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산동(屯山洞)은 둔지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둔산동이라 하며 중심마을은 둔지미이다. 둔지산의 둔지봉, 둔지처는 가활만인지지(可活萬人之地)라는 말이 있다. 둔지산의 둔지봉이 있는 둔지처는 가이 수많은 사람이 살만한 땅이라는 뜻이다. 대전광역시의 중심이 된 것이 우연이 아니다.
가마골은 둔지산 아래에 있는데 가마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가마골, 점말 또는 점촌(店村)이라고도 불렀다. 이 가마골 북쪽에 샘머리가 있다. 괴정동의 배우니샘, 탄방동의 숭어리샘, 둔산동의 둔지미샘은 대전의 3대 샘에 들어갈 만큼 물맛이 좋았다고 한다.
대덕대로 317번길에 대전광역시기념물 제28호인 둔산선사유적지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한 곳에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동시에 발굴된 곳이다. 이곳 갑천유역의 얕은 구릉과 넓은 농토, 풍부한 물을 배경으로 선사시대부터 많은 사람이 생활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도마동(桃馬洞)은 배제대학교 뒷산인 연자산으로부터 북으로 내원사 뒷산 도솔산까지 서쪽으로 병풍처럼 이어졌다. 능선의 모양이 도마뱀처럼 생겼다 하여 도마달, 또는 도마실이 있으므로 도마다리라고 불렀다. 여지도서(1757~1765) 공주목의 동유등천면에 보면 도마교리로 기록되어 있다.
약 600년 전 밀양손씨와 충주박씨가 대를 이어 살았다고 하는데 밀양손씨 족보에도 도교로 나온다. 현지 조사를 통해 보아도 도동, 도동현, 손도동, 박도동 등이 산재하여 있어 도마동은 길 도(道)자 도마동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복숭아 도(桃)자로 쓰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때 와전된 지명으로 보인다. <구항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