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다 당신의 오랜 침묵 그 무늬를 하여 나는 초여름 대간 기슭에 홀로 들어있다 길섶 여기저기 더디게 온 봄꽃들 오래도록 멈춰서 계절과 계절 , 낮과 밤의 경계가 무너지고 무뎌지는 불투명의 시간 종달새 부리 닮은 산괴불주머니 노랗게 무리 지은 노랑제비꽃 속으로 한없이 내려앉은 당신이 지워질 무렵이면 감자밭엔 하얀 감자꽃 가득할 것이다 한때는 소금실은 배와 금강송 가득 실은 떼배가 오르내렸을 그러나 바닥을 드러낸 강에서 갈라진 내 미음을 본다 이곳에 장마 지고 굵은 비 며칠 들면 군락을 이룬 버드나무 아랫도리 흥건해지고 앙다문 수문 마침내 입을 열어 토해낸 물을 다시 먼 길을 흐를 것이다 다시 산새들 울고 신갈나무 잎들 더욱 푸르러 숲은 또 한 번 짙게 우거질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괜찮아질 것이다
곽효환 시집 <너는>2018
(작가소개)곽효환 시인.1967년 전북 전주 출생.1996년 세계일보 시 '벽화 속의 고양이3'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