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ckner: Symphonie Nr.8 in c-moll(1890)
Carl Schuricht
Wiener Philharmoniker
EMI
The Great Recordings of the Century
솔직히 브루크너 8번을 음악적으로만 이해한다면 이 녹음을 대할 때 처음부터 좋은 느낌을 가지기는 힘들다. 특히 나처럼 느린 연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슈리히트의 해석은 담백하며 몰아치듯이 그냥 지나가 버리지만 오히려 더욱 진한 여운을 남긴다. 솔직히 브루크너는 음악인으로서 보다는 독실한 종교인으로서 일생을 보냈기 때문에 그의 음악, 하다못해 그의 문체에도 짙은 신앙심과 함께 자연에 대한 인간의 왜소함, 신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찬양의 감정이 깊이 배어난다. 그런 의미에서 브루크너 8번을 가장 잘 해석한 사람은 슈리히트가 아닐까 한다.
1악장은 부르크너 특유의 종교적 엄숙함과 함께 시작한다. 메마르고 날카로운 현은 온화하면서도 격정적인 호른과 대비를 이루면서도 조화를 이룬다. 차츰 진행 할 수록 슈리히트는 음악적 악상에 치중하기 보다는 그 악곡이 가지는 내면적 의미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1악장 말미의 f-c의 연속에서 나오는 금관의 C음 투티에서는 그야말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장엄하고 엄숙하다. 2악장의 스케르초에서 그 어느 오케스트라도 모방할 수 없는 빈필의 유색찬란한 음색이 빛을 발한다. 부르크너가 스스로 이 스케르초의 앞부분을 "독일의 야인(野人)", 트리오 부분을 "실연한 야인"이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슈리히트의 관점에 따라서 "신의 총애를 얻으려 하는 인간", 트리오는 "방황하며 고통받는 인간"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트리오의 시작 직전의 Eb코드의 전 오케스트라 투티는 신에 대한 열정적인 찬양을 조금도 유감없이 드러낸다. 3악장은 여기서 굳이 쓰지 않겠다. 그 숭고함과 엄숙함은 하잘겂없는 나의 글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4악장은 인간이 신을 위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총망라했다. 솔직히 8번 4악장을 들어보면 왜 부르크너가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 평생토록 비난과 혹평 속에서 살아야 했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음악은 거의 전적으로 "신을 위한 음악"이자 "자연"을 지향하는 성향이 강해서 세속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와 동시대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 했을 것이다. 슈리히트는 그 특유의 꾸밈 없으면서도 열정적인 어조로 부르크너의 유지(!)를 우리에게 전했다. 현의 짙은 음색과 함께 송진이 묻어나는 소리는 굽어보시던 하늘의 신이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능히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최후의 환희의 코다는 신의 절대적 존재와 함께 조물주의 작품인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각인시킨다. 그야말로 할렐루야 소리가 절로 나온다.
bernstein
첫댓글 들어야지,들어야지 하면서 맨날 미루고 있는 연주 중 하나...슈리히트는 빡돌아야 좋은데ㅎㅎ
죄송한데... 빡돈다는 게 무슨 뜻이죠?(제가 인터넷 용어에 익숙하지 않아서.... ㅎㅎㅎ)
ㅋㅋㅋ 리써렉션님, 빡돈다는 표현은 (인터넷 용어가 아니라^^) 여기 전라도에서나 통하는 말 같은데요? ㅎㅎㅎㅎㅎ
빡돈다는게 인터넷용어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여기서 빡돌아야 좋다고 한말은 보통 슈리히트의 연주가 좀 평이하게 생각되는 연주들도 적지 않아 있는데(베토벤9번 같은 거) 그렇지 않고 템포를 상당히 급하게 가져가면서(안그래도 슈리히트가 보통 빠르지만 더욱 더) 곡상을 거침없이 헤쳐나가며 광포한 연주를 들려줄 때를 말한 겁니다.. //빡돈다는게 전라도에서나 통용되는 말인가요?ㅋㅋㅋ그러고 보니 그런거 같기도 하네요
슈리히트의 베토벤 9번은 아직 안 들어보았는데... 그의 부르크너 8번, 9번 같은 경우는 지금까지 들었던 연주 중에서 처음 듣고서 아주 만족스러웠던 몇 안 되는 연주 중 하나랍니다. 그의 M2나, M3는 조금 해석이 구식인 면이 있지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