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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동교회성실회동문회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아주 특별한 만남, 긴급제안
e춘섭(좋은아침) 추천 0 조회 712 06.09.07 06:43 댓글 3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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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09.07 08:03

    첫댓글 첫번째 : 내가 보광동교회를 처음 찾아갈 때가 고3때였다.76년 5월 , 이날이후 군에 입대하기까지 거의 매주 빠지지않고 열심으로 다녔다. 그때 살던곳이 지금의 안양집이었는데도... 지금 같은집에 살면서도 이제는 멀어져만 보이는 이유는 뭘까?

  • 06.09.07 12:22

    두번째 : 어려서 부터 다녀서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주일학교를 졸업하고 성실회 중고등부를 다니고(그때는 집과 교회, 학교 이 세군데만을 오가며 살던 때 이지요)... 76년에 땅넓은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초기에는 힘들때마다 성실회 추억을 조금씩 꺼내 먹으며 지냈답니다..."나의 10대를 몽짱 바친 곳=성실회"

  • 세 번째 : 1967년 2월, 80번 버스를 타고 보광동 종점에 내려 오산학교를 만나고, 보광동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때입니다. 지금도 40년전 버스를 타고 보광동 삼거리에서 종점으로 내려가며 좌우를 살펴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제가 보광동교회를 만난 것은 오산중학교에 다니게 된 까닭이고, 오산중학교에 다니게 된 것은..... 이야기가 좀 깁니다. 운명이랄까... 선택이랄까... 아무튼 보광동교회에선 수 많은 신앙의 선배님들과 친구들을... 오산에선 남강 이승훈, 함석헌 등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 06.09.07 22:01

    네번째 : 난 언제 부터 교회에 나가게 된지는 모르지만 그때에 나에 놀이터는 아마도 느티나무가 있는 염소 우리 옆에서 일것이구 울 여자아이들 놀고 있는곳에서는 항상 개구진 남자 아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춘수, 경수, 석웅, 등등 많은 아이들이 울 여자아이들을 많이도 괴롭였는데 지금은 서리내린 흰머리들이 되였으니....19일날 만남을 기대합니다.

  • 06.09.07 23:40

    다섯 번째 : 유치부 재롱잔치에 나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네요. 주일학교를 거쳐 성실회를 다니면서도 교회생활에 잘 적응하지는 못했습니다. 내적으로 뭔가 갈등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 예배와 함께 기타치며 노래하는 것을 허락한 보광동 교회는 시대를 앞선 참 좋은 교회였습니다. 늦게나마 좋은 동문들과 함께 하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 06.09.08 01:26

    초등학교 3학년때 쯤 우리가 교회 바로 옆집에 이사오면서부터 보광동교회에 다니기시작 했고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중에 하나가 어릴적 (초등3?) 크리스마스 발표회 준비로 교회에서 연습하던 중에 잠시 난로가에서 쉬고 있는데 누군가 연탄난로 위에서 물이 펄펄 끊고 있는 요담프를 건드리는 바람에 끊는 물이 터져서 내게 다 쏟아진거에요. 다행히 교회 바로 밑의 의원에서 치료를 잘하여 상처는 남지 않았지만 그해 크리스마스엔 발표회는 고사하고 교회도 못가고 홀로 집에서 지내야 했었답니다.ㅠㅠㅠ 교회를 못가서 얼마나 섭섭했었는지ㅎㅎㅎ

  • 06.09.08 08:07

    누님에게도 그런 슬픈 상처가...

  • 06.09.08 09:40

    나도적어볼까? 과거 성실회의 군기는 해병대보다 더 심했지! 행동이 선배의 비위에 거슬리면 바로 위 기수 선배들이 집합시켜 뭐~~나게 맞기도 했었지! 안 맞을려고 보광동 골목골목을 피해다니기도 하고 말이야! 왜그랳을까? 이후 내후배들은 맞은 사람이 없었는데... 기억이 안나서 그러니 혹시 맞은 후배 나와봐~~ 15기 선배 ! 지금 일대일로 붙으면 축 죽음이야~~ㅎㅎㅎㅎ

  • 06.09.08 11:56

    제 위로 누이가 세분이 (다 아시죠)보광동 교회를 출석 하신 관계로 막내인 제가 당연히(?) 나가게 되었지요. 성실회를 다니면서 신앙,인격, 모두 자랐지요... 이렇게 세월이 지난후에도 좋으신 선,후배님들과 계속된 만남이 그저 기쁠 다름입니다. 모두모두 승리 하는 삶 사시기 바랍니다

  • 06.09.08 12:27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보광동 산 4번지를 보여 주사 거기가 곧 온 세계라. 이리 촐싹, 저리 폴짝, 도로 풀썩, 시도 때도 없이 날아 다녔네... 이 후 성충되어 날아 다녀도 거기, 그때가 그립네........

  • 06.09.08 12:36

    무반주! 자네 맘이 내 맘이네 그려~~~

  • 06.09.08 17:06

    열번째!(선우 누이부터 번호를 안부르는 바람에 몇번짼지 세느라 눈이 다 아프네....ㅎㅎ) 가스펠 삼인방, 김경수 형과 도리자 호텔 숙박인들, 김강수, 김광조 두 형님과의 만남!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가스펠과 그 주역들인 삼김씨와의 만남이 맛남이었습니다. ^^*

  • 06.09.09 15:05

    나두 아주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갔는데, 수요예배때 의자에 누워 바라보던 천장의 높이와 빛깔, 그리고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들....처음으로 유치부에 갔을 때, 아침 일찍 일어나 종이돈 다려서 엄마 폼 따라하며 두 손으로 정성껏 헌금하던 일-지금도 주일마다 헌금할 때면 좀더 (쑥스러워서) 이쁜 자세로 못하는 게 안타까와.

  • 작성자 06.09.10 09:23

    12th; 초등학교6학년때 성탄절 연극했을때,로마병정역을 맡았던 일. 막이 오르면 첫번째로 로마병정(마카스)이 되어서 상대역인 로마병정(경수)에게 손을 흔들며 " 여어! 주리어스 수고가 많군그래...."하며 등장했었는데....40년이 지났는데도 그 대본이 기억에 나는데, 그 성탄극이 뭐였는지 함 찾아봐야겠음.

  • 06.09.11 16:31

    75년 경신고입학후 새로운교회를 찾던중 정순덕집사님 의 전도로 성실회3회졸업이신 어머니가 다시보광동으로다니심.그후봉석형이 울집으로 전도하러와서 성가의밤날 저녁예배부터참석하기시작.등나무아래서부르던노래와 성가대,교사,기청활동,선후배의만남이 결혼전까지 생활의모든것이었음다.

  • 06.09.11 22:31

    열네번째! 저희 고모 할머니가 개척하신 보성교회에서 꼬박 산 하나 동쪽의 교회로 온가족이 옮기면서 보광동교회 생활이 시작되었죠! 얼마전 79년도 메모수첩이 나오더니 이번에는 아예 79년도 일기장이 나와서(내 생애에 메모도 일기도 썼던 기억이없는데...) 열심히 교회생활 하던 기억을 많이 되찾게 되었습니다. 전주에서의 일. 가스펠이야기, '광조오빠에게 기타를 배우지 않겠다'라고 쓴 메모. 켐퍼스를 맨발로 누비던 일, 우리 동기들에대해 깊은 우정이 어린 글들(몰랐지? 친구들아?)..글들...그 당시 나에게도 분명 성실회는 삶의 1/3하고도 쩜 5 정도 많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 06.09.12 12:27

    열다섯번째! 제 위로 두언니와 동생(기호) 모두 교회를 다니시던 관계로 선,후배와 친분이 많았죠. 더구나 우리집이 정류장인양 선,후배님의 출입도 많았고 또 그만큼 라면 끓여대던 생각도 남니다. 청소년기시절 성실회를 뺀다면 남는 기억이 하나도 없을 만큼 많은추억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였죠. 어제일 처럼 생생한데.......모두 보고싶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4형제를 다 모르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 06.09.13 20:34

    나도 한마디 열여섯번째, 아마도 내가 제일 보광동교회에서 가까운 집에서 살았던거 같은데 바로 옆 골목집에서 살았고 늘 담넘어서 교회에가고 했으니까 ,유년부를 졸업하고 종고등부를 마치고 어리고 젊은시절을 전부 보광도교회에서 지낸것 같아요.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선물교환 과 밤새며 새벽송 돌기 여름에는 수련회 정말 다시는 돌아가지못할 추억어린 기억이 새롭습니다. 동문선후배 여러분 좋은 기억 잊지 마시고 항상 기억바랍니다.

  • 06.09.13 22:55

    Diez y siete(17) 보광동교회와 인연을 닿기시작한것은 물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지요.어릴적이었는데 기억은 안나구요 보광초등학교 6회 졸업생인 저는 중학교때 잠시 타곳에서 생활하다 성실회에 나온지는 관악고등학교 1학년 학생때일겁니다.성실회 동문들은 아니지만 함께 보광동교회에서 놀이터 삼아 뛰어놀던 어릴적 친구들도 많았답니다.보광동교회 계단아래서 부모님이 쌀집을 했던 친구 제갈성봉도 기억이 나네요.저희 집이 바로 보광동교회 계단 아래 길가에 있었거든요.고등학교때 주일학교 반사를 했었는데 그때 반 아이들이 지금은 같이 늙어가는 중년들이되어있겠지요. 믿음의 고향인 보광동교회를 사랑합니다.축복합니다!

  • 세넘중 성호입니다. 고1때부터 교회를 나갔읍니다. 교회 마당에서하던 짬뽕, 그공으로하던 축구, 삼거리 냉면,크리스마스 츄리공사, 가스펠성가등 기억이 많이납니다. 저보다 추억이 많으시겠지요. 선후배님들 건강이 우선입니다 감기조심하세요.

  • 지후배가 딸랑 영순 제수씨 하나구만 후배님들은 와 찾노....

  • 그래두 삼거리 동아냉면은 정말 묵구 싶다... 아~~~ 으~~~ 기호야 내려올때 포장해오면 안대겠~~니~

  • 06.09.15 11:18

    삼거리 바로 위 모퉁이에 있던 분식집 이름이 동아분식이었나? 몰랐네? ㅎㅎㅎ 어쨌든 싸고 맛있어서 삼거리 정류장 이용자들이 집에 가기 전에 출출한 속을 채우려 자주 들르다 보니 교회 청년들의 아지트가 되었던 듯 하네. 하지만 말이시.... 거기보다 더 죽여주는 곳이 있었어. 바로 미영, 미순 자매들 집이었다네. 어디냐면 교회에서 중거리 가기 전 중간 지점인데 어머니가 없을 땐 자매들이 손 크게(?) 만들어 주곤 했지. ㅋㅋㅋㅋ

  • 전 승~호~아 ! 정말루 올릴걸 빼먹는구나.. 주천인가? 수련회가서 물에 떠내려가던거 집사님이 튜브 던져서 죽다 살아났쟈녀.. 글구 또 있다 매운탕 잘 끌여놓은거 왜 지가 들구오다 모래판에 벌러덩 엎어버렸는지.... 에그 생각하니 사고 덩어리 였어~~~

  • 아~~~ 글구 지는 범임니다. ^^

  • 06.09.15 00:16

    세넘땜에 순서 모름니다. 27기 대표해서 사죄드립니다. 여튼 저는 중학생이던 때에 보광동교회도서관에서 주로 장난을 즐기는 편였습니다. 당시 도서관관장님 이랄까 아니면 총무님이랄까 하여튼 이춘섭목사님이 어느날 저의 행태를 정식으로 문제삼아 등나무아래로 호출, 하나님의 사자같은 근엄한 표정으로 꼴밤두대, 그시간 2층 본당쪽에서 내려오던 우신고2년학생을 호출 하시더니(고등부회장이라나 뭐라나,아마도 이름이 유길종이라든가) 이름 적히고 내일부터 성실회 출석하라는 엄명을 받고 성실회 생활이 시작 되었습니다. 이춘섭 목사님 고맙습니다. 꾸벅

  • 작성자 06.09.15 06:05

    선영아. 그러고 보니 내가 교회도서관책임자로 일할 때가 있었지! 지역사회 청소년들을 위하여 교회를 개방하여 학습을 돕던 기억이 나네.그때 네가 성실회랑 연결되었었구나! 고맙다. 그 기억을 되살려주어서.... 좋은 아침입니다.

  • 06.09.15 11:07

    김선영을 교회로 이끈 춘섭형 만세! 춘섭형을 도서관 책임자로 임명하신 분 만세! 도서관을 지역사회 청소년에게 개방하도록 하신 분도 만세! 도서관을 만들자고 아이디어 내신 분도 만세! 그 모든 분들이 속하여 활동하던 보광동교회 만세!!!! (김선영 한 명을 세상에서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 속에 많은 사람들이 얽혀 있구만요. 음... -.- )

  • 06.09.26 18:47

    카~~저두이쯤해서 한말씀올려야 겠슴니다 주일학교6학년 3일후면 성탄절행사로인해 별관에서 연극연습을 열심히 했답니다 장난치기좋아하는성격에 옆에서 다른연극연습하는 친구들이 (기억하기로는이혜욱.등등~)소품으로썼던 장난감큰칼,도끼,가위등등~~(제목이 엉터리의사인가로기억됨)신기해서 칼들고 한번휘들러지요~~그런데 갑자기 별이번쩍하는게 아니겠어요 당담했던 이 X 욱집사님이 장난친다구 따귀를때리는데 어린마음에 아프기도 하지만 얼마나서글펐는지(솔직히 여학생들때문에 쪽팔려슴) 바로별관을 뛰어나와 울면서집으로줄행량~~성탄정행사구 뭐구 다없어진거죠~~세월이흘러흘러 어느덧 중학교1학년2학기 가을인가해요 ~~

  • 06.09.26 19:05

    죄송~~ 글에대해선 무지라 간결하게안되니 이해해주셈~~ 동네에서친구들과 노는데 까만교복에 까만안경테를낀 고등학교형이 나타났어요 ^$^ 경수야교회가자 네하고 안갔어요 며칠있다가 또오신거예요 경수야교회가면 학생회모임이 유익하니 교회나가라고 설득설득~~(감사했지요 고넘에자존심 때문에 못가고있어거든요) 영광에성실회입회원서을 쓰게되었답니다 감사합니다 바로그분이 동문에까페회장이신 이춘섭목사님이세요!!! 춘섭이형살면서 항상감사하게 생각하고 산답니다 (힁설수설 지루하게해드려또죄송함)

  • 작성자 06.09.27 01:21

    ㅎㅎㅎ 경수야 고맙다... 네 맘을 몰라줘서... 항상 그런 마음을 간직하고 사는데... 이 나이들도록 자리 한번 마련해서... 식사한번 못하고 있으니.... 담에 함 만나자!!

  • 06.10.02 15:44

    옆집살던 최은숙누나의 전도로 중학교시절에 육상, 축구,배구 운동하고다녔지요,봉석이왈 제가우리교회에 ^^-^^ 하며 걱정했었답니다.조용한놈였는데 (원문,영기형이 선배지요) 젤로 그래도 기억남는건 애인없던시절 휴가나와 중학생부모님허가받고 영화보고온거 그것이유일한데이트라고나할까요,우리동기들하고 등산다닌거... 배추비닐봉지에묶어서 끌고다닌거...

  • 06.10.04 11:55

    그래...울 동기들 하고 등산 정말 많이 다녔어....그때 기억 참 많이 난다....특히나 처음 이민 갔을때, 시카고 근처엔 산이 없거든....얼마나 산에 가고싶던지.....많이 울었다 그때...등산가고 싶고...친구들 보고 싶고.....후후...이젠 맘 대로 볼수 있어 좋다!!!

  • 06.11.16 12:10

    멀리 떨어져 축제 무대에 함께 할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몇살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아저씨 손을 잡고 보광동 교회에 갔었지요. 은은히 들리는 풍금 소리 그리고 찬송소리 "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 졌으나....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갔지만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죠. 어머님으로 부터 보광동 교회가 용산 둔지미 (미 8군 자리)에서 보광동 종점으로 이전했다가 보광동이 훤히 보이는 언덕 위에 새로운 성전을 세웠다 들었습니다. 어릴적 교회에 세워진 뽀족한 십자가는 보광동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없어 졌지만

  • 작성자 06.11.16 13:35

    희창형. 어머니로 부터 들은 보광동 이야기 좀 해주시지요. 둔지미를 아시는 걸 보니 어머니도 초창기 교회멤버이셨던 모양입니다. 부모님 신앙내력에 대해서 친절하게 들려주시지요....

  • 06.11.22 14:19

    많은 보광동 토박이들은 원래 용산 둔지미란 곳에서 살았다 합니다. 둔지미는 과거 나라의 미곡들을 보관하고 있던 지역으로 그곳에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 ?)의 도움으로 교회가 세워졌고, 1945년 해방이 된 후 미군이 그곳에 기지를 만들면서 주민을 보광동으로 이주 시켰고 그때 교회도 함께 이전되어 지금의 보광동 파출소 가 있는 자리에 보광(동)교회란 이름으로 교회명을 바꿔 모이기 시작하였고 신형욱 목사님이 부임하여 보광동을 훤히 바라 볼 수 있는 언덕배기에 새로운 성전이 세워졌다 들었습니다. 어릴적엔 겨우 크리스마스때나 되어야 교회에 얼씬거리다가 중학생이 되서야 겨우 신앙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 작성자 06.11.22 21:03

    아마 둔지미에 미군기지가 들어서기 전에 일본군이 주둔했었다고 들었는데... 하여간에 둔지미 철거민들이 보광동동회있던 자리 근처로 옮겼다가 신목사님이 오셔서 보광동산4번지 언덕배기로 옮겨서... 미군부대등에서 건축자재 지원을 받아서 옛날교회를 지었다고 들었습니다. 하여간 구전을 종합해서.... 다시 정리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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