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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人(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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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상륭과의 만남--동영상
소설에게 동양의 젖을 물리다-신작 '소설법'낸 박상륭
[정철훈의 문학 오디세이] 박상륭과 이문구의 우정 故 이문구 선생을 기리는 박상륭 선생의 弔文 소설집 ‘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낸 박상륭 “문학은 독룡에서 구해내야 할 공주”
《평심》에 대한 박상륭의 첨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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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박상륭과의 만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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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2006-05-15 10:20] |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김병익)가 주최하는 제2회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17일 오후 3시 광주 조선대에서 열린다. 초대 작가는 소설가 박상륭. 지난해 3ㆍ4분기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된 작품집 '소설법'을 중심으로 박상륭의 문학을 음미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의 소설 '죽음의 한 연구'를 원작으로 삼은 영화 '유리'를 비롯해 평론가 김진수, 시인 함성호의 인터뷰 등으로 꾸민 영상물 상영, 독자와의 대화, 배우 길종완의 작품 낭독 등으로 행사가 진행된다 |
동영상
1 부 강연 http://www.munjang.or.kr/lib_video/tv/content.asp?pKind=01&pVTID=73
취재일 : 2006-05-17 분량 : 73:00 촬영 및 편집 : Onbook.tv --------------------------------------------
2부 인터뷰http://www.munjang.or.kr/lib_video/tv/content.asp?pKind=01&pVTID=74
취재일 : 2006-05-17
분량 : 43:50
촬영 및 편집 : onbook.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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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에게 ‘동양의 젖’ 을 물리다…신작 ‘소설법’ 낸 소설가 박상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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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일보 2005-05-22 15:28] |
‘죽음의 한 연구’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 등 신화와 종교를 바탕에 깐 문명비판적인 작품을 선보여온 중진 작가 박상륭(65)씨가 신작 소설집 ‘소설법(小說法)’을 현대문학에서 냈다. 한달전 캐나다에서 잠시 귀국해 서울 광화문통의 한 아파트에 머물고 있는 그를 찾아갔다. 벽에는 그가 1969년 캐나다로 이민가던 날,공항까지 나와 배웅했던 문학평론가 김현,소설가 이문구 박태순,그리고 당시 현대문학 편집장이었던 김수명씨와 함께 찍은 사진과 김현이 그려 준 수묵화 한 점이 걸려 있었다.
“항간에 나를 헤겔주의자로 보는 시각이 있더군요. 하지만 나로서는 그게 다소 불만입니다. 헤겔은 역사에 절대의지(정신)가 있다고 상정하고 있지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수인사를 나누자마자 알쏭달쏭한 입담을 풀어놓는 그에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청했다. “옛날엔 신이 집단의 자아 노릇을 했지요. 그런데 집단은 자아가 없지요. 자아는 개인에게 있지요. 따라서 집단의 구원이나 해탈은 불가능하죠. 동화를 보면 염통을 떼어낸 마귀는 죽이려고 해도 죽지 않지요. 죽일 수 있는 영혼을 떼어놨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집단의 염통은 집단에 있는게 아니라 우리들 자신에게 있지요. 그러므로 집단 또는 역사는 표면상으로는 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변하는 것이 없어요. 역사는 마지막 단계에서 다시 시작 지점으로 돌아와 순환할 뿐,그냥 제 자리 걸음으로 출렁거리는 게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류의 비극은 물질적으로 풍요하면 그게 유토피아인 줄 알고 극복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작은 설법’이라는 의미의 ‘小,說法’과 ‘기승전결 및 육하원칙으로 이루어진 소설쓰는 법’의 중첩적 의미를 지닌 ‘소설법’은 그의 전작들처럼 신화와 종교를 재해석하며 일상 어법을 깨뜨리는 난해함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설조의 문체로 점철된다. 구성은 장자의 ‘남화경(南華經)’의 구성법에 따라 ‘내편’ ‘외편’ ‘잡편’으로 꾸며졌다. 하지만 이 가운데 내편에 수록된 ‘무소유’ ‘소설법’ ‘역증가’ 등 3편이 핵심 설법이고 나머지는 이를 보완하는 작은 설법인 셈이다. 책 표지에 있는 해골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물었더니 “무소유라는 뜻”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흔히들 말하는 ‘무소유’는 소유하지 않음을 일컫지만 이걸 ‘무소,유’라고 끊어 읽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요.”
모든 존재는 이미 한 줌 재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무소유’의 한 대목을 읽어보자. “해골의 입을 통해 들려진 언어는 한 손뼉을 쳐낸 소리의 의미를 터득하기와 다르지 안했다. 모든길은그러나시작에물려있음을!”
서양전설인 ‘어부왕’의 성배찾기를 빌려 설법을 전개하고 있는 ‘무소유’가 신화의 세계를 다룬 것이라면 ‘소설법’은 동화 ‘잠자는 공주’에 의탁해 전설에서 인간의 시대로 넘어온 설법이다. 그러나 그는 ‘어부왕’,‘잠자는 공주’라는 서양 것에 ‘개구리 왕자’나 ‘금당나귀’를 대응시켜 이야기의 발상과 주제를 완전히 동양적인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서양 아기인 소설에게 동양의 젖을 물린 격이다. 박상륭에 와서 소설은 서양의 몸에서 동양의 몸으로 변신을 시작했다는 말인가. “쉽게 말해 서구적 산물인 소설에 어떻게 동양적 몸을 입힐 것인가,하는 질문에서 시작된 것이 이번 소설집인 셈이죠. 오늘날 지상에는 어머니의 모유를 먹고 자란 호모 사피엔스와 전기를 먹고 자란 네오 호모(신인종·네모)가 토탈적으로 살고 있지요. 네모는 호모 사피엔스가 이뤄놓은 문학 예술 등 모든 업적을 소비하고,성도 소비하고,도덕도 소비하고 영혼까지도 소비하고 있어요. 꽃미남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성의 소비를 말해주고 있지요. 그러나 이 네모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아직 나오지 않았죠.”
그렇다면 이번 ‘소설법’은 네모와 호모 사피엔스가 공동으로 취할 경전을 얻기 위해 여의봉을 휘두르며 서유(西遊)했던 손오공의 취경(取經) 과정에 다름 아닐 것이다. 작가의 입가에 우주를 여러 차례 떠돈 자의 헛헛한 웃음이 어렸다. “이젠 좀 쉬려고 해요. 그동안 쓰려고 했던 것을 어느 정도는 쓴 것도 같고…. 그러나 절필이란 말은 아니니 오해는 말아요. 다시 뭔가 고여올 때까지 그냥 쉬고 싶다는 것이니.”
정철훈 전문기자 chjung@kmib.co.kr |
| [정철훈의 문학 오디세이] 박상륭과 이문구의 우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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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일보 2005-08-28 15:42] |
올 봄 장편 ‘소설법’을 낸 박상륭을 만나기 위해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 D아파트를 찾았을 때 벽에 걸린 흑백 사진이 눈에 띄었다. 1969년 5월1일 김포공항. 박상륭이 간호사인 아내의 뒤를 쫓아 캐나다로 이민 가던 날이다. 소설가 박태순,이문구(1941∼2003),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그리고 당시 현대문학 편집장이던 김수명(시인 김수영의 여동생)이 공항으로 환송을 나와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에서는 독한 배갈 냄새가 풍겨나오는 것 같았다.
“이 땅에선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며 이민을 결행하기 전날밤,그가 ‘불 냄새 나는 소주’라고 부르던 배갈 18병을 김현과 나눠 마셨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그날 박상륭은 광화문 바닥을 파서 흙을 집어먹으며 울었다던가. 하지만 김현은 박상륭의 단짝 친구 자리를 늘 이문구에게 양보했다. “그에게는 이문구라는 친구밖에 친구다운 친구가 없었다. 이 두 ‘촌놈’은 나중에 단짝이 되어 서로 10원 한 장을 놓고 막걸리 집에서 만나 5원짜리 왕대포 두 잔을 짠지와 함께 두서너 시간동안 마시면서,기세등등히 한국문학판을 매도하게 되며 급기야 전 서라벌예대 출신에게 스승을 모욕한 놈들이라는 몰매를 맞게 된다.”(김현 ‘박상륭소설집1’ 해설편)
1940년 전북 장수군 장수면 노곡리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박상륭은 1957년 장수농고를 수석졸업하고 서울대 법대를 두 번 낙방한 이래,1961년 서라벌예대 문창과에 들어간다. 모이기만 하면 문학이야기를 나누던 형님과 누이들 탓에 그에게 문학은 아주 친숙한 것이었다. “박은 금호동의 어느 언덕배기에 금방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높은 축대 아랫집의 축대 바로 밑에서 방 한 칸을 얻어 살고 있었는데 그 3미터도 넘을 까마득하게 수직으로 쌓아올린 축대에서는 사철을 가리지 않고 물이 스며나오고 있었다. 그 축대는 언제 어느 때에 무너져 내려덮쳐도 전혀 이상스러울 것이 없다 하게 항상 저승사자가 도사리고 있는 이승의 마지막 송별대같은 축대였다.”(이문구 전집 ‘문학동네사람들’에 실린 회고)
이문구에게 박상륭의 이민은 엄청난 상실이었다. 하지만 박상륭은 떠날 때 다섯 편의 단편과 원고지 5000장 분량의 장편을 친구에게 맡겼을 뿐만 아니라 캐나다에서 쓴 중·단편 원고도 이문구에게 우송해 문예지에 실었다. 박상륭은 캐나다에서 종합병원 시체실 청소부로 일하며 소설을 썼다. 시체들과 보낸 하루 일과를 한 집에서 딱 두 잔씩 마시며 술집을 한바퀴 도는 것으로 마감하던 그였지만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책상앞에 앉았다. 이문구는 어느날 박상륭의 편지를 받는다. “내가 맡기고 간 원고는 문학일 수 없으므로 불태워 버려라. 태워 버리지 않으면 너와 나의 우정은 끝장이다.” 이문구는 그 으름장에 질려 보관하고 있던 그의 소설들을 불태웠다.
1974년 10월 21일,이문구는 전날 청진동 술을 휩쓸어 마시고 여관방 신세를 졌던 터라 직장인 한국문학사 아래층 다방에서 커피로 위장을 달래고 있었다. “누군가 느닷없이 다가와 내 어깨를 주먹으로 치는 것이 아닌가. 얼떨결에 고개를 들어보니 어디서 많이 봤던,그러나 분명 낯선 사내가 서 있었다. 아,박이 죽었구나. 붕정만리 이방에서 죽은 모양이구나. 그러나 그것은 확실한 실물이었다.”
박상륭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던 이문구 앞에 원고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도중에 분실,훼손이 염려되어 화물로 꾸리지 않고 직접 손으로 들고 왔다는 작품은 원고지 2700장이나 되는 대작이었다. 중국인 인쇄소에 주문해 만든 지질 좋은 원고지 속의 글자는 한 자도 틀리지 않았고 지운 흔적도 없었다. 제목은 ‘죽음의 연구’였다. 학술 논문도 아니고,죽음을 연구한다는 소설 제목이 터무니 없는 것 같기도 하여 ‘한’ 자를 집어 넣어 ‘죽음의 한 연구’로 제목을 단 소설은 1975년 한국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이문구가 제작을 진두지휘했으니 박상륭이 캐나다로 돌아간지 3개월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2003년 10월26일 밤 서울대병원 영안실 5호. 이문구의 부고를 듣고 캐나다에서 18시간을 날아온 박상륭을 내려다보며 영정 속 이문구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죽음도 두 사람의 우정을 갈라놓지 못했다 |
故 이문구 선생을 기리는 박상륭 선생의 弔文
.. 보디사트바의 다비식 오늘 우리는, 우리 시대의 큰 양심과 긍지 하나의 다비식을 치르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가 일컬어 그 '시대적 양심과 긍지'라고 이르는 이들께는, 하나의 유형이랄 것이 있는데 그것은 '진리, 자유, 평등, 사랑' 등을 수호하고 실천하는, 이기심 없는 고상한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행복하게도 우리는, 우리의 시대에도 그런 고상한 정신이 하나, 육십여 년 전에 와서,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 우리 이웃으로 있어오며,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어왔었습니다. 마는 불행하게도 그는, 오늘 우리로부터 떠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그 원대한 꿈이, 오늘 떠나는 그 고상한 정신에게서는 '문학'의 형태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것이지만, 뿐만 아니라, 그는 또한 실천자이기도 했던 이였습니다. 그의 이런 실천적 부분의 행적에 관해서는, 대부분의 여러분들께서 더 잘 아시리라 믿어, 생략하려 합니다. 이제 우리는 그를 다비하며, 그의 어기찬 삶의 마지막 불꽃에서 우리의 일상적 생활 속에 함께하며, 우리의 고뇌를 같이 나누었던 그가, 이제 우리의 일상으로부터 떠나, 역사 속으로 자리를 옮겨 앉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많아도, 역사 속으로 자리를 옮겨 앉는 이는 참으로 희귀한데, 또 한 인물이 역사 속에 자리를 마련하면, 그 시대도 이제 불멸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그는, 그 불사의 삶을 살기 위해 오늘 이 자리를 비울 뿐 우리로부터 떠난 건 아닙니다. 그는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의 유토피아에의 꿈의 씨앗을 남겨놓았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흙'이라고 명명해야 할 것입니다. '대지'도, '토지'도, '흙'의 뜻을 갖는 것이 아닌 것들은 아니지만, 다른 상징적, 또는 종교적 의미들을 제외하고, 소탈하게 말한다면, '대지'는 우리의 삶이 영위되는 자리며, 또 '토지'는 보다 더 경제적 의미를 띌 것이라도, '흙'은 우리가 그것으로 몸을 해 입었을 때, 그것은 돌이기 뿐만 아니라, 정서며, 그런 까닭으로 자유의 의지로서의 우리의 혼에서는 흙냄새가 납니다. 이 몸이 중력에만 당하는 것은 아니며, 하늘에의 원정까지도 꿈꾸는 것이던 것입니다. 그때 문제가 되는 것들이, 훨씬 비약하고 말하기로 한다면, '진리, 자유, 평등, 사랑' 같은 것들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구현해야 하는, 유토피아의 전모인 것입니다. 그것을 설교하기 위해 그는, '흙'이 가장 농염한 형태를 드러낸 농토며, 그것에 가장 밀접한 삶을 꾸려나가는 농민의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고뇌와 은총 등의 얘기를 써왔는데, 일반적으로 이해되어졌기에 그래서 그는, 농토, 농민의 작가, 또는 토속성을 주조로 작가라는 평을 들어왔으되, 그러나 저의 관견되는 그는, '대지와 하늘', '선과 악', '삶과 죽음', '물과 불', '바람과 흙'이라는 투의 원형적 주제라고 이를 것들 중에서, 특히 '흙'을 그의 주제로 삼았던 작가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는 그러니까, 원형적 주제, 즉 우주적 주제 중의 하나를, 자기의 주제로 삼아 고뇌했던 작가라는 것이 저의 믿음이며, 이 국면에서도 새로운 조명이 있기를 바라는데, 그런다면 그가 개발했던 문학적 영역은, 훨씬 더 크고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것을 새삼 새로 알게 될 듯도 싶습니다. 하는 말로는,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합니다마는 저의 생각엔, 그 시대의 '양심과 긍지'가 되어 있는 이들은, 빈손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그쪽 편의 모든 값지고 아름다운 것들을 아름아름으로 아름어와, 이쪽의 모든 가난한 심령에다 나누어 주는 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갈 때는 또, 그가 노력했으나, 다 이루지 못하여 남은, 부정적 기운이나 원망, 슬픔 따위가 있다면, 그걸 다발다발로 묶어가, 그쪽 편 누른 물 속에 넣어 썩히거나 씻어내는 것이라고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이들을, 불가의 어휘로는 '보디사트바'라고 이르는 듯한데, 이들은, 일체중생의 무명이 끼칠 때까지, 이 쪽 고해에로, 고통을 자초해 오고, 또 온다고 이르지 않습니까? 그의 행적을 두고 보건 대, 고인이 된 이문구 선생은, 분명한 한 보디사트바였던 것이고, 그래서 저로서는, 그를 잃게 된 슬픔이 눈물을 흘리는 대신, 그가 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귀를 맑게 하여 기울여보려 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2003년 2월 28일 박상륭 합장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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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낸 박상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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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은 독룡에서 구해내야 할 공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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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박상륭의 아파트 거실에는 그를 알아줬던 지기(知己), 고(故) 김현이 직접 그려 선물했던 시화(詩畵)가 붙어있다. 이번에 짐을 정리하면서 발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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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륭(朴常隆·62)은 우리 문학의 ‘이중장부’다. 신화와 종교를 바탕에 깔고 심오한 사유를 펼친 그의 장편 ‘죽음의 한 연구’와 ‘칠조어론’은 그간의 한국 문학이 가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땅이었다는 데 많은 평자들이 동의한다.
그러나 그 웅장한 성채의 그늘에는 독서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대중의 우울한 고백 일반인의 폐활량으로는 따라잡기 힘든 길고 긴 문장 따라서 극소수의 독자들에게만 숭배의 대상이 된 현실이 함께 또아리를 틀고 있다.
생존작가로서는 유례없었던 99년 예술의전당의 ‘박상륭 문학제’, 평론가 김현이 “이광수의 ‘무정’이후 가장 잘 쓰인 작품”이라고 격찬했던 ‘죽음의 한 연구’, 심지어 ‘박상륭 교도(敎徒)’라고까지 불리우는 일군의 독자들의 존재는 그에게 쏟아진 갈채의 한 방증(傍證)이다. 하지만 그는 진정 이해받으며 찬양의 대상이 된 걸까? 3년만에 소설집 ‘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문학동네)로 돌아온 그에게 뒤틀린 질문을 던져봤다.
문학은 단순한 글이상의 품격 갖춰야 캐나다 이민 30년...99년 귀국
―이해받지 못하면서 찬양의 대상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우람한 산이 저기 있다면 우리가 그 산을 직접 건너지 않더라도 그 산의 웅장함을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이해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두 가지로 반응한다. 질투심때문에 폄하하거나, 아니면 아예 높여 버리거나. 주로 죽은 사람일 경우에 예우로 높이는 경우가 많다. 혹시나 내가 찬양의 대상이 되었다면 한국에 거의 살지 않아서 내 실물성이 휘발되어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30년간의 캐나다 이민생활을 마치고 지난 99년 귀국했다. “도저히 문학으로는 밥을 먹을 수가 없다”고 한국을 떠날 때, 김현, 박태순, 이문구 등이 공항에서 그를 배웅했다.
―당신의 마니아들은 ‘박상륭 교도’라고까지 불린다. 하지만 그런 열광과는 별도로 당신의 문학이 한국 문학사 속에 제대로 편입되고 있지 않다는 주장도 있는데.
“김윤식 교수가 내 문학에 대해서 그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왼 손가락에 낀 보석’이라고. 문학에 ‘정종’(正宗)이 있다면 ‘밀종’(密宗)이라는 뜻이겠지. 감히 교만을 부려보건대, 한국 문학사에서 박모(朴某)의 문학 같은 예는 없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캐나다에서 귀국하기 전까지 내 작품을 비평했던 평론가는 거의 없었고. 아직도 제대로 이해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자신이 캐나다로 떠나지 않았더라면, 이 땅에서 생산되는 기존의 “비슷비슷한 문학”을 따라 하면서, 표현이나 좀 다듬는 걸로 세월을 보냈을 거라고 했다.
―당신의 문장은 너무 길고, 쉼표와 복문(複文)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런 문장을 선택한 이유는?
“내 문장 속에는 운율이 있다. 죽은 김 현이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냈다. 눈으로 읽는 문장만 있는 게 아니다. 소리를 낼 때 마음 속으로 박자 맞춰 이해되는 문장도 있는 것이다. 쉼표는 운율에 맞춰 쉬라는 뜻이다. 토씨와 쉼표가 한국어를 고급하게도, 땅바닥에 떨어뜨릴 수도 있다.”
※그는 “문학도 예술이라면 문장에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저널리즘의 문장이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한다면, 문학의 문장은 그 이상을 염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책의 제목이 ‘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인데.
“사실 전도(顚倒)된 제목이지. 원래는 뿌리로 잠을 자고, 열매가 꿈을 꾸는 것 아니겠는가.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을 떠올릴 수도 있겠고, 바슐라르가 얘기했듯 세상이 나를 꿈꾸는지, 내가 세상을 꿈꾸는 것인지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 결국 내 꿈 이야기이기도 하겠고.”
―이번 책은 상대적으로 읽기 편해졌다는 견해도 있다.
“이삭줍기 아니냐. 사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죽음의 한 연구’와 ‘칠조어론’으로 다 끝났다. 수확은 다 끝나고 이제 이삭줍기를 하는 시간인거지. 환갑 넘은 늙은네가 연애소설을 쓰겠나, 추리소설을 쓰겠나. 이제 바위를 쥐어 짜 기름 몇 방울을 뽑아낼 뿐이지. 내 작품에 주석을 달다 보니 읽는 사람들에게는 더 쉬워 질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그에게 여전히 문학은 “독룡(毒龍)에게서 구해내야할 공주”(‘잠의…’·249쪽)다. ‘독룡’은 결국 이 시대를 혼탁하게 만드는 대중문화인 것. 누구의 눈높이에도 맞출 생각은 없다. 그에게 소설쓰기는 ‘앓음다운’ 것이고, 고통스럽더라도 독자들의 독서가 ‘앓음답기’ 바란다. 종국에는 그것이 ‘아름다움’이니까.
●박상륭 1940년 전북 장수 출생. 서라벌 예대 졸업, 경희대 정외과 수학. 1963년 ‘사상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1969년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 서점 운영. 1999년 김동리 문학상 수상.
(魚秀雄기자 jan10@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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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08/06 15:0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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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심》에 대한 박상륭의 첨언
블로그 > 노는아이 釋 陀
http://blog.naver.com/2thesea/80025025114 |
한 글꾼이, 뭔지 긴히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서른권 책을 쓰고도, 또 그것에다 더 덧붙일 얘기가 있다고 한다면, 그런 글꾼의, 그렇게도 깊은 말의 우물과, 그 우물 물을 퍼올리는 혀라는 긴 두레박 줄에 대해, 경악과 존경심을 금하지 못하게 된다.
오늘은 그리고, 왜냐하면, 뭐든 할 얘기가 괼 때마다, 잡설의 이름으로 그것을 퍼올렸으므로, 그러고 나면 괴어 남은 말이 있지를 못해, 어눌증에 당하게 되는, 이런 말(言語)의 백수건달도, 독자들로부터, 말한 바의 저‘경악과 존경심’을 욹혀내려 하여, 이런 자리에 나앉게 되는다. 노래는 베짱이만 하는 것이 아니고, 어쩌다가는 당나귀도 해보려 하는 것이다 보니 그럴니다.
모든 생각하는 자들이나, 예술의 이름으로 뭐를 해보는 이들께, 그것은 물론 다양한 형태로 드러날 것이 분명하지만, 내게 삶은, 그것을 문학화하려 하면, 독룡, 또는 공룡과의 끊임없는 대치로 여겨진다.
그런 얘기가 산문화하면, 또는 그것을 밖에서 마주하려 하면,“산해기”(山海記)의 모양을 꾸미고, 소설화하면, 또는 안에서 그것과 대치하려 하면,“평심”(平心)의 꼴을 꾸민다(두 졸저 공히,‘문학동네’의 후의를 입어 근래 발간되었다는 소문이 있다).
예의 저‘공룡’은 산문적 정신과 제휴하면,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가, 근원적, 공동운명적이라는 까닭에 의해) 그것의 협의성을 벗어 광의성을 드러내는데,“산해기”속에서는,‘물질주의’라든, 모든 개아들의 머리통을 싹둑싹둑 잘라 먹는 버마재비의 암컷 같은,‘대중, 또는 군중’이라든,‘흥행’의 이름을 갖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잘라 은쟁반에 받쳐든) 살로메라든, 등등, 별로 애정을 갖고 건너다 볼 수 없는 괴유정(怪有情)들의 모습을 띠고, 그것이 소설적 정서에 야합하면, 태어나기, 병들기, 늙기, 죽기 등의 고통의 모습을 띠게 되던다.
그러면 삶과 죽음, 유상과 무상, 이쪽과 저쪽, 개인과 우주라는 문제가 거론되지 않을 수가 없게 될 터이다. 이번 발간된 필자의 두 졸저를 두고,‘소설’인데도 산문적으로 쓰여졌으며,‘산문’인데도 소설적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것이 필자가 자기의 졸저를 두고‘잡설’이라고 이르는 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리하여 독자들은 (앞서 말한 것을 고려한다면), 필자 투의 두 종류의 잡설의 성별의 다름을 구분할 수 있게 됨에 분명하다.
자기가 쓴 졸저를 두고, 작가쪽에서 뭐라고 더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다 해도, 쓰여져 발간된 책은, 그 순간부터 “고아와 같다”(<PHAEDRUS> 참조)고 이르거늘, 작가가 아무리 나서서 저‘고아’가 된 것을 감싸고, 변호해 주려 한다 해도, 독자들은, 자기네들 하고 싶은 대로, 저것의 머리끄덩이도 끄시고, 멱살이도 잡을 것이며, 심지어 말뚝에다 매달아 못 박아버리기도 하고, 또는 식은 밥이라도 따뜻하게 먹이기도, 비단으로 만든 모자도 씌워 주기도 할 것이다.
어찌되었든, 말한 바의 저 두 졸저들은, 대단히 읽어 볼 만한 졸문 묶음들임은 사실이다. 읽어 보고 난 뒤, 깨우침밖에, 아무것도 더 얻을 것이 없는 얘기라면, 반복하지만,‘아무것도 더 얻을 것이 없는 얘기’라면,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필시 졸문일 수밖에, 또 무엇이겠는가?
-- 출처:《월간중앙》제283호, 1999.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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