔습니다. 조지 W. 부쉬 전 대통령은 그래엄을 통해 '거듭났다'고 주장해 왔으나 그는 예수 크리스토를 "가장 존중하는 철인" 정도로 여기며, 부쉬 부자의 삶이 거듭난 삶임을 입증해 주지 못합니다.
그들은..매년 캘리포니아 보히미언 그로브에서 부엉이 신상 앞에 경배하는 괴상한 보히미언클럽(BC)의 회원이며, 할아버지인 프리스캍 부쉬 때부터 대대로 예일대학교의 '해골단'(S&B) 단원이기도 합니다. 해골단 단원들 다수가 미국 정계/정보계/재계 등의 명사들이지요. 부쉬 가문은 또 문선명 집안과 매우 가까운 사이이기도 합니다.
.......
이러한 그래엄과 오래 연줄을 이어 온 벱 쉐이의 삶이 과연 잘 한 선택인지 잘못된 선택인지는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판가름 나리라고 봅니다. 과연 온갖 영예보다도 '나는 주 예수님이 더 좋아'의 삶이었는지.
출처 : 김삼 티엘티 http://truthnlove.tistory.com/entry/찬송가-나는-예수님이-더-좋아의-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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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이것을 부를 때마다 교인/신자들은 거짓말을 하는 셈이 돼 버립니다. 우리가 과연 세상 즐거움을 다 버.렸.나.요? >>
거짓말 잘하는 사람들은 교회에 가면 많습니다. <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네> < 내 평생의 소원, 예수 더 알기 원함은> < 항상 기쁘도다>
쉐이는 작년 4월에 104세로 죽었습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네> 찬송은 원어문으로 부르면 참 좋은 찬송입니다. < I surrender all> 저는 당신께 모든 것을 항복하나이다. 모든 것에 굴복하고 순종하기 원하나이다, 의 찬송입니다. 이 찬송을 이용해서 돈을 긁어모으려는 정신이 그 찬송의 참뜻을 가리워버리기도 하였습니다.
번역된 찬송가는 원 내용과 다르게 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베벌리 쉐이가 60년이 넘게 빌리 그래함 옆에서 동거동락 하다시피 살아오는동안
수 없이 교황청을 드나들던 (세상이 다 아는) 그래함의 행적을 모를리가 없습니다.
작은 적그리스도들의 수장인 교황과 내통하며 후원받아 이끄는 맘모스 전도 집회의 명 가수...
진리를 가리는 사람들에 의해 혼합된 종교가 복음의 기수들로 분칠된 이 마지막 시대에
더욱 분별의 영 주십사 간구할 일이겠습니다.
겉다르고 속다른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하나님이 실제로 행함을 보신다고 하는 것같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자라야 할지니, 에서 거짓 신자는 인간을 속일 수는 있지만 아버지를 속이지는 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