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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가귀감(禪家龜鑑)』은 조선 전기 청허휴정(淸虛休靜)이 지은 책이다. 그는 선(禪)과 교(敎)가 둘이 아님을 밝히는 동시에
간화선(看話禪)을 지침으로 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법을 천명하면서 제자들에게 수행의 귀감을 삼으라는 뜻에서 이 책을
지었다.
『선가귀감』은 청허휴정이 제자들을 가르칠 때 썼던 중요한 텍스트 중 하나다. 그는 수많은 경전에서 선(禪)에 관련된 약
50여 종의 서적을 선정했고, 다시 그중에서 선 수행에 필요한 중요한 문구를 가려서 강의 노트를 만들었다. 이 교재는 스님이 계셨던
묘향산(妙香山) 보현사(普賢寺)를 중심으로 선학 수행의 지침서 역할을 했다. 스님은 직접 그 내용을 제자들에게 강설했고, 제자들은 다시 그
내용을 낱낱이 기록하여 수행의 방편으로 삼았다.
저자 : 휴정(休靜)
1520∼1604. 조선 중기의 승려·승군장(僧軍將). 본관은 완산(完山)이고, 속성은 최(崔)씨이며, 자는 현응(玄應)이고, 호는 청허(淸虛) 또는 서산(西山)이며, 아명은 여신(汝信)으로, 안주(安州) 출생이다. 1534년 진사시에 낙방하자 지리산에 입산, 일선(一禪)에게 구족계를 받고 영관(靈觀)의 법을 계승했다. 1552년 승과에 급제했다. 임진왜란 때 73세 노구로 왕명에 따라 팔도16종선교도총섭(八道十六宗禪敎都摠攝)이 되어 승병(僧兵)을 모집, 한양 수복에 공을 세웠다. 1594년 유정(惟政)에게 승병을 맡기고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여생을 보냈다. 묘향산 안심사(安心寺)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 부도가 서고, 밀양(密陽) 표충사(表忠祠) 등에 배향되었다. 문집에 『청허당집(淸虛堂集)』이 있고, 편저에 『선교석(禪敎釋)』, 『선교결(禪敎訣)』, 『운수단(雲水壇)』, 『삼가귀감(三家龜鑑)』, 『심법요(心法要)』, 『설선의(說禪儀)』 등이 있다.
역자 : 배규범
1998년 문학박사 학위(<임란기 불가문학 연구>)를 받은 이래, 한국학 및 불가 한문학
연구에 전력하고 있다. 편역자는 한자와 불교를 공통 범주로 한 ‘동아시아 문학론’ 수립을 학문적 목표로, 그간 한국학대학원 부설
청계서당(淸溪書堂) 및 국사편찬위원회 초서 과정을 수료했으며, 수당(守堂) 조기대(趙基大) 선생께 사사하였다.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에서 지난
10여 년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및 한자 강의를 진행했으며, (사)한국한자한문능력개발원의 한자능력검정시험 출제 및 검토위원으로 재임
중이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학술진흥재단의 고전 번역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2000년부터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고·순종』 교열 및 교감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중국 베이징 대외경제무역대학
한국어과에서 객원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어 및 한국문화를 강의하고 있다. 편역자는 해외에서 우리의 말과 문화에 대해 보다 심도 깊은
연구와 전파라는 새로운 뜻을 세우고 활동 중이다.
주요 논저로는 『불가 시문학론』, 『조선조 불가문학 연구』, 『사명당』, 『한자로
배우는... 한국어』, 『요모조모 한국 읽기』 등이 있으며, 역저로는 『역주 선가귀감』, 『한글세대를 위한
명심보감』,『사명당집』, 『허정집』, 『청허당집』, 『허응당집』, 『역주 창랑시화』, 『정관대사일선시집』 등이 있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선가귀감
옮긴이에 대해
學未至於道하여서 衒耀見聞하여 徒以口舌辯利로
相勝者는 如厠屋에 塗丹이니라
배움이 도에 이르지 않았는데도 보고들은 것을 자랑하고 뽐내며, 한갓 입에 발린 교묘한 말로 서로 이기려고 하는
것은, 마치 뒷간에 단청을 하는 것과 같다.
別明末世愚學이라 學本修性이어늘 全習爲人하니 是誠何心哉아
말세의 어리석은 공부에
대하여 특별히 밝힌 것이다. 공부란 본래 자신의 성품을 닦는 것인데, 오로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한다면 이는 참으로 무슨
마음인가?---- 본문 중에서
■ 이 책은 1569년(선조 2)에 묘향산(妙香山) 보현사(普賢寺)에서 개간(開刊)한 언해본과 1633년(인조
11) 용복사(龍腹寺)에서 간행한 한문본을 원본으로 삼았습니다.
『선가귀감(禪家龜鑑)』은 조선 전기 청허휴정(淸虛休靜)이 지은
책이다. 그는 선(禪)과 교(敎)가 둘이 아님을 밝히는 동시에 간화선(看話禪)을 지침으로 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법을 천명하면서 제자들에게
수행의 귀감을 삼으라는 뜻에서 이 책을 지었다. 조선조의 불교계는 억불숭유의 분위기 속에서 철저하게 산문기(山門期)로 접어들었다. 14개의
종파는 세종대에 이르러 7개로 통합되고, 다시 명종대에 오면 선교 양종으로 축소되었다. 불교계는 자연스레 종파의 허물을 벗고 산속에 침잠하며
사승(師承) 관계 중심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제자 양성 문제는 조선조 불교계의 영원한 화두이자 생존의
근간이었다.
조선조 불교계에서 가장 많은 제자를 양성한 스님으로는 청허휴정을 빼놓을 수 없다.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한국 조계종단의
70∼80%가 청허휴정의 계보라는 말도 절대 허무맹랑한 말은 아니다. 임란을 기점으로 그의 4대, 혹은 8대 제자들은 이후 조선 불교계의 근간이
되어 이끌었다. 그런 점에서 청허휴정은 조선 불교계의 거목이다.
『선가귀감』은 청허휴정이 제자들을 가르칠 때 썼던 중요한 텍스트 중
하나다. 그는 수많은 경전에서 선(禪)에 관련된 약 50여 종의 서적을 선정했고, 다시 그중에서 선 수행에 필요한 중요한 문구를 가려서 강의
노트를 만들었다. 이 교재는 스님이 계셨던 묘향산(妙香山) 보현사(普賢寺)를 중심으로 선학 수행의 지침서 역할을 했다. 스님은 직접 그 내용을
제자들에게 강설했고, 제자들은 다시 그 내용을 낱낱이 기록하여 수행의 방편으로 삼았다.
『선가귀감』은 그 중요성만큼이나 다양한 판본으로
유명하다. 우선 한문본과 언해본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한문본의 경우부터 살펴보자. 한문본은 1권 1책 목판본이 대세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선가귀감』은 휴정이 1564년(명종 19) 여름, 50여 종의 불서(佛書)에서 선종의 요긴한 내용을 가려 뽑아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재로
편찬한 책이다. 금강산(金剛山) 백화암(白華庵)에서 서문을 쓰고, 그 뒤 묘향산에서 10여 년 동안 학인들을 가르치면서 틈틈이 다듬고
손질했으며, 1579년(선조 12) 봄에 사명유정(四溟惟政)이 발문(跋文)을...■ 이 책은 1569년(선조 2)에 묘향산(妙香山)
보현사(普賢寺)에서 개간(開刊)한 언해본과 1633년(인조 11) 용복사(龍腹寺)에서 간행한 한문본을 원본으로
삼았습니다.
『선가귀감(禪家龜鑑)』은 조선 전기 청허휴정(淸虛休靜)이 지은 책이다. 그는 선(禪)과 교(敎)가 둘이 아님을 밝히는
동시에 간화선(看話禪)을 지침으로 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법을 천명하면서 제자들에게 수행의 귀감을 삼으라는 뜻에서 이 책을 지었다. 조선조의
불교계는 억불숭유의 분위기 속에서 철저하게 산문기(山門期)로 접어들었다. 14개의 종파는 세종대에 이르러 7개로 통합되고, 다시 명종대에 오면
선교 양종으로 축소되었다. 불교계는 자연스레 종파의 허물을 벗고 산속에 침잠하며 사승(師承) 관계 중심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제자 양성 문제는 조선조 불교계의 영원한 화두이자 생존의 근간이었다.
조선조 불교계에서 가장 많은 제자를 양성한 스님으로는
청허휴정을 빼놓을 수 없다.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한국 조계종단의 70∼80%가 청허휴정의 계보라는 말도 절대 허무맹랑한 말은 아니다. 임란을
기점으로 그의 4대, 혹은 8대 제자들은 이후 조선 불교계의 근간이 되어 이끌었다. 그런 점에서 청허휴정은 조선 불교계의
거목이다.
『선가귀감』은 청허휴정이 제자들을 가르칠 때 썼던 중요한 텍스트 중 하나다. 그는 수많은 경전에서 선(禪)에 관련된 약 50여
종의 서적을 선정했고, 다시 그중에서 선 수행에 필요한 중요한 문구를 가려서 강의 노트를 만들었다. 이 교재는 스님이 계셨던 묘향산(妙香山)
보현사(普賢寺)를 중심으로 선학 수행의 지침서 역할을 했다. 스님은 직접 그 내용을 제자들에게 강설했고, 제자들은 다시 그 내용을 낱낱이
기록하여 수행의 방편으로 삼았다.
『선가귀감』은 그 중요성만큼이나 다양한 판본으로 유명하다. 우선 한문본과 언해본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한문본의 경우부터 살펴보자. 한문본은 1권 1책 목판본이 대세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선가귀감』은 휴정이 1564년(명종 19) 여름, 50여
종의 불서(佛書)에서 선종의 요긴한 내용을 가려 뽑아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재로 편찬한 책이다. 금강산(金剛山) 백화암(白華庵)에서 서문을
쓰고, 그 뒤 묘향산에서 10여 년 동안 학인들을 가르치면서 틈틈이 다듬고 손질했으며, 1579년(선조 12) 봄에 사명유정(四溟惟政)이
발문(跋文)을 쓰고 간행했다.
이후 유점사(楡岾寺)에서 1590년(선조 23)에 다시 간행했으며, 송광사(松廣寺, 전남 순천군)에서
1607년(선조 40)과 1618년(광해군 10)에, 용복사(龍腹寺)에서 1633년(인조 11)에 각각 간행했다. 현재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판본은 1731년(영조 7) 5월, 묘향산 보현사에서 간행된 것이며 이 판본은 그 뒤에도 여러 번 재간행되었다.
이 밖에도 1604년(선조
37)에 경상도 화산(華山) 원적사(圓寂寺)에서, 그리고 1649년(인조 27)에 양산(梁山) 통도사(通度寺)에서 개간(改刊)한 것이 있다.
본문만 있는 판본(용복사본)이 있는가 하면 서문과 본문만 있는 판본이 있고, 서문·본문·발문이 모두 다 실려 있는 판본도 있다.
그리고
사명유정이 탐적사(探賊使)로서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임제종(臨濟宗)의 오산선승(五山禪僧)을 위해 『선가귀감』을 강의한 것을 토대로 만든
『선가귀감주해(禪家龜鑑註解)』본이 있다. 이 책은 당시 퇴폐 일로에 있던 일본 임제종을 부흥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한 책으로 100여 종의
불서(佛書)를 참고하여 달아놓은 주석이 그 출처와 함께 적혀 있다. 일본에서는 1635년, 1638년, 1677년, 1678년, 1909년,
1910년, 1927년, 1931년에 각각 간행되었다.
다음으로 언해본에 대해 살펴보자. 언해본의 명칭은 내제(內題)와 외제(外題)가
다르다. 내제는 ‘선가귀감(禪家龜鑑) 권상(卷上)·권하(卷下)’로 되어 있고, 외제는 ‘선감(禪鑑)’(보현사본)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한문본과 구별하기 위해 ‘선가귀감언해(禪家龜鑑諺解)’라고 통칭한다.
판본으로는 보현사본(普賢寺本)과 송광사본(松廣寺本)이
있다. 초간본으로 알려진 보현사본은 1569년(선조 2)에 묘향산 보현사에서 개간(開刊)했다. 반면 보현사본의 교정본에 해당하는 송광사본은
1610년(광해군 2)에 조계산(曹溪山) 송광사에서 개간(改刊)한 것이다. 상하 2권 1책 68장(상권 1∼31장, 하권 32∼68장)
136면으로 되어 있다.
내용면에서 두 판본이 거의 같은데, 송광사본은 보현사본을 교정한 것에 불과하다. 면마다 유계(有界) 9행
17자이며, 주(注)는 한 행에 두 줄로 되어 있다. 원문의 한문에 한글로 토를 달았으며, 언문(諺文)은 한 자 아래에 조판하고 한 행에 두
줄씩 기록했고, 주해와 게송에 해당하는 부분은 로 표시하여 구분했다.
『선가귀감』의 저자는 주지하듯이 휴정이다. 그런데 그 번역(?해)은
현재까지는 금화도인(金幻人)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근거는 보현사본 언해본 하권 본문 끝에 “이 한 권 책 속에는 수많은 성현의 빛나는
가르침이 중중무진(重重無盡)하며 그물망처럼 빽빽하니, 참으로 기이하도다. 옛사람이 처음 그것을 초 잡고, 뒷사람이 그것을 차례대로 엮었는데 지금
내가 그것을 우리말로 옮겨 적었으니 모든 중생이 함께 깨달음의 큰 바다에 들어가길 원하는 바다. 금화도인이 머리 숙여 절하며 삼가
쓰다(此一卷中, 千聖同放光明, 重重無盡, 密若絲網, 奇哉. 古人草創之, 後人編次之, 今余譯書之, 願共諸衆生, 同入大覺海. 金幻人拜手謹題)”라는
발문이다. 이 금화도인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일인(日人) 학자 고교형(高橋亨)이 『이조불교(李朝佛敎)』(寶文館, 日本:
大阪, 1929, 381쪽)에서 낙안(樂安) 징광사(澄光寺) 스님이라고 한 이래, 우정상이 서산대사의 제자인 금화도인 의천(義天)일 것이라고
자신의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또한 김영배는 『선가귀감』 언해본의 방언이 전라도 방언임을 제시하면서 금화도인은 전라도 사람이라고 했다. 교정자는
송광사본에 나와 있듯이 선수(善修)다.
언해본의 표기상 특징은 다음과 같다. 한문에 독음이 달려 있지 않으며, 현토 부분에서 한문본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것은 나중에 한문본에 현토를 붙이면서 언해본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 여겨진다. 또한 언해본은
방점본으로는 거의 마지막 판본에 해당한다. 같은 책에서도 대여섯 가지 이상 다르게 나타나며, 15세기 문헌과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로써 당시
이미 방점이 변별적 기능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선가귀감언해』는 이런 면에서 보더라도 국어학적으로 소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소실 문자면에서 살펴보면, ‘ㅸ’은 사라지고 ‘ㅿ’과 ‘씨은 15세기와는 약간 다른 양상으로 사용되었다. 합용병서는 여전히 사용되었으나
‘ㅻ’과 ‘ㅵ’은 사용되지 않았으며, ‘ㆅ’은 거의 사라졌고 ‘시만 부분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16세기 문헌에 보이는 중철(重綴)과
분철(分綴)이 혼용되었다. 보현사본의 잘못된 부분이 더러 송광사본에서 교정되었는데, 간혹 맞는 것을 잘못 고친 부분도 있으며, 두 판본 모두에
잘못된 부분도 있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선가귀감』은 강의 노트 수준으로 편집되어 사용되다가
1569년 사명유정 등이 중심이 되어 언해본으로 먼저 간행한 뒤, 이를 바탕으로 10년 뒤 한문본으로 간행했다는 사실이다. 이후 한문본은
한문본대로, 언해본은 언해본대로 개간(改刊)을 반복했다. 언해본은 성격상 한문본에 대한 해설서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에
대해 친절하게 이런저런 번역과 설명을 달아 자기들끼리 돌려본 것으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선가귀감』의 전체
내용을 살펴보자. 한문본과 언해본이 장별 구성에서 차이를 보이므로 여기서는 장별 구분을 하지 않고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본다.
첫째, 불법의 원리와 우주의 근본[一物]을 밝히다.
둘째, 선(禪)과 교(敎)의 논리를 논하다.
셋째, 간화선[看話禪,
조사선(祖師禪)]의 수행[修行, 보살행(菩薩行)]과 방편(方便).
넷째, 수행자의 병통와 경책(警策).
다섯째, 오종(五宗)의 법통과
가풍을 설명. 특히 임제종(臨濟宗)의 종지(宗旨)를 강조하다.
『선가귀감』은 1948년 선학원의 번역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종류의
번역서가 출간되었다. 그것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의미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역자도 2003년 언해본과 한문본을 아우른 교감과 상주를 기본으로 한
『선가귀감』 역주서를 출간한 인연이 있다. 이 책은 그때의 작업을 토대로 새롭게 윤문하고 총서의 기획 의도에 맞춰 수정한 것이다. 『선가귀감』은
조선 불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저이기에 앞으로도 다양한 시각에서 보다 참신한 번역서들이 나올 것으로 본다.
역자는 이 책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잠시나마 삶을 되돌아보며 회광반조(廻光返照)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라 확신한다. 450년 전 이 땅의 수많은
수행자를 이끌었던 그때의 인연이 현대인에게 다시금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으로 번역에 임했다. 현재 역자는 중국 베이징의 한 대학교에서
한국어와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모든 것이 낯선 생활 속에서도 변치 않는 것들을 향유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역자에게 이런 계기를 마련해 준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사장님 이하 편집부 모든 식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먼 이국땅에서 고군분투하는 가족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모두 건강하게 자신의 꿈들을 이뤄가길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