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포로 나가
올 여름에 창원 합포구 구산면 구복리에 로봇 랜드가 개장을 앞두었다. 로봇 산업 연구와 관광을 겸하는 시설이지 싶다. 이를 계기로 현동에서 원전까지 국도 5호선이 터널을 뚫고 교각을 세워 신설하고 있다. 이 공사로 현동에서 아라가야 고분군이 드러나 화제였다. 600여 기 무덤에서 1만여 점 유물이 쏟아졌다. 굽다리접시와 같은 토기는 물론 철제 갑옷과 투구들이었다.
국도 5호선은 국토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노선이다. 마산에서 창녕을 거쳐 충북 내륙에서 철원으로 올라간다. 홀수 국도가 그러하듯 휴전선 지나 평안북도 중강진까지다. 근래 5호선이 거제까지 연장되었다. 장차 합포구 구산에서 거제 장목 해상 구간은 거가대교처럼 연륙교와 침매터널이 놓일 거란다. 연륙교 명칭은 이순신과 연관 지어 거북선이나 충무공 같은 이름이 붙지 싶다.
장목은 거제 최북단으로 진동만에서는 창원과 가깝고 진해만에서 부산과 맞닿았다. 장목이 낳은 인물이 김영삼 대통령이고 그 밖에 유력 정치인들이 다수 있다. 넘실거리는 바다를 보고 꿈을 키운 소년이 큰 인물이 되었는가. 아니면 고립된 도서 벽촌 여건이 열악하다보니 더 나은 세상을 열기 위해 노력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거제는 더 이상 뭍에서 떨어진 섬이 아니다.
장맛비가 주춤해진 유월 넷째 목요일 퇴근 후 국도 5호 기점인 장목 기행을 나섰다. 연사삼거리서 구영으로 가는 31번 시내버스를 탔다. 구영은 ‘옛 영등성’을 줄인 말이다. 장목 갯가 영등포에 성이 있었던 모양이다. 구조라도 ‘옛 조라’를 이른다. 연초삼거리에서 하청 면소재지를 지나니 칠천도가 떠 있는 내해 진동만은 호수 같았다. 차창으로 몇 차례 스쳐만 지난 장목이었다.
장목 못 미쳐 군항포 인근 장문포왜성 이정표가 나왔다. 울산과 진해를 비롯해 남해안 곳곳에 왜성들이 축조되어 있다. 대부분 임진왜란에서 정유재란 사이 왜구들이 우리 땅에 건너와 성을 쌓은 마이너스 역사의 현장이다. 군항포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보였다. 그곳은 남극 탐험을 비롯해 우리나라가 바다로 뻗어가는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연구기관이다.
장목에는 조선시대 객사가 있던 곳이다. 객사란 공무로 출장 중인 관원이나 고을을 찾는 중요한 손님들이 묵었던 숙소다. 건물 중앙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폐를 모셨다. 출장 중인 관리나 수령은 초하루와 보름이면 객사를 찾아 전폐 앞에 절을 올려야 했다. 언젠가 몰운대를 찾았더니 현 다대포초등학교에 있었다는 객사를 옮겨 놓았는데 우람하고 단아한 팔작홑처마지붕이었다.
조선 초기 거제는 변방답게 왜구 침략을 막기 위해 일곱 개 군진을 두었다. 영등포, 조라포, 옥포, 율포, 지세포, 아오포, 그리고 장문포다. 장문포가 장목으로 장목진 객사다. 장목진 객사는 임진왜란 당시 옥포해전과 칠천도해전 당시 이순신이 예하 장수들과 전략을 논의했던 장소이기도 했다. 장목진 객사는 구한말부터 광복과 한국전쟁 종료 시까지 장목면 면사무소이기도 했다.
장목진 객사를 찾았더니 출입문이 잠겨 담장 밖에서 안으로 들여다봤다. 장문포를 바라보는 북향에 세워진 객사였다. 다대포보다 규모가 작았지만 막돌 축대 위 배흘림기둥에 대청이 있는 한옥이었다. 잡초가 무성해 개망초가 핀 뜰 한 쪽 선정비가 예닐곱 개 모아져 있었다. 조선 초기 동구에 들어선 객사가 서구로 옮겨져 임진왜란 이후 중수했다고 안내문에 기록되어 있었다.
객사에서 내려와 면소재지 거리를 걸었다. 시골이지만 치과와 한의원도 보였다. 산기슭엔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있었다. 삼거리에서 두모고개를 넘으면 외포와 거가대교로 빠졌다. 해안선 모롱이를 돌아가면 황포와 구영엔 해수욕장이 있다고 했다. 낮은 산줄기가 내려온 장문포는 포구가 좁아 통발처럼 보였다. 덩그런 수산센터를 찾았더니 손님이라곤 한 사람 없어 한산했다. 19.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