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케베케, 메타버스 등 섞임의 문화를 활용하라
흰자와 노른자가 구분된 계란 후라이 시대를 지나 오믈렛 사회가 왔다? 최근 들어 생산과 소비, 휴가와 일, 가상과 현실이 서로 오믈렛처럼 섞이는 현상이 사회의 전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인 경계선, 지리적인 경계선, 관념의 경계선 등이 많이 허물어지면서 이른바 ‘오믈렛 사회’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발견되는 오믈렛 현상들을 통해 개인과 기업이 자신의 삶과 기업을 경영하는데 필요한 인사이트를 얻어보자. <편집자 주>
오믈렛 사회
생산과 소비의 경계가 없고 조직 내에서도 위계구조가 무너지며, 비즈니스 속에서도 지리적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현상을 이르는 말
오믈렛 사회 따라잡기
지난 7월에 방한한 미국의 대표적 IT전문가 네그로폰테 교수가 언급한 이 말은 시대의 변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 오믈렛 현상이 다소 생소하다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미 우리 삶의 가까운 부분에서부터 이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가까운 예로 조직문화의 변화를 들 수 있다. 기업 안에서는 전통적인 위계구조가 무너지는 오믈렛 현상이 시작되고 있다. 그 중 한가지 예가 ‘직급 호칭 파괴’다. CJ, 아모레퍼시픽, 유한킴벌리 등은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전체 임직원들이 직급 대신 ‘님’자를 붙여 부르는 제도를 도입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신입사원들은 업무효율성과 자신감이 크게 높아졌고, 신입사원 채용과 기업 이미지 제고에도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한편, 교보생명은 연공서열에 따른 직급체계와 연봉제도를 수정하고, 업무에 따라 리더, 매니저, 어소시에이트로 구분하기로 했다. 연봉 또한 직급이 아닌 직무에 따라 차등을 두었다. 전통적인 직급의 경계선과 수직적인 소통체계는 오믈렛 사회가 시작되면서 조금씩 희석되어 가는 추세다.
그 밖에도 오믈렛 현상은 다양한 양상으로 구현되고 있다. 다음의 키워드들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앰비언트 광고
환경을 의미하는 앰비언트(Ambient)와 광고(Advertising)의 합성어. 소비자의 생활환경을 깊게 파고 드는 비전형적인 광고 형태를 말함
앰비언트 광고 따라잡기
삶과 광고의 경계가 흐릿해서 오히려 삶 속에 더 깊이 체감되는 광고들이 효과를 발휘할 때가 있다. 바로 앰비언트 광고다. 길가의 전봇대나 엘리베이터, 버스 등 현실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매체를 활용해 광고 메시지를 던진 예는 다양하다.
미국에는 자판기에 병 콜라를 판다. 때문에 자판기에 병따개가 부착돼 있는데, 페리오 덴트라는 치약회사는 바로 이 병따개를 활용해 앰비언트 광고를 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병따개가 부착된 부분에 건강한 치아가 돋보이는 사람의 얼굴 사진을 붙인 것이다. 자연히 병 콜라를 뽑은 사람들은 자판기에 붙어 있는 병따개를 사용하면서도, 마치 사진 속 사람의 치아로 뚜껑을 따는 듯한 착시 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한편, 햄버거 체인 맥도날드는 그들의 커피를 홍보하기 위해 갈색의 기다란 전봇대의 위와 아래에 각각 커피 주전자와 컵 모양의 조형물을 설치하고, 마치 위에서 커피를 따르는 듯한 느낌을 연출했다. P&G는 새로 출시한 린스를 홍보하기 위해 거대한 빗 모양의 조형물을 전선이 엉켜있는 전봇대 위에 설치했다. 그리고 조형물 위에 ‘엉키세요? 리조이스 린스로 바꾸세요’라는 메시지를 적어 넣었다.
광고와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 더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앰비언트 광고들. 때론 ‘나는 광고다’ 식의 일방적 메시지보단 삶 속에 스며드는 광고가 더 어필하는 법이다.
보케베케(Voca-vaca)
천직을 의미하는 '보케이션(Vocation)'과 휴가를 뜻하는 '베이케이션(Vacation)'이 결합된 말. '천직을 찾아 떠나는 휴가'를 말함
보케베케 따라잡기
개인의 삶에서도 오믈렛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매우 상반돼 보이는 휴가와 천직이 결합된 ‘보케베케’라는 신조어가 흥미를 끈다. 구직의 새로운 형태인 보케베케는 휴가 기간 동안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이 무엇인지를 직접 경험해 보는 신 풍속이다. 이미 200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보케베케 사이트가 개설돼 인기를 끌었다. 평소 해보고 싶던 일이었지만 섣불리 이직할 수가 없어 멈칫해왔던 직업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상품을 내놓아 인기를 끈 것.
몇 년 전, 국내에서도 <SBS 스패셜>을 통해 다양한 사례가 소개된 바 있다. 그 안에는 MS의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다 보케베케를 체험하고 와인 메이커가 된 한 남자의 이야기, 유명 레코드사 국장에서 호텔리어로 변신한 한 사람의 이야기 등 다양한 사례가 소개됐다. 국내에서도 마흔이 넘어 요리사로 이직한 교사, 아나운서를에서 여행작가로 변신한 손미나 아나운서 등 보케베케를 통해 인생의 길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양하다.
휴가철만 바라보며 근근히 1년을 책상 앞에 앉아있는 당신! 산이나 바다로 떠나는 휴가 뿐 아니라, 꿈꾸었던 직업을 직접 체험하며 보내는 보케베케를 선택해 보는 건 어떨까?
메타버스(metaverse)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 기존의 ‘가상현실’ 개념보다 진일보한 개념
메타버스 따라잡기
유명한 SF 작가 닐 스티븐슨의 소설 <Snow Crash>에 처음 등장한 이 용어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오믈렛 된 대표적인 웹 문화의 상징이다. 기존의 ‘가상현실’이 현실같은 가상세계였다면, ‘메타버스’에서는 가상세계가 현실사회에서 연동돼 실제로 구현되기도 한다.
2003년, 미국에서 출시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임 ‘세컨드라이프’는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기 힘들만큼 사실적인 3D 화면으로 열풍을 끌었다. 사람들은 세컨드라이프 안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사업을 하거나 애인을 사귈 수도 있다. 이 공간 안에 존재하는 사람은 모두 고유의 URL을 부여 받으며, 간단한 클릭 한 번으로 가상세계를 들어가거나 빠져나올 수 있다.
여기까지는 가상현실과 그리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세컨드라이프 안에서 통용되는 화폐인 ‘린든 달러’는 실물통화와 교환할 수 있다. 이미 소니와 IBM 등은 이 안에 지점을 세웠고 사이버 캠퍼스를 세운 대학들도 있다. 그야말로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독일에서 출시한 ‘트위니티’도 이와 유사한 또 하나의 가상세계로 인기를 끌었다.
가상과 현실을 쇼핑이란 매개체로 더 긴밀하게 연결시킨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크로아티아에서 개발한 ‘트릴레니엄’은 쇼핑을 하는 게임이다. 흥미로운 것은 트릴레니엄 안에서 쇼핑한 물건을 현실에서 실제로 결제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 트릴레니엄의 창업자 헤르보제 프리픽은 “이제 사람들은 집에 앉아서 원하는 물건을 결제하고 배달 받을 수 있는 편리함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메타버스는 소비사회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문화의 흐름을 볼 때, 오믈렛 문화는 개인과 조직문화를 넘어 이제 비즈니스와도 접목돼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이쯤이면 우리 경영자들도 계란 후라이에서 오믈렛으로 입맛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