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야, 더운데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겠구나. 언니도 엄마도 건강했으면
좋겠다. 어제는 서울에 갔었어. 네게 전화할까 하다가 오픈마켓에 좌판을
까느라 못했구나. 다음 주에도 시장에 나갈 예정이니 그때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단다. 종일 비가 와서 사람들이 많지가 않은데다가 농협 건물
-
앞에 물건을 깔았는데 주인이 사유지라고 꼬장을 부려서 별수 없이 아빠도
꼬장을 피우고 말았구나. 네이버 블로그에 어떤 사람이 아빠더러 ‘네피림‘
이라고 댓글을 남겨서 무척 신경이 쓰였고 만 부끄럽게도 그 말이 맞는 말
같다. 다음 주에는 자리를 잘 잡아서 물건을 빼야 할 텐데 잘될지 모르겠구나.
-
오늘 아침은 징역에서 먹었던 그 잡탕찌게를 생각하면서 신 김치, 고등어,
돼지고기 3종 세트를 넣고 햇감자를 반으로 쪼갠 후 마늘을 다져서 지글
지글 끊였더니 맛있는 냄새가 숍 안에 가득 찼구나. 손님들이 식당으로 착각
하는 것은 아빠 책임이 아니다. 운동하러 문화센터까지 걸어 가다보니 어제
-
내린 비로 다리 밑에 황토물이 많이 불었더라. 꼭 태국 메콩 강에서 보았던
그 풍경이었어. 기회가 되면 한탄강이라도 가서 너랑 리프팅을 하고 싶어.
비가 한번 온 것뿐인데 고구마 순도, 나락도 쑥쑥 자란 느낌이구나. 비가 오면
만물이 선명해지면서 지저분한 물체와 깨끗한 물체가 적나라하게 보이더라.
-
데생은 회화의 기본이면서 완성이라고 아빠는 생각한다. 저번에 만났을 때
네 그림이 터치가 없다고 걱정을 하던데 지금은 어떠니? 데생이란 사물을
정확히 스캔해내는 기능이니 크게 신경 쓰지 말고 더욱 소묘에 정진 하려무나.
네가 사물을 묘사할 때 비가 온 후와 비 맞기 전의 차이를 표현해 낼 때까지
-
말이야. 아빠는 언제부터 수채화 한 점 해보려고 마지막 한 장 남은 도화지를
화판위에 앞전까지 꼽아놓고서 못하고 있다. 요새는 웨이트트레이닝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 드라마 보다가 쉬는 시간에 한번 , 밥 안쳐놓고 거울 보다가
한번, 헬스장가서 한번, 그야말로 시도때도 없이 바벨을 들고 있다.
-
아빠 인생 54년 동안 가장 팔뚝이 굵어졌지 싶구나. ‘옥중화‘라는 드라마를
통해 예성연중인명선 조선 13대 명종 임금에 대하여 좀 더 디테일하게 알게
되었다. 주인공 옥녀는 아무리 찾아봐도 실존인물이 아니던데 누가 옥녀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는지 슈퍼울트라 캡 짱이더구나. 아빠가 중 삐리 때(15살)
-
김영란이란 배우가 옥녀로 나왔던 것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고만 이번에
주인공을 맡아 진 세연이 그려낸 옥녀는, 유관순과 캔디를 합쳐놓았다고나
할까? 머리면 머리, 인맥에 무예까지 너무 예쁘더라. 아빠가 감독이면 예주를
캐스팅했을 만큼 극중 진 세연은 청아한 너의 캐릭터랑 흡사했다고 생각한다.
-
조선시대 교도소인 전옥서에서 태어난 여자아이 옥녀는 부모가 없으니 고아나
다름없는데 표정이 참 밝았다. 옥녀를 보고 있으면 전옥서가 집이고 학교라는
것을 느꼈어. 갖은 범죄를 저지른 죄수들의 모인 곳이 맞는가 싶기도 하고.
어둔 환경 속에서도 밝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란다.
-
이곳에서 채탐인(실미도 공작원)으로 활동하다가 억울하게 구속된 박 태수를
만나 그에게 무예를 배우면서 옥녀가 성장을 한다. 옥녀에게 지하 감옥은
어른으로 거듭나는 수행의 장소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더라. 누구든 광야기간이
있다. 네겐 지금이 광야기간일 수 있지. 옥에서 태어난 옥녀는 전옥서에서
-
고아로 성장하면서, 간수들은 물론이고 죄수들과도 친해진다.
똑똑하고 살가운 옥녀는 전옥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돼.
공주야, 예쁨 받는 건 다 내 할 탓이란다. 너도 지금까지는 충분히 잘해냈다고
생각해. 사극이 그렇지만 옥중화도 16세기 중후반의 유명인들인 문정왕후·
-
정 난정· 윤원형·전 우치 등 실존 인물들의 역사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더라.
드라마 속의 수형자들은 널찍한 공터에 모여 잡담도 나누고 체력단련도 한다.
또 복역 기간이 긴 죄수들은 오랫동안 옥녀와도 친분을 쌓는다. 장기간의
인연을 바탕으로 옥녀한테 외부 물건의 차입도 부탁하고 법률적 조언도 얻는다.
-
심지어는 자기를 대신해 감옥살이를 할 사람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도 한다.
조선시대의 형벌은 사형·유배형·도형·장형·태형이었다. 장형은 60~100대의
매를 때리는 것이고 태형은 10~50대의 매를 때리는 것이란다.
도형은 매질· 노동 형·금고형이 결합된 것으로 지금의 징역형과 유사하다.
-
도형을 받는 죄수는 매를 맞은 뒤 노역장에 가서 강제 노동을 하면서
수감 생활을 했다. 법제적으로 보면, 다섯 개의 형벌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태형일 수밖에 없었다. 지방 사또가 자기 재량권으로 부과할 수
있는 형벌은 태형뿐이었다. 물론 엉터리 사극은 사또 맘일 테지만.
-
“이봐라 이방” “왜 불러 사또” “왜 반말이냐?” “하면 좀 어때”
공주야, 옛날 왕들은 평균 수명이 40도 안돼서 죽는 경우가 많았어.
정 난정이나 윤원형도 권세를 누렸다지만 지금 아빠 나이만큼도 살지 못했어.
이 분분이 내게 위로가 될 줄 누가 알았겠냐? 아빠가 권선징악을 말하고
-
싶은 게 아니라, 역사라는 거대한 시간 속에서 내 존재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현제의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공주야, 사랑한다, 공부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네 몸을 네가 소중히 여기고 아끼려무나. 또 쓸게.
2017.7.3.mon.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