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벳 드레스를 입은 자화상>에서는 파도가 몰아치는 어둠을 배경으로 길쭉하고 곧게 서있는 프리다 칼로다. 프리다 칼로는 살아가기 힘들 정도의 큰 교통사고를 당하여 여러 차례 수술과 병상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꿈이 의사였던 학업은 포기해야 했고 대신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프리다 칼로는 르네상스 고전적 대작들을 연구했고 그 기법들을 자신의 작품에 녹여서 표현했다. 작품 속 프리다는 슬퍼 보이면서도 당당하고 우수에 찼지만 강인하고 고상해 보인다. 침대에 누워 생활했을 때 그린 첫 번째 자화상으로 프리다 칼로 초기의 중요한 작품이다.
소아마비와 교통사고로 부서지고 깨져버린 자신의 삶 속에서 "이것이 운명이었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끓어안고 살아가는 운명애 愛, 그녀는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일어선다. 그 옛날 멕시코의 혁명의 전사처럼!
난 아프지 않아요.
그저 고장 난 것 뿐이에요.
하지만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저는 살아 있는게 행복해요.
/ 프리다 칼로
이 자화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화가 프리다 칼로의 모습과는 다르다. 긴 목과 얼굴의 윤곽은 실제 프리다 칼로 모습보다 더 슬프고 연약한 느낌을 준다. 벨벳의 드레스에 오른손으로 가슴과 어깨를 감싸는 모습이 다소 어색해 보인다. 이 작품은 프리다 칼로의 첫 자화상 작품으로 헤어진 남자 친구 알레한드로 고메즈 아리아스를 위해 그렸다. 그녀가 그의 애정을 회복하고 자신을 간직하기를 바라는 사랑의 증표로 그려 선물했다. 그녀의 사랑에 대한 바람이 담긴 선물에 효과가 있었고, 알레한드로가 초상화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프리다 칼로에게 돌아왔다.
귀족적인 포즈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에 대한 프리다의 관심을 반영한다. 이 자화상은 알레한드로가 동경했던 보티첼리의 '비너스'를 프리다의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1927년 앨리샤 칼란트의 초상화, 1927년 아드리아나의 초상화에서도 같은 스타일이 등장한다. 그녀 뒤에 있는 물결치는 바다는 생명의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프리다는 1926년 여름 이 자화상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9월 말 알레한드로에게 보냈다. 그녀는 그림 뒷면에 "알렉스를 위해"라는 헌신을 새겼다. 1926년 9월 17세의 프리다 칼로는 코요아칸-Heute Ist Imer Noch"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1927년 3월, 알레한드로의 부모는 그를 삼촌과 함께 유럽 여행으로 보냈다. 떠나기 전에, 그는 안전한 보관을 위해 그림을 프리다에게 돌려주었다. 이 자화상은 프리다가 디에고 리베라를 보여주고 그녀의 작품에 대한 그의 의견을 묻기 위해 찍은 네 점의 그림 중 하나였다. 그림을 본 후, 리베라는 이 자화상이 가장 독창적이기 때문에… 에 가장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처한 현실을 그린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스스로 필요하기 때문에 그리며,
별 생각없이 그저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그린다는 것이다.
(프리다 칼로)
I paint my own reality. The only thing
I know is that I paint because I need to,
and I paint whatever passes through my head
without any other consideration.
(Frida Kahlo)
프리다보다 스물 한 살 연상인 디에고는 일찍이 멕시코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민중화가였다. 프리다가 다니던 국립예비학교에서 벽화작업을 하던 디에고에게 자신이 앞으로 계속 그림을 그려도 되는지 평가해 달라며 프리다가 다가선 것이 결정적인 만남이었다. 이미 두 번의 이혼 경력이 있었던 디에고와 프리다의 결합을 두고 세상은 ‘코끼리와 비둘기의 만남’이라고 했다. 여성편력으로 유명했던 디에고는 프리다를 만난 이후에도 끊임없이 외도를 해 평생 프리다를 괴롭게 했지만 코끼리와 비둘기는 끈질긴 운명으로 끝끝내 서로의 곁에 머물렀다.
“나의 아들 디에고
나, 디에고
우주, 디에고
합일 속의 다양성
그런데 왜 나는 나의 디에고라고 하는 걸까
그는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그 자신에 속할 뿐이다.”
프리다의 다이어리에 남겨진 디에고에 대한 단상이다. 프리다는 디에고를 자기 자신이자 우주라고 하면서도 가질 수 없는 존재임을 표현하고 있다. ‘사랑이자 증오였으며 기쁨이자 지극한 고통이었고 갈망이자 짐, 희망이자 절망, 연인이자 강적’이라고 묘사되는 대상을 우리는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의 사랑도 깊숙이 들여다보면 이런 모습은 아닐런지. 그녀는 외적인 절망적 조건과 영감과 화풍속에서 안주하고 싶었던 소박하 마음까지 운명의 수레바퀴에 끌려 끝 없는 나락의 절벽으로 떨어져 갔으나 그림과 사랑 속에서 마치는 그시간 까지 넘어지지 않고 일어서 성스러움으로 자신을 이끌고 간 성녀聖女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