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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우레가 치고 비가 내렸는데, 풍해도豊海道 봉주鳳州에서 사람과 소가 벼락 맞았다. 어떤 사람이 소를 끌고 가다가 벼락 맞아 죽었는데, 죽 은 자의 두 손가락과 음경陰莖을 잘라 간 사람이 있었다. 관찰사觀察使가 율律에 의하여 논죄論罪하였다. _p.27
성종 19년에 여인의 시신이 강을 따라 떠내려왔는데, 온몸이 두들겨 맞아 상처투성이인 데다가 칼로 인해 생식기가 갈라져 있었다. 실록에 기록된 내용을 읽기만 해도,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굉장히 끔찍하고 잔인한 살인 사건이다. 이 정도의 사건이라면 오늘날에도 신문 1면을 장식할 정도로 사회적 파장이 클 것이다. 그런데 강을 따라 떠내려온 여인이 살해당한 이유가 투기라면 어떨까? _p.70
하동에 사는 도인으로 알려진 문양해는 국문을 받는 과정에서 신선이 사는 선원촌의 이현성 집에서 녹정과 웅정을 만났다고 진술했다. 사슴에서 인간이 된 녹정은 나이가 500살로 얼굴이 길고 머리털이 흰 외모로 ‘청경 노수’ 또는 ‘백운 거사’라 불리고, 곰에서 인간이 된 웅정은 나이가 400살로 얼굴이 흐리고 머리털이 검었는데 ‘청오 거사’라 부른다고 했다. _p.152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샴쌍둥이에 대해 최초로 기록한 것은 언제일까? 《삼국사기》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샴쌍둥이에 대한 기록은 고구려 보장왕 7년(647년)으로, 고구려 왕도의 여인이 몸 1개에 머리가 2개 달린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그 다음은 통일신라 헌덕왕 17년(825년) 때로, 무진주 마미지현에서 사는 여인이 머리와 몸이 2개이고 팔이 4개인 아이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_p.198~199
https://www.youtube.com/watch?v=JL7gMKDRTTk
영조 43년 경상 감사 김응순이 산음현(경북 산청군)에서 7살 먹은 여자아이가 사내아이를 출산하는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는 보고를 올렸다. 일반적으로 7살 여자아이가 출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경상 감사 김응순의 보고에 백성은 물론 조정은 혼란에 빠졌다. 70년 넘게 살아온 영조도 7살의 여아가 출산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영조 자신도 많은 책을 읽었지만, 조선 건국 이후 약 400년 동안 7살의 여아가 출산했다는 기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_p.230
10명의 시왕은 각기 조사하는 범죄유형이 다르지만 일부 왕들은 망자가 똑같은 범죄를 저질렀는지 조사하고 벌을 내린다. 또는 태산대왕이나 전륜대왕처럼 윤회를 담당하며 태어날 곳을 정하는 일이 겹치는 왕도 있다. 이렇듯 저승 세계에서는 죽은 사람마다 지은 죄에 따라 최소 1번에서 최대 10번의 심판을 받는다. _p.266
이뿐만이 아니다. 태종은 가뭄이 발생할 때마다 정몽주를 비롯한 많은 사람을 죽이고 조선을 건국했던 일, 형제를 죽였던 왕자의 난, 개경에서 한성으로 수도를 옮기는 큰 역사로 인해 삶이 어려워진 백성의 원망이 가뭄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며 늘 하늘과 백성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백성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관찰사에게 백성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해결해 줄 것을 명령하는 등 국정 운영의 전반을 재검토하여 발견된 문제는 반드시 시정하게 하였다. _p.299
세종은 경연 중 용이 실제로 존재하는가에 대해 신하들과 열띤 토론을 했다. 신하들은 송나라 휘종이 용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인용해 이 세상에 용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세종은 용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조목조목 과학적 근거를 대며 부정했다. 그러나 결국 세종도 용의 존재 여부에 대해 누구도 확신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신하들의 의견을 일부 수용하는 것으로 매듭짓는다. _p.337
한참을 공부하던 도중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문가학에게 술을 먹자며 이야기를 걸어왔다. 문가학은 술잔을 나누다 여인이 술에 취해 쓰러지자, 그녀를 동아줄로 기둥에 꽁꽁 묶어두었다. 술에서 깨어난 여인은 동아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본래 모습인 백여우로 변신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한참 동안 안간힘을 쓰던 백여우는 혼자 힘으로는 달아날 수 없음을 깨닫고 문가학에게 둔갑술이 적혀있는 책을 줄 테니 제발 풀어달라고 애원했다. _p.392~393
숙종 37년(1711년), 삼척에 사는 노비 출신의 여인이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죽이고, 남편의 시신을 찾아왔다는 믿을 수 없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실려있다. 인간이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죽였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데,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근력이 약한 여성이 호랑이를 죽였다는 이 기록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할까? _p.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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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정말 조선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역사 기록에서 찾은 기이한 이야기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정태세문단세…” 하고 조선 왕들을 외웠던 것처럼 왕들의 이야기만 실려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민간에서 있었던 다양하고 재미있는 스토리들도 많다. 벼락 맞아 죽은 시신이 성기와 손가락이 잘려나간 채 발견되었다거나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죽인 사람이 사실은 과부였다는 등 믿을 수 없는 기이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왕의 기록이라고 생각했던 역사서에 알고 보니 백성들의 모습도 많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새롭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몇천 년이 지난 현재의 우리들 모습과 너무도 닮은 선조들의 삶도 발견하게 된다.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19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국은 확진자도 많이 나오지 않고 방역에 성공했다고 생각했으나, 한 종교단체 때문에 기하급수적으로 확진자가 늘어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무엇보다 이 종교단체가 사이비 종교인 신천지였던 사실로 인해 더 크게 이슈가 되었다. 현재에만 존재할 것 같은 사이비 종교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기존에 없던 신을 만들어 사람들을 현혹해 재물을 뜯어갔는데, 끝없는 전쟁으로 인해 불안해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노리고서는 두박신이 지켜준다며 홀린 것이다. 현재에도 그 당시처럼 불안하고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많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어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이비 종교를 조선시대에는 과연 어떻게 해결했는지 이 책을 통해 알아보는 것도 한 가지 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