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로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사 임원이며 프로듀서였던 스탠리 R 자페가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화 매체 데드라인은 10일(현지시간) 전했다. 고인은 '위험한 정사'(Fatal Attraction)로 같은 상 후보로 지명되는 등 '꼴찌 야구단'(The Bad News Bears), '생도의 분노'(Taps), 'Black Rain and Goodbye', '콜럼버스' 등의 영화를 프로듀스했다.
고인이 더스틴 호프먼과 메릴 스트립이 연기 호흡을 맞춰 양육권 싸움을 벌이는 과정을 그린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1979)를 제작했을 때 영화계 입문 10년차였다. 두 배우 모두 오스카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스트립은 세 차례 중 첫 번째)을, 로버트 벤튼이 감독상과 각색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그는 '생도의 분노'(1969)를 제작하며 파라마운트 사장에 올랐는데 당시 스물아홉 살로 메이저 영화사 최연소 대표였다. '생도의 분노'는 폐쇄 직전의 사관학교에서 일어난 반란을 그렸는데 티모시 허튼 주연에 톰 크루즈, 숀 펜, 잔카를로 에스포지토 같은 미래 스타들이 얼굴을 내민 영화였다. 자페는 그 뒤 리처드 벤저민과 알리 맥그로를 주연으로 기용해 'Goodbye, Columbus; I Start Counting'(1970)를 제작하고 제프 브리지스의 남북전쟁 시대물 'Bad Company'(1972), 월터 매토와 테이텀 오닐이 호흡을 맞춘 리틀리그 야구 코미디 '꼴찌 야구단'(1976)을 제작했다.
그는 켈리 맥길리스와 조디 포스터가 호흡을 맞춘 법정 드라마 '피고인'(The Accused, 1988), 마이클 더글러스의 액션 스릴러 '블랙 레인'(1989), 브렌든 프레이저와 맷 데이먼 공동 주연의 '스쿨 타이'(1992), 킴 베신저의 'I Dreamed of Africa'(2000)와 셰카르 카푸르 연출과 히스 레저 주연의 'The Four Feathers'(2002) 등을 제작했다.
자페는 프로듀서로 일생을 보냈지만 딱 한 차례 메가폰을 잡아 어린이 실종 드라마 ' Without a Trace'(1983)를 연출한 적이 있다. 그는 일간 뉴욕 타임스(NYT)에 “내가 직접 감독하기로 한 결정은 내가 함께 일했던 감독들에게 가졌던 부동의를 반영한 것이 아니었다"면서 “이기적으로 난 다른 사람들처럼 팔을 좍 펼쳐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프로듀서 경력 중에는 2023년 파라마운트 플러스 시리즈 '위험한 정사'도 포함됐는데 마이클 앱티드의 '사랑의 시련'(Firstborn)에 주연한 테리 가, 피터 웰러, 코리 헤임(빅스크린 데뷔작) 등등을 기용했다.
고인은 1940년 7월 31일 뉴욕주 뉴 로첼레에서 쇼비즈니스 가문에서 태어났다. 부친 레오 자페는 반 세기 이상 컬럼비아 영화사에서 일했으며, 회계사로 출발해 회장, 최고경영자(CEO), 이사회 의장까지 진급했다. 부친 역시 아카데미 위원회의 1978년 잔 허숄트 인도주의상을 수상했다. 스탠리의 누이 안드레아 자페는 파워하우스 PR 임원을 거쳐 폭스 마케팅 책임자가 됐는데 2016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스탠리는 1960년대 초반 세븐 아츠 어소시에츠에서 경력의 첫 발을 뗐다. 워너 브러더스가 1967년 세븐 아츠를 인수한 뒤 CBS를 떠났다. 3년 뒤, 자페는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EVP와 COO를 지냈고, 딱 3개월 뒤 영화사 대표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1971년 자필름(Jaffilms)을 창립하기 위해 파라마운트를 그만 뒀다. 'Bad Company'와 '꼴찌 야구단'을 제작한 뒤 컬럼비아 영화사의 EVP 월드와이드 프로덕션 책임자가 됐다. 딱 2년만 그 자리에 있다가 프로듀싱 경력에 집중하기 위해 그만 뒀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로 오스카를 받은 자페는 20세기 폭스 프로덕션 대표 셰리 랜싱과 힘을 합쳐 1982년 말 제프-랜싱 프로덕션을 차렸다. 둘이서 몇 편을 제작하고 뒤에 '위험한 정사'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자페와 랜싱은 오스카 작품상 후보로 지명됐지만 수상하지 못했고, '마지막 황제'도 상복이 없었다.
자페는 1991년 파라마운트 커뮤니케이션 회장 겸 COO가 됐다. 이듬해 파라마운트 영화사 회장으로 브랜든 타티코프를 대체했다. 그는 바이아콤이 1994년 파라마운트를 인수할 때까지만 그 자리를 지켰다. 자페는 자신을 쫓아낸 이들을 고소했는데 바이아콤 측이 자신의 질의에 답도 하지 않고 파라마운트 주식에 접근하는 것도 불허했다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결국 그는 이듬해 패소했다.
파라마운트 절정기에 북미하키리그(NHL) 뉴욕 레인저스를 인수했는데 1994년 스탠리 컵을 차지함으로써 54년의 갈증을 달랬다.
고인은 두 차례 이혼했는데 유족으로 누구를 남겼는지 정확한 정보가 없다고 매체는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