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1 – 4강
발터 벤야민의 매체 미학과 예술의 정치화
4강. 정치의 심미화와 예술의 정치화
* 일시: 2024년 9월 11일(수) 오후8시.
* 형식: zoom 온라인
* 강사: 정혁현
* 참석자: 정단희, 이샛별, 서선미, 서은혜, 이학승 (5명)
* 주 교재: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2017), 도서출판b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2007), 길
제2판 <기술적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 최성만 번역
영화에 대해서 설명하는 이 단락이 벤야민이 예술의 정치화라고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가장 명석한 프롤레타리아 계급 의식은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계급 의식이 있는 프롤레타리아트는 단지 외부에서 봤을 때만, 즉 그들을 억압하는 자들의 관념 속에서만 단단한 대중 덩어리를 형성한다. 그 계급이 해방 투쟁을 시작하는 순간, 겉보기에 단단한 그 덩어리는 실제로는 이미 느슨해진다. 그들은 단순한 반응들에 의해 지배받기를 그만둔다. 그들은 행동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느슨해짐은 연대의 작용이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연대 속에 개인과 대중 사이의 죽은 대립, 비변증법적 대립은 혁파된다. 그 대립은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존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혁명의 지도자에게 대중이 아주 중요하다면, 지도자의 가장 큰 업적은 대중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 속에 자신을 거듭 편입시킴으로써 항상 대중을 위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되는 데 있다. 계급 투쟁은 프롤레타리아의 단단한 덩어리를 느슨하게 만든다. 그러나 바로 이 계급 투쟁이 소시민의 덩어리를 응집시킨다. 구스타프 르봉이나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대중 심리학’의 대상으로 삼았던 대중은 소시민 덩어리이다. 소시민층은 계급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덩어리일 뿐이며, 그것도 그것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두 적대적인 계급 사이에서 처하게 된 압박이 크면 클수록 더욱더 단단한 덩어리가 된다. 이 소시민의 덩어리에서 실제로 대중 심리학이 말하는 정서적 요소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바로 그를 통해 이 단단한 대중은 집단적 이성을 따르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핵심 세력과 대립을 형성한다. 이 소시민의 대중에서 실제로 대중 심리학이 말하는 반동적 요인이 결정적 작용을 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직접적 반응들을 보이는 이 단단한 덩어리는 아주 임시적인 과제 남아 어떤 과제를 통해 매개된 행동들을 전개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핵심 세력과 대립한다. 그리하여 단단한 대중의 표출은 전적으로 공포에 빠지는 모습을 띈다. 이 공포에 빠지는 특성은 그 표출이 전쟁에 대한 열광을 표현하든,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을 표현하든, 아니면 자기 보존 본능을 표현하든 공통되게 나타난다. 단단한 대중으로서의 소시민적 대중과 계급의식이 있는 대중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 대중 사이의 차이가 일단 분명해지면 그 차이의 전략적 의미도 분명해진다. 구체적으로 말해 이 차이는 다른 어디에서가 아니라 원래 단단한 대중의 폭동이었던 것이 혁명적 상황의 결과 어쩌면 몇 초도 지나지 않아 한 계급의 혁명적 행동으로 변하는 경우, 결코 드물지만은 않은 그런 경우에서 그 정당성을 가장 잘 드러내준다. 그와 같이 진정으로 역사적인 사건들에서 독특한 점은 단단한 대중의 반응이 그 안에서 어떤 충격을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그 충격이 그 덩어리를 느슨하게 하며 나아가 그들 스스로를 계급의식을 가진 핵심 세력의 집합으로 자각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그러한 구체적 과정이 다급한 기간 내에 포함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공산주의 전술가들의 언어에서 소시민 계급의 지지 획득이라고 불리는 어떠한 것이다. 이 과정을 분명하게 밝히는 일에 독일의 혁명적 언론에서 늘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그 대중의 정서에 대한 무책임한 지적은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불행한 숙명이 되어버린 환상들을 촉진해 왔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파시즘이 이 법칙들을 통찰했든 안 했든 탁월하게 이용할 줄 알았다. 파시즘은 이 점을 알고 있다. 즉 파시즘이 지지해 주는 대중이 단단하면 단단할수록 소시민층의 반혁명적 본능이 그 대중의 반응을 지배하게 될 기회가 더 많아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나름대로 대중을 형성하게 하는 객관적 조건이든 주관적 조건이든 존재하지 않게 될 사회를 준비하고 있다.”
첫댓글 내용 정리 중지합니다. 강의 자료만 캡처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