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도 맹자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성을 파악하기 용이한 심(心)에서 찾고 있는데, 장자가 파악한 심이 바로 예술정신의 주체이다.
장자는 본래 오늘날의 에술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장자의 정신세계에 무의식적으로 나타난 것이 저절로 오늘날의 예술정신과 일치하였으며, 또한 예술적인 인생을 성취하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서 최고의 예술을 성취해냈다고 할 수 있다.
장자는 인간세 <人間世> 에서 심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안회가 말했다. [부디 심재에 대해 가르쳐주십시오.J 공자가 대답했다. [심재, 즉 마음의 재계란 마음의 활동을 하나로 통일시켜 잡념을 떨쳐버리는 일이다. 지각에 의해서 대상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기, 즉 우주적 직관에 의해서 파악하는 것이다. 귀는 단지 감각적 판단을 맏을 뿐이고, 마음은 단지 지각의 주체에 지나지 않는다. 감각과 지각은 형상에 얽매어 활동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우주적 직관인 기는 스스로는 아무런 내용도 갖지 않으므로 천변만화하는 일체의 사물들을 자유자재로 받아들일 수 있다. 실재의 진상인 도는 이 우주적 직관에 의해서 비로소 모든 것을 포섭할 수 있게 된다.
심재란 이러한 우주적 직관에 이를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비워나가는 일에 불과한 것이다.]
안회가 말했다.
지금 말씀을 듣기 전까지는 저는 너무나도 제 자신에 얽매어 있었습니다. 이제 안회라고 하는 이 보잘것없는 몸뚱아리는 애초부터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심경을 허라고 말할 수 있는지요?]
공자가 대답했다.
[충분하다....걷지 않기란 쉽지만, 걸을 때 땅을 밟지 않기란 어렵다. 다른 사람에거 부림을 당할 때 그를 속이기는 쉽지만, 하늘에게 부림을 당할 때 하늘을 속이기는 어렵다...지식이 있어서 사물의 이치를 안다는 말은 들었으나, 지식 없이 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우리는 이같이 쉽다 어렵다, 있다 없다 하는 상대적인 세계에 살고 있지만 저 텅 빈 것을 잘 보라.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 안에는 눈부신 햇살이 비쳐 저렇게 환히 밝지 않느냐? 행복과 같은 좋은 일도 이 호젓하고 텅 빈 곳(마음)에 모이는 것이다. 그런데도 머물러야 할 곳에 머물지 못하면, 이를 좌치(몸은 앉아있어도 마음은 달림)라고 한다. 귀나 눈의 지각을 안으로 통하게 하고 마음의 작용을 밖으로 향하게 하면 귀신도 찾아와 머물 것이다. 하물며 사람이 찾아오는 것은 더 말할 나위 있겠느냐? 이것이 곧 만물의 수많은 변화에 순응하는 방법으로 우임금이나 순임금과 같은 성군도 따르고 의지한 바였으며 복희나 궤거와 같은 옛날의 제왕들도 평생 실행한 바였다. 하물며 이들보다 못한 범인들이야 더 말할 나위 있겠느냐?
>> 장자는 다시 <대종사(大宗師)> 에서 좌망의 경지를 말하고 있다
안회가 말했다 [저는 얻는바가 있었습니다.]
이에 공자가 물었다. [무슨 소리인가? ]
[저는 인의를 잊었습니다.], [됐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얼마 후 다른 날 다시 안회가 공자를 뵙고 말했다. [저는 얻는 바가 있었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지?] [저는 예악을 잊었습니다.], [되었어! 하지만 아직은 미흡해..]
다시 며칠이 지난 후인 어느 날 또 안회가 공자를 뵙고 말했다. [저는 얻는 바가 있었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지?] [저는 좌망하게 되었습니다.]
공자가 깜짝 놀라며 정색하고 물었다.
[무엇을 좌망이라 하느냐?]
안희가 대답했다. [손발이나 몸이란 것을 잊고, 귀나 눈의 작용을 물리쳐서 형체를 떠나고, 지식을 버리고 저 위대한 도와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을 좌망 이라고 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저 위대한 도와 하나가 되면 좋다 싫다 하고 차별 하는 것이 없어지고. 변환 유전하는 도와 하나가 되어 변하면 한군데에 얽매이는 일이 없어 자유롭고 걸림이 없는 경지가 된다. 너는 정말 현명하구나. 나도 네 뒤를 따라야 하겠다.
위의 인용문에서 심재와 좌망은 모두 무기(無己)와 상아(喪我)의 경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무기와 상아의 진실한 경지가 곧 심재이며. 심재의 의경이 곧 좌망의 의경이다. 심재와 좌망에 도달하는 과정은 바로 미적관조에로의 과정이다. 따라서 심재와 좌망은 미적관조가 성립될 수 있는 최후의 근거이기도 하다.
심재와 좌망에 도달되는 과정은 두 단계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는 마음이 욕망과 억압과 강요로부터 헤방되는 것인데 이것은 무용지용( 無用之用)에 도달하는 해결 방법이다. 둘째는 물(物)과 접할 때 인식작용을 억제하여 시비판단에 의한 마음의 번거로움을 없애는 것으로 정신적 자유는 더욱 증대 되어 진다.
장자는 심재(지식의 속박에서 해방)와 좌망(지식과 욕망에서 해방)을 통해서 정신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곧 허(虛)요, 정(靜)이요, 좌망(坐忘)이며 무기(無己)이자 상아(喪我)와도 일맥상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