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올리는 포스트는 작년에 각자 따로따로 올렸던 세 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서 올립니다. 바로 키아누 리브스와 리버 피닉스, 그리고 조니 뎁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이들 중에서 가장 먼저 주목을 받았지만 가장 먼저 세상을 등진 리버 피닉스나 가장 늦게 주목을 받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배우보다도 흥행력있는 배우로 성장한 조니 뎁, 그리고 흥행적인 면에서는 항상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변화가 심하지만 그래도 꾸준한 배우 키아누 리브스. 이 세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시겠지만 리버 피닉스를 중심으로 친했던 관계였으며 적어도 초창기까지는 영화에 출연하는 스타일도 무척이나 흡사했던 배우들입니다. 아무래도 서로 친하다는 것은 서로의 성향도 비슷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지금은 대자본이 들어간 블록버스터 영화에도 자주 얼굴을 비추고 있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배우들은 아직도 전면에 나서서 흥행에 목을 맨 배우들이라기 보다는 어딘지 항상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추구했던 배우들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몇일전 10월의 마지막날이 리버 피닉스가 죽은지 14주년이 되는 날이었는데, 다시금 리버 피닉스와 함께 그와 절친했던 키아누 리브스, 그리고 조니 뎁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각기 글도 긴데, 세 글을 모두 합쳐놓으니 엄청나게 깁니다. 이점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Keanu Reeves
- 키아누, 자유로움의 그 이름 -
가끔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고 있는 할리우드의 배우들 중에 그 네임밸류에 비해 너무나도 평범하다못해 아웃사이더적인 삶을 살아가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배우들이 바로 키아누 리브스와 조니 뎁인데요. 대부분의 배우들은 물론, 그들의 사생활이 언론에 노출되는 걸 싫어하지만 어느정도 이러한 언론플레이를 즐기며 배우활돌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키아누 리브스라든가 조니 뎁 같은 경우는 그 인기에 비해서 아직까지도 언론을 기피하고 아웃사이더적인 모습으로 팬들에게 각인되고 있는 배우들입니다. 하지만 조니 뎁이 이제는 어느정도 가정을 꾸려서 팬들과도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생각하면 키아누 리브스는 아직까지도 자유인같은 평범한 삶으로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는 배우라 하겠습니다.
하와이안과 중국계가 섞인 아버지와 영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키아누 리브스는 어릴적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여러곳을 전전하며 어린시절을 보내게 되는데요. 결국엔 카나다 토론토에 정착해서 청소년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가 학창시절 가장 좋아했던 것이 카나다 청소년이면 누구나 하고 싶어하는 하키와 연극이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하키선수로 상도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키아누 리브스는 여러 학교를 전전하는 신세가 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의 자유인같은 삶은 이러한 어린시절의 경험이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또한 여지껏 그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도 그의 어머니의 영향이 가장 크지 않았을가 싶은데요. 아버지와의 이혼 후 키아누의 어머니는 수차례의 결혼을 하지만 항상 불행하게 결혼생활을 마치게 됩니다. 물론, 몇년전 약혼했던 여인이 사고로 죽는 경험을 하게 되는것도 키아누가 섣불리 결혼을 결심하지 못하는 이유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여하튼 배우가 되기로 한 키아누 리브스는 여러 연극 및 TV물에 출연하게 되는데요. 장편영화 데뷰는 [플라잉]이라는 영화로 알려져 있으며, 최초로 메이저 영화에의 등장은 로브 로와 패트릭 스웨이지가 주연을 맡았던 [영블러드]라는 영화였습니다. 그후 [river"s edge]와 [위험한 관계]등을 통해 이름을 알리게 된 키아누 리브스는 [엑셀런트 어드벤쳐]라는 영화를 통해서 그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리게 됩니다. 재미있는 건 원래 영화속 두 주인공이 맡은 배역이 원래는 반대였다고 하는군요. 이 영화의 성공 후 몇편의 영화에 더 출연을 하게 된 키아누 리브스의 초기작품들 중에 가장 중요하다할 수 있는 작품들이 바로 91년에 출연한 [포인트 브레이크]와 [아이다 호], 그리고 92년에 출연한 [드라큐라]입니다.
[영 블러드]에서 함께 출연했던 패트릭 스웨이지와 함께 공연했던 [포인트 브레이크]를 통해 멋진 서핑장면을 선사했으며 지금은 고인이 된 리버 피닉스와 함께 동성애연기를 펼쳤던 [아이다 호], 그리고 비록 조연이었지만 위노나 라이더의 상대역으로 인상깊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드라큐라]등을 통해 키아누 리브스는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의 스타로서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 후,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를 석권했던 베르나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리틀 부다]와 [드라큐라]에서 인연을 맺은 케네스 브레너가 감독 및 주연을 맡은 [헛소동]에 출연하게 되며 그의 배우생활에 일대전기를 마련하게 되는 히트작 [스피드]에 출연하게 됩니다. 당시만 해도 무명이었던 산드라 블록, 그리고 명배우 데니스 호퍼와 함께 출연했던 이 영화의 전세계적인 흥행으로 인해 키아누 리브스의 인기는 단연 상종가를 치게 됩니다.
하지만, [스피드]이후 더욱 빛날것 만 같았던 그의 경력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 이후 출연했던 [구름속의 산책], [코드명 J], [필링 미네소타], [체인 리액션]등이 줄줄이 흥행 및 비평에서 참담한 성적을 거두게 되며 속편에 출연예정이었던 [스피드 2]도 출연이 무산되게 됩니다. 흥미로운 건 [스피드]에서 무명의 산드라 블록과 공연을 했다면, [필링 미네소타]에서는 역시 무명이었던 카메론 디아즈와, 그리고 [체인 리액션]에서는 레이첼 와이즈와 공연을 했다는 점도 재미있는 사실입니다. 또한, [코드명 J]하면 발 킬머와의 인연이 생각나는데요. 원래 이 영화엔 키아누 리브스 대신 발 킬머가 출연키로 했었는데, 당시 발 킬머는 [배트맨 포에버]에 더 열중하느라 이 영화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배역이 키아누에게 돌아갔는데 영화가 망해버리는 바람에 출연하지 않는게 더 나을 뻔 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 [히트]에서 발 킬머가 맡았던 역은 반대로 원래 키아누 리브스가 하기로 했다가 키아누가 거절해서 발 킬머에게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작품이었던 [데블스 에드버켓]에서는 무명의 샤를리즈 테론과 공연하게 되지요. 대배우 알 파치노와 공연했던 이 영화는 [스피드] 이후 계속 출연하는 영화마다 죽을 쒔던 키아누 리브스가 다시금 일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키아누 리브스 개인적으로 최고의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매트릭스]에 출연하게 됩니다.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이 [매트릭스]의 주인공인 네오역을 참 많은 배우들이 후보에 올랐다가 미역국을 마신 역인데요. 네오역에 캐스팅 된 건 키아누 리브스에게 있어서 그의 배우인생의 가장 중요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 [매트릭스]가 공전의 히트를 함으로서 키아누 리브스는 당당히 최고의 개런티를 받는 배우대열에 합류하게 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서두에 키아누 리브스와 조니 뎁을 이야기했는데, 조니 뎁의 경우도 출연작에 비하면 솔직히 히트한 영화는 별로 없습니다. 캐리비안의 해적이 [매트릭스]처럼 히트하기 전에 흥행한 영화하면 고작 [슬리피 할로우]정도 입니다. 마치 키아누 리브스가 [매트릭스]로 성공하기 전에 흥행한 영화가 [스피드]밖에 없는 것처럼. 그리고 캐리비안의 해적이나 [매트릭스]가 계속 시리즈물로 나오는 것도 우연치고는 어찌 그리 두 배우의 행보가 비슷한지 신기할 뿐입니다.
하지만 [매트릭스] 성공후 키아누 리브스는 또 다시 흥행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그 이후 출연한 힐러리 스웽크와 공연한 [기프트], 제임스 스페이더와 공연한 [왓쳐], 진 해크먼을 출연시키기 위해 그의 개런티를 깍았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영화 [리플레이스먼트], 다이안 레인과 함께 공연했던 [하드볼], 그리고 [데블스 에드버킷]에 이어 또 다시 샤를리즈 테론과 연인으로 등장했던 [스윗 노벰버] 등이 줄줄이 흥행 참패, 혹은 겨우 제작비를 건질둥 말둥하는 아슬아슬한 성적을 올리고 맙니다.
그랬던 그가 다시 흥행몰이를 하게 되는 영화가 바로 [매트릭스]의 속편들인 [리로디드]와 [레볼루션]입니다. 그동안 체면을 구겨왔던 키아누 리브스가 다시 네오로 돌아와서 그간의 부진을 한꺼번에 만회하는 순간입니다. 재미있는 건 키아누 리브스하면 정말 조각같이 잘생긴 얼굴에 멜로물이 가장 어울릴 것 같은 배우인데, 그가 출연하고 흥행한 영화들을 살펴보면 멜로물들은 하나같이 흥행에선 전멸을 하고 약간 안어울리는 듯한 액션물들은 흥행에 성공을 했습니다(물론 실패한 영화도 있지만). 아무래도 멜로물 같은 경우는 연기력이 어느정도 뒷받침이 되야하는데, 이런 점에서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력에 대해서 의문부호를 붙이는 분들도 참 많더군요. 물론 그 의견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제 생각엔 그가 여지껏 출연했던 멜로물들이 솔직히 밋밋한 멜로물들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다지 작품선택이 좋지 못했다는 쪽이 더 가깝지 않을까요. 그 판단이야 어차피 여러분들의 몫이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그렇군요.
그 후 [사랑할 때 버려야 하는 아까운 것들]에서는 조연으로 출연해 깔끔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후 [콘스탄틴]이라는 SF물에 이어서 [스캐너 다클리]라는 실험성 강한 영화에 출연했던 키아누 리브스는 올해 우리들에겐 무척이나 인상깊은 영화에 출연합니다. 바로 이정재와 전지현이 주연을 맡았던 [시월애]의 할리우드 리메이크판인 [레이크 하우스]에 [스피드]에서 과거 호흡을 맞췄던 산드라 블록과 함께 출연해 더욱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키아누라는 그의 이름은 하와이 원주민들의 말로 "산 위에 부는 시원한 미풍"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하와이 계통인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지만 그 이름처럼 그의 화려했던 배우생활은 여느 배우들과는 틀리게 산위에 부는 바람처럼 화려해 보이기보단 그저 평범하고 자유로운 활동을 한 배우가 아닌가 합니다. 정말 잘생긴 외모지만 왠지 그의 모습을 보면 항상 쓸쓸함과 고독함이 베어있는 외모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실제로 그의 사생활 역시 개런티 몇천만불을 받는 배우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외로웠다고 합니다. 일각에선 그가 동성애자라느니, 양성애자라느니, 하는 말들도 많은데요. 그가 과거 사귀었던 여배우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주장은 별로 신빙성이 없어 보입니다. 엄청난 인기의 배우지만 그 역시 지금은 고인이 된 리버 피닉스나 조니 뎁 처럼 그만의 자유로운 생활을 추구하는 배우일 뿐입니다. 이런 사고를 가진 배우들에겐 언론이나 팬들의 지나친 관심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리버 피닉스가 죽었을 때 키아누가 언론에서 한 인터뷰를 보면 리버는 단순히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며 유명해진 후 개인생활를 가질 수 없음에 화가 나고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것을 통제하지 못해 끔찍한 일어 벌어졌으며 자신은 지금도 매일매일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했던 인터뷰가 생각납니다. 케빈 클라인이 주연을 맡았던 [바람둥이 길들이기]라는 영화에서 함께 출연했던 키아누와 리버는 [아이다호]의 동반출연을 제의받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영화속 캐릭터에 푹 빠져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반드시 함께 출연하기로 약속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인기인으로서 팬들을 외면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리버 피닉스나 조니 뎁이나 키아누 리브스, 이들은 영화의 성공이나 팬들의 갈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순수한 모습을 지키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도 자유인처럼 살고 있는 키아누 리브스의 모습을 보면 그러한 그의 평소의 지론이 더욱 이해가 갑니다. 단지 인기가 있다는 이유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자기 본연의 순수한 모습을 말입니다.
[매트릭스] 출연진과 함께
마지막으로 키아누 리브스의 평소의 연예인으로서의 모습과 팬들 및 언론을 대하는 자세, 그리고 여성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그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내가 자유롭지 못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것에 반대한다.
그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나는 미키 마우스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안에 누가 들어있는지 알지 못한다."
"신비롭고 환상적이며 그 한없이 깊은 여자라는 존재를 안다는 건 언제나 놀라운 일이다.
만약 당신이 여자를 웃게 만든다면 당신은 신이 만들어 놓은
이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이다"
River Phoenix
-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
"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 - 이용의 "잊혀진 계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라는 노래의 첫 구절입니다. 이 노래가 나온 후로 해마다 시월의 마지막 밤이 되면 어김없이 이 노래가 흘러나오곤 했는데요. 물론 여러가지 의미로 그 날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필자를 비롯한 일부 영화팬들은 그 시월의 마지막 밤이 되면 바로 이 배우를 기억하고 추억에 젖습니다. 바로 23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 리버 피닉스라는 배우를 말입니다. 워낙에 이른 나이에, 그리고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영화에 거의 출연한 경력이 없는 관계로 그를 제대로 기억하는 팬들은 정말 그를 사랑하는 골수팬들이라 할 수 있는데요. 아마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영화사에 많은 족적을 남겼을 배우로 기억되기에 그의 너무 이른 죽음이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의 가슴속을 아프게 합니다.
리버 피닉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할리웃 영화계의 아웃사이더로서의 이미지입니다. 그와 비슷했던 대표적인 배우하면 조니 뎁과 키아누 리브스가 있는데, 실제로 리버 피닉스는 두 배우와 절친한 사이를 유지했었으며 그가 최후를 마친 클럽 또한 조니 뎁이 소유했던 클럽이었다고 합니다. 많지 않은 필모그라피 속에서도 키아누 리브스와 영화속에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리버 피닉스. 일전에 소개해드린 키아누 리브스의 이야기속에서 그가 얼마나 리버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가슴아파 했는지 설명을 드린적이 있습니다. 리버, 그 또한 독특했던 유년시절의 영향이 그의 짧은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 배우이기도 한데요. 다섯 형제중 첫째로 태어난 리버 피닉스는 전도활동을 위해 남미 여러나라들을 떠돌아다닌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렸을 적부터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여러 나라를 떠돌아 다니게 됩니다. 4살때부터 직접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7살이 되어 부모님의 전도활동 포기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연기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인정받은 리버는 여러 광고 및 TV드라마에 출연하게 되며 1985년 에단 호크, 제이슨 프래슨과 함께 공연한 [컴퓨터 우주탐험]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스크린에 데뷰를 하게 됩니다.
컴퓨터 우주탐험(1985)
똑똑한 과학도 어린이인 볼프강역으로 출연했던 이 영화는 [그렘린]시리즈를 만든 조 단테가 감독을 맡았던 영화로 아역시절의 에단 호크의 모습과 함께 리버의 순수했던 소년시절을 감상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물론 흥행에는 실패하지만 리버 피닉스의 존재를 가장 처음 알린 영화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영화이며,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든 영화는 그 이듬해 출연한 스티븐 킹 원작, 롭 라이너가 연출을 맡은 [스탠 바이 미]라는 영화입니다.
스탠 바이 미(1986)
이 영화에서 리버는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힘든 생활을 하지만 특유의 리더쉽으로 친구들을 이끄는 크리스역으로 출연해 어린나이임에도 꽤나 성숙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북미극장가에서도 흥행에 꽤 성공을 거두며 리버 피닉스라는 천재 아역배우의 탄생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영화로 기록됩니다.
모스키토 코스트(1986)
허공에의 질주(1988)
그 후, 리버는 미국사회에 환멸을 느껴 유토피아를 찾아 고행을 하는 발명가로 등장하는 해리슨 포드의 아들역으로 나온 [모스키토 코스트]를 거쳐 [아이다호]와 함께 그의 출연작중 최고의 칭호를 받았던 [허공에의 질주]에 출연하게 됩니다. 재미있는 건 할리우드 역사상 특정 배우의 아들역과 아역시절을 모두 연기한 배우가 리버를 포함해서 딱 두명이었다고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모스키토 코스트]에서는 아들역으로, 후에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에선 해리슨 포드의 아역시절역을 맡았었습니다. 그리고 시드니 루멧 감독의 [허공에의 질주]라는 영화에선 도피생활을 하는 부모를 둔 아들역으로 정신적인 상처를 입은 고뇌하는 소년의 모습을 리얼하게 표현해내 그이듬해 아카데미에서 남우조연상 후보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아쉽게도 수상은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에 출연했던 케빈 클라인에게 돌아가는데요. 재미있는 건 아카데미 시상식때 리버와 케빈 클라인은 [바람둥이 길들이기]라는 영화를 함께 촬영중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허공에의 질주]라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리버의 연기는 어렸을적부터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닌 유년시절의 경험이 영화속 캐릭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KGB의 아들(1988)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1989)
지미의 사춘기(1988)
그 후 리버는 최초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명배우 시드니 포이티어와 함께 [KGB의 아들]이란 영화와 10대를 위한 코메디물 [지미의 사춘기], 그리고 해리슨 포드의 아역연기로 인상깊었던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에 연이어 출연하게 됩니다. 이같이 여러 영화에서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며 당시만 해도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서 거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갑니다. 하지만 그에겐 배우로서 그동안 쭉 유지되어온 아역의 이미지를 벗어내야할 과제가 있었는데요. 그가 본격적인 성인 연기자로서 출발하게 되는 계기가 바로 [바람둥이 길들이기]라는 코메디 영화입니다.
바람둥이 길들이기(1990)
이 영화에서 리버는 유부녀를 사랑하는 피자집 종업원역으로 등장해 그동안의 아역의 이미지를 어느정도 벗어버립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리버가 키아누 리브스와 처음 공연하게 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키아누 리브스와 함께 문제의 영화 [아이다호]에 출연하게 됩니다. [굿 윌 헌팅]의 감독인 구스 반 산트가 메가폰을 잡았던 이 영화에서 리버는 남창인 마이크역을 맡아 반항적이면서도 고뇌에 가득한 방황하는 젊음의 연기를 훌륭하게 보여줍니다. 제멋대로인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언제나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고향인 아이다호를 그리워하는 마이크의 모습을 연기함으로서 베니스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전미 비평가 협회가 주관하는 남우주연상마저 수상, 연기파 배우로서 그의 진가를 확실하게 다지게 됩니다. 하지만 평범하지 못했던 영화속 그의 캐릭터 만큼이나 평상시 안정적이지 못했던 리버는 점차 마약의 세계에 더욱 깊숙히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점점 유명해지고 그의 연기력을 인정받을수록 리버는 점점 수렁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다호(1991)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하룻밤(1991)
스니커즈(1992)
콜리드 러브(1993)
사일런트 저스티스(1993)
카우걸 블루스(1994)
그 후 리버는 못생긴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해병대원역으로 등장한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하룻밤], 그리고 로버트 레드포드, 시드니 포이티어와 함께 공연했으며 천재적인 해커역으로 등장했던 [스니커즈], 그리고 가수역으로 등장했던 [콜리드 러브], 리차드 해리스와 공연한 [사일런트 저스티스], 우마 써먼이 주연을 맡았던 [카우걸 블루스]에 연이어 출연하며 평소 그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해왔던 배우 조나단 프라이스와 함께 [어두운 피]라는 영화를 촬영하던 도중 1993년 시월의 마지막 날 밤, 조니 뎁이 소유했던 클럽에서 약물 과다복용으로 그만 요절하고 맙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앙코르], [글레디에이터]의 호아킨 피닉스의 친형이기도 한 리버 피닉스. 호아킨 피닉스가 [앙코르]를 찍을 때 어려서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되는 쟈니 캐쉬의 감정연기를 하는데 어려서 실제로 형을 잃었던 충격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와 절친했으며 성향이 비슷했던 조니 뎁이나 키아누 리브스가 최고의 배우로 성장한 모습을 보면 리버 피닉스라는 배우의 존재가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것입니다. 이제는 팬들을 아끼고 그들과 함께 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조니 뎁이나 아직까지도 언론을 피해 다니며 자유로움을 갈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키아누 리브스를 보면 리버 피닉스도 그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얼마나 그를 힘들게 했으며 오죽했으면 마약에 의지하게 되었는지 쉽게 짐작이 갑니다. 정말, 연기가 좋아서, 그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지만 유명스타가 겪어야 할 말못할 정신적인 고통은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리버 피닉스와 조니 뎁, 그리고 키아누 리브스를 비교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조니 뎁도 한때 일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다 마약에 심취한 적이 있었으며, 키아누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한동안 방황했던 적이 있듯이 리버 또한 여러 여배우들과 안타까운 사랑을 나눈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조니 뎁의 클럽에서 죽었을 때도 [콜리드 러브]에서 함께 공연했던 사만다 매티스라는 여배우가 마지막까지 그와 함께 있었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세 배우가 배우활동 이외에 밴드활동을 했었다는 것도 참 신기할 정도로 공통점이라 할만 합니다.
그의 이름처럼 자연주의자 였으며, 동물을 사랑했고 채식주의자였던 리버 피닉스. 물론 그가 젊은 나이에 요절했기 때문에 이만큼 다시 평가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많지 않은 그의 출연작들을 보아온 팬들에겐 만약에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얼마나 많은 영화에서 더욱 인상깊은 연기를 펼쳤을까 하는 아쉬움에 그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간절하게 됩니다. 만약에 그가 죽지 않고 [토탈 이클립스]의 랭보역을 맡았다면,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크리스챤 슬레이터가 맡았던 역을 연기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참고로 위 두 영화는 원래 리버 피닉스가 출연하기로 했지만 그의 사망으로 인해 다른 배우에게 배역이 돌아간 케이스입니다. 리버와 절친했던 록그룹 R.E.M의 리드싱어인 마이클 스타이프는 그들의 앨범 [몬스터]를 리버에게 헌정할 정도로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으며 레드 핫 칠리 페퍼스라는 록 그룹의 "transcending"이란 곡 역시 리버에게 헌정된 노래라고 합니다.
"그는 나의 형제였으며 정말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지독하고 끔찍한 실수
였다. 우린 정말 서로에게 많은 것을 배웠었다. " - 마이클 스타이프
그를 낳아주신 부모님과 형제들을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했던 리버 피닉스. 그의 본명은 원래 river jude bottom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헤르만 헤세의 유명한 소설 "siddhartha"에서 river라는 이름을 생각해냈으며, 중간 이름인 jude는 유명한 밴드인 비틀즈의 명곡 "hey, jude"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또한 두명의 그의 조카가 리버가 죽은 후 그를 기리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데, 그의 동생인 리버티 피닉스는 그의 아들에게 리오 에버레스트 피닉스라는 이름을, 그리고 썸머 피닉스는 인디아나 에플렉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리오는 스페인어로 리버를 뜻하며 실제 리버 피닉스의 애칭으로 불리었던 이름입니다. 그리고 인디아나는 잘 아시듯 리버가 출연했던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에서의 이름을 뜻합니다. 피닉스라는 성은 남미생활을 정리한 후 미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태어났다는 의미로 바꾼 것이라고 합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더욱 생각나는 배우 리버 피닉스. [아이다호]에서 고향인 아이다호의 풍광을 그리워했던 그의 모습처럼, 자연을 사랑했던 그의 이름처럼 자연속으로 돌아간 배우 리버 피닉스. 단순히 요절했기 때문에 그리운 배우가 아닌, 그 나이에 정말 연기를 잘했으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항상 힘들고 고뇌했던 한 배우의 너무 이른 퇴장에 그가 더욱 보고싶고 그리워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를 그리워하는 많은 팬들은 지금도 시월의 마지막 밤이 되면 그를 기억할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 사진 출처 *
duckyg님의 블로그 / domotokai님의 블로그
Johnny Depp
- 파란만장한 그의 영화세계 -
나이트메어(1984)
조니 뎁(Johnny Depp)이라는 배우는 솔직히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무척이나 힘든 배우중에 한명입니다. 1963년 미국 켄터키주에서 태어난 조니 뎁은 과거 아메리칸 인디언인 체로키 인디언의 피가 섞여서인지 약간은 동양적인 이미지가 돋보이며 보는 분에 따라서 매우 매력적으로 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또한 보는분들에 따라서는 왠지 반항적이고, 때론 우수에 차 있는듯한 모습, 그리고 때론 어딘가 아픈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피골이 상접(제 개인적인 생각임)하고 몽환적인 이미지가 부각되어온 배우입니다. 21살의 나이에 영화계에 데뷰를 해서 20여년째 활약을 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그의 데뷰작은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호러물 나이트메어입니다.
가위손(1990) 에드우드(1994) 데드맨(1995)
그 후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에서의 단역을 거쳐서 팀 버튼의 가위손이라는 영화로 우리에게 그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는데요. 그 뒤에 발표된 길버트 그레이프라는 영화로 국내에도 그의 이름을 꽤나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조니 뎁은 베니와 준, 아리조나 드림, 에드 우드, 돈 쥬앙 등 여러편의 영화에 출연을 해왔는데요. 이 조니 뎁이라는 배우는 솔직히 국내나 해외에서의 명성에
비하면 솔직히 흥행배우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길버트 그레이프(1993)
위에 열거한 여러 영화들은 조니 뎁이라는 배우의 강렬한 이미지를 각인시키기엔 충분했지만 왠지 흥행을 위한 배우라기 보다는 아웃사이더적인 느낌이 더 강렬했던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경향은 그의 피속에 흐르고 있는 왠지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인디언의 피가 어느정도 그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까지 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작품세계는 한동안 이어지게 됩니다. 데드맨, 도니 브래스코,애스트로넛, 나인스 게이트까지. 역시 조니 뎁이라는 찬사는 항상 이어지지만 도무지 흥행하고는 항상 거리가 있어왔습니다.
돈 쥬앙(1995) 닉 오브 타임(1995) 애스트로넛(1999)
그후 그의 작품중에 최초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바로 팀 버튼과 함께 작업한 슬리피 할로우인데요. 이 영화로 드디어 조니 뎁도 흥행배우의 반열에 오르나 싶었는데 그 후 출연한 영화들이 비포 나잇 폴스, 초콜릿, 블로우 등 흥행하고는 역시나 전혀 상관이 없는 개성이 강한 영화들에만 출연을 해왔습니다. 이만하면 이 조니 뎁이라는 배우의 작품을 고르는 성향이 어느정도 짐작이 가는데요. 쉽게 말해서 그 작품의 성공여부가 작품선택의 기준이 아니라 주로 뛰어난 감독 및 주제의식이 강한 작품들에 주로 출연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니 뎁하면 많은 분들이 가장 먼저 팀 버튼을 떠올리는데요. 물론 조니 뎁의 작품 중 가장 많은 작품을 작업한 감독은 팀 버튼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가 출연했던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본다면 정말 훌륭한 감독들과 많은 작품을 해왔음을 알 수 있는데요. 데뷰작인 나이트메어의 웨스 크레이븐, 플래툰의 올리버 스톤, 가위손, 에드 우드, 슬리피 할로우의 팀 버튼, 길버트 그레이프, 초콜릿의 라세 할스트롬, 아리조나 드림의 에밀 쿠스트리차, 데드맨의 짐 자무시,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에서의 테리 길리암, 도니 브래스코의 마이크 뉴웰, 나인스 게이트의 로만 폴란스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의 로베르토 로드리게스, 네버랜드를 찾아서의 마크 포스터까지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던 감독들부터 자신만의 독특한 영상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감독들까지. 영화의 흥행보다는 작품성을 더 우선시하는 그의 성향을 볼 수가 있습니다.
도니 브래스코(1997)
그런 점에서 그가 제리 브룩하이머와 손을 잡고 캐리비안의 해적에 출연을 결정했을때는 약간 의외였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는데요. 아시다시피 캐리비안의 해적은 기존에 그가 출연해왔던 영화들과는 스케일자체가 틀린 거대자본이 들어간 블록버스터 오락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터뷰에서 밝힌, 조니 뎁이 이 영화에 출연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한마디로 자신의 아이들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어서라고 합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지요? 조니 뎁 그에게 있어서는 거대 자본이 들어간 블록버스터 영화에 출연한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들이 즐겁게 볼 수 있는 그저 또 다른 한편의 영화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캐리비안의 해적이란 영화로 조니 뎁은 그해 아카데미에서 남우 주연상 후보에까지 오르게 되는데요.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1998)
나인스 게이트(1999)
블록버스터 오락영화에 출연한 배우치고 제 기억으로도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가 없질 않았나 싶을 정도로 후보에 오른것 자체로도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만큼 영화속 그의 연기가 상당히 인상 깊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펄의
저주의 엄청난 흥행으로 드디어 이 조니 뎁이라는 배우도 최고흥행배우의 반열에 이름을 올려놓습니다.
슬리피 할로우(1999)
하지만 조니 뎁은 여타 배우들처럼 흥행에 연연하는 배우는 아니었습니다. 캐리비안의 해적의 엄청난 흥행 뒤 그가 출연을 결정한 영화는 바로 몬스터 볼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던 마크 포스터 감독의 네버랜드를 찾아서라는 영화인데요. 잘 아시겠지만 유명한 어린이 동화 피터팬을 쓴 J.M.배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조니 뎁은 캐리비안의 해적에 이어서 2년 연속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릅니다. 물론 이번에도 후보에 오른것만으로도 만족을 해야했으며, 그를 좋아하는 팬들로선 무척이라 안타까운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비포 나잇 폴스(2000)
비포 나잇 폴스(2000)
당시 외신을 보니 캐리비안의 해적때도 그랬지만 네버랜드를 찾아서때도 조니 뎁은 아카데미에 평소부터 그다지 흥미가 없어서 영화제 참석자체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다분히 평소 자유분방스러운 그의 기질이 엿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후 조니 뎁은 다시 팀 버튼과 함께 찰리와 초콜릿 공장, 그리고 유령 신부에 연이어 출연을 하는데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선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약간은 악동기질의 코믹한 모습을 팬들에게 선사했으며 주인공 빅터의 목소리 연기로 출연한 유령 신부의 경우는 주인공의 캐릭터를 조니 뎁의 모습을 본 떠서 만든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조니 뎁과 너무나도 닮은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울러 올해 개봉된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가 전편에 비해서 약간 부족한 듯한 느낌을 주긴 했지만 그의 변함없는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였으며 곧 공개될 새 영화 [스위니 토드]를 통해서는 또 한번 팀 버튼과의 찰떡궁합을 과시할 예정이며 오랜만에 복수심에 가득찬 광기어린 모습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초콜릿(2000) 블로우(2001)
몇일 전 외신에서 팬들이 조니 뎁이라는 배우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 10가지라고 해서 발표한것이 있었는데요. 그 내용을 살짝 살펴보자면 우선은 그의 멋진 외모를 들더군요. 약간 골은 듯한 광대뼈가 돋보이는, 하지만 우수에 가득 찬 듯한 갈색 눈동자. 동양적인 이미지와 서양적인 이미지가 골고루 섞인 매력적인 외모. 그리고 두 번째로는 그의 유별난 자식사랑을 꼽았는데요.
프롬 헬(2001)
현재 조니 뎁은 98년부터 사귀기 시작한 프랑스 출신 여배우이자 가수인 바네사 파라디와의 사이에 두 아이를 두고 있는 아빠입니다. 조니 뎁하면 과거에도 여러 여배우들과의 염문이 많은 화제가 되었었는데요. 데뷰초에 이미 로리 앨리슨과의 결혼 경험이 있었으며 그 후 더티 댄싱의 제니퍼 그레이, 그리고 트윈 픽스의 셰릴린 펜, 그리고 가위손에서 함께 공연했던 위노나 라이더도 있었습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2003)
셰릴린 펜을 사귈때는 영화 플래툰에 출연중이었는데 극중 그의 헬멧에 그녀의 이름을 새겨넣고 촬영에 임할 정도였으며, 또한 조니 뎁은 위노나 라이더를 무척이나 사랑해서 그의 몸에 그녀의 이름을 문신새겨 넣을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그녀와 헤어진 후 만난 여인이 슈퍼모델 출신의 케이트 모스였습니다. 그녀와는 여러 기사들을 통해서 무척이나 정렬적인 사랑을 나눴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그녀와 사귀는 동안 한때 마약과 폭력으로 얼룩진 일도 있었지만요. 그녀와 헤어진 후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바네사 파라디스와 결혼은 하지 않은 채 오랜시간 동거만 해 오고 있습니다. 왠지 첫 결혼의 실패와 평소 구속되는것을 싫어하는 조니 뎁의 스타일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펄의 저주(2003)
하지만 행복하게 살기만 한다면 결혼이 문제겠습니까. 아무튼 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이에 대한 조니 뎁의 사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하는데요. 몇일 전 외신에서 조니 뎁이 자신의 집 앞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 업체를 고소한적이 있는데요. 그 이유가 멋집니다. 자신의 아이들이 느껴야할 따스한 햇빛을 방해한다는 이유라고 하는군요. 자신의 아이들이 즐겁게 볼 영화를 위해 영화에 출연까지 하는 조니 뎁이니 그럴만도 합니다. 평소 조니 뎁의 모습을 보시면 그의 팔에 플라스틱같은 것으로 만든 예쁜 팔찌가 보이는데요. 그의 딸이 만들어 준것이라고 하는군요.
네버랜드를 찾아서(2004)
또 다른 그의 매력중 하나는 온 몸에 걸쳐서 새겨진 문신이 있는데요. 전에 위노나 라이더와 사귈때는 그녀의 이름을 몸에 새겼었는데요. 지금은 그의 두 아이들의 이름을 몸에 새기고 있다는군요. 온 몸에 두루 걸쳐있는 문신이 전부 12개나 된다고 합니다. 그가 문신을 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의미있는 경험을 몸에 새기며 영원히 기록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시크릿 윈도우(2004)
그리고 그는 그의 인기에 비해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는데요.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배우가 되었음에도 그의 생활은 이전의 털털한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그리고 언제, 어느 순간에도 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리버틴(2004)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그의 독특한 스타일인데요. 조니 뎁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게 연세 드신분들이 주로 쓰는 중절모와 안경, 그리고 다듬어지지 않은 수염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약간은 복고풍의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데요. 특이하다가 보다는 약간은 자연스러우며 생각보다 까다롭지 않은 스타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보았던 약간은 악동적인 기질은 평소의 조니 뎁을 잘 아시는 분들이면 쉽게 수긍이 가는 모습이라고 하는군요. 그렇다고 못된 이미지의 악동이 아니라 평소 촬영장에서 장난끼가 가득한 모습으로 같이 촬영하는 배우들이나 스탭들을 즐겁게 해주는 경우도 자주 있다고 합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
또한 그는 악마숭배 가수라는 오명을 받고 있는 마릴린 맨슨과도 상당히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다분히 아웃사이더적인 그의 성격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며, 무엇보다도 조니 뎁이라는 배우를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점은 지금까지 소개한 여러 영화들에서도 보아왔듯이 변화무쌍한 그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한 없이 착한 역으로 나오는가 싶으면 왠지 좀 멍청하고 어리어리한 모습에, 또 어떤 영화에선 약간은 비열하다가도 때론 심하게 진지한 모습까지.
유령 신부(2005)
아마도 이러한 다양한 영화속의 모습과 평소 조니 뎁의 인간성등에 많은 팬들이 매료되어 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고로 팬들에게 항상 고마워할 줄 알고 항상 겸손한 마음을 잃지 않는 배우가 오래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제는 연기력이면 연기력, 흥행하면 흥행, 어느것 하나 빠지지 않는 명실상부한 최고배우의 위치에 올라선 조니 뎁. 과연 앞으로 또 어떤 놀라운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지 지금까지의 모습도 좋았지만 앞으로의 모습이 더욱 더 기대되는 배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여지껏 그가 보여주었던, 물론 대작 영화들도 좋긴 하지만 그만의 독특하면서도 개성있었던 영화속의 다양한 스타일에 도전하는 모습을 앞으로도 보여주길 바랍니다.
캐리비안의 해적 - 망자의 함(2006)
키스 리차드와 빌 나이, 그리고 조니 뎁
마지막으로 조니 뎁의 경력중 재미있는 것 두가지는 P라는 그룹의 기타리스트로 음반까지
발매를 하였으며 97년에는 브레이브라는 영화를 감독해서 깐느영화제 본선 경쟁부문까지
진출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초콜릿에서 나오는 기타치는 낭만적인
모습이 그냥 흉내만 낸것이 아닌것 같군요^^< bod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