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없는 봉사와 충성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태복음 16: 24. 누가복음 9:25)
많은 사람들이 이 가르침을 잘 따르지 않습니다. 따르지 않을 뿐 아니라 싫어합니다. "그냥 교회만 다니면 되지"하며 자기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다수 기독교인들의 분위기가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의 신앙 자세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73%가 샤머니즘, 신비주의, 기복신앙 으로 나타났습니다. 기복주의, 신비주의, 샤머니즘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신앙이며, 이방인들의 신앙이며 바알, 맘몬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가난한 자, 병든 자. 갇힌 자, 환란 당한 자들을 도와주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고, 오로지 더 많은 기적을 체험하며 자기의 병을 고치거나 합격이나 성공, 물질과 명예 등, 자기 이익을 구하는 저급한 기복주의에 얽매인 젖먹이 신앙에서 성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앙은 자기-부인이나 자기-희생과는 무관하고 십자가의 명령이나 고난의 의미도 진정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물질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명예에 눈이 어두워진다면 가롯 유다 꼴이 되어 스스로 멸망의 길에 접어들 것입니다. 오늘날 대형교회의 기득권이란 무엇보다도 거대한 돈입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돈과 야합한 현대판 가룟 유다(삯꾼)의 장사터입니다. 거대한 바벨탑을 건축해 가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바겐 세일합니다.
"목사를 대적하면 천벌을 받는다"는 협박과 세뇌,우민화, "목사는 주의 종이니 판단하지 말라"는 무분별한 맹신도화로 하나님과 하늘나라에 대한 모든 특허권과 전매권을 독점하여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조직폭력배가 영세한 노점상을 협박하며 삥 뜯는 것보다 더 죄질이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조폭은 자신에게 삥을 뜯기면 축복을 받는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또 거룩한 척, 이중인격의 가면을 쓰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적어도 하나님의 이름이나 예수님은 팔아먹지 않으니까요. 이런 영적 조폭인 삯꾼들에게 휘둘리거나, 혹은 그들에게 아부하면서 장단을 맞추거나 헌금하는 것은 성전 장사치들을 돕는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충성과 봉사나 헌금이기는 커녕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합세하는 것입니다.
분별없는 봉사와 충성은 도리어 자신에게 화가 될 것입니다. 이들의 죄악은 예수께서 채찍으로 내리치시며 저주하셨던 성전 장사치들의 죄악보다 훨씬 더 악하고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교회(혹 성도)가 (유명 목사들처럼)권력과 야합하거나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려 할 때에 '핍박받는 교회'는 '핍박하는 교회'로 변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재물)은 곧 권력입니다. 기독교는 외부의 핍박으로 더욱 정화되고 불타 번지지만 기독교 내부의 돈(재물)과 권력으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자기를 부인하지 않은 사람도 선한 믿음의 경주에서 결국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유명한 주석가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자기부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삶의 모든 순간 마다, 자신에 대해서는 'No' 라고 말하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Yes' 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기 부인이 없는 목회자는 자기 부인이 없는 교인들을 양산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신앙을 도구화하며 하나님을 결제 수단화하는 자가 됩니다. 아무리 신학으로 무장했다 할지라도, 선지자나 목사노릇하며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했다 해도(마태복음 7:21~)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은 생활 태도로는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어 결국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자기 스스로에게 항상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라고 강력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지는'희생은 그치지 않고 해야 하는 계속되어야 할 신앙행위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생활, 십자가를 지는 희생의 삶, 주님을 따르는 길은 '생명을 찾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부인의 예로 이용규 선교사님을 들수 있습니다. 그는 [내려놓음]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최고의 학교라는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지만 자신의 뜻과 출세와 성공을 모두 내려놓고 척박하고 가난한 오지, 몽고의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삶입니다. 문제는 항상 자신의 자아입니다. 전적으로 부패하여 죄에 오염된 인간 자신의 의지나 욕구인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어려움을 가지고 고통 받고 아파한다면 그는 아직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는 희생의 상징이며 고난의 상징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희생이며 순종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무력하게 되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로마서 6:6)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로마서 8:13)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라디아서 5:24)
2009. 5.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