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 무슨 책에서 일본의 전문기사 후지사와 슈코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후지사와는 기인으로 유명한데 당시 명인 타이틀을 갖고 있었고,
1년 내내 주야장창 술에 쩔어 있다가 명인 결승전 직전 두 달만 딱 술을 끊고 바둑에 매진하여
타이틀을 방어한 다음에는 다시 고주망태로 돌아간다는 사람이었지요.
그가 이런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만약 바둑의 신이 있어서 명예를 걸고 내가 그와 시합을 벌인다면 석 점을 깔겠다.
하지만 만약 나의 목숨을 건다면 넉 점은 깔아야 할 것이다."
위의 글에서는 후지사와가 지나치게 오만방자하여 좀 밉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후지사와는 본래부터 오해 받을 소지가 많은 사람이었지요.
70년대의 어느 날엔, 한국으로 돌아간 조훈현이 보고 싶다며 허접스런 옷 차림으로 한국 김포공항에 갑자기 나타나
공항 쪽에서 한국기원에다 확인전화를 한 그런 적도 있었구요(소지품은 기내에서 마시다 남은 술 반병이 달랑 전부)
그가 한국에서 유명해진 것은 조치훈과 붙으면서부터 입니다.
일본에서는 옛날부터 바둑을 최고 수준으로 잘 두는 사람에게 "명인" 이라는 칭호를 부여했습니다.
또한 명인을 많이 배출한 본인방(本因坊-혼닌보)이라는 집안이 있어왔는데
이 집안은 친자식이 아니라도 바둑으로 대성할 재목을 양자로 받아들여 가문을 계승하기도 했답니다.
일본바둑은 현대에 들어오면서 신문사가 바둑대회를 주최하는 기전 중심이 되었는데,
말하자면 신문사로서 빨리 선점 해야 할 바둑 브랜드가 위와 같이 명인(名人)과 본인방(本因坊) 두개인 셈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사히(朝日)와 마이니찌(每日)가 이 두개 타이틀을 건 대회를 이미 열고 있던 터라
천만독자를 자랑하는 요미우리(讀賣)로서는 무엇인가 획기적인 돌파구가 필요했고
그래서 사상 최대의 상금을 걸고 온갖 이벤트를 다 열면서 최고의 기전을 만든다고 만든 것이 바로 77년 기성(棋聖)전입니다.
우승하면 상금 등이 무려 4억원!
그런데 이걸 누가 차지했느냐 하면 , 바로 후지사와 슈꼬였던 것입니다.
그때 일본에선 아주 난리가 났었지요.
그도 그럴 것이, 이 남자가 25년 생이니까 당시 52세.
오청원 사까다(坂田) 말고도, 이시다(石田), 가또(加藤) 등등.... 정말 기라성 같은 젊은 기사들이 드글드글~ 했는데
후줄근~하게 생긴 중늙은이 하나가 일본 바둑계 최대 타이틀을 거머쥔 것입니다.
그건 정말 바둑 역사에 남을 통쾌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30대 중반만 넘어도 승부의 최일선에서는 밀리는 치열한 전쟁터가 바둑의 승부세계인데,
40 대도 아닌 50 대의 퇴물이 랭킹 1위의 기전을 차지 했으니......
그 엄청났던 기성(棋聖)전 결승 대국이 끝나고 흥분한 일본의 한 기자가 후지사와에게 물었답니다.
"슈우꼬 선생, 만일 바둑의 신이 있다고 가정할 때, 당신과 승부를 겨룬다면 몇 점으로 하시겠습니까?“
한참 생각하다가 후지사와는 이렇게 대답했다지요.
“석 점이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하지만 만일 목숨을 내기로 한다면 넉 점을 놓겠습니다”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숙연해졌답니다.
석점을 놓는다 넉점을 놓는다 하는 건 소위 바둑 용어로 바둑을 모르는 사람은 혹시 이해하기 어려울도 있지만
당구로 예를 들면 핸디를 잡아준다고 생각하면 비슷합니다.
하지만 최고의 프로기사에게 있어서 상대에게 석점을 잡히고 둔다는 조건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바둑을 좀 아는 사람 입장에서 보기에 이런 발언은 전혀 오만한 것은 아닙니다.
오만하긴 커녕 오히려 겸손할 수 잇는 것입니다.
당구로 비유를 하자면 김경률선수에게
"만약 야스퍼스하고 직방으로 붙는다면 어떤 조건으로 할 수 있으십니까?" 라고 물었을 때,
"올 따블이면 해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따따블로 하겠습니다." 라고 답변한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당구와 바둑은 전혀 다르고 김경률이 야스퍼스에게 따블을 잡힐 정도는 절대로 아니지만
김경률이 만약 자신과 야스퍼스를 그 정도로 비교했다면 김경률 입장에서는 대단히 겸손한 것입니다.
그 이후 후지사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77년 제1기 기성전을 시작으로 82년 제6기 까지 기성전만 여섯 번을 연속 제패합니다.
여기서 그의 유명한 " 일년에 딱 네 판만...." 이라는, 어록에 남을 명언이 나오게 됩니다.
“나는 일년에 딱 네 판만 이기면 된다”
기성전은 7전4승제였으므로, 매 년 올라오는 도전자를 맞아
일년에 딱 네 판만 이기면 수억 원의 수입과 일본랭킹 1위가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온갖 특이한 발언과 기행으로 화제를 일으키던 후지사와를 단칼에 쓰러뜨린 사람이 바로 조치훈입니다.
그 해 - 83년도엔 대한민국 바둑계 전체가 들썩였었습니다.
이미 보유하고 있던 명인과 본인방에 난공불락이었던 기성 타이틀까지 거머쥐어
소위 "대삼관"을 달성한 최초의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어쨌든 제1기 기성(棋聖)이었던 후지사와는 대단한 천재였음에 틀림없습니다.
물론 이미 일본에는 영원한 기성으로 추앙받는 오청원(吳淸源)이 있지만
후지사와는 그와 다른 의미에서 자유를 추구한 사람이었습니다.
당구로 치면 이상천 같은 사람이지요.
큰 대회의 결정적인 순간에도 쉬운 선택을 버리고 자기가 치고 싶은 난구를 시도하는 배짱있는 자유인.....
후지사와 슈꼬(藤澤秀行)는 그렇게 살다가 간 사람입니다.
첫댓글 자작나무님은 바둑에도 일가견이 있으신가 봅니다~~~요새 인터넷 바둑으로 치면 아마 5단쯤????
옛날 생각하면서,적절하게 표현한글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당구도 일년에 4번만 이겨도 먹고 살 수 있게 되야 될텐데...
배짱있는 자유인....기인이네요...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문득 하찮은 실력이지만 흑백의 바둑돌이 그리워졌습니다... 글을 읽다보니 천원에 첫 착수를 하는 기보가 문득 떠오르네요... 어딘가에 찾아보면 있을텐데... 자유로움이라는 단어때문인거 같습니다... 부러워지는... 나도 자유롭게 이탈리아 떠나고 싶다...ㅠㅠ
오청원의 3三.화점.천원 바둑......을 말씀하시는군요........아주 명국이었죠.........막판에 기다니의 기가 막힌 묘수로 패하기는 했지만..........
수정합니다........묘수 둔 사람이 기다니 가 아니고.......마지막 본인방 슈샤이 입니다
이탈리아라는 장소를 지정하는 것은 이미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이미 무엇인가에 얽매여 있다는.....ㅋㅋㅋㅋ......나는 알지롱~~고니.....
저도 앉아서 하는 운동중에 바둑을 가장 좋아합니다.. 자작나무님 언제 한수 부탁 드립니다.. 클럽 방문한날 얼핏보니 바둑판이 보이던데요.. 후지사와 에겐 5점 들어가면 될듯하고 목숨을 건다면 6점정도면 될듯 싶은데요..^^ 농담입니다..
후지사와님께 5점이면........대단한 고수이십니다..........
이건 비밀이라서 실명을 거론하긴 어렵구요.저희동네 당구장을 인수 운영 하시는분이 현 바둑프로기사 한분이 계세요..가끔 한수 배우곤 합니다..
누군지 궁금합니다..........저도 당구 배우기 전에 바둑에 심취한적이 있습니다...
후지사와는 기성전에서 도전자로 맞이한 조치훈에게 먼저 이렇게 말을 건넸었습니다. "네 판만 가르쳐 주겠다." 이를 맞받아쳐서 조치훈은 다음과 같이 응수하였다고 합니다. "세 판만 배우겠습니다." 말 그대로 그 도전기는 후지사와가 3 연승을 거둔 후, 조치훈이 4 연승을 거두는 괴력을 발휘하여 조치훈의 역전승으로 막을 내려 재치있는 입씨름과 함께 일본 바둑사에 길이 남는 명승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둑을 다시는 두지 않기로 약속했답니다.
다음에 방문 하면 로또님께만 귓속말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등택-조 입씨름과 자작나무님 바둑안두기와 모종의 연관관계가 ????궁금하구요??...............2....설마 당구장 운영하는 프로기사가 서*수 님은 아니겠죠??....서 명인 당구 아주 좋아하는데....
제가 바둑을 두지 않기로 약속한 것과 조치훈-후지사와 간의 입씨름은 전혀 연관이 없구요.....서*수 님은 대전을 근거지로 활동했던 분이지요. 최고수준 전문기사로서는(순 국산 브랜드) 드물게 당구를 잘 치던 분이구요. 7~80 년대 무렵 이 분이 운영하는 기원이 대전에 있었더랬습니다. 조훈현의 독주에 그나마 힘겨운 제동을 거느라 흉내바둑까지 두어가며 애썼던 분이기도 하구요.....당구도 바둑 스타일 못지 않게 끈질기고 한 번 기회를 잡으면 그대로 끝장을 내는 승부사였답니다..
로또님이 훨씬 더 잘 아실 내용들인데, 한동안 서**님 따라다니며 어울렸던 "잡기의 추억"이.....
자직나무님!!! 도대체 지식의 깊이의 끝을 알수 없네요. 바둑도 두시나요? 언젠가는 산악 자전거 즐기시고 오시는 것을 본적도 있었는데. 정말 존경 합니다. 자작나무님을 보고 있노라면 저자신의 나태함에 심히 부끄럽네요.
제가 옛날 아버님한테 자주 들었던 말중 (70-80년대) 1. 담배 끊는 사람하고는 사귀지 말아라.(옛날에는 독한 사람만이 할수 있다 고 생각 했나 봅니다.) 2. 삼국지 읽지 않은 사람하고 사귀자 말아라 (가장 기본중에 기본의 문학을 읽지 않은 사람은 문외한이다) 3. 바둑을 모르는 사람하고는 사귀지 말아라 (사교의 기본이라고 하는 바둑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ㅠㅠ 이십년 가까이 십오급인 저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천재들인것은 확실합니다 물론 신의 입장에서는 부처님 안에 손오공처럼 아무것도 아니겠지만요... 이 분은 일본을 떠나서 차마 대단한 기행을 일삼은 분이지요 그 분 자체는 이런 일이 기행이라고 생각도 안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