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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설교 부산성동교회 창립 60년 데살로니가전서 1:6~10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교회는 60년 전 아직 전쟁의 초창기라 할 수 있는 1951년에 세워졌다. 우리교회 초창기의 성도들의 원 뿌리들의 교회는? 원산에 있던 광석동교회, 신풍리교회, 광석동교회에서 분립된 석우동교회, 그리고 함흥의 북주동교회, 함흥중앙교회. 함흥운흥리교회, 함흥성결교회, 함흥북부교회 성도들 등이었다. 이런 교회들은 함흥과 원산에서 세워진 초창기 개신교 교회들로서 그 지역의 어머니 교회들이었다. 그때 함경도 지방에서 내려온 성도들이 이룬 교회는 우리 부산성동교회(관북교회) 덕천교회(남문교회), 감만교회, 한양교회, 금성교회, 서성교회, 성덕교회, 광안리교회 등이다. 한양교회는 지금의 은성교회와 합해졌다. 우리 부산성동교회는 1951년 6월 처음 원산지방에서 피난온 성도들이 한희백 전도사 댁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인근의 판자집을 매입하여 교회를 설립하기로 했다. 그리고 원산 신풍리교회를 시무하던 김리현 목사를 중심으로 하여 80여명의 성도가 1951년 첫 주일 매입한 20평의 판자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이름을 「관북교회」라고 했다.(1951년 7월 첫 주일은 7월 1일이었다.) 오늘 데살로니가 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지금의 마케도니야 지역에 있는 교회로서 당시 빌립보 교회에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도 바울 개인에게로 들어가면 이 교회는 유럽에서 빌립보 교회 다음 두 번째로 세운 교회이다. 그런데 이 데살로니가 교회가 정말 믿음의 교회였고, 사도 바울과 주님을 기쁘게 하는 교회였다. 그래서 3절에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였다. 그러면 이런 믿음의 칭찬들이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에 나온 것인가? 그렇지 않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환경은 결코 녹록하지가 않았다. 오늘 6절 말씀에 보면?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고 한다. 여기에 대립되는 두 단어가 나온다. 환난 Vs 기쁨이다. 환난과 기쁨을 결코 공존할 수 없다. 함께 할 수 없다. 환난은 기쁨이 아니라 ⇨ 슬픔, 눈물, 좌절, 괴로움을 가져다 준다. 그런데 오늘 이 두 개가 공존한다. 함께 한다.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면(행 17장) 데살로니가에 가서 3주간 복음을 전했다. 이 3주간에 경건한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이 예수를 영접 믿게 되었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이 불량한 사람들을 동원하여 소란을 일으키고 관가에 고발을 하고 핍박을 했다. 결국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에서 더 이상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베뢰아로 내려와서 말씀을 전했다. 그런데 베뢰아에 와 보니 완전히 달랐다. 핍박하는 사람도 없고, 방해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성경은 하는 말이?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 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안타까운 것은 베레아 사람들은 분명 신사적이었고, 말씀을 묵상했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는데 공식적인 베뢰아 교회가 생기지 못했다. 교회로는 발전하지를 못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는 다르다 많은 환난이 있었고, 핍박이 있었지만 말씀을 받는 사람은 확실히 받았고, 확실히 믿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우리 교회가 이 많은 환난 가운데서, 어려움 가운데서 시작되었다. 6.25의 환난,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빼앗기는 환난, 정들었던 고향을 등져야만 했던 환란, 가족과 친척을 놔 두고 미군 수송선 LST를 타야만 했던 환난, 그리고 이 부산 땅에 와서 수모를 당하면서 억척스럽게 살아야 했던 환난...... 그렇지만 그 환난 속에서 유일하게 잃지 않은 것이 있다. 그 환난 속에서 놓아두고 오지 않은 것이다. 그 환난 속에서 끝까지 놓지 않고 잡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 신앙이다. 믿음이다. 주님의 이름이다. 십자가다. Ex) 미 발간 된 40년사의 내용 중에 국제시장에서 큰 싸움이 낫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피난민하고 사람하고 싸우더라는 것이다..... 우리교회 초대 성도들은 이 환난이, 이 눈물이 오히려 더욱 주님을 붙잡게 만들었다. 이 환난이, 이 눈물들이 더욱 주의 이름을 부르게 했다. ⇨ 이들의 믿음은 주님이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믿음은 주님이 아니면 우리가 이 낮선 타향 땅에서 일어 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 마다 주의 이름을 불렀고, 그 이름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 교회를 세웠다. 그런데 1953년 용두산공원의 대화재로 안타깝게 관북교회의 판자교회도 불타고 말았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좌절하지 않고 지금의 광복교회를 빌려서 오후 2시에 예배를 드리면서도 실망하지 않았고 지금의 한국은행 자리에 하 병원이라고 있었는데 그 병원을 매입하여 교회를 세롭게 새우게 되었다. 화재라는 큰 환난이 오히려 더욱 주의 이름을 부르게 만들었고, 화재라고 하는 그 어려움이 오히려 판자교회를 벗어나고 더 좋은 교회당을 마련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우리 인간들에게는 살아 있는 한 쉬지 않고 환난이 옵니다. 어떤 모습으로든지 이 환난이 오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 환난을 어떻게 넘기느냐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 환난을 이기지 못하고 완전히 좌절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극기야는 자살, 삶의 포기를 선택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 ○그 환난에 동화 되어 버리거나 타협 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 나는 안 돼, 나는 항상 어려워.... 그래서 그렇게 살아간다. ○그 환난을 완전히 이기고 승리하는 사람이 있다. ☞ 믿음의 사람은 그 환난을 완전히 이기고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환난에서 승리로 벗어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환난에서 벗어나는데 패배로 벗어나는 사람이 아니다. ⇨ 승리로 벗어나는 사람이다. ☞우리 성도들은 환난을 승리로 벗어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요셉은 환난을 승리로 벗어납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서의 환란을 승리로 벗어납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며 죽음의 위기들에서 승리로 벗어납니다. ⇨ 그러면 이들이 이렇게 승리로 벗어 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들의 신앙, 그들의 믿음, 하나님을 철두철미 의지하는 믿음 때문이었다. 우리 교회를 이루었던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에게는 죽음의 위기, 실망의 위기가 한두 번 있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주님을 붙잡았습니다. 주님을 붙잡는 것이 사는 길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으로 지금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였다. 마케도냐에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가 있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아가야는 지금의 그리스 지역으로 마케도니아 아랫지방입니다. 여기에는 고린도가 있고, 아덴, 겐그레아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런 광범위한 지역에 믿는자의 본이 되는 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였다. ○학생은 공부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운동선수는 운동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목사의 목사의 본이 되어야지 목사가 다른 것의 본이 되면 안 된다. 교회와 성도는 믿는자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믿는 자의 본이 됩니다. 믿는 것은 이렇게 믿는 것이야.... 신앙생활 하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야. 섬긴다는 것은 이렇게 섬기는 것이야.... 기도한다는 것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야..... 60, 70년대의 우리 교회는 이런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교회들이 그것을 보러 왔고, 부러워하였습니다. 부산의 전도사들은 관북교회, 성동교회의 전도사가 되는 것은 자랑스럽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 우리의 어리석음으로............ 우리 교회를 보는 2 종류의 시선이 있습니다. 첫째는 세상이 우리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세상은 우리 교회가 선한 일을 하고, 사회사업을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선하게 만들고, 착하게 만드는 일을 하는 곳으로 바라보고 있다. 옳다....교회는가난한 자들을 돕고, 고아와 과부과 객을 돌아 봐야 한다. 교회에 다니는 성도는 당연히 착해야 하고, 선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 교회를 보는 시각이 있는데 주님이 보는 시각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교회를 통하여 「음부의 권세를 멸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온전히 복음으로 이룩되어 있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이 교회 사이를 거닐고 계십니다. ⇨ 감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고 한다. 교회이지만 주님은 교회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두 시각을 만족케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당연히 주님을 만족케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그리고 세상을 만족케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교회는 6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이 지역에 있었지만 소위 교회가 부흥되는 곳으로 이전을 해 갔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만 이 지역에 남아 있습니다. 이 지역은 영적으로 보면 광야와 같은 곳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부산에서 가장 번화하고 화려한 곳이지만...... 그렇지만 우리 교회는 광야에 서 있는 세례요한과 같이 복음을 외쳐야 합니다. 영국 웨일즈 스완지에, 모라비아 교회가 있습니다. 1904년 엄청난 부흥을 일으켰는데 거기에는 에반 로버츠라는 목사가 있습니다. 13살부터 탄광 노동자..... 25살에 소명을 받고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어 고향으로 와서...... 그 지역은 탄광촌인데... 죽으라 일하는 사람, 술집, 창녀들로 득실대는 곳 그런데 거기에 기도의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창녀가 없어지고 술집이 문을 닫게 됩니다. 탄광이 주일에 쉽니다. 경찰서 유치장이 비어졌습니다. 우리 교회를 통한 주님의 역사가 이 광복동 지역에서도 이렇게 일어나도록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