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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고대이집트
복식의 일반적인 특징
- 한 나라의 고유한 복식 양식은 대체로 기후나 토양, 그리고 이에 따라 생산되는 소재 등의 물리적 환경조건, 종교, 도덕, 규범 인습, 관습 등의 사회문화적 조건, 그리고 기술적인 조건을 밑그림으로 형성되며 내적 일관성과 연속성으로 전통성을 이루며 그 민족만의 특유한 기질, 성향, 가치, 미의식에 대한 결정체를 이룬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뜨겁고 건조한 아열대성 기후에 적응하기 위하여 통기성이 늪은 리넨(linen)으로 허리 아래만 간단히 두르는 로인 클로드(loin clothe)를 입거나, 몸의 곡선미를 반투명하게 보이면서 느슨하게 휘둘러 입는 쉬스(sheath)드레스 혹은 스커트로 드레이퍼리(drapery)형의 의상이다. 이 위에 쇼올(shawl)을 걸치기도 한다.
1. 미적 가치
1) 불멸의 상징성
이집트인의 불멸의 상징성은 태양신을 상징하는 원반이나, 태양신이 디자인 되어 있는 왕관, 피라미드 형태의 트라이앵글러 에이프론(apron)의 한 쪽 끝에 햇살을 상징하는 주름, 왕의 권위에 대한 불멸의 상징으로서 호루스(horus)나 우레우스(uraeus)가 장식되기도 하며, 도리깨나 안크(ankh)를 들고 있기도 하였다.
파라오의 표현에 있어 눈과 어깨는 정면을 향하고, 머리와 다리는 측면을 향하여 그려지는 방법은 시간을 초월한 의식들을 표현하는 기법이며, 대상의 본질적인 특성을 제시함으로써 생생한 에너지, 생명을 느끼게 하는 방법이다.
2) 기하학적 추상성
본질적인 순수성의 추구로 단순하며 근원적인 기하학적인 삼각형, 사각형, 원 등의 형태만을 고집 기하학적인 감각은 모든 선의 배열에 있어 뚜렷이 나타남.
직선은 항상 동쪽에서 서쪽으로 일정하게 운행되는 태양의 궤도 또는 태양의 광선을 형상화하였으며 직선이 공간의 한계에 다달았을 때, 직각으로 발전.
복식 전체의 사각형내에서 무수한 직선의 핀터크(pin-tuck)나 플리츠(pleats)가 장식, 장신구인 독수리나 매의 날개에서도 항상 직각이나 직선으로 표현.
개인의 체형에 따른 맞음새나 디자인의 추구에 따른 개성화는 배제된 채, 균일한 복
식의 형태로 표준화된 양식을 탄생.
II 복식의 종류와 형태
1. 의복의 종류와 형태
이집트 시대는 남녀가 공용으로 입은 복식의 형태가 많다.
1) 로인 클로스(loin cloth)
허리에 둘러 입는 가장 간단한 사각형의 옷이다.
이집트의 로인 클로스는 남녀가 입는 기본적인 옷으로, 바는질을 하지 않고 천을 그대로 허리에 둘러 그 끝을 허리에 끼워 넣거나, 끈(거들, girdle)이나 벨트로 천위를 둘러 매어 고정 시켰다.
2) 스커트 (skirt)
남녀가 입은 것으로 schenti, shent, skent, schent, 등으로 불리우며, 일종의 둘러 입는 스커트(wrapped skirt)로, 길이, 넓이, 맞음새 등이 시대와 사회계층에 따라 다르다.
왕이나 귀족이 입는 로인클로스는 주름을 잡거나, 주름없이 길게 하체를 스커트처럼 두르기도 하였다.
노동자계층의 센티는 무릎이나 그 위의 길이이다. 이 센티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몸에 두를 때 시작되는 한쪽 끝과 끝나는 다른 한쪽 끝을 왼쪽어깨에다 잡아 맨 형태, 한쪽 어깨에만 끈을 단 형태가 있고, 끈 없이 허리에다 둘러 입기도 하였다.
후에 두 겹의 센티로 안은 불투명하며 겉은 비치게 하였다.
3) 킬트 (kilt)
신왕국 이후 남녀가 입은 로인 클로스의 변형으로 긴 스커트형이며, 주로 앞자락에 주름을 잡은 것이다.
4) 빠뉴 (pagne)
왕족의 남자들이 입었던 로인 클로스, 센티, 킬트의 총칭으로, 왕을 상징하기 위하여 타셀이 달린 허리띠나 에이프론 형의 쉔도트(shendot)라는 앞 장식을 착용했다.
5) 트라이앵글러 에이프런 (triangular apron)
태양의 햇살을 상징하는 주름이 삼각형 모양의 한쪽에 방사선으로 주름이 있는 에이프론.
6) 쉔도트(Shendot)
왕족의 남자들이 빠뉴 위에 두르는 에이프런형의 장식 패널, 단순히 수평이나 수직의 핀터크(pin-tuck)의 장시이거나, 유리상감으로 세공하여 입체감이 나는 것도 있다.
7) 쉬스 드레스(Sheath dress)
일명 쉬스 스커트라고도 함.
끈이 달린 긴 스커트로 일반 남녀가 다 입었으나 특히 여자가 주로 착용하였다.
재료는 주로 두꺼운 리넨이나, 울에 자수를 하거나 구슬로 장식했으며, 가죽을 무늬대로 컷 아웃하거나, 끈으로 그물처럼 엮어 짜 장식하기도 하였다.
8) 칼라시리스(Kalasiris)
직사각형의 반투명한 리넨의 가운데에 목둘레선을 내고 양 옆선을 앞으로 접거나, 앞자락을 뒤로 돌리고 뒷자락을 앞으로 돌린 후 허리띠를 매거나 핀을 꽂아 입은 가운(robe)형. 왕족의 것은 넓고 풍성하며 형태도 다양.
투탄카문의 왕가의 분묘의 벽화에서 칼라시리스는 태슬(tassel)로 장식된 것도 보인다.
9) 하이크 (Haik)
몸에 걸치거나 두르는 식의 쇼올(shawl)형으로, 주로 왕족이 그들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입었다.
하이크는 입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연출을 할 수 있다.
케이프형으로 직사각형의 천으로 양어깨를 두르고 앞에서 묶는 형태, 한쪽 어깨만을 감싸고 매듭을 반대쪽 가슴아래서 묶어 한쪽 유방이 노출되는 형태, 매듭의 위치를 달리하여 유방이 노출되지않는 형태 등 매우다양하다.
투명한 감의 쉬스 드레스나 칼라시리스를 이중으로 입기도 한다.
10) 튜닉 (tunic)
신왕국 시대에 동방의 영향으로 남녀가 다 함께 입은 T자 형의 긴 원피스.
직사각형의 천을 어깨에서 접어 목둘레를 T자로 자르거나, 원형으로 목둘레선을 만들고, 양쪽 진동선에서부터 밑단 까지 박은 원피스 형.
후에 왼쪽 어깨만을 걸치도록 한 것도 있다.
Ⅲ. 고대로마
복식의 일반적 특징
1. 사회계급을 드러내는 복식
로마인들의 의복은 사회계급이 중시되었던 로마 사회를 잘 반영하고 있다.
사회 계급에 따른 차이를 거의 모든 의복의 형태, 색, 장식 등에서 볼 수 있었으며, 따라서 의복은 점차 화려하고 과시적이 되어 갔다.
2. 절충미적인 복식
토가는 로마의 대표적인 복식으로 그리스의 히마티온과 에트루리아의 테베나의 영향을 보인다.
이는 로마 복식의 특징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그리스 복식미를 계승하면서도 기타 다른 문화의 복식미를 받아들여 로마다운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표현하였다.
복식의 종류와 특징
1. 위대한 남성의 복식
1) 토가
- 토가는 로마 남자 시민의 전형적인 의복으로 초기에는 남녀노소 모두 착용하다가 제정시대부터는 남자 시민만이 토가를 입을 수 있었고, 노예, 외국인, 여자는 토가를 입을 수 없었다.
토가는 그리스의 히마티온에 에트루리아의 테베나의 특성이 합쳐진 데에다 로마인들만의 특성을 부여, 발전시킨 것이다.
튜니카 위에 걸쳐 입었는데, 복식의 형태와 장식, 색채, 입는 방법 등이 매우 다양하였다. 초기 토가는 긴 흰 색 모직의 천으로 반원형이었으며, 둥근 끝단을 따라 선을 댄 것이었다.
그러다가 제정시대가 되어 형태가 달라지고, 부피가 커지면서 두르는 방법이 좀 더 복잡해졌다.
제정 말기에는 천이 길어지면서 몸의 앞뒤로 여러 번 둘러 입게 되었는데, 가슴에서 어깨까지의 부위에 대각선의 주름이 여러 겹 생기게 되었다.
칼리굴라의 상에서, 칼리굴라가 온 몸에 둘러 입고 있는 의상, 역시 토가이다.
토가는 색과 장식에 따라 입는 이의 계급을 표시해 주었는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황제나 개선 장군만이 입을 수 있었던 보라색의 토가 픽타(Toga Picta), 황제, 성직자, 집정관 등이 입었던 흰색의 울에 보라색으로 가장자리에 선 장식을 한 '토가 프라에텍스타(Toga Praetexta)' 전혀 장식 없이 일반 남자들이 평상복으로 착용했던 토가 푸라(Toga Pura) 등이 있었다.
이처럼 로마 시대의 토가는 나중에는 그 어휘 자체가 '로마 시민'이라는 의미를 갖게 될 정도로 로마와 뗄 수 없는 그들의 대표적인 복식이 되었다.
2) 튜니카(tunica)
- 튜니카는 T자형의 천 두 장을 앞판, 뒤판으로 하여 꿰맨 평면적인 간단한 형태의 의복을 말한다.
점차 일자형 천에 소매를 달아서 입게 되며, 길이는 발목까지 오는 경우도 있었고 넓은 소매를 다는 경우도 있었다.
주로 남자들이 입었으며, 입는 계급에 따라서 장식이 더해지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상류층 남자의 속옷이나 잠옷 혹은 하류층 남자들에게는 일상복이었으며, 공식적인 경우에 길고 장식이 많은 튜니카를 입고 그 위에 토가를 걸치기도 하였다.
뒤보다 앞이 짧은 형태도 있다.
추운 날씨에는 여러 겹의 튜닉을 겹쳐 입기도 하였다.
여자들의 경우에는 실내복으로 입었으며, 남자들의 것보다 길었다.
넓은 소매가 달린 것은 달마티카(dalmatica)라 한다.
3) 스톨라(stola)
- 여자들이 입었던 것으로 튜니카보다 폭이 넓은 긴 로브이다.
남자들이 주로 튜니카를 입었다면 여자들은 스톨라를 입었다.
튜니카보다 소매가 더 짧고 허리띠를 한 개 내지 두 개 하였다.
한 장의 넓은 천을 끌어 올려 어깨 부분에서 접어 천이 다시 허리선까지 내려오도록 한 접힘 부분이 있고, 이 접혀 떨어지는 천의 앞뒤판을 어깨선에서 수많은 단추로 고정한 것으로 도릭식 키톤 디자인과 이오니아식 키톤 디자인의 결합된 형태이다.
그리스의 것보다 더 풍성하게 재단되었던 스톨라는, 따라서, 인체 위에 걸쳐졌을 때, 인체의 형태를 더욱 육감적으로 드러내게 되었다.
더군다나 이 좌상에서 스톨라는 치마 쪽으로 내려올수록 더 풍성해지는 모양을 보여주고 있어 이미 로마 시대부터 주름을 이용한 장식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낳게 한다.
또한, 어깨 위에서 천을 고정시키기 위해 사용된 브로치나 단추는 2개에서 8개까지도 쓰였는데, 팔꿈치 길이보다 더 긴 소매를 만들기도 하였다고 한다.
4) 팔라(palla), 팔리움(pallium)
- 그리스의 히마티온에 해당하는 것으로 스톨라 위에 착용하였다.
여자가 입는 것을 팔라, 남자가 입는 것을 팔리움이라 했다.
5) 클락(cloak): 로마는 그리스보다 추운 날씨로 인하여 케이프가 많이 발달하였다. 후드가
있는 것도 있었다.
a. 파에눌라(paenula): 반원형으로 두꺼운 모직으로 되어 있다. 앞여밈과 후드가 있다.
b. 라케르나(lacerna): 직사각형으로 모서리를 둥글게 했으며 후드가 있다.
c. 라에나(laena): 원형의 천을 반으로 접어 어깨에 걸치고 앞에서 핀으로 여미는 형태이다.
d. 비루스(birrus): 현대의 후드 달린 폰초와 유사하다.
e. 팔루다멘툼(paludamentum): 흰색, 보라색의 큰 클락으로 그리스의 클라미스와 비슷하 다.
6) 로인 클로스(loin cloth)
- 중상류층 이상 남자의 속옷, 노예의 노동복, 여자 속옷
7) 마밀라레어(mamillare)
- 여자 속옷은 로인 클로스 외에 가슴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던 마밀라레어(스트로피움 strophium이라고 하기도 한다)가 있었다.
이것은 운동복이기도 하였다.
Ⅳ. 중세 중기
복식의 일반적 특징
1. 로마네스크 복식의 자료
1) 장식사본, 조각,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 태피스트리(tapestry)가 복식의
주요 자료이다. 중세 초기는 실물 복식 자료가 부족한 편이다.
로레인 (Lorraine)과 르망(Le Mans) 등의 발굴지, 생 드니(Saint-Denis) 성당, 샤르트르(Chartre) 대성당 등 성당에서 자료를 얻을 수 있다.
2) 인체미 - 기독교의 영향으로 은폐의 경향을 보이는데, 특히 중세 여성은 팔, 다리를
노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긴 소매의 옷 길이가 긴 의상은 중세~17C까지 정숙성에 있어 중요하게 간주되었고, 따라서 팔을 노출하는 것은 게으름, 수치의 상징이어서 단지 세탁, 농사일 등의 노동, 내실에서나 가능했다.
15C에 가서 목, 어깨를 노출하는 패션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풍기문란한 가십거리였다고 한다.
한편, 중세 여성은 미용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데 중세식 미용 처방은 다소 환상적이었으나 잘 지켜졌다고 한다.
1100년경의 여성전문의 트로툴라(Trotula)의 미용을 위한 각종 처방에 따르면 '날씬한 몸매를 위해서는 바닷물에 목욕, 허브를 사용하거나, 건강을 위해서는 와인 숙성된 거름으로 마찰한 후 찜통 속에 들어갔다가 목욕을 한다든지, 블론드 머리 색상을 유지하려면 헤나, 송아지 콩팥, 사프란향을 섞어 세척한다는 등'이 있다.
그 외 커닝튼(Cunnington)에 따르면, 12C 영국 상류 여성은 루즈, 얼굴크림 사용, 머리 염색, 십자군 원정이후 향수를 수입해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중세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말하자면, 중세 전기 여성들은 노래, 시 창작, 암송 등 고급 수준의 문화를 선도, 남편 대신 영지 관리, 음유 시인 후원, 십자군 원정 참여 등 활동적성향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중세후기가 되면 여성은 교회, 가정, 사회 속에서 침묵해야 하는 머리가 텅빈, 단지 패션에서나 두각을 보이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2.로마네스크 복식의 형태
- 궁정, 평민의 세속적(secular)복식과 더불어 기독교의 발달로 인한 주교, 사제복 등의 교회 복식, 기사, 십자군의 등장으로 인한 군인복식, 그외에 음유시인, 광대 등 엔터테이너의 무대복식 등의 특수 복식, 그리고 성화에서 볼 수 있는 그리스도, 성자, 성모 등 성스러운 인물의 복식 3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3. 로마네스크 복식의 특징
- 비잔틴, 동방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 로마 스타일, 기독교 영향의 은폐 스타일, 여기에 게르만족 스타일이 혼합된 경향 보이며, 각국이 자신들의 취향을 따르는 양상을 띤다.
게르만족은 추운 기후조건의 필요에 따라 개방적인 남방형과는 대조적으로 신체를 감싸는 밀착형 의복을 착용했으며, 중세의 성(castle)문화(습기차고, 어둡고 여름에도 추워서 사치스런 카펫, 벽걸이, 쿠션 수입의 발달)의 영향으로 옷을 여러 겹으로 중첩 착용했다.
그에 따라, 중세인들은 옷을 갈아 입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4. 비잔틴 복식과의 비교
- 비잔틴 복식은 긴 헤어스타일, 여성스럽고 화려한 머리 장식, 넓은 소매의 헐렁한 의상, 황금과 보석이 어우러진 화려한 동방풍이었던 것에 비해, 로마네스크 복식은 덜 장식적이었고 다양한 색상이 선호되었으며 기후 관계로 털(fur)장식이 사용되었다.
또 비잔틴에서 많이 보이던 보석칼라인 수퍼휴메랄(superhumeral)은 잘 나타나지 않았으며, 목선의 은폐를 위해 하이 네크라인을 사용하여 단지 여기에 보석, 금은실 자수로 장식된 트임이 많이 보였다.
무엇보다 다른 점은 이 시기 이후 서양 복식의 큰 특징을 이루게 될, 12C이후 급격한 실루엣상의 변화인 몸에 꼭맞는 스타일의 등장에 있다.
복식의 종류와 형태
1. 의복의 종류
1) 언더튜닉(undertunic)
셔츠(shirt, sherte) 현대 남성의 shirt의 기원. 피부에 바로 닿는 언더 튜닉
a. 슈미즈(chemise, camise)
모든 의복 안에 입은 린넨, 실크로 된 헐렁한 언더 튜닉. 영국식으로 카미즈라고도 함
b. 쉥즈(chainse)
비치는 세탁이 용이한 소재로 된 언더 튜닉. 혹자는 쉥즈는 세탁이 용이한 흰색소재의 여름용 홈웨어라고도 했다.
c. 콜스(corse)
체형 보조대로 가죽, 나무, 금속으로 만들어진, 앞에 레이싱(lacing)이 있는 속옷의 일종으로 12C 초기 Henry I세 때 나타났다고 한다.
중세에는 나이트 가운이 없고 자연스런 나체로, 혹은 셔츠, 슈미즈를 입고 잤다고 하는데, 후에 15C 나이트 가운, 코이프(coif) 형의 나이트 캡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고 한다.
2)튜닉(tunic)
일반서민 계층에서 널리 입힌 기본적인 의복. 언더튜닉 위에 착용.
로마네스크의 튜닉은 앞트임이 있는 형태가 많았는데, 네크라인, 소매단, 밑단 등에 선장식이 있는 것이 특징.
튜닉의 길이나 장식성에 따라 사회계층차이를 나타냈다.
상류층 남자, 성직자의 의례용, 여성들은 긴 튜닉 착용.
3)달마티카(dalmatica)
클라비(clavi), 선장식이 있는 일종의 풍성한 튜닉으로 비잔틴처럼 성서 인물들, 왕족의 복식에서 보임.
이전에 비해 앞트임 등 다양한 네크라인을 보임.
4)블리오(bliaut, bliaud)
12C 상류층에 의해 많이 착용된 로마네스크 튜닉의 일종.
상하가 분리되어, 겨드랑이 아래 부분의 상체는 앞, 뒤 레이싱(lacing)에 의해 꼭 맞고, 아래 스커트부분은 넓고 풍성하며 트레인(train)이 있을 정도로 길었다.
풍성한 실루엣을 위해 옆선에 거싯(gusset)을 대거나, 때로 뒤에 박스 플리츠(box pleat)를 주었다.
블리오의 소매는 팔꿈치이후 넓어지는 깔대기형이 많았는데, 그외에도 다양한 변형을 보였다. 여기에 코드를 엮은 거들(girdle)이나, 같은 혹은 다른 소재의 몸통을 조이는 힙벨트를 착용했다.
소재로는 부드러운 실크 크레이프, 벨벳, 새틴 같은 고급 직물이 사용되었다.
젊은 여성의 경우 지갑에 가위를 넣고 다녔는데, 때로 시합 중에 있는 기사에게 블리오의 소매를 주면 기사는 이를 헬멧, 방패에 매달았다고 한다.
5)코르사주(corsage)
여성들이 블리오 위에 착용한 조끼형 의복으로 힙선 길이에 허리둘레가 꼭 맞는 형태.
형태 유지 위해 얇은 직물을 두세겹 겹쳐서 금은사를 사용하여 누벼 신축성을 주었다.
6)바지
a. 브리치즈(breeches) - 야만인의 짧은 바지에서 유래, 차츰 길어져 발목 길이의 헐렁한 바지형태를 이룸.
b. 니커버커(knickerbocker) - 영국 농부의 짧은 브리치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c. 호즈(hose) - 다리에 꼭맞는 스타킹 같은 바지 형태로 위에 울, 가죽의 띠로 된 각반을 감음. 줄무늬, 노랑, 불꽃 같은 밝은 색도 사용. 실내용으로 바닥에 가죽 밑창 댄 형태도 나옴.
d.언더드로어즈(underdrawers) - 벨트로 허리를 조인 헐렁한 린넨 브리치즈로 9C부터 착용.
7) 맨틀, 클로크(mantle, cloak)
다양한 크기의 직사각형, 반원형, 타원형 망토로, 몸에 한 번 두르고 오른쪽 어깨나 가슴에서 브로치, 피블라로 고정시키거나 코드를 매어 착용.
앞이 트인 형(open)과 막힌 형(closed)도 있었는데, 때로 이중(double) 망토로 착용하거나 겨울에는 털장식, 털안감을 사용하기도 했다.
Ⅴ. 중세후기
복식의 일반적 특징
1. 고딕복식의 자료
1) 세속적인 로망스, 혹은 성경 필사본에 나타난 일러스트레이션, 고딕 성당, 부유하거나 태생이 좋은 사람들의 무덤의 석조상, 태피스트리 등 비잔틴, 로마네스크 복식은 자연스런 인체형을 수용하였으나 고딕의 경우 이러한 제한을 넘어서 여성의 인체미는 면도되어 둥글게 돌출된 넓은 이마, 작고 단단한 가슴과 배가 앞으로 둥글게 돌출된 다산을 상징하는 프레그넌트(pregnant)라인을 추종하였다.
이러한 인체미에 따라 상체는 꼭맞고 하체는 풍성한 실루엣과 그에 따른 재단법이 발달하게 되었고, '몸의 미소'라고 하며 프랑스의 이자벨 왕비에 의해 처음 등장한 데콜타주(decolletage) 네크라인, 하이 웨이스트(high waist) 라인이 유행하게 되었다.
2) 미용
- 당시의 여성의 화장대에는 화장품, 머릿기름을 담은 금은병, 귀, 치아, 손톱 청결제 등이 있었으며, 매일 아침 눈, 손을 찬물에 세안하는 것이 권장되었다. 온수의 경우는 전신 목용에 사용되었는데, 대체적으로 목욕은 일년에 한번 가을에 행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목욕은 근육이완, 피로회복에 좋은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어느 정도 목욕을 즐겨했으며, 욕조에서 조반을 들었다고도 한다.
2. 고딕 복식의 특징
1)실루엣
수직성, 예각성의 강조 종교적 이념을 반영하여 남녀 모두 날씬하고(slender) 길쭉하게 늘려진(elongated) 형태의 튜닉, 후드, 에냉(hennin), 땅에 끌리는 트레인(train), 과장된 길이의 끝이 뾰족한 슈즈인 풀렌느(poulaine)을 착용하는 등 수직성, 예각성을 강조한 복식 재단법의 발달
고딕 시기에는 빠른 패션의 변화를 보이며(코트, 코트아르디 우플랑드 男푸르푸앵/女가운) 몸에 꼭맞게 재단된 새로운 인체를 인식한 입체적인 복식들이 등장
14C 프린세스(princess) 라인 처음 등장, 특히 여성복에 있어 타이트 레이싱(tight lacing), 고데(godet)등의 재단법 발달, 남성복의 하의(legwear)의 밀착, 단추의 도래로 관두형이 아닌 새로운 여밈법과 슬림 룩(slim look)이 가능해짐.
이러한 밀착형 의복 등장에 따라 의복제작에서 숙련도가 더욱더 요구되게 된 이후, 의복의 제작은 재단사(tailor)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어, 재봉을 담당하는 꾸뛰리에와 재단사는 구별되었다.
한편 차츰 남성의 경우 소매는 넓고 길며 길이는 짧은 푸르푸앵(pourpoint)에 꼭맞게 재단된 호즈(hose), 뾰족한 신발을, 여성의 경우 옷자락이 끌리는 화려한 원피스 형 가운(gown)에 섬세한 머리장식을 함으로써 남녀 성차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는 생활에 있어 남자의 능동성과 여성의 수동성의 차이를 극대화한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많은 역사학자들이 중세 이후에 여성들이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상실해갔음을 지적한다.
2) 색상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가 '색에 대한 애착(love of color)'라고 말했듯이 예술과 일상에 나타난 다양한 색의 등장은 중세의 큰 특징이다.
신분 상징을 위해 귀족들은 주홍, 녹색, 어두운 자주색, 등황색 등 화려한 색상들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기사들의 경우 복식에 있어 가문을 상징하는 색을 착용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청색은 노동자, 흰색은 성직자, 짙은 녹색은 점원, 다양한 색의 줄무늬는 메신저용으로 사용되었다.
고딕 시기에 흥미롭게 등장한 유행은 속옷을 보이게 하는 효과와 미파르티(Mi-parti), 혹은 파티 칼라(parti-color)라고 할 수 있다.
복식의 종류와 형태
1. 의복의 종류
1)속옷(underwear)
a. 언더셔츠(undershirts)
중세 시대의 속옷이었던 남성들의 셔츠는 오늘날 겉옷으로 대중들에게 사랑 받는 아이템이 되었음.
b. 슈미즈(Chemise)
슈미즈는 얇은 마, 견 등으로 만들었고 목둘레, 소매둘레에 자수나 레이스로 장식한 속옷
c. 코르셋(Corset)
코르셋은 초기에는 남녀 모두 허리를 좁고 가늘게 보이기 위해 사용하였는데, 코트와는 반대로 앞에서 끈이 매어졌다.
d. 정조대(Chastity Belt)
중세 말경 십자군 전쟁 출정을 앞둔 기사들은 자신들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 혹시 아내가 바람을 피우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끝에 급기야 고대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정조대(일명 비너스의 띠)를 부활시키게 되었음.
이것은 금속성의 T자 모양으로 신분이 높거나 재력이 있는 남편들일수록 금이나 보석을 박은 사치스러운 정조대를 제작하여 아내의 허영심을 달래었다고 한다.
생리적 배출은 가능하게끔 크고 작은 구멍이 두 개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밀려드는 정조대 주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대장장이들은 제작할 때 아예 두 개의 열쇠를 만들어 한 개는 남편에게, 나머지 하나는 훗날 부인에게 은밀히 팔았다고 한다.
e. 브리치즈(breeches, 혹은 braies)
브리치즈의 길이는 점점 짧아져 팬티와 같은 속옷이 되고 대신 호즈는 길어져서 힙선 위로 올라가게 길어 속옷 개념으로 무릎길이 혹은 그보다 더 짧은 길이의 바지 착용.
2) 코트(cote, 佛cotte)
13세기에 블리오를 대체하면서 등장한 남녀 공용의 긴 튜닉형의 원피스로 주로 실내에서 착용되었고 외출시 위에 쉬르코 착용.
상류층은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긴 코트, 하류층은 짧은 코트 착용.
코트는 이 시기에 입체적인 의복구성이 발달했음을 보여주는 예로서 블리오에 비해, 코트는 상체가 비교적 여유 있게 맞고 스커트 부분이 넓어져서 자연스러운 드레이프가 생김.
소매는 끝이 좁아지는 형태이거나 소매통이 전체적으로 좁은 형.
14C이후에 여성의 코트는 가운(gown)이란 명칭으로 불리어지기도 한다.
3) 코트아르디(cotehardie)
코트아르디는 남녀공용으로 코트의 변형.
상체는 꼭 맞아 신체의 곡선이 잘 나타나고, 스커트 부분은 풍성한 주름이 나타나는 긴 원피스형.
처음에는 깊이 파인 네크라인이다가 1375년경에 칼라가 부착되기도 하였다.
코트아르디는 다양한 소매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위 부분에 슬릿이 있어서 팔을 그 사이로 내 놓을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여기에 때로 좁은 폭의 긴 끈인 티핏(tippet)을 부착하기도 했다.
이것은 후기로 갈수록 점점 더 좁아지고 길어진다.
4) 쉬르코(surcot)
쉬르코는 13-14세기에 남녀공용의 넉넉한 겉튜닉의 일종. 둥글고 넓은 네크라인, 진동둘레가 특징.
소매가 없거나, 튜닉, 코트보다 짧고 넓은 소매가 있었다.
겉옷과의 색의 조화를 중시했으며, 장식적인 겉옷이었으므로 화려한 색의 실크나 모직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남성용은 종아리 길이로 짧았고 여성용은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길었다.
때로 더운 여름에 일부 여성들이 슈미즈 위에 코트를 입지 않고 바로 쉬르코를 착용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는 비정숙한 차림으로 간주되었다고 한다.
a. 시클라스(cyclas)
십자군이 갑옷에 반사된 태양의 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 갑옷 위에 착용했던 쉬르코의 변형으로 양옆이 전부 트이거나 꿰맨 것 모두 있었다.
b. 쉬르코 투베르(surcot-ouvert)
트여진 쉬르코(open surcot)' 라는 뜻의 장식적인 의복으로 특히 상류층의 부녀자들에게 애용.
진동부분이 힙부분까지 파여, 상체의 윤곽이 드러나는 여성의 관능미를 부각시킨 의복이었으므로 '지옥의 창문(windows of hell)'이라고 악명 높게 호칭되기도 함.
목둘레, 진동둘레에 모피 장식, 앞 중심의 보석단추 장식 등이 사용되었다.
5) 우플랑드(houppelande)
14세기 후반~15세기 전반에 걸쳐 남녀 사이에 유행한 장식적인 외의로 주로 벨벳, 새틴, 다마스크, 브로케이드, 울 등의 소재를 사용했다.
우플랑드는 스탠딩 칼라, 땅에 끌리는 긴 소매, 백파이프(bagpipe)형의 주름이 있는 풍성한 가운으로 다양한 깔대기형의 바닥에 끌리는 소매가 부착되어 있으며, 이 소매 끝을 불규칙하게 잘라내는 대깅(dagging-톱니 모양의 극도의 장식적 디테일) 장식 혹은 소매의 안쪽, 네크라인, 의복 전체에 모피 장식을 사용하였다. 15C에 가면서 남성복에 있어 코트아르디는 덜 등장하고, 이러한 우플랑드, 혹은 변형된 짧은 우플랑드와 푸르푸앵이 많이 등장한다.
우플랑드와 푸르푸앵의 차이는 허리부분에 봉제선의 유무로 나타나는데, 푸르푸앵의 경우 허리선에서 상체의 위부분과 스커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6) 푸르푸앵(pourpoint 혹은 doublet 더블릿이라고 불림)
1350년 이후 길고 드레이퍼리가 있던 남성의 튜닉은 점점 짧고 꼭맞는 형태의 의상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는데, 푸르푸앵은 십자군 병사가 호신용으로 입었던 누빈 속옷이 변형된 상의로 재킷(jacket)으로 불리기도 하며 현대의 재킷과 유사한 개념으로 나타난다.
어원은 원래 그 스커트 부분과 호즈를 연결하는 접점(point)에 매다는 옷(for the points)이란 뜻에서 유래했다.
형태는 동체에 꼭맞게 재단되어 동양에서 들어온 단추 영향으로 앞 중앙에 여밈 단추가 촘촘히 달려 있거나 레이싱(lacing)처리됨. 목둘레는 둥근 것, 스탠딩 칼라가 달렸으며 스커트 부분은 호즈에 연결되도록 끈 장식이 있었다.
15C에 소매부분에 있어, 탈착이 가능한 분리형 소매가 등장하였고 후기로 갈수록 소매의 윗부분을 부풀려서 심을 넣어 양다리형(leg of mutton) 소매로 변하였고 허리를 졸라매고 옷길이는 매우 짧아졌다.
옷감은 실크, 모직, 다마스크 등이 이용되었다.
7) 호즈(hose 혹은 불어로 쇼스(chausses))
호즈는 남녀가 착용한 양말, 혹은 바지의 일종으로 특히 14C 남자의 푸르푸앵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중요한 의상품목이 되었다.
초기에는 튜브 모양을 양쪽 다리에 각각 끼우고 허리까지 잡아당겨 고정시켜 입었던 것이 후기에는 양쪽의 중심을 꿰매고 코드피스(codpiece)를 붙여 팬티 호즈 모양이 되게 하여 착용하였다.
호즈의 종류로는 바닥에 가죽 밑창을 댄 것과 아닌 것이 있었다.
15C에 호즈는 신축성을 위해 바이어스로 재단되었으며, 울로 된 것이 많았다. 니트로 된 호즈로 16세기에나 가서야 대체되는데, 기록에 따르면 이는 1519년 영국의 노팅험의 한 도시에서 등장했으며, 1527년에 가서야 파리의 길드에서 제작되었다고 한다.
a. 코드피스(codpiece)
처음에는 양쪽으로 분리된 호즈의 양다리 사이를 채우는 목적에서 비롯된 성기보호용 조각으로 1450년까지 강조되지 않았으나, 1450년이후 푸르푸앵이 점점 짧아짐에 따라 노출되어 강조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8) 맨틀(mantle)
맨틀의 경우 점점 중요성이 감소했지만, 난방의 문제가 여전히 존재했으므로 폐기되지 않고 속에 털 안감을 대어, 집안에서나 여행시 착용되었다.
혹은 장식의 측면이나 자유인(free man)을 상징하거나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서 왕의 면전시 착용하기도 했다.
Ⅵ. 16세기의 복식
복식의 일반적 특징
- 르네상스의 시대정신과 다양한 직물, 장식품, 재단법의 발달은 종교적 색채가 배제되고 현실에 대한 정열과 인체미 표현에 관심을 둔 복식이 등장하게 되는 배경이 됨.
- 복식이 다양해졌으며, 부의 확산으로 부유한 시민도 새로운 모드를 착용할 수 있게 되었고, 유럽 여러 나라 사이에 왕실결혼과 무역량의 증대, 빈번한 여행 등으로 국제적인 모드가 형성되었고 세부적인 장식과 직물에서 국가적인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복식의 다양성, 대중성, 국제적 모드의 형성)
- 16세기 초기에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이탈리아 복식의 영향이 컸으며 16세기 전반기에는 슬래시, 퍼프의 독일의 영향, 16세기 후반기에는 견고하고 딱딱해 보이는 실루엣과 뻣뻣한 옷감 사용 등 종교와 관련된 스페인의 영향이 컸다.
- 남자의 기본복식은 셔츠, 더블릿, 브리치스, 호즈이며 여자의 기본 복식은 슈미즈, 코르셋, 페티코트, 로브임.
1. 미적 가치
1) 인체 미의 표현과 인위적인 과장
- 중세의 기독교적 신중심주의를 벗어난 휴머니즘의 영향으로 인체의 아름다움을 살리려는 노력이 르네상스 시대 의상에 나타남.
- 남성미의 강조는 어깨를 넓히고 소매에 패드를 넣어 크게 하고, 피스코드 벨리(배 가슴에 패드를 넣어 둥글게 돌출시킨 형태)로 전체적인 부피를 과장하고, 다리에는 꼭 맞는 호즈를 신고, 코드피스로 남성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으며, 여성미의 강조는 데꼴데로 가슴을 깊게 노출하거나 코르셋으로 허리를 가늘게 죄고 파팅게일로 스커트를 확대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음.
재단법의 발달은 인체의 선을 과장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였음.
2) 인공적인 복식미 강조
- 다양한 보석, 러프, 레이스, 자수, 화려한 직물 등을 통해 인공적 미를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임. 진주,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등 보석을 왕과 귀족들의 복식에 과도로 장식하여 Pearl Age라고 부를 정도로 보석류가 남용되었음.
1560년 프랑스의 찰스 9세가 사치금지령을 내린 것을 비롯하여 담비털, 슬래시 규제의 법령을 반포하기도 하였음.
- 지리적 발견과 무역활동의 신장, 공장제 수공업, 직물산업의 발달, 절대왕정, 부의 확산 등으로 귀족의 복식이 다양해지고 화려해짐. 부유한 시민도 새로운 모드를 착용할 수 있게 된 복식의 대중화, 국제적 모드의 형성 등 복식 문화가 발달함.
복식의 종류와 형태
1. 남자 복식
1) 셔츠(shirts)
- 더블릿 안에 입은 좁은 튜닉형의 속옷.
-16세기 초에 더블릿이 목둘레가 사각형으로 깊이 파여져 서 셔츠가 많이 보이게 되면서 중요한 의복이 됨.
-품이 넓고 비숍 슬리브가 달림. 손목과 목둘레에 주름이 잡혀 있음.
-1520년대 이후 목둘레에 좁은 프릴이 달리고 1540년대 이후 프릴이 분리되어 러프(ruff)가 창안됨.
-소재: 흰색 린넨, 실크
2) 더블릿, 뿌르뿌웽(doublet, pourpoint)
- 중세의 gipon에서 발전된 대표적인 남자 상의.
- 허리선 아래로 스커트 부분이 달리거나 짧은 페플럼이 달린 것이 있음.
- 목둘레는 16세기 초기에는 낮은 목둘레였으나 이후로 러프 칼라(ruff collar), 하이 네크라인(high neckline)이 됨.
- 앞여밈(front opening)으로 단추나 후크, 끈을 사용하여 여몄음
- 다양한 형태의 소매가 달렸거나 없기도 함. 1540년경 이후 소매는 따로 구성하여 어깨에 달기도 하며 이때 에폴레트(epaulette, wing)로 소매와 어깨 사이를 가림.
- 헨리 8세때는 패드를 넣어 크게 부풀린 어깨로 남성미를 강조하는 형태이고, 1570년 경에는 피스코드 벨리(peascod belly, 가슴과 배에 패드를 넣어 둥글게 돌출시킴)가 뚜렷하게 나타남.
- 슬래시(slash) 장식
- 소재 : 벨벳, 타프타, 공단. 중류 이하 계층에서는 모직, 가죽.
- 16세기 전기에는 밝은 색, 빨강색을 애호하였으며 헨리 8세 의상목록에는 자색, 청색 벨벳더블릿에 금사로 수놓은 것이 나와있으며 16세기 이후에는 스페인의 영향으로 수수한 색채와 검정색이 압도적으로 유행함.
- 저킨(jerkin) : 저킨은 더블릿보다 옷길이가 길고 더블릿 위에 입은 것으로 소매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는 것이 있었음. 1530년 이후부터는 길이가 점차 짧아지는 변화를 겪음.
3) 브리치스, 오 드 쇼오스(breeches, haut de chausses)
- 반바지. 더블릿에 끈으로 연결해서 입었으며 아래에 호즈를 신음.
- slash 장식
- 종류: 트루쓰(trousse), 트렁크 호즈(trunk hose) : 1540년 이후 등장한 둥근 호박 형태로 부풀린 반바지, 넓적 다리 중간까지의 길이.
a. 베네샹(venetians) : 베니스에서 전래된 반바지, 약간 또는 크게 부풀림. 갤리개스킨즈(galligaskins)라고도 불림.
b. 까니옹(canions) : 네델란드에서 시작된 기능적 반바지, 무릎길이의 날씬한 스타일, 트루쓰에 붙은 장식적 기능을 하였으나 1580년대에는 프랑스에서 유행하면서 바지를 뜻하는 것이 됨.
4) 호즈, 바 드 쇼오스(hose, bas de chausses)
- 종아리에 신는 긴 양말
- 1550년 까지는 편직 양말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천으로 호즈를 만들어 신었으며 16세기 중기부터 편직 호즈가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생산되었고 실크 호즈, 모직 호즈가 나왔다.
- 대님은 바지와 양말의 연결 부분을 덮어서 가리는 기능을 함.
- 소재: 밝은 색의 울, 실크, 편성물.
5) 코드피스, 브라게뜨(codpiece, braguette)
- 브리치스의 앞 가운데 달린 역삼각형 천으로 만든 주머니 모양의 앞트임 덮개.
- 성기 보호 또는 남성 우위의 과시 목적임.
- 크리트 로인클로스의 앞가리개에서 기원하였고 16세기에는 장식화하여 슬래시, 패드, 자수, 보석장식 등으로 발전하다가 브리치스의 부피가 커짐에 따라 소멸함.
2. 여자 복식
1) 슈미즈, 언더 튜닉, 셔츠(chemise, undertunic, shirts)
- 로브 속에 착용한 좁은 튜닉형의 원피스 드레스 속옷, 그 위에 콜셋, 파팅게일을 입었음.
- 소재 : 린넨, 실크
2) 언더닉커즈(under-knickers)
- 메디치가 입기 시작한 풍성한 형태의 속바지
3) 코르셋(corset)
- 몸을 가늘게 조이는 기구
- 콜셋의 초기 형태는 천으로 된 띠를 몸에 감아서 조이던 것에서 조끼 모양으로 발전하였음.
a. 바스뀐느, 웨이스트 코트(basquine, waistcoat, whaleboned bodice)
앞, 옆, 뒤가 트인 조끼 형태의 코르셋으로, 린넨의 두겹 사이에 나무뿌리, 고래수염, 금속, 상아를 넣고 누비고, 앞이나 뒷중심에서 끈으로 조여 입게 되어 있음. 아래에 끈이 달려 속치마와 연결됨
b. 꼬르삐께 (corp-pique)
바스뀐느보다 강하게 죄는 코르셋으로 구성법이 발달하였고, 금속(철제)으로 만든 것도 등장하였음.
4) 페티코트: 스커트를 부풀리기 위한 버팀대
- 등, 종려나무 줄기, 고래수염, 금속심을 린넨 속치마에 꿰맨 형태로서 로브의 치맛자락을 터서 그 사이로 보이게 하기도 하였음.
- 종류:
a. 베뛰가뎅, 파팅게일(vertugadin, farthingale)
: 스페인풍의 원추형, 벨 형 버팀대
b. 오쓰뀌, 휠 파팅게일(haussecul, wheel farthingale)
: 16세기 후반에 등장한 프랑스풍의 원통형 버팀대
5) 로브, 드레스(robe, dress)
- 중세의 꼬따르디가 변형된 투피스 구조의 드레스
- 상체는 몸에 꼭 끼고 스커트는 폭이 넓고 길다.
- 데꼴데(decollete, decolletage)는 가슴 깊이 파인 목둘레선을 말함.
- 파틀렛(partlet)은 데꼴데로 많이 드러나는 목과 가슴 윗부분을 얇은 린넨, 공단으로 가린 가리개를 말함.
- 러프(Ruff)는 린넨, 레이스를 정교하게 주름잡아 만든 칼라를 말함.
- 소매는 다양한 실루엣의 소매가 존재하였고, 소매를 분리하여 따로 구성하기도 함. 이때
에뽈레뜨(epaulette)를 달아 소매와 로브의 연결부위를 가려주었음. 패드, 퍼프(puff)로 부풀리거나 슬래시(slash)장식을 함. 장식적 목적의 소매인 행잉 슬리브(Hanging sleeve)가 하나더 달리기도 함.
- 가슴에 스토마커(stomacher)를 대었는데, 값비싼 두꺼운 실크, 금실로 무늬를 짠 브로케이드, 벨벳으로 만들고 과다한 보석 장식을 하였음.
- 초기의 로브는 목둘레는 깊이 파인 데꼴데로 되어 있고 파틀렛(partlet, 가리개)을 대거나 슈미즈의 목둘레를 끈으로 오므려서 잔주름이 지게 하였고 1510년대에는 프릴 칼라를 다는것은 프랑스에서 유행됨. 스커트의 앞 중심이 형으로 벌어져서 속에 입은 페티코트가 보이는 것임.
- 후기의 로브는 스페인 모드가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 복식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각 나라들은 고유한 취향을 살리면서 스페인 모드를 수정하면서 받아들였음. 실루엣이 콜셋과 파딩게일에 의해 더욱 축소되거나 확대됨.
목둘레에는 러프, 메디치 칼라, 스탠딩 칼라가 달리고 어깨에는 에뽈레뜨가(epaulette, wing) 장식적인 기능을 하고 앞가슴에는 스토머커를 대는 변화가 나타났음.
엘리자베스 여왕 때에는 인공적 미의 극치로써 머리는 위로 올려 틀을 만들고 보석 장식을 하였고, 바디스(bodice)는 허리선 아래로 길게 내려와 뾰족한 예각을 이루는 형태에 코르셋과 휠 파팅게일을 입어 허리를 가늘고 하의를 크게 확대함. 보석, 화장, 러프 칼라가 특징적임.
6) 러프(Ruff)
- 풀 먹인 린넨, 레이스를 정교하게 자형으로 주름잡아서 만든 높고 둥근 칼라.
- 풀의 색에 따라 흰색, 붉은 색, 푸른색, 노란색, 녹색, 보라색 등 다양하였음.
- 초기엔 작은 형태였으나 점점 화려하고 정교한 형태로 변화하고 1580년대에는 러프의 전성시대가 되었으며, 메디치 칼라(medici collar : 러프 칼라의 앞이 트인 부채모양의 칼라)나 퀸 엘리자베스 칼라(Queen Elizabeth collar : 둥근 러프+ 메디치 칼라)로 변형되어 성행하였음.
- 러프칼라는 이탈리아에서 창안되어 프랑스와 영국, 스페인으로 전파되었는데, 귀족의 특권을 상징하는 르네상스 시대 특징적인 요소임.
7)파틀렛(partlet)
- 데꼴데된 앞 가슴과 목을 가리는 가슴 가리개
- 소재: 얇고 투명한 린넨, 레이스
8) 스토마커(stomacher)
- 꼬르삐께나 바스뀐느 위에 가슴과 아랫배에 걸쳐 역삼각형으로 붙인 장식 가슴받이
- 두꺼운 린넨, 면에 풀먹여 평평하게 만든 후 겉감을 화려한 실크, 브로케이드, 보석, 자수 장식을 하였음.
9) 슬래시(slash)
- 군복에서 생긴 칼자국에서 유래한 칼금 장식
- 형태: 직선, 사선, 십자, 둥근 모양, 별, 꽃 모양 등 다양함.
Ⅶ. 17세기
복식의 일반적 특징
- 네덜란드의 간소한 시민풍의 복식과 프랑스의 귀족풍 복식이 공존한 시대: 17세기 복식의 주된 흐름은 초기, 중기에는 르네상스 스타일이 그대로 존속되면서, 네덜란드의 영향으로 시민복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후기에는 루이 14세의 통치기간에 세워진 베르사이유 궁전의 바로크 스타일이 복식에도 나타나 귀족풍의 복식이 되었음.
- 사치금지령: 프랑스의 앙리 4세, 루이13세, 14세 시기에 사치금지령으로 화려한 브레이드, 레이스, 벨벳, 새틴, 보석에 대한 사치 금지령이 내려졌고 이로 인해 독창적인 루프, 리본 장식이 발달했음.
- 직물 산업의 발달 : 실크, 울의 직조 기술발달과 고블랭직의 생산, 레이스, 자수, 염색 기술이 발달함.
- 국제적인 모드의 형성: 프랑스의 절대왕정 확립 후(태양왕 루이 14세 집권) 프랑스가 패션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함. 경제적인 부, 지리적인 위치, 프랑스인의 세련된 감각, 호화로운 궁정생활과 귀족문화의 번성, 루이 14세의 예술적 안목과 전폭적 지원, 패션의 보급매체발달(판도라 인형, 잡지, 유행화) 등의 요인은 프랑스를 국제적 모드의 중심지로 만들었음.
- 패션 리더 : 마리 드 메디치(Marie de Medici, 앙리 4세의 비), Anne of Austria(루이 13세의 비), Fontange(루이 14세의 애인)
- 복식의 자료 풍부: 영국의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 스웨덴의 로얄 아머리, 덴마크의 로젠버그 궁에 보존된 실물복식, 영국과 프랑스 왕실의 의상구입장부, 루벤스, 람브란트, 반다이크 등의 회화작품, 커스튬 플레이트 자료 등.
1. 미적 가치
- 열정적이고 감각적인 바로크 스타일의 복식미 : 프랑스 궁정의 바로크 스타일 복식은 스케일이 크게 확대되고 복합적이고 다채로움. 전체적인 조화보다는 호화로움을 목적으로 하는 장식 그 자체의 나열은 열정적이고 향락적임.
-거창한 가발을 쓰고, 복식은 실루엣이 16세기보다 더 확대되기도 하고, 심홍색, 갈색, 빨강색, 자색, 초록색, 심청색 등이 선호되었고, 문양은 자연의 꽃, 잎, 열매를 도안화시켰으며 단추, 레이스, 리본다발을 지나칠 정도로 과다하게 사용함.
-엄격한 외양으로 이지적인 감각을 지닌 르네상스 스타일에 비해 바로크 스타일은 화려하고 현세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감각적이고 열정적인 기풍을 자아냄.
복식의 일반적 특징
1. 남자 복식
1) 셔츠(shirts, 슈미즈)
- 더블릿(뿌르뿌웽)을 몸에 꼭 끼게 입은 17세기초에는 셔츠가 밖으로 보이지 않아 중요한 품목이 아니었으나 후기에 더블릿이 보레로 형태로 짧아지면서 셔츠의 품이 넓어지고 길이가 긴 비숍 슬리브가 달리게 됨.
랭그라브(rhinegraves, 페티코트 브리치스)가 유행된 17세기 중기에는 소매를 리본으로 묶고 리본다발로 장식한 것이 있었음.
- 셔츠의 목둘레는 목에 잘 맞는 둥근 형이고 다양한 종류의 칼라를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것으로 16세기에 유행했던 러프는 1615년 이후 풀을 먹이지 않아 어깨에 내려앉은 형태로 되었고 1630년대에는 휘스크 칼라(whisk collar)가 등장하였음.
휘스크 칼라는 대개 반원형으로 철사 받침을 하여 머리뒤쪽은 뻗치게 하여 부채모양인 것과 앞쪽은 칼라의 좌우 양끝이 턱밑에서 수평으로 만나게 되어 있음.
2) 넥크웨어-크라바트(cravat, cravatte)
- 1660년대에 크라바트(cravat, cravatte)가 등장함.
크라바트는 흰색 린넨, 실크, 얇은 면직물로 폭 30cm, 길이 100cm 정도의 것을 목에 2번 감고 앞에서 한번 매어 늘어뜨린 것으로 1670년대 쥐스또꼬르(코트)가 생기면서 falling collar가 없어지고 유행함.
후기로 갈수록 장식적으로 변화하였으며 현대 넥타이의 초기 형태임.
3) 더블릿, 뿌르뿌웽(doublet, pourpoint)
- 상의인 더블릿은 17세기 초기에는 반바지인 오드 쇼오스와 함께 착용되었고 네덜란드 시민복의 영향을 받아 간편한 형태로 변화하였음.
패드, 퍼프, 슬래시가 소멸하고, 허리에는 좁은 벨트를 하기도 하였으나 영국의 경우 1628년 이후 벨트대신 수대(baldric)를 어깨에 띠고 여기에 칼을 차게 됨.
1620년대경부터 폴링 칼라(falling collar)와 휘스크 칼라(whisk collar)가 공존하였음.
- 1640년대에는 형태에 변화가 있었음. 허리선과 스커트 부분이 없어지고 옆선이 거의 직선으로 되어 헐렁하고 활동하기 편한 스타일이 되고 소매통이 직선으로 넓어졌음.
4) 조끼(veste, waist coat)
- 더블릿이 없어지면서 17세기말엽에 생긴 의복. 현대 남성복 조끼의 원조
- 평상시에는 간단한 상의로 외출시에는 코트 안에 장식적 목적으로 착용함.
- 바디스와 소매는 타이트하게 맞으며, 앞 중심에 작은 단추가 촘촘히 달려 있고, 허리선 아래에 포켓이 수평으로 달려 있고, 코트 소매보다 긴 소매의 넓적한 커프스를 코트 위로 접어 있었음.
- 1690년대 이후 소매가 없어짐.
- 소재: 앞판은 금은 자수 놓은 실크, 브로케이드, 뒤판은 마직물로 만듬.
5) 코트, 쥐스또꼬르(coat, justaucorps)
- 쥐스또 꼬르는 '몸에 꼭 맞는다'는 의미로 1670년경부터 널리 유행된 17, 18세기 남자 상의 형 코트로 중세 병사들이 입었던 실용적인 코트에 기원을 둠.
- 구성법이 복잡하여 재단과 봉제의 발달을 보여줌.
- 초기에는 직선적인 실루엣이었으나 귀족복으로 승격되면서 허리가 가늘어 졌음.
- 상체부분은 신체에 꼭 맞고 폭넓은 스커트 부분이 달려있음. 소매에는 넓게 접은 커프스가 부착되어 있음. 앞 중심에는 단추가 촘촘히 달려 있음.
- 쥐스또 꼬르는 조끼, 니 브리치스, 크라바트와 함께 입는 상의로 정착되면서 남성복의 정형화를 이룸
- 소재: 초기에는 모직물, 후기에는 벨벳, 실크, 금은 자수, 코드 장식 등의 화려한 직물.
6) 바지
- 17세기 초기에는 트렁크 호즈, 베네시안을 착용하다가 바지통이 직선으로 변하고, 1650년대 이후 랭그라브(rhingraves, 페티코트 브리치스 petticoat breeches)라는 디바이디드 스커트 형태의 바지가 등장함. 1680년경부터 입기 시작한 니 브리치즈(knee breeches, 뀔로뜨culotte)는 무릎 바로 아래에 밴드가 있어 단추나 버클로 잠궈 고정시킴.
7) 외투
- 승마나 여행할 때 주로 입었으며 케이프형의 외투나 발목길이의 긴 맨틀의 형태.
- 스페인식 외투는 옷길이가 짧고, 네덜란드식 외투는 소매가 있고 풍성하게 넓은 형태가 특징적임.
프랑스 남성들은 케이프를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치고 끈으로 고정시켜 입었음.
1670년대에 유행한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는 브레이드 여밈 장식이 특징.
2. 여자 복식
1) 슈미즈
- 품이 넉넉한 원통형의 원피스 형태로 주로 흰색 린넨을 만들었음. 그 위에 콜셋, 파팅게일을 입었음.
위의 바디스의 목둘레선에 따라 높낮이가 정해졌고, 바디스 소매가 짧아졌을 때 슈미즈의 소매부리가 매우 장식적이 되었음.
2) 속바지(drawers)
-상류사회에서 입었언 속바지
3) 콜셋 (corset): 꼬르발렌느, 스테이즈(corps baleine, stays)
- 르네상스의 바스뀐느, 꼬르삐께가 17세기에는 꼬르발렌느로 변화되었음.
- 17세기 초에는 꼬르삐께(corps-pique)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앞 가운데의 끝이 둥글어진 형태였고, 1630-40년대에는 꼬르삐께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1650년대 이후 다시 허리를 조이는 로브에서 바디스 겸용인 꼬르발렌느가 등장하였음.
- 꼬르발렌느의 형태는 고래수염을 캔버스 천 사이에 넣어서 앞중심을 향해 사선으로 누비는 조끼형으로 만들었는데, 겉감은 수놓은 실크, 브로케이드를 사용하였음.
로브의 목둘레선이 매우 낮은 경우 꼬르발렌느의 어깨끈이 없는 형태였음.
착용은 뒤에서 끈으로 졸라매어 입고, 스커트에 후크를 달아 꼬르발렌느의 끈을 연결하여 입었음.
4) 파팅게일
초기에는 원추형, 원통형, 종형의 파팅게일을 입다가 1625년 이후 파팅게일을 입지 않게 됨.
5) 페티코트
- 1625년 이후 파팅게일을 입지 않게 되면서 페티코트를 여러 벌 겹쳐 입어 스커트를 부풀렸음.
타셀(tassel), 프린지(fringe), 브레이드(braid), 리본(ribbon)으로 층층히 장식하였음
6) 로브(whole dress를 의미함)
- 17세기 초기에는 원추형, 원통형, 종형 파팅게일을 속에 받쳐 입었고, 1625년 이후부터는 스커트를 뻗치게 하는 후프를 입지 않아 자연스러운 실루엣이 되었고 1630-40년대에는 네덜란드 시민복의 영향이 나타났음.
1650년대에는 다시 프랑스 귀족 계급 취향이 반영되어 옷 길이가 길어지고 스커트를 넓게 부풀리게 되었고, 1670년대에는 트레인을 길게 끌리게 하거나 벗슬 스타일이 처음 등장하였음.
- 원피스 형태와 투피스 형태가 있었음.
- 초기의 로브 형태를 살펴보면, 바디스는 콜셋으로 꽉 조여서 꼭 맞는 형태에 데꼴데 네크라인이었으며 허리선은 앞 중심에서 예각으로 되게 아래쪽으로 돌출시키는 것이 기본이었고 끝을 약간 둥글린 것이 있었음.
17세기 초 네덜란드 여자 로브는 스토마커가 있는 경우 허리선 아래로 둥근 혀모양으로 확대되었고 화려하게 수를 놓아 장식을 한 것이 있었으며 러프도 크고 애용되었음.
소매는 다양한 형태이며 대부분 손목에 좁은 프릴이나 위로 접힌 커프스를 달았음.
칼라는 러프 칼라의 여러 가지 변형(둥근 바퀴모양, 타원형, 부채살처럼 머리 뒤로 뻗치는 형, 폴링 러프(falling ruff)과 휘스크(whisk collar) 등이 존재했음.
스커트는 원추형, 원통형, 종형의 파팅게일을 속에 받쳐 입고 앞 중심이 터져 있는 스커트는 속에 입은 화려한 장식의 페티코트가 보이게 하였음.
- 1650년대에는 다시 허리선이 아래로 내려가고 앞중심에서 예각을 이루었고 화려한 자수, 리본으로 덮인 스토마커가 있었음. 후프를 입어 스커트를 확대시켰음.
스페인에서 독특한 스타일이 창조되었는데 가슴은 납작하고 편평하게 조이고 스커트는 좌우로 확대된 스타일이었음.
소매는 팔꿈치 길이의 짧은 소매로 그 아래 슈미즈의 프릴이 보이거나 여러 층의 레이스 커프스로 마무리하였음.
- 후기의 로브는 콜셋을 겸한 바디스인 꼬르발렌느(corps baleine)를 입었는데 앞 중심이 예각으로 뾰족했고, 스토마커를 달 경우 자수를 놓거나 리본장식을 했음.
목둘레는 어깨를 내놓을 정도로 많이 파였고, 소매는 짧고 팔꿈치에 여러 층의 레이스를 다는 앙가장(engageants)이 등장했음.
1680년대의 스커트는 매우 긴 트레인을 뒤로 길게 늘어뜨리는 것이 유행이었고 뒷자락을 드레이프시켜 버슬 스타일이 되도록 하였음.
스커트의 앞이 트여 보이는 안쪽의 페티코트에는 플라운스를 여러층 달거나 자수, 탓셀, 브레이드, 프린지로 복식미를 나타냈음.
Ⅶ. 18세기의 복식
복식의 일반적 특징
1. 인체미
여성의 경우 풍만한 가슴, 극도로 가느다란 허리, 뒤로 젖혀진 어깨를 이상적으로 간주했으며, 이상적인 인체미를 위해 어려서부터 불합리한 구조인 코르셋 안에 압박되고 은폐됨.
이는 아울러 조이기 위해 하녀를 필요로 한다는 점, 노동으로부터 자유를 의미하였으므로 지배계층의 특권이자 귀족, 부르조아의 신분 상징이 되었다.
이에 대해 루소는 '반 코르셋 캠페인'을 벌인다.
한편 남성의 경우 여성처럼 화장하고, 우아한 허리 곡선을 위해 코르셋을 사용했다고 하며, 남성성을 강조하기 위한 넓은 어깨는 필요 없었으므로 어깨 패드는 사용되지 않았다. 또한 짧은 바지를 통해 아름다운 근육이 있는 다리를 보이고자 했기 때문에, 호즈에 패드를 대기도 했다고 한다.
2. 미적 가치
전반적으로 로코코 복식은 바로크의 과장된 장식보다는 우미(elegance)를 추구한 복식이다.
1) 관능성
로코코 복식은 패션의 라인에 있어 이처럼 우아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때가 없을 정도였는데, 여성의 경우 데콜타주를 통해 가슴, 목 부분의 살 노출하여 당대의 비판을 야기했다. 볼리외(Jacque Bolieu)는 'On the Nudity of the Throat and Its Abuses'에서 80페이지에 걸쳐 여성의 데콜타주에 대해 '누드에 가까운 파렴치한 의상'으로서 비난을 금치 못했다.
2)향락성 - 유한계급의 신분상징성과 연결
로코코 복식에서 전체적인 낭비는 실로 대단했다.
궁정의상은 완전히 금은자수로 장식되었고 다채로운 색상이 가미되었으며 엄청난 양의 고급 레이스가 사용되었다.
트레인은 여성의 드레스를 품위 있고 고귀하게 만드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트레인을 늘어뜨리는 숙녀들의 경쟁이 너무 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확한 규정들이 제정되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왕비만이 11엘레(옛 프랑스의 척도인 엘레는 약 1.2 미터)길이, 공주는 왕과의 친척관계가 멀고 가까움에 따라 5~9 엘레, 그리고 공작 부인은 3 엘레 길이의 트레인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3)심미성
로코코 복식은 공들여 치장된 정제의 과정을 거친 세련된 취향을 바탕으로 고상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추구되었다.
로코코 시기의 신사숙녀들은 정성을 들여 화장하고 옷을 사치스럽게 입어서 마치 자신이 예술작품인 양 몸단장을 했으며, 의상이 인간에게 본질적일 뿐만 아니라 대개는 최고의 부분을 완성해낸다고 확신했다.
3. 패션리더로서 로코코 복식
1) 패션 잡지와 마네킹을 통한 유행의 확산
18세기 이전에는 마네킹, 동판화, 여행기를 통해 다른 곳의 유행과 친숙해졌다면, 1672~1723년까지 메르퀴르 갈랑 같은 잡지는 베르사유나 파리에서 어떤 것이 세련된 것이며 사람들이 어떻게 또 무엇으로 즐기는지, 사람들이 무엇을 입었는지에 대해 알려 주었다. 그러나 그림이 별로 실려 있지 않았던 관계로 그 잡지는 순수 패션 잡지의 선구로서만 간주될 수 있을 뿐이다.
17세기 후반 이래로 파리에서는 매달 한번씩 최신 유행에 따라 옷을 입은 마네킹, 고급의상을 입은 '큰 판도라'와 일상복을 입은 '작은 판도라'를 매달 런던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복식의 종류와 형태
1. 남자복식
1) 속옷
드로어즈(drawers), 셔츠(shirts)
2) 웨이스트코트(waistcoat)
코트 아래 입은 일종의 조끼로 코트와는 다른 소재를 사용했으며 남성들은 특히 조끼에 사치를 부려 주로 화려한 금, 은 트리밍, 자수 장식을 과다하게 사용했다.
단추를 촘촘히 달아 장식, 아래 버튼은 채우지 않았고 거의 코트와 같은 길이, 허리부분은 꼭맞음. 뒤부분은 덜 비싼 소재사용.
때로 집에서 코트를 입지 않고 캐주얼하게 입기도 했다.
3) 코트(coat)
18세기 유럽 모든 사회계층의 사람들이 입었으며, 국가나 옷감의 재질, 장식에 따라 여러가지 명칭이 사용되는 등의 차이가 있는데 프랑스에서는 쥐스또꼬르(justaucorps)라고도 한다.
루이 14세 이후 스타일은 크게 변하지는 않았고 다만 상의와 조끼 자락을 방수포 혹은 뻣뻣한 천이나 종이로 빳빳하게 하여 여성복의 후프 스커트가 허리에서 튀어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옷자락이 엉덩이에서 튀어나오게 했다. 앞에 단추가 많이 달려있는 것이 특징. 벌려 입어 아래 셔츠의 프릴 장식, 소매부분 커프스 장식, 화려한 웨이스트 코트가 보임.
코트의 소재는 데이 타임, 덜 공식적인 경우에는 단순한 울, 벨벳, 실크 등이 사용되었지만, 이브닝용으로는 금, 은사 자수 장식의 실크, 벨벳, 브로케이드 등이 사용되었다. 특히 실크나 벨벳 등 값비싼 직물에 금사로 수놓아 장식한 것은 아비 아 라 프랑세즈(habit a la francaise)라 하여 가장 공식적인 복장으로 착용했다.
a. 플록(frock)코트
비공식적(informal)인 코트로 영국에서부터 유행되어 프랑스에서는 18세기 후기에 널리 입혀졌는데, 원래 노동자 계층에서 헐렁하게 착용되었으며, 농부의 작업복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1730년 이후 신사들이 말을 탈 때, 운동할 때, 평상시에 편안한 의복으로 착용되었으며, 1770년 이후에는 좀더 공식적인 의복으로서 보편적 착용.
b. 르댕고트(redingote)
영국풍으로 승마 복식에서 유래된 코트. 앞단에 단추, 뒤 중앙에 슬릿을 넣어 활동하기에 편한 스타일로 더블 여밈에 큼직한 칼라와 라펠이 특징.
4) 브리치즈(breeches)
무릎길이의 바지(knee breeches)가 보편적으로 착용됨. 처음에는 어느 정도 헐렁하다가 점차 좁아지고 무릎 밴드에 장식적인 버클로 마무리한 것이 특징.
5) 크라바트(cravat)
일종의 넥타이인 넥웨어(neck wear)로, 뒤에서 매듭을 지어 묶어주고 앞부분에 다이아몬드 핀 장식을 했다.
6) 케이프(cape)
b길고 풍성한 외의인 망토로 여러 겹 칼라 유행.
2. 여자복식
1) 속옷
18세기에는 속옷에서의 사치는 속옷을 깨끗하게 입는 것보다는 값비싼 것으로 치장하는 데에 더 큰 가치를 두었다고 한다.
a. 슈미즈(chemise) 무릎길이의 레이스 장식의 네크라인, 소매장식이 있는 안옷
b. 드로어즈(drawers) 보편적으로 착용되지는 않았다.
c. 언더 페티코트(under petticoat) 슈미즈와 파니에 사이에 입은 스커트로 캠브릭, 면, 플 란넬, 캘리코 등으로 만듦. 때로 방한용은 누빔 처리했다고 한다.
d. 코르셋(corset)[그림15] 뼈대를 넣어(boning) 앞 혹은 뒤에 레이싱(lacing)처리, 뚱뚱 하거나 임신한 여성용으로 때로 옆여밈이 있었다고 한다.
루이 14세의 애첩 마담 몽테스판(Montespan) 많은 임신 사실을 숨기기 위해 헐렁한 가운을 도입하는 동안 잠시 주춤하다가 그녀가 죽고 나서 다시 부활했는데, 코르셋으로 인한 위, 기타 내장 기관 압박으로 특히 식사 후에 혼절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코르셋 안쪽은 정련이 안된 면, 겉은 다마스크, 새틴, 자수 처리된 실크, 브로케이드로 만들어졌는데, 여성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코르셋을 착용하며 지냈다. 코르셋의 심은 철사나 납으로 만들어졌는데 길이는 4분의 3엘레, 폭은 손가락 하나 길이, 두께는 4분의 1촐(2.3~3센티미터에 해당하는 옛 길이의 단위)이었다고 한다.
2) 파니에(panier)
18세기 여성의 실루엣을 특징짓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 후프(hoop)로 프랑스어로 '새를 가두는 바구니(basket)'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는 고래뼈, 철사로 만들어진 구조물로 옆쪽으로 15피트 정도의 넓이의 불편한 구조로 1714년 영국의 후프 페티코트에서 1715년 파리의 무대의상에서 유래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초기에는 둥글고 다섯 개의 후프가 위로 갈수록 좁아지면서 방수포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후프형은 드럼통 모양으로 만들거나 타원형으로 앞, 뒤를 납작하게 눌러주었다. 차츰 철사나 나무로 된 후프 대신에 곧 생선뼈로 된 후프를 사용했는데 이 수요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자 네덜란드 의회는 1722년 고래잡이 주식회사를 설립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처럼 일종의 새장과도 같은 프레임을 걸치고 다니는 숙녀들은 문을 통과할 때 몸을 옆으로 돌려야만 다닐 수 있었고 그들을 에스코트하는 신사는 그 앞이나 뒤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다녀야 했고 그들이 자리에 않으면 이전보다 세 배나 많은 자리를 차지했다. 따라서 후프 스커트를 둘러싼 조롱을 끊이지 않아 연극무대에서 어릿광대들의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노래, 캐리커처 등에서도 웃음거리가 되었으며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도 공격을 받았다.
초기 파니에의 불편함을 보완하여 파리의 여배우 클레롱(Clairon)과 위스(Hus)는 1760년경 엉덩이에서 무릎까지만 오는 길이의 후프스커트를 선보였다.
프랑스에서는 그것을 반 파니에 혹은 얀센교파라고 불렀다. 그러나 곧 이 축소형 후프 스커트는 새로운 형태가 고안되면서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는 무슈 파마르(Pamard)가 선보인 양쪽 엉덩이에 좌우로 고정시켜 커다란 후프 스커트가 필요없는 버슬 모양의 이른바 이중 구조의 개량 프레임이었다.
이후 후프 스커트는 성장을 할 때, 개량 프레임은 편안한 복장을 입을 때 나란히 주류를 이루며 지속되었다. 때로 개량 프레임은 발을 완전히 드러냈다.
그러나 1770~1780년 이후에는 영국풍이 유행하면서 점차 사라졌으며 혁명 후에는 유행에 뒤떨어진 스타일이 되어버렸다.
3) 페티코트(petticoat)
공식적인 로브와 페티코트는 대개 같은 원단으로 만들어져 마치 한 옷처럼 보였다고 한다.페티코트는 때로 누비나 자수 장식으로 스커트 자체보다도 화려한 경우도 있었다.
4) 로브(robe, 혹은 가운(gown))
여성 로브는 크게 오픈(open) 로브, 클로즈드(closed) 로브로 나눌 수 있다. 둘의 차이는 앞에 트임의 유무로 인한 페티코트가 보이는지의 여부인데, 오픈 로브의 경우 V자의 트임을 보이며, 그 아래 페티코트를 드러낸 스타일이다.
로브의 네크라인은 타원형, 사각형으로 깊이 패인 형이 많았다. 여성의 로브는 초기에는 색 가운, 로브 아 라 프랑세즈를, 후기에는 로브 아 랑글레즈, 로브 아 라 폴로네즈, 버슬형, 상체를 앞으로 부풀린 비둘기 가슴 효과(pouter-pigeon effect)의 로브형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a. 색 가운(sack gown)루이14세 사망 후 루이15세의 섭정기에 엄격했던 궁정 에티켓이 약간
완화되면서 덜 공식적인 헐렁한 형의 가운이 유행하게 된 것에서 유래.
뒤에 와토 주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Adriana라는 무대 공연에서 마담 단코르(Mme Dancourt)의 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도 한다.
b. 로브 아 라 프랑세즈(robe a la francaise)
로코코를 대표하는 의상으로 색 가운이 변형된 형태이다.
뒤에 와토 주름이 있지만 색 가운과는 달리 상체부분은 방패같이 딱딱한 스토마커로 덮여 화려한 자수, 꽃, 리본 다발 등으로 장식되어 있거나 고래뼈에 의해 딱딱한 형을 유지한 몸판(bodice)형을 유지했다.
소매부분의 레이스 러플의 층장식인 앙가장트(engageante)가 특징으로 의상 자체가 하나의 장식 미술과도 같았다.
1770년대 이후에 파니에 대신에 힙패드를 사용하여 뒤로 당겨 입는 버슬형이나 영국풍의 영향으로 로브 아 라 프랑세즈는 주로 공식적인 의례용으로 많이 착용되었다.
Ⅷ. 19세기의 복식
사회 문화적 배경
- 19세기의 복식의 변천은 학자에 따라 다르게 설명되고 있으나 편의상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설명하기로 함.
1) 엠파이어 스타일 시대: 1800-1820년
2) 로맨틱 스타일 시대 : 1820-1850년
3) 크리놀린 시대 : 1850-1870년
4) 벗슬 스타일 시대 : 1870-1890년
5) S자형 스타일 시대 : 1890-1910년
- 이 시기는 프랑스 정치혁명, 영국의 산업혁명이 일어난 시기로 인권존중의 평등사상과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가 성숙한 시기임.
- 정치적으로는 절대왕정제가 점차 붕괴되기 시작하였고, 시민계급은 계몽사상에 영향을 받아 성장하고 루이 16세의 실정과 마리 앙트와네트의 낭비로 국가 재정은 파산위기에 직면하게 되어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게 됨.
혁명(1789) 후 자코뱅당과 지롱드당의 대립속에서 정권을 장악한 자코뱅당의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가 처형되고 공포정치가 종결되었음.(혁명시대: 1789-1795년). 이후 신흥부르주아계층과 토지를 가진 농민들을 기반으로 하는 총재정부가 성립되었고(1795-1799) 이집트 원정에서 귀국한 나폴레옹이 등장함으로써 집정시대가 시작되었음.
나폴레옹은 1802년 종신통령이 된데 이어 1804년 <나폴레옹 법전>을 공포하고 황제로 즉위하였음(제 1제정). 제 1제정은 군사력을 배경으로 대제국을 구축하였으나 영국 오스트리아의 대프랑스 동맹에 맞서고, 스페인의 반프랑스 전쟁과 러시아원정의 패배에 이어 독일 해방전쟁에서 열세에 놓이게 되고 연합군이 1814년 파리에 입성함으로써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나 엘바섬으로 유배되었음.
- 프랑스의 정치 사회적 시대 구분
1) 1789년 1795년 : 혁명시대
2) 1795년 1799년 : 총재정부 시대
3) 1799년 1815년 : 집정 시대와 제 1제정시대(나폴레옹 1세 시대)
-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의 금 발견으로 서부개척을 촉진시켰고 남북전쟁의 발발과 산업이 발달되었고, 스포츠활동의 확대, 여성선거권의 실현된 시기였음.
- 직물생산의 기계화로 의복재료가 대량으로 공급되었고, 기성복이 출현하여 디자인의 표준화가 촉진되었음.
- 신고전주의 양식의 엠파이어 스타일 복식과 남성복의 댄디즘은 귀족풍의 몰락과 신흥부르주와의 간소한 복식미를 드러내는 근대적인 복식임.
복식의 일반적특징
1. 복식의 민주화(대중적인 패션으로의 전환)
- 자유주의, 민주주의 발달과 새로운 사회계급의 출현은 지금까지의 왕실과 귀족중심의 패션에서 일반 시민을 중심으로한 대중적인 패션으로 전환시켰음.
-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치혁명으로 귀족과 시민의 구별이 사라지고 기능성과 개성을 추구하는 복식으로 변화했음.
프랑스 자코뱅당의 공포정치는 공화제를 추진했고, 1789년 신분에 의한 복식규제법을 폐지함으로서 법적으로 복식의 민주화의 기초가 마련되었음.
- 영국의 기능적 복식이 프랑스 혁명 후 남성복에 도입되므로써 남성복은 색채(검정), 직물로 복식의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여성복은 형태에 의한 근본적인 복식의 민주화가 이루어짐.
- 직물생산의 기계화로 인한 의복재료의 대량생산은 기성복의 생산과 보급을 촉진시켰음. 1870년 이후 의복이 용도와 기능별로 세분화되어 간단한 홈드레스, 수영복, 테니스복, 비치웨어 등으로 나누어짐으로써 복잡하지 않은 간단한 의복류의 생산을 용이하게 한 기성복이 발달하게 되었음.
- 기성복의 발달은 단순하고 기능적인 남성복의 표준화 현상을 촉진시키고 공업위주와 도시생활의 시커먼 매연과 집단 작업환경은 더욱 기능적인 의복을 발달시켰음.
2. 복식의 국제화 현상
-통신 수송기관의 발달은 사람들의 여행을 자유롭게 하였고 유행정보의 빠른 교환을 가능하게 하여 지역이나 민족의 특성을 지닌 의복은 고유민속의상으로 남게 되고 일반대중은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일상복을 입게 되었음.
일상복에 있어서도 아침, 오후, 저녁에 입는 옷의 구별이 뚜렷하게 되어 의복에 대한 에티켓이 형성되었음.
3. 각 시기별 복식의 특징(혁명기/ 총재정부시대/ 집정 제 1제정시대)
- 혁명기의 남성복은 정치적 의미로 시민풍(상 뀔로뜨)과 귀족풍(뮈스카뎅)이 대립했으며 검소한 옷차림을 하였음.
복식의 종류와 형태
1. 남자 복식
- 혁명기의 복식(1789-1795)
뮈스까뎅(muscadin: 왕정주의자)의 복식은 계급의식을 표시하는 프록(frac), 조끼(gilet), 바지(culotte), 네크웨어(jabot)를 착용하고 상 뀔로뜨(Sans Culotte, 혁명군)은 시민적이며 실용적인 까르마뇰(carmagnole), 판탈룬(pantalon), 크라바트(cravatte), 빨간 모자를 착용함.
- 총재정부 시대의 복식(1795-1799)
혁명파의 실용적 복장(자코뱅당)과 뮈스까뎅의 귀족적 복장(지롱드당)이 대립함.
혁명파의 복장은 까르마뇰, 판탈룬 등이며 귀족적 복장의 엥끄로와야블(Incroyable)은 크고 뒤로 젖혀진 빨간 칼라의 상의, 뀔로뜨, 끝이 뾰족한 신발, 턱 밑까지 여러번 감아 높게 맨 크라바트, 양쪽으로 각지거나 원추형의 특이한 모자, 지팡이와 도수 높은 안경 등의 기묘한 형태의 복식임.
- 집정시대와 제 1제정시대(나폴레옹 1세 시대)(1799-1815) : 엠파이어 스타일의 시대
a. 셔츠
-앞가슴에 프릴이 달리고 형태가 단순해짐. 칼라의 폭이 매우 넓어서 칼라를 세우고 크라바트를 목에 감으면 칼라가 귓불에 닿을 정도였음.
b. 코트
- 데가제(degage)는 상의는 몸에 꼭 맞는 르댕고트의 일종으로 적당한 크기의 칼라가 달리고 앞은 허리까지 넉넉하게 맞으며 좁고 긴 소매가 달린 더블-여밈(double breasted) 또는 싱글-여밈(single breasted)임. 우아한 분위기의 외투.
- 테일 코트(tail coat)는 허리선에서 앞부분을 잘라 낸 형태의 코트로 2개의 꼬리나 장도리 모양이 되며 앞품은 매우 작음.
- 모닝 코트(morning coat)는 앞판을 잘라내지 않고 허리에서 도련까지 앞판이 곡선으로 된 코트.
- 프록 코트(frock coat)는 밀리터리 코트에서 유래된 것으로 앞판이 도련까지 약간 경사지게 벌어짐. 허리선 아래의 스커트 부분은 품이 넓은 것이 특징임.
- 라운드 코트, 자켓(round coat, jacket)는 스커트 부분이 없이 길이가 힙선까지 짧아진 코트.
- 소재는 섬세하게 짠 모직물이 주로 이용되고 궁정에서 입은 코트는 벨벳, 실크에 수를 놓은 것이 있었음. 색상은 짙은 청색, 갈색, 녹색, 검정색 등이 있음.
c. 조끼(vest)
- 코트나 바지가 수수해지면서 조끼가 장식적인 역할을 함.
- 길이가 허리선까지 짧아졌으며 싱글여밈에 스탠딩 칼라, 숄 칼라가 일반적인 형태임.
- 궁정복의 조끼는 흰색 실크에 금사로 수를 놓고, 흰색에 줄무늬 직물, 진홍색이 유행.
d. 바지
- 브리치는, 뀔로뜨(breeches, culotte)는 귀족들이 입어왔던 반바지로 몸에 꼭 맞고 무릎 바로 아랫길이에 바짓부리에 단추가 달려있었음.
궁정복, 승마용으로 입었고 1840년대 이후에는 일부 정장에만 남았음. 소재는 캐시미어, 난킨(nankin), 가죽 등이 쓰였고 궁정용은 새틴에 수를 놓았음.
- 위사르, 판탈룬(hussarde, pantaloons)은 발목길이의 긴 바지로 프랑스 혁명이후 서민복에서 상류계급이 채택한 복식임.
품이 넉넉한 것이었으나 귀족들이 입으면서 몸에 밀착되었고 신축성 있는 편직물을 사용했음.
- 트라우저스(trousers)는 허리에서 발목까지 직선으로 재단된 품이 넉넉한 바지임
e. 외투
-르뎅고트(redingote)는 일반적으로 많이 착용한 방한용 외투.
뒷판을 4장으로 재단하여 허리에 잘 맞고 스커트 부분이 약간 후레어지거나 품이 넓은 것이 특징임.
영국 남자복식에서 유래했으며 나라마다 형태와 소재에 차이가 있었음.
- 까릭(carrick, 그레이트 코트, great coat)는 품이 넓고 어깨를 덮는 케이프가 3-5장 달린 방한용 외투임.
2. 여자의 복식
1) 혁명기의 복식(1789-1795)
a.슈미즈 가운(chemise gown)
- 18세기 후반부의 로코코 스타일이 한동안 유행했으며 슈미즈 가운을 착용함.
- 슈미즈 가운(chemise gown) : 1770년 영국에서 그리스풍의 의상이 시작됨. 얇고 부드러운 직물로 만든 그리스 키톤과 같은 스타일의 복식.
프랑스에서는 18세기 말 총재정부시대에 일반화됨. 슈미즈 가운의 형태는 폭이 넓지 않은 긴 스커트에 하이 웨이스트 라인(high waist line), 짧은 소매의 퍼프 슬리브임. 반소매 퍼프슬리브는 복식사상 처음 나타난 것임. 전체적으로 날씬한 몸매의 미적 효과를 주면서 입고 활동하기에 편한 기능적인 의복임.
- 머리장식은 로코코 스타일이 단순화된 형태로 본넷을 씀.
- 신발은 낮은 굽의 펌프스 유행.
b. 르뎅고트(redingote) : 17세기 후반 영국에서 전래된 외투가 프랑스의 로브와 합해쳐 기능성을 띤 간단한 형태로 변화됨. 케이프 칼라가 달린 외투임.
2) 총재정부 시대(1795-1799)
a. 슈미즈 가운
- 그리스 풍의 슈미즈 가운, 숄, 헤어스타일, 샌들이 유행했고, 근대적 감각의 스펜서를 착용했음.
- 슈미즈 가운은 맨 살 위에 입어 다리가 비치고, 짧은 소매에 긴 장갑을 꼈음. 흰색 머슬린에 수를 놓은 것이 많음.
b. 외투
- 숄(shawl)은 슈미즈 가운 위에 착용한 외투로 그리스인이 키톤에 히마티온을 착용한 모양과 비슷하게 드레이프 시켜서 걸쳐 입음. 소재는 얇은 면, 캐시미어 사용.
- 스펜서(spancer) : 짧은 자켓의 일종. 바디스는 허리까지의 길이고 소매는 좁고 손등까지 내려옴. 흰색의 슈미즈 가운과 대비되는 진한 색으로 근대적 감각을 드러냄.
3) 집정-제 1 제정 시대( 나폴레옹 1세 시대, 1799-1815)
a. 엠파이어 스타일 드레스
- 화려하고 엘레강스한 엠파이어 스타일(empire style)을 창출해 냄.
- 엠파이어 스타일(empire style)은 단순한 고전풍의 디자인에 화려한 직물과 자수 장식으로 부르주와의 취향을 표현했음.
집정시대에는 슈미즈 가운의 허리선이 가슴 바로 아래로 올라가고, 가슴을 넓게 팠으며 짧은 퍼프 소매 또는 좁고 긴 소매가 달린 형태로 매우 부드럽고 얇은 직물을 사용하였음.
새로운 소매형태로 마미루크(mameluke) 소매는 어깨에서 손목까지 여러개의 작은 퍼프가 리본이나 밴드로 하여 생기는 형태임.
장식용 스커트는 슈미즈 가운의 담백한 색과는 다른 색을 사용하였고 트레인을 달았음.
- 제 1제정시대의 엠파이어 스타일은 왕정 취향으로 H 실루엣에 밑단이 넓어진 형태이며 짧은 퍼프 소매, 긴소매가 달리고 뒤에는 장식적 트레인이 달렸는데 점점 길어졌음.
깊게 판 네크라인(데꼴데)에는 레이스를 주름잡아 달았음.
-1808년 이후의 엠파이어 스타일은 길이가 발목 길이로 짧아지고 스커트의 폭이 넓어짐. 스커트에 여러층의 러플이나 레이스로 장식함. 소매의 형태는 다양해짐.
- 소재는 새틴, 크레이프, 수 놓은 실크, 레이스 등을 사용함.
- 흰색 드레스가 정장으로 입혀졌고 아침, 오후, 저녁, 산책, 무도회 등 구별하여 착용함.
b. 외투
- 숄은 다양한 색의 캐시미어, 실크에 금색 수를 놓은 화려한 형태로 바뀜.
- 스펜서(spencer)는 허리선 길이의 짧은 자켓으로 외투로 안이나 가장자리에 털장식(fur)을 하거나 lapel collar를 달기도 함. 소재: 녹색, 검정색 등의 진한 색의 벨벳, 머슬린, 캐시미어, 얇은 실크, 레이스를 사용.
- 펠리스는 발목 길이로 길어지고 소매가 없이 손을 내놓을 곳이 째어져 있는 것과 긴 소매가 달린 것이 있었음.
- 르뎅고트는 케이프 칼라가 달린 재단된 외투임.
c. 속옷
얇고 몸에 감기는 머슬린 옷감의 슈미즈 가운 속에는 콜셋이나 페티코트 등을 거의 입지 않았고 엠파이어 스타일의 드레스 안에는 가슴을 떠받치기 위한 콜셋이나 허리와 엉덩이의 윤곽선을 다듬기 위한 상하의 길이가 긴 코르셋을 입었음.
속바지는 무릎아래의 길이, 종아리 길이로 스커트 아래 입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