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때 영국 특수작전부(SOE) 비서로 일했던 팻 벅스턴이 104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졌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10일 전했다. 지난 1월 16일(현지시간) 사망했는데 거의 두 달이 지나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1940년 가을에 자원해 허트퍼드셔주 웰윈의 프라이스(9 스테이션)에 배치됐는데 비밀 SOE 공장 설계와 무기 제작, 첩보원 운영과 적진 뒤의 레지스탕스 지원 등 다양한 임무를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휴 퀜틴 리브스를 위해 일했는데 그는 스텐(Sten) 총 소음기 같은 장비들, 소음기가 내장돼 암살에 이용된 피스톨 권총 웰로드(Welrod)를 발명했다.
회의 속기록을 작성하는 것은 물론, 그녀의 임무는 리브스의 팀을 위해 장비를 취득하는 것과 관련됐는데 배급제 시기라 어려운 과제였다. 한 가지 주목할 책동은 리브스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인 일인승 '모터 가동 잠수형 카누'(MSC) 바닥에 깔 40km의 구리 케이블을 구하는 일이었다. 언제나 “우리는 어떡해든 해낼 거야"(we’ll muddle through)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그녀는 “웰머들트루 팻시”로 불렸다.
고인은 1921년 10월 15일 패트리샤 로즈메리 킹을 본명으로 갖고 태어났다. 캐넌 허버트 킹과 루시 부부의 아홉 자녀 가운데 막내였다. 노폴크 홀트의 목사관에서 태어났다. 부모 모두 비밀정보국과 연결돼 있어 2차 대전 초기 몇 달 동안 팻은 부모가 루이스 T 스탠리를 보호하는 것을 도왔는데, 스탠리는 나중에 BRM 포뮬러 팀의 회장이 됐다. 스탠리는 부친의 후임자로 지목돼 해안을 사이클로 돌며 사진들을 찍어 셰링엄으로 가 사진을 부치는 것을 따라 갔다.
허트퍼드주 기독병원 학교에 다니며 팻은 음악에 뛰어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연주했다. 학교를 떠난 뒤 그녀는 퍼커릿지 근처 소녀 학교인 크로프턴 그란지에서 보조원으로 일하면서 더 어린 소녀들에게 하인 취급을 당했고 소외된 느낌을 가졌다. “그들은 내가 커밍아웃했는지, 사냥했는지, 총을 쐈는지, 낚시를 했는지 묻는다.… 아주 진저리가 쳐졌다.”
그녀의 재능을 알아봐주는 이가 없었다. 이 학교의 교장 메리언 비어드는 팻의 친구인 캐슬린 페티그루를 MI6 국장의 수석 비서로 추천했다. 페티그루는 제임스 본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M 국장의 비서 미스 머니페니의 모델이다. 팻이 어쩌면 더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1938년 9월 그녀는 런던에 있는 세인트 제임스 비서 대학에 등록해 회의록 작성과 속기술을 배웠다. 초기 과제 중 하나는 이듬해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열린 영국과 팔레스타인인, 유대인, 아랍인 지도자 연석회의의 회의록을 초벌 작성하는 일이었다. 건시의 라디오 운영자로 일하며 그 섬의 관리자 텔퍼 스몰렛 대령의 비서로 일하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는데 부친이 거부하는 바람에 그녀는 정부의 비서 일을 그만 둬야 했다.
비서 일자리를 구했으나 너무 지루하다고 마다한 그녀는 1940년 여름 노폴크로 돌아와 에드워드 코즌스 하디 경의 개인비서로 일했다. 경의 천거로 전기회사의 컨설팅 엔지니어와 감독 일을 하며 기계 수리를 익혔다. 같은 해 말 경이 그녀의 이름을 SOE에 넘겼다.
녹화하는 가운데 면접을 봤는데 "높은 기준의 시험을 통과해 나이는 어린데 뭐든지 잘할 것 같다는 평가를 들었다"고 했다.
팻은 레이 벅스턴과 결혼한 뒤 SOE를 떠나야 했다. 레이는 부인의 일자리를 구하려고 옥스퍼드 보들리안 라이브러리에 주둔하는 군 기지로 전근해 부인은 비행기 항적들을 녹화하고 항공사진첩보부 자료를 축적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전쟁 후 부부는 세인트 알반스에 정착했는데 그녀는 가죽장갑과 골프클럽 커버를 만들고 수출용품 상자에 완충재를 채워넣는 일을 하며 가계를 도왔다. 1980년부터 1986년까지 세인트 알반스 학교 교장의 비서로 일했는데, 학생들은 나중에 그녀의 사무실에 들어가다 구름 만한 담배 연기 세례와 함께 경미한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에게 첫 징벌로 가하는 '한 대 맞고 시작'을 하곤 했다고 돌아봤다. 그녀는 항상 그네들의 범죄가 뭐냐고 물었고, 가끔 그네들은 멍청하게 걸려들었고 나중에는 "더 솔직하게 털어놓으라"고 조언하는 모습이 목격되곤 했다.
그녀는 은퇴 선물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주변 상공을 비행기 타고 돌아보는 비행을 즐겼고 세인트 알반스 대성당의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유족으로는 두 딸과 아들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