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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翎島(백령도)를 그냥 서해바다의 섬 하나로 생각한 것은 아주 송구스러운 일이었다.
백령도가 대한민국의 국토인 것을 알려면 정말로 그 섬에 가보아야 하는 것이다.
해방 후 갈라진 38선으로 치면 백령도는 물론 개성과 해주도 걸리지 않았던가.
다시 지도를 펴고 38선을 살펴보니 선 바로 밑에 백령도와 대청도, 소청도가 보이고
38선 바로위에 해주가, 다시 38선 바로 아래에 있다.
백령도는 황해남도 장산곶과는 지척간이다.
6.25당시 치열한 전쟁으로 지켜낸 우리의 국토인 것이다.
백령도는 최북단에 홀로 떠있는 바다의 종착역이다.
맑은 날이면 몽금포타령의 무대인 북녘 땅 장산곶이 먼발치로 보이는 섬.
더 이상 북상할 수 없는 군사분계선을 머리에 인 채
서해5도 중 최북단에 홀로 떠있는 섬.
백령도 이곳은 바다위에 떠있는 역사의 출발역이기도 하다.
수정같이 맑은 바닷물과 고운 모래, 형형색색의 자갈로 펼쳐진 해안은
백령도의 자랑이다.
2007년 12월6일 오전8시, 일행은 1박2일의 여정으로 인천여객터미널에 모여
‘가고오고호’에 올랐다.
모든 배가 가고오고호인데 이배만이 그 이름을 가졌다.
일행을 태운 가고오고호는 1시간20분정도가 지난 9시20분부터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번 울릉도에서 독도를 들어가던 때의 파도가 생각났다.
파도는 어느 바다나 그 모습은 비슷해 보인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여행을 했다.
동해 울릉도, 독도, 남해 제주도, 거제도, 그리고 백령도를 향하고 있다.
또한 성인봉, 백록담, 만물상을 다녀왔으니
이제 남은 것은 백두산과 천지를 보는 일이다.
정말로 이번교육의 강의내용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여행,
현장견학도 교육의 효과가 참 높다는 생각을 많은 교육생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시 배로 돌아온다.
여객선 내부구조는 여객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스튜어디어스가 없다.
항로를 알려주는 화면이 없고 음악이나 게임도 없다.
모습은 비행기와 비슷하지만 비행기에 비해 없는 것이 많고 주변에 물이 많다.
바다를 가르며 나아가기 때문에 물과 바람이 많다.
배를 타고 가노라니 시간이 많고 차분히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다가 백령도를 숫자로 풀어보았다.
1000도 = 천도 = 100+0+도 = 백영도 = 백령도.
이제 낮 12시가 지났다. 4시간을 달린 것인데 보이는 것은 물이요 수평선이요
그 위를 떠도는 구름뿐이다.
‘노아의 방주’에서처럼 비둘기와 까마귀를 날려 보내서
육지가 얼마나 먼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들 새가 풀잎을 물어오거나 발톱에 흙을 묻혀 오면 참 좋으련만.
돌고래가 있어 음파를 보내 백령도 섬까지의 거리를 측정해 볼거나.
KBS방송이 아직도 잘 나오는 것을 보면 배는 NNL을 우측에 두고 잘 돌아서 가고
있기는 하는가 보다.
지난번 독도에 갈 때 물이 참 많기도 하더니 그 물이 한반도를 돌아서 이곳 서해로
몰려온 듯 물은, 바닷물은 참 많기도 하다.
이 넓은 공간에 물이 가득한데 깊이는 알 수가 없으니 동해 바닷물이 많은지
서해가 많은지는 비교해볼 일도 아닌 듯싶다.
배가 또 한 번 심하게 흔들린다.
돌고래가 뱃전을 치는지, 멸치떼가 앞에서 우리 배를 막는지, 연평도 조기떼가 예까지
우리를 마중 나온 것인지, 아니면 선장님이 심심하여 핸들을 좌우로 흔드는 것인지.
뱃길은 포장도 아니하고 중앙선을 그어두지도 않으니
페인트가 필요 없고 시멘트도 필요 없으니 참 경제적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고속도로나 지하철은 공사하기도 힘들고 쓰면서도 수시로 보수하고
언젠가는 재공사를 해야 하는 부담이 있으니 말이다.
4시간이 넘는 지루한 뱃길 여행은 걸죽한 선장님의 선내 방송과 함께 즐거운 여행으로
바뀌었다.
우리 배는 소청도를 우측으로, 대청도를 좌측으로 지나는 뱃길을 지나
용기포 선착장에 도착했다.
동해 독도, 남해 제주도, 거제도, 서해의 백령도에 도착함으로써
국토의 4개 섬을 모두 방문하는 순간인 것이다.
백령면에는 2,029세대 4천716명이 거주하고 있다.
남자 2천453명, 여자 2천263명이다.
공무원은 31명으로 면장님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한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행정은 물론 정치가 있었다.
12분의 대통령 후보를 소개하는 선거벽보(2007년)가 마을마다 정갈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마도 19개 마을에 19개 이상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보았다.
긴 바다 여행 후 일행은 식당에 도착하여 마주한 점심밥상은 정갈했다.
냉이, 배추김치, 적당히 삭힌 깻잎, 총각김치 등이 시골스러우면서 맛이 들었다.
섬의 특성중 하나이라는데 수해가 없고 旱害(한해)도 없단다.
큰비가 와도 섬 안에서 짧게 흘러 바다로 가고 비가 적게 와도 가뭄이 들지 않는 것이
섬의 특징이라는 것. 더구나 백령도는 섬이면서 농지가 넓고 농사가 잘되어
한해 농사로 3년 치 식량이 생산된다고 한다.
특히 바다를 간척하여 토지를 많이 확보하여 전국 섬 면적으로 10위 밖에서 8위로
올라왔다고 한다.
장차 郡廳에서는 이 간척지를 농민들에게 공급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간척지에는 잡풀이 무성한 채 새 주인을 기다리는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담수호도 빗물을 받아 소금끼를 내보내는 작업을 매년 하고 있단다.
아까 배안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이곳 백령도는 참 살기 좋은 곳’이라고 편안하게 말씀 하신다.
행복지수라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아침 산책길은 정말 짱이다.
맑고 부드러운 공기가 볼과 가슴에 불어오고
편안한 주변의 경관이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해병대 시설을 견학했다.
버스로 산 정상에 올라 작대기 3개 상병의 설명을 들었는데 참 열심히 상세히
자신있게 설명해 주었다.
이곳이 우리 국토에 있어서 지니고 있는 의미에 대해 새롭게 인식시켜 주었다.
시설도 일부를 보여주었는데 식량, 탄약이 비축된 곳을 지나면서
우리가 휴전된 분단국가임을 재인식하였다.
횟집의 접시는 풍성했다.
일행은 풍성하게 회를 안주로 하여 소주잔을 비웠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개운하다.
편안한 숙소에서 잠을 푹 잔 것도 그렇겠거니와 이곳 섬은 오존(O3)성분이 많아서
알코올이 빨리 분해된다고 들었다.
숙소사장, 식당사장, 여행사 사장, 버스기사, 가이드 등 1인 다역을 하시는 가이드님의
말은 조금 재미가 있다.
이곳은 물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여행일정은 그냥 짜놓은 것이고
그때그때 현장을 보아가면서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바닷물의 들고나가면서 일정을 조정해 준다는 말이다.
이곳 특산품은 다시마, 고구마, 고추라고 한다.
두무진 해상관람 일정을 내일로 미루고 우리는 콩돌해안을 밟았다.
정말로 콩만한 돌이 큰 돌들과 함께 해안선을 꾸미고 있다.
1㎞의 해안선을 이루고 있는데 그 돌을 세어보면 지구상 인구 60억보다 많을 것 같다.
파도가 돌을 가져왔다가 가져간다고 하니,
아마도 물살이 세어서 이처럼 작은 돌이 되도록 갈고 닦는가 보다.
천연비행장은 1997년 12월 30일 천연기념물 제391호로 지정된 1㎞정도의 해안선인데 버스가 달려도 바닥이 패이지 않고 얇은 타이어 자국만 살짝 날 정도여서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다고 한다.
내려서 밟아보니 참 단단한 것이 신기하다.
콩돌해안의 돌과 이곳의 흙으로 세계적인 명품 건축자재를 생산할 수 있지 않을까.
12월 7일 금요일 아침. 식사시간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배가 바다에 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금족령? 금선령? 이 내려진 것인가 보다.
인천에서 어제 타고 온 8시 배가 오늘 아침 출항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동으로 하루 더 묵어야 한다는 것이다.
능동적 표현으로는 묶는 것이고 수동적으로는 묶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식을 낭보로 생각하는 이도 있고 여행사 현지 사장님은 정말로 쉽고
편안하게 남의 일 이야기 하듯이 오늘 배가 인천으로 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속으로 응근한 즐거움을 감추는 듯 보인다.
이 사장 겸 가이드님은 마을을 지나면서
‘백령도 19개 마을중 하나인’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다른 버스 기사님은 ‘이곳이 제가 다닌 초등학교인데 한 번도 정문으로 등교한 일이
없고 늘 개구멍으로 다녔다’는 멘트를 학교 앞을 지나면서 날렸다.
결국 점심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지 못하게 된 이번 짧은 일정으로 가지 못한
백령도 비경을 관광하게 되었다.
그곳은 바로 두무진 길이다. 자연이 만든 예술품이 이곳에도 있었다.
오랜 세월이 느껴지고 큰 파도와 맞서 도도히 버티는 암벽의 기개가 보인다.
지난번에 써두었던 시한수를 꺼내 조금 바꾸어 읽어 보았다.
검푸른 파도는
제 몸이 굳을까 걱정하여
바위에 온몸을 때리고
해안가 절벽의 저 바위는
제 몸 부스러질까 염려하여
거센 파도를 맞고 있다.
우리는 12월7일 저녁을 지나 다음날 새벽까지 이번 교육을 결산이라도 하는 듯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내년에 교육을 올 후배님들은 조금 애로사항이 있을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걱정은 마시라.
2007년 교육이 한번이듯이 2008년 교육도 그 나름의 特長(특장)이 있을 것이며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일 것이니까.
오전시간에 들른 곳은 북한 땅이 바로 보이는 해안선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아낙들이 굴을 따고 있다.
자연산 굴을 하나 떼어주어 먹어보니 짭짤하지만 굴 맛이 난다.
평생을 이곳 백령도에서 살았을 것 같은 村老(촌로) 두 분이 햇볕을 쬐며
쉬고 게시므로 다가가서 인사를 드렸다.
이 국토의 서쪽 끝을 지키는 군인과도 같은 주민이 아니신가.
탄창을 담은 쇠통을 덜컹거리며 보초 교대를 가는 병사의 모습이 믿음직하다.
우리 국군을 보는 것이 행복하고 일상인 듯 편안해 보인다.
하지만 해안선에는 적의 함정이 접안하는 것을 막기 위한 쇠말뚝 장치가 보인다.
소금끼에 검게 녹슨 쇠말뚝은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단단한 철조망이 해안선을 막아내고 있는데 가이드 말씀으로는 이곳은
아직도 UN군이 관리하고 있단다.
밭 뚝 절개지에는 패총이 보이는데 몇천년 몇만년 인류조상이 살았던 것인지.
그리 오래 살아온 저 굴은 어찌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모양으로
바위에 붙어살고 있는지. 우리 인류는 이처럼 진화하여 저렇게 패총을 먹었을
인류의 조상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진화해 있는데 말이다.
청정 해역에서 생산되는 미역, 다시마를 보다 더 정선하여 판매하였으면 좋겠다.
미리 값만 치르면 배편으로 인천항을 통해 택배하게 한다면 판매량이 늘어날 것 같다.
12월8일 토요일 우리의 점심은 아귀와 콩나물이었다.
음식은 때로 시간이 부족할 때 먹으면 더 맛이 날 수도 있다.
그제 타고 왔던 배은 오지 않고 그 전에 출항하는 배가 왔단다.
좀 작은 배인데 성능은 앞서는가 보다. 하지만 이 배는 정말 느린 배였다.
박사도 예비군복을 입으면 예의를 포기한다고 했다.
배에 탄 손님들은 비행기 손님에 비해 승객 간에 배려하는데 미숙해 보인다.
배 승무원도 마찬가지다.
작업복을 입은 승무원 2명이 표를 걷는다.
좀 승객들의 좌석이 정해지고 안정된 후에도 가능할 것을,
아직도 수 시간 더 가야 하는 시간이 있음에도 승객들이 이리저리 자리를 찾고 있는
그 와중에 표를 걷으며 승객들과 작은 충돌을 자초하고 있었다.
작은 서비스도 기대해 본다.
TV화면에서 지나간 드라마를 방영할 것이 아니라 명화,
교양강좌 등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중간에 음료수 한 병씩이라도 주었으면 한다.
배 삯이 4만9,500원이면 이정도 서비스는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도착시간을 오후 4시30분 정도를 생각하고 승선한 우리의 배는 기대에 못 미치는
속도로 인해 저녁 6시40분경에야 인천항에 도착했다.
예정보다 오래 걸린 길이어서인지 항해 중에 별 생각이 들지 않는다.
빨리 인천항에 내리기를 기대할 뿐이다.
장거리 여행 시에는 충분한 준비, 다양한 식품, 읽을 책 등을 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번 여행처럼 하루 더 묶어야 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저런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쯤 교육생들은 집에 도착하였을 것이다.
심야에 가기 어려워 하숙집에서 쉬고 내일 첫차로 가는 교육생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일들도 지나간다
교육 1년이 참 길다 생각하였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이른바 졸업여행도 참 즐겁게
다녀왔고 이제 2007년 12월 14일 오전에 교육을 마친다.
영광스럽게 수료를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교육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양보와 배려를 배웠다.
여행을 통해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보는 눈을 키웠다.
유럽, 북미, 남미의 선진 정책을 익혔다.
다른 분임의 연구실적을 우리분임의 그것과 비교해 보면서 반성도 했다.
다른 장기과정의 발표내용을 보면서 우리의 보고서를 조금씩 보강하기도 했다.
7인의 분임활동은 양보와 배려의 지혜를 익히는 기회였다.
비전반, 혁신반이 각각의 의미로 뭉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고 고
급리더 70명의 공동체 의식도 함양했다. ...
(2007년 12월에 이강석 적어봄)
첫댓글 백령도 관광 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