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김장 담그기
2023년 10월 29일 일요일
음력 癸卯年 구월 열닷새 보름날
또다시 아침이 차갑다.
아니다,
춥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산골의 아침이다.
기온은 영상 1도, 아마도 한 새벽에는 영하로
떨어졌지 싶다.
지붕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았다.
꽤 여러 날만이다.
안개까지 자욱하여 시야를 가린다.
앞산이 안보일 정도이다. 아침에 안개가 끼는
것은 낮에는 햇볕이 좋을 것이란 조짐이라지?
날씨가 춥든 말든 이젠 별 상관이 없다.
겨울채비의 마지막, 김장 담그기를 마쳤으니...
옛부터 전해오는 풍습이랄까, 아님 관습이랄까?
언젠부턴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민족은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꼬박꼬박 겨울채비를 했다고 한다.
겨우내 먹을 식량과 부식을 마련하고, 겨우내 땔
땔감도 준비하고, 그 마지막이 바로 김장 담그기
였다. 이 세 가지는 겨울나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라 했다. 농촌에서는 김장 담그기가 그해의
농사 마무리라고 했다. 그 옛날과 달리 요즘이야
계절도 없고 때와 시기도 없이 사시사철 마트에
가면 온갖 종류의 김치가 즐비하게 진열돼 있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 식생활문화라고 할 수 있는
김장 담그기, 김치 담그기가 최근에는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것보다는 상업적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모하는 문화이다.
그렇지만 김치 담그기는 국가무형문화재이며,
김장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소중한 우리의 전통적인 풍습이며 문화라는
것을 젊은이들은 알고있는지 모르겠다.
어찌되었거나 우리는 해마다 김장을 담그고 있다.
결혼이후 한 해도 거른 적이 없는 일 중 하나이다.
요즘 시대에 김장 담그기가 뭐 그리 특별한 것이
냐고 하겠지만 우리 부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전통에 관심이 많은 좀 고리타분한
성격의 촌부와 우리 것을 이어가려는 고집스러운
아내의 합작품이 바로 김장 담그기와 장 담그기다.
특히 내 가족에게 먹일 김치 만큼은 손수 담가야
한다는 것이 아내의 소신이라서 한 이틀 고생해도
해마다 이맘때 김장 담그기를 하고 있다.
어제도 그랬다. 이른 아침 아내는 전날 절여놓은
배추를 깨끗이 씻어주고 촌부는 그것을 받아서
물기를 짜고 채반에 가지런하게 쌓았다. 그 다음
아내와 촌부가 번갈아가며 무우채를 썰어놓고
전날 미리 준비해놓은 김칫소를 무우채에 섞어
우리가 길러 빻은 색깔좋은 고춧가루를 비롯한
온갖 양념을 넣고 섞어 둘이서 교대로 버무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김칫소를 잘 절여져 물기를 뺀
배추잎 사이사이에 넣었다. 아주 노랗던 배추의
고갱이가 빨갛게 물들어 맛있는 김치로 변했다.
가지런하게 한 포기씩 김치통에 담고 무우채를
썰고 남은 자투리는 사이사이에 넣어 섞박지가
된다. 남은 배추는 겉절이, 남은 김칫소는 무우채
김치, 남은 김칫소에다 약간의 양념을 첨가하여
쪽파를 버무려 쪽파 김치도 담가놓았다. 이 모두
겨울날의 밥도둑들이다. 아~ 한가지가 빠졌다.
김장하는 날에는 수육을 삶아 배추쌈을 먹는데
아내는 수육 대신에 서울 막둥이 아우가 보내준
아롱사태로 매운 사태찜을 만들어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김장 담그는 날의 호사라고 할까?
이제 김장도 했고, 햅쌀도 20kg 들여놓았으며,
겨우내 난롯불을 지필 장작도 마련되어 있으니
기나긴 산골의 겨울을 날 겨울채비는 다 끝났다.
참고로,
해마다 이맘때 김장을 했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무슨 김장을 이렇게 일찌감치 하느냐고들 한다.
우리고장은 다른 고장보다도 겨울이 일찍 오고
길어서 거의 대부분 10월말부터 입동을 제외한
전.후 무렵까지 김장을 마치게 된다. 생각컨데
지리적 여건과 기후적인 영향으로 인하여 생긴
풍습이 아닌가 싶다.
어젯밤 아내가 그랬다.
"당신, 이제 뭐하고 지낼라요? 밭일도 없는데..."
촌부는 이렇게 답했다.
"일이 와 없겠노? 눈에 보이는 게 일인데..."
아내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해 웃고 말았다.
"아이구~ 이 양반아! 일에 단디 미쳤구만?"
♧카페지기 박종선 님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첫댓글
늘 격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장 김치 먹으러 겨울에 평창 갑니다~ㅎㅎ
오십시오.
김장 김치에 소주 한잔 하입시다.^^
수고 많으셨어요.
장작도 한 가득
쌓아놓시고 이제
따뜻한 겨울이
행복하시겠어요.
개미와 베짱이
생각이 나는군요.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이번 겨울채비는
일찌감치 끝을 냈기에
겨우내 먹고자는 일로
뱃살이 찌지않을까 싶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