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利心)과 탐심(貪心)을 물리치라
인간은 모름지기 마음속에 뿌리 깊은 이심(利心)과 탐심(貪心)을 물리쳐야만 인(仁)을 배울 수 있게 되고 나아가 인간다운 삶과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다.
“무릇 사람이 자기에게 이로우려하면 반드시 남을 침해하게 되는 고로, 배우는 사람(學者)은 먼저 이심(利心)을 버린 연후에야 가히 인(仁)을 배울 수가 있으리라.”<격몽요결(擊蒙要訣)> “삼가 모든 탐심(貪心)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누가복음 12장 15절).
공자의 인생관은 각자가 먼저 자신의 인격을 단련하고 나아가 세상을 평안하게 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데 있다. 이런 그의 철학의 집약이 바로 ‘인(仁)’이다.
이 ‘인(仁)’ 대해 그의 제자 안연이 묻자 공자는 ‘인(仁)’은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답하였으니, 그 의미는 ‘충동적이고 감성적인 자아(自我)를 의지로 극복하여 예법(禮法)을 갖추고 성숙한 인격을 갖춘 인간(君子)이 되도록 하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에 다시 안연이 ‘극기복례’의 구체적인 실천방안에 대해 공자에게 묻자 공자가 답하기를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동(非禮勿動)’이라고 하였으니, 그 뜻은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는 의미로 ‘논어’ 안연편에 기록되어 있다.
훗날 맹자는 이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동(非禮勿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하였다.
먼저 맹자는 ‘무위기소불위(無爲其所不爲) 무욕기소불욕(無欲其所不欲) 여차이이의(如此而已矣)’라고 하였으니 그 뜻은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지 말며, 하고자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고자 하지 말 것이니, 이와 같을 뿐이다’라는 의미이다. 이어서 맹자는 또 이르기를 ‘인유불위야이후(人有不爲也而後) 가이유위(可以有爲)’라고 하였으니 그 뜻은 ‘사람은 하지 않음이 있은 연후에야 비로소 할 만한 것이 있다’라는 의미이다.(‘맹자’ 진심상에서).
이후 주자(朱子)는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동(非禮勿動)’이란 공자의 말을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는 ‘비례(非禮)는 사사로운 욕심 즉 이심(利心)과 탐심(貪心)이다. 물(勿)은 금함이다. 이는 마음의 주장이 되는 바요, 이심(利心)과 탐심(貪心)을 이기고 예(禮)로 돌아갈 수 있는 기틀이 되는 것이다. 이심(利心)과 탐심(貪心)을 이기면 행동과 그 용모, 그리고 모든 면에서 예에 맞지 않음이 없어서 일상에서 하늘의 이치에 맞지 않음이 없다’라고 설명하였으니, 그는 이심(利心)과 탐심(貪心)의 극복을 위의 공자의 말을 일상에 적용하는 핵심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나아가 생명의 근원이 이심(利心)과 탐심(貪心)을 물리칠 수 있는 ‘마음’에 있다고 보아 잠언 4장 23절에서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하였으니 ‘마음의 수양(修養)’을 최고의 덕목으로 본 것인데 이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으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기독교의 가르침의 핵심은 신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인격과 성품을 닮으라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니 이로써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한편 ‘마음의 수양’을 이룸에 대해 백강 이경여 선생은 신독(愼獨) 즉 ‘홀로 있을 때라도 마음가짐과 행동이 도리(道理)에 어그러짐이 없어야 할 것’을 가장 소중한 덕목으로 보아 말하기를 “인(仁)을 숙련하는 공부가 어찌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겠습니까.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덕(天德)·왕도(王道)는 그 요체가 홀로 있을 때에 삼가는데 있을 뿐이다(程子以爲: 天德 王道, 其要只在槿獨)’고 하였습니다. 홀로 있을 때를 삼가지 않아서 유암(幽暗)하고 은미(隱微)한 데에 문득 간단(間斷)되는 곳이 있다면 어떻게 날로 고명(高明)한데에 오르겠습니까<효종4년 1653년 7월2일 백강 이경여 상공 상차문(上箚文)>”라고 하였다.
목수가 재목을 곧게 다듬고, 궁사(弓師)가 화살을 바르게 펴며, 농부가 물고랑을 팔 때 곧게 내서 물을 순조롭게 흐르도록 하듯이 현명한 사람은 마음을 수양하고 신독함으로 세상의 이심(利心)과 탐심(貪心)을 극복하고 언제나 마음이 올바르고 진실하게 작동하도록 한다. 이런 현명한 사람은 또한 큰 바위가 흔들리지 않듯이 뭇사람들의 비방과 칭찬에 그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며 항상 그 마음의 중심이 진리의 말씀 안에 반듯하게 놓여 있으니 그는 인간다운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2024. 6.27.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