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하나님의 피조물 중 가장 영광스런 존재였다가 죄에 빠져 헤매는 것을 보시면서 하나님의 심정은 과연 어떠할까요? 에스겔 18장 23절에서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문제를 놓고 깊이 고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다른 길이 없을까?'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긴 세월을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지키면 살고 구원을 얻는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기능은 부정적입니다. 율법의 목적은 율법을 받은 자들에게 모든 입을 막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하는 것이며(19절). 죄를 깨닫게 하는 일을 합니다(20절).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율법은 하나님의 본성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율법을 폐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본성을 공격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행하지 않고도 사람이 구원받을 다른 길이 없을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고민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정당화 시킬 수 있는가?'하는 문제입니다.
구원이란 죄인을 의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고 죄값대로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분입니다. 그런 분이 죄인을 의인으로 받아들인다면 하나님 자신이 공의로운 분이라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간과하심으로 즉, 고의로 못본체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고자 하시며(25절), 또한 자신의 거룩하심을 다치지 않으면서도 죄인인 우리도 의로운 자로 인정하시려는 것(26절)이 하나님의 고민거리 인 것입니다.
이상 두 가지 사실을 비추어 볼 때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일은 하나님께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은 율법을 지키지 못해도 구원받을 수 있고,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에 전혀 손상이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롭게 되는 길입니다. 이제는 율법을 못 지켜도 예수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21절) 이것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옛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 행위로 구원받는 율법시대에서 믿음으로 구원받는 복음시대로 넘어오는 위대한 전환점입니다.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 (21절)는 것은 율법의 폐기나 무효화가 아니라 율법을 지켜 구원받는 길이 아닌, 예수 믿고 의인이 되는 새 길을 하나님 자신이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 새로운 구원의 길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다 구원 받는 것입니다(22절). 23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영광을 빼앗긴 현재의 상태를 뜻합니다. 죄는 인간을 불의하게 만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의 희생죽음으로 인하여 우리가 의인되는 길이 열렸습니다(25절).
예수님의 죽음에는 세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구속입니다(24절).
십자가 사건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죄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해방시키신 '대신 지불’의 사건입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대적하여 그분을 진노케 한 것을 예수께서 대신 갚아주셨습니다. 죄를 위해서는 반드시 생명을 바쳐야 하는데(히 9:22) 이것을 예수께서 감당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25절).
화목제사란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고 거두게 하는 제사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참으로 무섭습니다(창 6:5~7). 그런데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창8:20~21). 예수의 제사는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친 유일한 제사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께 흡족했겠습니까!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잃어버린 영광을 다시 찾는 자리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우리의 의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을 대신 지키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키신 후 그 의를 우리에게 돌려 주셨습니다.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 (22절)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의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의롭다'는 것은 의인으로 취급해준다는 말입니다. 법정에서 재판관이 무죄를 선언하는 것처럼,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의를 넘겨 받았으므로 우리를 의인으로 취급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가 용서받는 길이 될 뿐 아니라, 죄인인 우리를 의로우신 하나님이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되었습니다.
'은혜' (24)란 자격없는 자가 거저 받은 것이므로 이것은 우리에게 기쁨이 됩니다. 우리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단지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다해 놓은 것을 믿음으로 받기만 하면 됩니다. 많은 사람이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성경 다음의 고전으로 손꼽고 있는데 주인공 '기독도'의 예수 믿기 전의 이름은 'Craceless (은혜없음)'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예수 모르면 은혜없이 사는 자요 예수 믿으면 은혜로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속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