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49. 하노이에서의 첫날밤
하노이 여행을 되돌아보며 여행의 여운을 정리한다. 여행의 순간들을 더듬는 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 중의 하나다. 그곳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거나 깊은 감동을 받은 순간은 몇 번을 되뇌어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 시작부터 끝까지 찬찬히 더듬다보면 어쩌면 지금 반복되는 일상보다 더 강렬하고 생생하게 그 순간들을 맛볼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곳만의 분위기와 아름다운 풍광이 있고 그곳에 뿌리박고 살아온 사람들의 특유의 태도와 표정들이 있다. 독특한 향과 맛으로 오감을 자극하는 그곳의 음식들을 맛보면서 그때는 단순히 지나친 그 순간을 다각도로 관조하고 생각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깨닫기도 한다. 그래서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않고 여행의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기거나 한 줄의 낙서라도 적어두곤 했다. 여행지의 수준보다는 그러한 즐거움으로 여행의 의미는 충분하다. 벼르고 벼르던 베트남 여행이다. 여행 전날의 하룻밤을 고스란히 새웠다. 폭설주의보가 내려졌으나 눈이 귀한 부산공항 지역의 특성을 알기에 집에서 편안한 잠자리를 고집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집을 나서는 새벽 3시 쏟아지는 폭설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이대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겠나? 싶을 만큼의 눈 속을 헤치고 순천 쯤 지나니 역시 내려앉은 눈도 없을뿐더러 깔끔한 새벽길을 달릴 수 있었다. 이번 무안국제공항의 사고로 인하여 김해공항까지 3시간 이상을 달려가야 하니 내 지역에 일상의 작은 편의시설까지 감사가 되는 깨달음도 더한다. 한편 얼마 전 항공사고를 보면서 해외여행이 다소 불안하여 내키지 않지만 이래저래 핑계 삼아 머물러 있다 보면 쉼 없이 흐르는 세월에 나는 점점 뒤로 가는 격이 되니 강행하기로 하였다. 그동안 해외에 나갈 때는 아들아이와 함께라서 부담 없었다. 이번에는 남편과 둘이서 패키지로 다녀오기로 하였지만 나름 소소한 계획은 빼놓지 않고 챙기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렇게 4시간 여 비행 끝에 하노이에 도착했다. 항공기의 앞자리에 앉다 보니 따뜻한 베트남 땅에 1번으로 내렸다. 내려 보니 동남아 공항 항공기 문을 열자마자 느끼는 독특한 느낌이 있다. 한편 한 겨울 김해를 떠나 도착한 하노이는 늦가을 또는 초겨울 날씨에 가까웠다. 무작정 더운 나라라는 생각에 얇은 바람막이 정도만 생각했다가 패딩점퍼 하나 쯤 챙겨오길 잘했다. 현지인들은 모두 패딩을 입고 있어 어안이 벙벙했지만 내게는 늦가을의 서늘함이지만 그들에게는 한겨울의 강추위라는 것을 알겠다. 한편 하노이 공항의 입국수속은 아주 후진국과 같은 눈치싸움이다. 질서도 없고 통제도 없으며 입국하는 사람만 줄도 없이 가득하다. 뿐만 아니라 입국수속을 공항직원으로 하여금 얼굴인식으로 통과할 수 있으니 우리나라의 발달된 시스템에 놀랐다. 1시간 여 입국수속을 마치고 패키지 여행사를 찾아 베트남에서의 여행 기간 동안 함께 할 팀을 만났다. 32명이라니 적잖은 인원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한결같이 점잖고 조용해서 서로가 편안하게 보냈던 것 같다. 오전 11시 쯤 출발하였으나 베트남의 2시간 늦은 탓으로 알뜰하긴 하였으나 입국수속으로 많은 시간을 빼앗긴 탓에 우리는 바로 숙소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처음으로 하노이시내를 들어가 본다. 시내는 좁은 길에 사람과 차와 오토바이가 뒤엉켜 복잡하다. 그야말로 이방인에게 하노이의 도로 상황은 쉽지 않게 느껴졌다. 차선과 차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어 다니는 차량들과 신호등 있는 곳이 거의 없이 차와 오토바이도 횡단보도를 무시하고 달리는 하노이의 교통상황은 이래도 되나? 싶지만 차선과 차선을 아슬아슬하게 잘도 넘는다. 우리는 하노이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노보텔 호텔로 향했다. 노보텔 하노이타이하는 하노이에서 몇 없는 5성급 호텔이란다. 칫솔과 빗 심지어 호텔 키까지 나무재질이다. 특이하게 호텔 로비에는 각종 빵들이 비치되어 있어 숙소에서 주문하여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은 프랑스의 영향으로 빵 문화가 많이 발달되어 있는가 하면 6시부터 조식이 시작되는데 역시 한국인들은 부지런하다. 6시 5분쯤 도착했으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다. 많이 다녀보지는 않았지만 다른 외국에 비하여 야채와 과일이 많으니 딱히 투정부리지 않아도 모든 것이 입맛에 맞는 느낌이다. 그렇게 잘 먹고 편히 쉴 수 있는 여건 속에서 하노이에서의 하룻밤으로 이번 여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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