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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계룡산 갑사에서 동학사까지 순례 및 산행
-그 아름다운 전설의 남매탑-
남매탑에 도착했습니다.
삼불봉 고개에서 남매탑까지는 불과 300m 밖에 안 되기에 남매탑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 습니다. 2시 20분경입니다. 그런데 앞서 내려오신 정파님이 어느 젊은 탐방객에게 한 비 문 앞에서 비문을 좔좔 읽어 주시고 계셨는데 이를 듣는 젊은 탐방객은 입가에 미소를 띠 고 감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들여다 보니 남매탑에 대한 비문이었습니 다. 비문은 국한문 혼용체로 한자가 주가된 비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써 놓으면 과연 몇 명 이나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볼까 의문이 듭니다.
탐방로 한 기슭에 자그맣게 자리한 남매탑비(娚妹塔碑)
비문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
남매탑중건방함기(娚妹塔重建芳啣記)
『唯我大韓之湖南에 有一座名山하니 山曰 鷄龍이요 水曰 錦江이라 儒城鏡湖左右分裂之間 에 可謂城中之名山이며 方外之勝地也로다 三佛峰左便 上院庵舊址에 祖師의 有娚妹塔하니 新羅聖德王二十三年甲子 西紀七二三年에 祖師의 門人懷義和尙이 主務되어 建立된 塔으로 서 悠久한 역사를 지닌 文化財였던 바 不幸하게도 一九四四年 春間에 盜堀輩에 依하여 顚 倒되었으나 復舊하기 極難하던 中 一九六一年晩秋에 大田市 孝洞 居住 金善龍氏의 化發信 心之願力으로 莫大한 私財를 喜捨하야 重修再建하니 其功勞는 不可思議로다 晩時之歎..』
전면의 비문을 한글로 옮겨 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호남에 명산(名山) 하나가 자리하고 있으니, 산이름이 계룡(鷄龍)이요, 물이름이 금강(錦江)이라. 유성(儒城)과 경호(鏡湖)가 좌우로 나뉘는 사이에 가히 성 중의 명산이라 할 만하며, 세속을 초월한 뛰어난 명승지(名勝地)로다.
삼불봉(三佛峰) 왼편 상원암(上院庵) 옛터에 조사(祖師)의 남매탑(娚妹塔)이 있으니, 때는 신라 성덕왕(聖德王) 23년 갑자 서기 723년에 조사의 문인(門人) 회의화상(懷義和尙)이 주 관하여 건립된 탑으로,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문화재였던 바, 불행하게도 1944년 봄에 도굴 배(盜堀輩)에 의하여 무너져 있있으나 복구하기 극히 어려웠던 중, 1961년 늦가을에 대전 시 효동에 거주하는 김선룡(金善龍)씨가 신심의 원력을 낸 은혜로 막대한 사재를 희사하여 중수재건(重修再建)하니 그 공로는 불가사의함이로다. 만시지탄... 』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이후에 글이 더 있을 텐데 그것을 찍지 못하였으니 아쉽네요. 아마도 늦은 감은 있지만 감사하다는 내용이 아닐까 합니다. 김선룡 선생의 아름다운 이 름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탑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
남매탑 풍경
안내판에 있는 그림을 찍은 것입니다.
안내판의 설명을 옮겨 봅니다.
『남매탑은 동학사와 갑사의 중간 지점인 삼불봉 및의 옛 청량사 터에 탑 2기로 구성된 있 는데, 하나는 5층(보물제 1284호), 다른 하나는 7층(보물제 1285호)으로 청량사지쌍탑(淸 凉寺址雙塔)이라고도 불리우며, 남매탑이란 이름에 걸맞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 려오고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한 스님이 토굴을 파고 수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는 날 호랑이 한 마리가 울부짖으며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이 입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 니 큰 가시 하나가 목구멍에 걸려 있어 뽑아주었더니 며칠 뒤에 호랑이는 아리따운 처녀를 등에 업고 와 놓고 갔습니다. 은공을 보답하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처녀는 상주 사람으로 혼인을 치른 날 밤 호랑이에게 물려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스님에 게 말하였습니다. 그때는 산에 눈이 쌓이고 날씨도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위가 물러가 고 봄이 오자 스님은 수도승으로서 남녀의 연을 맺을 수 없기에 처녀를 집으로 돌려보냈으 나, 그 처녀의 부모는 이미 다른 곳으로 시집 보낼 수 없고 인연이 그러하니 부부의 예를 갖추어 주기를 바랬습니다.
이에 스님은 고심 끝에 그 처녀와 남매의 의를 맺고 비구와 비구니로써 불도에 힘쓰다가 한날 한시에 열반(涅槃)에 들게 되자, 이 두 남매의 정을 기리기 위해 탑을 건립하여 두 스 님의 사리(舍利)를 모시게 되어 "남매탑"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남매탑에 대한 전설은 <불교이야기>방 1번을 참조해 보세요. ^^
남매탑. 5층석탑(누이탑)과 7층석탑(오라버니탑).
5층석탑 보물 제1284호 7층석탑 보물 제1285호
다른 각도에서 바라 본 모습
또 다른 각도에서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입니다.
청량사지 5층석탑(淸凉寺址 五層石塔) 보물제 1284호)
여기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안내판의 글을 옮겨 봅니다.
『청량사지는 청량사(淸凉寺)"라는 글이 새겨진 막새기와가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의 절터 이다. 청량사의 터에 있는 석탑으로 7층탑과 더불어 "남매탑" 또는 "오뉘탑" 이라고도 불리 운다.
5층 석탑은 낮은 단층기단 위에 4층까지 완전하나 5층은 몸돌과 지붕돌 일부만 있으며, 상 륜부(上輪部)의 일부도 남아 있다. 1층 몸돌에 비해 상층부가 훨신 작아져 균형이 맞지 않 으나, 우주(隅柱)와 면석(面石)은 각각 별개의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의 우주만 배흘림 의 흔적이 보이고 4개의 얇은 돌로 된 지붕돌은 긴 처마 끝에서 약간 치켜 올라갔다.
백제계통 양식의 영향을 받은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1950년대에 무너진 것을 1961년에 복원하였다.』
청량사지 7층석탑(淸凉寺址 七層石塔) 보물제 1285호)
소재지 :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산 3-1번지
『청량사지는 청량사(淸凉寺)"라는 글이 새겨진 막새기와가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의 절터 이다. 이 절터의 동쪽에 있는 석탑으로 5층탑과 더불어 "남매탑" 또는 "오뉘탑" 이라고도 불리운다. 7층석탑의 기단부(基壇部)는 2대의 돌로 되어 있고, 우주(隅柱)는 다른 돌로 만 들어졌다. 7층 중에서 1층의 몸돌이 다른 층보다 길며 직사각형의 감실(龕室)이 있고, 2,3,4층은 중건할 때 보수된 것으로 보인다. 지붕돌의 끝은 약간 치켜 올라갔는데, 지붕 의 윗부분은 비교적 가파르게 경사져 있다. 7층의 지붕돌 층급 받침을 제외하면 모두 2단 의 층급 받침을 하고 있다.
백제식 석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1950년대에 무너진 것 을 1961년에 복원하였다.』
남매탑 앞에서
여기 서시오!
다시 한 번!
이곳 남매탑은 계룡팔경 중 제8경인 남매탑명월(娚妹塔明月)로 유명합니다. 그러니 달밝 은 보름달 아래 이곳에 와 봐야 진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매탑을 두루 보다가 남매탑 옆 상원암(上元庵)을 찾아 참배했습니다.
상원암(上元庵)
상원암에 대한 정보가 없어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옛날에는 청량사(淸凉寺)라고 불리워진 절입니다. 지금은 동학사 산내 암자로, 현재 비구니 스님이 참선. 정진하는 도량입니다.
불단이 유리로 되어 있어 반사되어 잘 안 나옵니다.
그래서 살짝 비껴찍기 하였습니다. 문수보살이십니다.
무슨 대화를 나누시는지...
동학사 1.7Km
이제는 물러나야 할 시간, 2시 43분 남매탑을 물러납니다. 이제 마지막 탐방은 계룡산 동 학사(東鶴寺)입니다.
이게 뭡니까?
앗, 산밤!
지난 번 지리산에 갈 적엔 밤꽃이 필 때였고, 이번 계룡산은 밤이 떨어질 때라고 하며 걸 었지요. 그러면서 재수 있는 사람은 산밤을 주우리라 생각했는데 미소님이 행운을 잡으셨 네요. ^^ 그러나 다람쥐에게 양보하셨지요? ^^
하산을 완료하고 동학사로 향합니다.
3시 26분 하산을 완료하고 동학사로 향합니다. 동학사로 가는 길에는 정문이 세워져 있습 니다. 이것은 바로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편을 기대해 주세요. _()_
☞ 다음은 계룡산 동학사를 찾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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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죄송해요 ㅠㅠ 귀한 산밤 다람쥐에게 양보해야하는데....아이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집으로...다음부턴 조심할께요 다람쥐야 미안하구나
오전에 100일기도 입재일에 참석하고 조금뒤 백사실에 알알이로된 옥수수 뿌리려 갑니다
아름다운 미소님, 그런 건 괜찮습니다. 누군들 보이면 안 줍갰습니까 주으려 해도 없더만... 백사실 새들이 좋아하겠네요. 제가 백사실에서 산초 많이 따와서 장아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도 새를 생각해서 많이 남겨 두며 땄습니다. _()_
남매탑이 왠지 불안하게 서 있는 것 같습니다.
비바람 풍상에도 천 년을 잘 잘 견뎌왔는데 도굴범들이 무너뜨리다니... 옛날 이야기에 거대한 석불이 바람에도 끄떡 없었는데 두더쥐에 위해 무너졌다더니.... 사재를 털어 복원한 김선룡 선생의 원력이 있어 저렇게 보여도 한동안 끄떡없을 겁니다. _()_
귀한 산밤을 주었군요.서울에선 공주밤을 많이 팔던데 밤나무는 많이 못받습니다,달랑 밤 하나 주어 손에 올려놓고 사진
찍던때가 생각 납니다.그게 즐거운거죠._()_
백우님 사진 솜씨가 나날이 좋아지는대요. ㅇ;ㅣ쁜 사진 감사 합니다....나무묘법연화경()()()
감사합니다. 묘법님, 묘법님이 찍은 사진을 이용해 보려 해도 이용할 수 없는 것은 용량이 넘쳐서입니다. 사진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진속성 용량을 말합니다. 컴맹탈출방에 있는 그대로를 실천하시면 용량을 줄이고 사진 크기도 줄여서 올릴 수 있습니다. 연습해 보세요. 연습실에서... _()_
남매탑이 왼지불안해보이내요
정수님과 같은 말씀을 하시넹. 염려 붙들어 매슈 누가 일부러 건들지 않으면 될 텐데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을까 그것이 염려됩니다. _()_
은혜를 갚은 호랑이와 승속의 인연을 승화시킨 남매탑에 얽힌 얘기가 1300여년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들 가슴에 전해지고 있네요. _()_
이것이 남매탑의 주제인데... 모두... 사찰이 산에 있다 보니 호랑이와 관련된 전설이 많은데, 그 중에 영주 소백산 희방사 창건설화는 이 남매탑 전설과 쏙 빼 닮았습니다. 호랑이가 우굴거리던 시절 보은한 이야기도 참 많습니다. 그러고 보니 희방사도 가고 싶네요. _()_
말로만 듣던 남매탑 처음 가 보았습니다. 처녀가 상주라고 하니 길상님이 생각나네요. _()_
길상님이 함께하셨더라면 더욱 뜻깊었겠지요.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