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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담동산 원문보기 글쓴이: 윤에녹01072337153
I. 초림과 재림(9-12절)
1. 9, 10절,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하십니다.
a. 9절이 초림의 사건을 예언한 말씀이라면 10절은 재림에 때에 일어날 일에 관한 예언입니다. 9절이 겸손히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십자가에서 대속의 사역을 감당하실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 10절은 예루살렘으로 재림하시어 바다에서 바다까지, 유브라데 강에서 땅끝까지 통치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재림하시어 세상을 통치하실 때, 에브라임과 예루살렘에 병거와 말이 사라지고, 전쟁하는 활도 사라지고, 이방 사람에게도 주님이 주시는 화평, 샬롬의 평강이 임하게 될 것이라 하십니다. 샬렘 왕이 되신 예수님이 재림하시어 세상을 다스릴 때 비로소 예루살렘이 ‘예루샬라임'(Yerushalaim)’, ‘평화의 마을(성읍)’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엣세네파의 일파로 쿰란 사본을 남긴 쿰란 공동체는 구약 성경에 기록된 메시아에 관한 예언들을 공부하면서 구약 성경 안에 ‘고난받는 메시아’와 ‘영광받는 메시아’라는 각기 다른 예언들이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본문 9절과 이사야 53장에는 고난받는 메시아에 관한 기록이 등장하고, 본문 10절과 이사야 63장에는 영광받는 메시아에 관한 기록이 등장하는데, 이 때문에 쿰란 공동체는 장차 이스라엘 땅에 두 명의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난받는 메시아에겐 형들에게 종으로 팔려 애굽 땅에서 고난을 겪은 요셉의 이름을 따서 ‘요셉의 아들’ 즉 ‘벤 요셉’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영광받는 메시아에겐 ‘다윗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벤 다윗’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고난받는 메시아와 영광 받는 메시아가 각기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의 때에 이루어질 예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메시아가 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b.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예언의 말씀을 통해 초림과 재림의 사건이라는 두 개의 산봉우리들은 볼 수 있었지만, 이 산봉우리 사이에 깊은 골짜기가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볼 수 없었던 깊은 골짜기가 바로 초림과 재림의 사건 사이에 놓여진 교회의 시대, 은혜의 시대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은혜의 시대가 열리고, 이렇게 시작된 은혜의 시대가 예수님의 재림으로 끝나고 이어서 이스라엘을 위한 한 이레의 사건과 메시아 왕국이 펼쳐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 관해 예언한 구약의 선지자들보다 이 예언의 말씀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메시아의 초림에 관한 예언들이 예수님을 통해 어떻게 문자적, 역사적으로 성취되었는지를 신약성경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었고, 지금은 재림에 관한 예언들이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지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는 겁니다. 다니엘 12장 4절을 보면 다니엘에게 종말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주신 이가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단 12:4)하셨는데, 지금은 이 봉함된 말씀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마지막 때를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겁니다.
2. 11, 12절,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하십니다.
a. 10절이 예수님의 재림으로 찾아오게 될 평화로운 시기, 천년왕국에 관한 말씀이라면 11절과 12절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1 차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 가운데 살아감으로 성취되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국에서 돌아와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 가운데 살아가게 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이 예언은 7년 대환난의 기간 동안 열국에서 고토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민족적으로 회개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고, 재림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제사장 나라로서 세상을 통치하게 될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b. 11절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은총을 베푸시는 이유에 대해 “언약의 피로 인하여”라고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을만한 행위가 있어서 저들을 구원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저들과 맺은 ‘피의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 특별한 은총을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피의 언약은 구체적으로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과 출애굽기 24장에서 모세와 맺은 언약을 말하는데, 먼저, 창세기 15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후사와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주신 뒤, 이를 확증하기 위해 짐승들을 쪼개어 그 가운데를 지나는 언약을 맺으셨습니다(창 15:17). 만일 언약을 파기하면 쪼개진 짐승들처럼 목숨을 내놓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피의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출애굽기 24장에서는 모세가 시내산 앞에서 십계명과 율례의 말씀을 낭독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24:3,7)라고 응답했는데, 이 언약을 확증하기 위해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리면서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출 24:8)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과 율례의 말씀을 준행하면 저들에게 약속하신 축복들을 누리게 될 것(출 19:5,6)이라는 의미에서 피를 뿌려 언약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5장과 출애굽기 24장에서 맺은 피의 언약 모두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일방적인 언약인데, 이 피의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구원하여(11) 예루살렘(보장)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갑절의 축복을 주실 것이라 하신 것입니다(12).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뿐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구속의 언약도 예수님의 피로 세운 일방적인 언약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세운 피의 언약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c. 이스라엘이 구원받는 과정을 설명하는 11절 12절에서는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지니라”하십니다.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다”는 말씀은 요셉과 예레미야 선지자가 물 없는 구덩이에 갇혔다가 놓임을 받은 사건(렘 38:6-13)을 떠올리게 하는데,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이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 재판을 받으시고, 빌라도에게 끌려가시기 전에 잠시 가야바의 집에 있는 지하감옥에 갇히셨는데, 이 감옥이 본래는 물을 가둬 두는 물 저장고였다고 합니다. 이런 물 저장고에는 문이나 계단과 같은 출입구가 없기에 누군가가 저장고 위에 있는 구멍에서 밧줄을 내려주지 않으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를 잃고 이방 땅에 흩어져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물 없는 구덩이”와 같은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갈 때, 저들을 구원하여 자유케 하셨다는 겁니다.
이렇게 자유함을 얻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으론 “보장으로 돌아오라”(12하) 명하셨습니다. ‘보장’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바차르’인데, ‘접근할 수 없는 강력한 요새’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예루살렘 성을 의미합니다. 이방 땅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함을 얻었으면, 이제는 하나님이 보장이 되어주시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야 한다 하신 것입니다.
d. 12절에는 “소망을 품은 갇힌 자”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소망을 품은 갇힌 자”란 비록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열방에 흩어져 노예와 같은 삶을 살지만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놓지 않은 자들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언약이 성취될 것이라는 소망을 놓지 않고 마음에 품고 사는 자들을 의미하는데, 이런 자들만이 “물 없는 구덩이에서 풀려나”, “보장으로 돌아가는” 은혜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복된 소망”(딛 2:13)인 휴거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 소망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비로소 물 없는 구덩이처럼 절망적인 세상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이 보장이 되시는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e. 마지막으로 “물 없는 구덩이에서 구하여”(11), “보장으로 돌아온”(12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배로 갚을 것이라”(12하)하십니다. 욥기 42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이 욥을 연단하신 후에 배로 갚아주셨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처럼 배로 갚아주신다 하심은 완전한 회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완전한 회복을 위해선 먼저 “보장으로 돌아와야”한다는 겁니다.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올 때 비로소 온전한 회복되는 은혜를 경험한 것처럼, 이스라엘도 보장되신 하나님께 돌아와야 비로소 온전한 회복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II. 마카비 혁명과 수전절에 관한 예언(13-15절)
13 – 15절, “내가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 하며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위에 나타나서 그 살을 번개 같이 쏘아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리시며 남방 회리바람을 타고 행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매 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취한 것 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하십니다.
이 말씀은 알렉산더 대왕의 급작스런 죽음 이후 헬라제국에서 일어난 네 개의 나라들(프톨레미, 셀류쿠스, 카산더, 루시마쿠스) 가운데, 다니엘 11장에서 ‘북방 왕’으로 묘사되는 셀류쿠스 왕조의 8대 왕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관한 예언인 동시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예표하는 적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입니다. 13절에서 “헬라자식”으로 묘사되고 있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행적은 여러 면에서 마지막 때에 등장할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시간엔 다니엘 11장을 중심으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사악한 행적과 이로 인해 일어난 마카비 혁명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다니엘 11장 21-35절)
a. 다니엘 11장에는 북방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관한 예언들이 등장하는데, 이 예언은 다니엘이 BC 536년경에 받은 말씀이고, “헬라 자식”(13)으로 묘사하고 있는 오늘 본문의 예언은 B.C. 487년경에 받은 말씀입니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재임 기간이 B.C. 175-164였던 것을 감안하면, 다니엘은 대략 360년 전에, 스가랴는 311년 전에 그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다니엘 11장 36절에서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를 “자기 뜻대로 행하는 왕”(36)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는 스스로를 ‘데오스 에피파네스’ 즉, ‘신의 현현’이라고 칭하며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주화에 ‘신들의 신’이라는 뜻을 가진 ‘데오스’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고 합니다.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사 14:14)했던 루시퍼와 마찬가지로 그 마음이 교만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서려고 했던 “헬라 자식”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바로 창세기 10장에 등장하는 니므롯과 함께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겁니다.
b. 다니엘 11장 21절에서는 그가 “궤휼로 나라를 얻을 것”이라 하십니다. 에피파네스는 시리아 왕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정복자인 안티오쿠스 3세(B.C. 242~187년)의 셋째 아들로서 그의 형(兄) 셀류쿠스 4세 필로파토로(B.C. 187~175년)의 뒤를 이어 셀류쿠스 왕조(王朝) 제8대 왕(王)으로 즉위(卽位)했습니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그의 형인 셀류큐스 4세가 신하들의 반란으로 인해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할 당시 왕위를 계승할 자격이 없었지만, 궤휼(flattery) 다시 말해 뛰어난 언변으로 사람들을 설득해서 욍위 계승권이 앞선 어린 왕자들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다니엘 7장 8절에서는 “작은 뿔”로 묘사된 적그리스도가 “입이 있어 큰 말을 했다”라고 묘사하고 있고, 요한계시록 6장 2절에서도 흰말을 탄 적그리스도가 “활을 가지고 면류관을 받아 이기고 또 이기었다.”(계 6:2)했습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적그리스도가 활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화살을 사용했다는 말씀이 나오지 않습니다. 무력시위를 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무력이 아닌 뛰어난 언변술로 세상을 미혹하여 권세를 잡게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와 적그리스도가 모두 에덴동산의 뱀과 같이 궤휼에 능한 자들이라는 겁니다.
c. 다니엘 11장 31절에서는 그가 “성소를 더럽히고 성소 안에 미운 물건을 세울 것”(31)이라 하십니다. 이는 예루살렘을 정벌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성전 제단에서 돼지를 잡아 제사를 드림으로 제단을 더럽히고, 날마다 드리던 제사를 금하고, 이곳에 자신의 형상을 닮은 제우스의 신상을 세운 사건에 대한 예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이집트에 대한 2차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B.C. 167년에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자신의 헬라화 정책에 저항하는 이스라엘에 대해 본격적인 탄압을 시작했는데, 에피파네스는 유대인들이 조상(祖上) 대대로 지켜 오던 율법(律法)과 안식일 준수(遵守)를 금했고, 절기를 지키고, 아이들에게 할례를 행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이 가운데 하나라도 어기는 사람들은 모조리 사형에 처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모든 율법서(律法書)들을 불태우고 성전 제단에서 부정한 짐승인 돼지로 제사를 드리며 그 고기를 먹도록 강요했고, 성전 안에 제우스 신상을 세워 경배하기를 강요했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헬라화 정책이 결국 마카비 혁명을 일으켜 이스라엘이 헬라로부터 독립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다니엘 9장 27절과 요한계시록 13장 15절에서는 장차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성전에다 자신의 우상을 세우고 사람들에게 경배하기를 강요할 것이라 했는데, 그 선례를 보여준 인물이 바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인 것입니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극단적 헬라화 정책과 성전 모독이 그와 헬라제국의 멸망을 가져온 것처럼, 장차 적그리스도가 성전에다 자신의 우상을 세우고 경배하기를 강요함으로 결국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불러오게 될 것입니다.
d. 다니엘서 11장 32절에서는 그가 “언약을 배반할 것”이라 하십니다. 이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왕이 된 뒤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들의 신앙을 존중해주겠다는 언약을 했지만, 이윽고 자신의 권력이 확고해지자 이 언약을 배반하고, 성전제사를 금하고, 돼지 피로 제단을 부정케 하며, 성전에다 우상을 세워 경배하기를 강요하게 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곡과 마곡의 전쟁 이후 등장할 적그리스도도 처음에는 이스라엘과 7년간의 평화 조약을 맺음으로 이스라엘의 안전을 지켜줄 것처럼 약속하지만, 이윽고 3년 반이 지나 세계의 지도자로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나면, 이 언약을 배반하고, 그 옛날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처럼 성전에 자신의 우상을 세우고 경배하기를 강요하게 될 것입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요 8:44)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예수님은 사탄이 거짓의 아비요, 거짓말이 저의 ‘native language(NIV)’(거짓을 말할 때 제 것으로 말하나니, When he lies, he speaks his native language, for he is a liar and the father of lies.)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모국어가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는 겁니다. 적그리스도는 거짓의 아비인 사탄의 화신입니다. 그가 하는 말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그의 말과 약속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2. 마카비 혁명 (B.C. 166-143)
알렉산더의 사후 남방 왕 프톨레미 왕조가 다르시던 이스라엘이 북방 왕 셀류쿠스 왕조로 그 통치권이 넘어가게 되는데, 유대교를 존숭하던 프톨레미 왕조와는 달리 셀류쿠스 왕조는 유대 지역에 헬라 문화를 강제 이식시키기 위해 유대 종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 정책을 폈고, 이런 탄압정책은 팔레스틴 지역에 있는 유대인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런 탄압은 셀류쿠스 왕조의 8대 왕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N. Epiphanes. B.C.175-163)의 통치 기간에 그 절정에 달했는데, 앞서 살펴본 것처럼,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유대인들이 조상(祖上) 대대로 지켜 오던 율법(律法)과 안식일 준수(遵守)를 금하고, 아이들에게 할례를 행하는 것을 금지하고, 모든 율법서(律法書)들을 불태우고 성전 제단에서 부정한 짐승인 돼지로 제사를 드리며 그 고기를 먹도록 강요하고, 성전 안에 제우스 신상을 세워 경배하기를 강요함으로 마카비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구체적인 혁명의 과정을 보면 기원전 167년, 왕의 대리인이 예루살렘 북서쪽에 있는 모데인(Modein)지역을 방문해서 하스몬가의 제사장이었던 맛다디아에게 헬라식 희생 제사를 지내라고 요구하자, 맛다디아는 이 명령을 거부하고 아들들과 함께 왕의 대리자와 부하들을 살해하고 북동쪽에 있는 고프나 산지로 도망을 갔고, 이를 계기로 해서 셀류쿠스 왕조의 정책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의 반란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런 저항운동의 중심에는 헬라화에 반대하는 종교적 운동을 하던 ‘하시딤(Hasidim)’,경건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사장 맛다디아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B.C. 166년에 세상을 떠나자, 셋째 아들인 유다가 셀류쿠스 정부군에 대한 게릴라전을 통해 많은 승리를 거둔 뒤, B.C. l64년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시리아인들에 의해 더렵혀진 성전을 정화시켰는데, 이 사건을 유대 역사가들이 ‘마카비 혁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카비’는 유다의 별명으로 ‘망치를 든 자’라는 뜻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마카비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헬라군들을 몰아내고 더럽혀진 성전을 청결케 할 때, 예루살렘 성전에는 메노라에 불을 밝힐 기름이 하루 치밖에 없었지만, 성전을 정화시키고 봉헌하는 8일 동안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이 메노라에서 불이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카비 혁명을 기념하는 이스라엘의 축제를 하누카(Hanukkah) 즉, ‘빛의 축제’(the Festival of Lights)라고 부르는 것인데,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이 하누카(수전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유대인들과 논쟁을 벌이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하누카가 이미 유대인의 명절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7대 절기라고 하면 레위기 24장에 기록된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대속죄일, 장막절이 그것인데, 여기에다 페르시아 아하수에로 왕 시절 에스더가 유대인들을 몰살시키려는 하만의 계략을 물리치고 복수한 것을 기념하는 부림절(2월에서 3월 사이)과 헬라시대 때 성전을 청결케한 마카비 혁명을 기념하는 수전절(11월에서 12월 사이)이 더해져, 9대 절기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습니다. 앞의 7대절기가 애굽 땅에서 구원받은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라면, 부림절과 수전절은 각기 페르시아와 헬라제국으로부터 구원받은 사건을 개념하는 절기인데,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늘 기억하고, 기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예레미야-
첫댓글 (^~^)사랑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습니다. 오늘도 건강과 함께
좋은 사람들과 좋은 향기로 좋은 인연 이어가는 날 되시기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