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행복한 사람

[별처럼]

행복한 사람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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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이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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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힘겹게 건너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을 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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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반에 지하철역을 청소하는
60대쯤의 여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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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벽 아래 의자 주위에 떨어진
쓰레기들을 빗자루로 쓸어내어 쓰레받기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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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식 변기를 세제로 닦고
반들반들하게 윤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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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여성들의 수고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악취 없고 깨끗한 지하철역이 되는구나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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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파업할 동안
파리의 지하철역에 진동하는 지린내를 맡아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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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가 가득하고
더러운 뉴욕의 지하철을 탄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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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속의 그녀는 밤일이 끝난 후
혼자 사는 단칸 지하방으로 돌아가 밥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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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그녀가 다른 일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백화점의 종이 쇼핑백들이 방바닥에 가득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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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종이 쇼핑백에
플라스틱 손잡이를 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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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끼우는데 10원,
몇시간을 일하면 8000원을 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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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에도 그녀는 공공근로나 일거리만 있으면
마다하지 않고 다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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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그녀가 방에 앉아 슬퍼하는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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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번 돈으로 오늘을 살고
생존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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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보면서 가슴이 찡하고
내가 편하게 사는 게 죄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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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를 40년 하다 보니까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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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마비로 어려서부터
다리가 불편한 여자 판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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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여고와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고시에 일찍 합격하고 판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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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있는 판사실을 찾아갔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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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게 다음 번 세상에는
청소부가 되더라도 매춘부가 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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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으로 걸을 수만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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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의 진정성이 내 가슴 깊숙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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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명의 기독교 신도들이 애창하는
찬송시를 지은 여성 시인을 여러번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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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뇌성마비로
그녀의 몸은 작동기능을 거의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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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체같이 굳어버린 몸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두 손가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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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아이큐의 두뇌뿐인 것 같다.
혼자서는 무엇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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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씩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 그녀에게 가서
목욕시켜주는 봉사를 하는 여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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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을 시켜 주고 돌아갈 때
혼자 몸을 닦을 수 있는 것만도 행복이라고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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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뇌성마비의 그녀는
유일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으로 카톡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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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
‘변호사님 한번 입을 테이프로 막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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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발을 꽁꽁 묵고 사람들 사이에 쳐 박혀 있어보세요.
그게 60년 넘은 일생을 지내온 제 상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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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머리 좋은 찬송 시인이
다리를 절더라도 혼자 일어나 걸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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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목욕을 하고 밥을 먹을 수 있다면,
분명 행복해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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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난하고 험한 삶의 밑바닥에서
맑은 샘물같은 행복을 퍼 올린 사람을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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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출신 시인인 그는 폐암 말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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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꼭대기 어두컴컴한 임대아파트 방에
혼자 누워 있는 그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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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고난은
모두 그를 찾아와 있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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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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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고독,
병과 늙음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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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바다인 이 세상의 마지막 파도에
그는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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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의 입에서 엉뚱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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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같은 죽어가는 환자가
하루종일 누워있을 수 있는 방이 있다는 게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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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중학교에서
급식에 남은 누룽지를 가져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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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서 나물 반찬을 가져다 냉장고에 넣어줘요.
목욕 봉사를 하는 분이 더러 와서 몸을 씻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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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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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창문을 열면
투명한 이슬이 맺힌 호박꽃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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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호박꽃을 밉다고 표현하나요?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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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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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인은 내가 만난 후 죽을 때까지
몇 달 동안도 매트리스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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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책과 연필을 놓고 시를 쓰다가 죽었다.
그는 내가 그의 마지막 시집을 내줬으면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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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환한 달빛 띠가 펼쳐진 번들거리는 밤바다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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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총총한 별들이 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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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색색으로 반짝이는
보석같은 부둣가의 불빛들이 검은 바다 위에서 물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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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서 행복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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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살고 있는 하루하루에서
작은 성취와 기쁨을 발견해 내야 하는 건 아닐까?

​* 즐거운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