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농장행
유월이 마지막 가는 일요일 새벽이다. 전날 저녁까지 세차게 내리던 장맛비가 멈칫했다. 창밖으로 여명이 밝아오는 하늘을 살폈다. 창원대학 뒤 정병산으로 먹구름은 걷히고 엷은 구름이 덮여 있었다. 아주 붉지는 않았지만 놀이 비치다 사라졌다. 아침놀이 끼면 저기압대로 그날 해 안으로 비가 내린다는 경험칙을 알고 있다. 어쩌면 한낮에 빗방울이 들을 지도 모르겠다.
베란다 창밖으로 날이 밝아 옴을 확인하고 장맛비 틈새 길을 나섰다. 창원실내수영장 맞은편으로 나갔다. 농어촌버스 가운데 북면으로 가는 13번이 먼저 와 탔다. 충혼탑을 돌아 명곡로터리를 지났다. 버스는 이른 아침이라 타고 내리는 사람이 적어 속도가 빨랐다. 동정동에서 천주암을 거쳐 굴현고개를 넘어갔다. 내가 찾아가려는 지인 농장이 가까운 화천리에서 내렸다.
저만치 감계 신도시 아파트가 보였다. 나는 그쪽이 아닌 맞은편 승산초등학교 방향 포장도로를 따라 걸었다. 날이 갠 아침은 높은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천주산에서 작대산으로 이어진 산등선으로는 낮은 구름이 걸쳐졌다. 자동차가 다니질 않는 익숙한 지형지물인 시골길을 걸었다. 논에선 벼들이 포기를 불려갔고 밭뙈기에선 여러 작물이 싱그럽게 자랐다.
구부러진 찻길을 따라 걸어 산모롱이를 돌았다. 갈전마을 뒤 구름 속에 백월산 바위봉우리가 드러났다. 백월산은 삼국유사에 등신불이 된 두 도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나오는 설화의 현장이다. 북면에서 낙동강과 인접한 들판에 위치한 산이라 해발 고도가 그리 높지 않음에도 가까이서는 제법 높아 보였다. 내가 백월산을 여러 차례 올랐으나 가을이나 겨울에 올랐다.
갈전마을 입구에서 지인 농장이 있는 북쪽 산등선으로 들었다. 개울가에는 엷은 분홍색 메꽃이 피어 눈길을 끌었다. 초여름 들판에서 피는 우리 꽃으로 나팔꽃을 닮았다. 드물게 피긴 하지만 고구마에서 피는 꽃도 메꽃과 같이 생겼다. 메의 뿌리는 예전 양곡이 부족하던 시절 간식으로 먹기도 하던 구황식물이기도 하다. 밭에선 일찍 심은 참깨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남쪽 개울 깊숙한 곳에 위치한 지인 농장으로 향했다. 전날 비가 많이 내려 개울에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달포 만에 지인을 만났더니 반가웠다. 지인은 간밤 댁으로 돌아가지 않고 농막에서 잠을 잤다고 했다. 아침 식후 묶어둔 개를 돌보고 닭장의 닭을 살피고 있었다. 나는 농장 여기저기 자라는 농작물을 둘러봤다. 감자와 양파와 마늘이랑은 수확을 끝내 비어 있었다.
지인 농장에서 근래 수종 갱신이 있어 주력 작물은 블루베리였다. 몇 해 전 소나무 분재와 매실나무를 잘라내고 블루베리를 심었다. 여름이면 블루베리를 따 수익을 보고 있다. 올여름도 예상한 만큼 블루베리를 딴다고 했다. 이틀에 한 번씩 따는데 그 양이 좀 된다고 했다. 아침은 비가 온 뒤 이슬방울이 맺혀 있어 한낮이 지나 오후가 되어야 수확이 가능하다고 했다.
우거진 등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농막에 앉았다. 지인은 이른 아침임에도 살림공간으로 가 곡차를 가져나왔다. 지인도 그렇지만 나도 그에 못지않게 곡차를 즐긴다. 지인이 간밤 농막에서 지샌 사연도 음주 후 운전이 어려워서였다. 둘은 잔을 채우고 비우면서 밀린 안부를 나누었다. 내가 시간이 여의치 못해 들리지 못한 새 다른 분들도 농장을 다녀갔음도 알게 되었다.
농막에서 지인과 대작을 끝내고 나는 텃밭으로 가 상추와 깻잎을 몇 줌 땄다. 풋고추도 몇 개 땄다. 청정 지역을 방문한 기념품이었다. 빈손으로 와 일손도 거들지 못함을 미안해 하니 지인은 그럴 일 없다면서 첫물 오이까지 따 주려했다. 오후까지 농장에 머물며 말벗이 되어도 좋겠지만 내겐 그럴 시간이 허여되지 못했다. 작별 인사를 건네고 농장에서 서둘러 나왔다. 19.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