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냉소는 해결도 아니고····아무것도 아니다. 대체로 그것은 디오게네스의 그것처럼 처절한 구도(求道)의 부산물도 아니다. 특히 주변에서 목도하는 그것은 이 자본주의적-관료적 인정투쟁에 피폐해진 나머지 빠져드는 수동적 폭력성에 지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냉소란 주로 공감의 바깥을 떠돌던 외톨이-기운이었고, 따라서, 시류와 시속이 냉소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찌된 셈인지 냉소가 공감의 형식으로 변했고, 따라서,오히려 냉소가 시류와 시속이 되고 말았다. 급격히 변화한 현실 속에서 적실한 의사소통의 방식을 개발하지 못한 이들은 마치 '유행처럼' 전래의 인문적 관계에 등을 돌린 채 냉소에 빠진다. 디지털 세대는 아날로그 세대를 '무관심하게' 냉소하고, 아날로그 세대는 디지털 세대를 '관심있게' 냉소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냉소의 저변에 놓인 것은 무엇보다도 소통의 피폐, 그 당착(撞着)이다. 매체현실이 단지 재현의 방식만 아니라 관계양상을 변화시킨다는 지적은 맥루한 이후 이미 진부하지만, 분화와 이격(離隔)이 극심한 우리 사회의 계층과 세대들은 이 변화한 관계양식을 조율, 조화하는 (인문적)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냉소란 대개 일종의 '부산물'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공부의 본령(本領)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어떤 식이든 자본주의적-관료적 인정투쟁에서 밀리거나 처지는 징후이기 쉽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시니시스트들은 인정투쟁에서 밀려나면서 얻는 타율적 냉소가 아니라 아예 그같은 종류의 인정투쟁 자체를 거부하면서 이를테면, '자율적 냉소'의 문화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이들 매니아들은 인정투쟁의 현장에서 도태된 무능력자나 퇴물이 아니다. 이들은 대체로 나름대로 고도한 전문성을 배양하고 있지만, 현 사회가 주도하는 인정투쟁의 코드에 편승하기를 거부한 채 홀로, 혹은 끼리끼리 제 나름의 삶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실로, 여러 대중문화평론가들의 지적처럼, 이미 시니시즘은 하나의 문화코드화되고 있는 듯하다.
이같은 문화적 현상은 세심한 주목을 요한다. 이것을 젊은이들의 객기나 치기, 혹은 문화적(文禍的) 일탈로 간단히 도외시할 수는 없다. 특히 이같은 시니시즘의 구성이나 확장이 대체로 강력한 매체의존성(media-ladenness)을 띤다는 사실도, 이 현상이 미칠 사회적 파장에 좀더 섬세한 관심을 보일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인정투쟁의 실패로 인한 후유증으로서의 냉소는 과도기적 행태에 지나지 않으며, 인문적 삶의 양식으로 지긋이 내려앉을 수 없지 않겠는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실질적으로 인정투쟁과 냉소가 마치 야누스의 얼굴처럼 다른 곳을 쳐다보긴 하지만 결국 한 몸뚱이거나, 혹은 배니싱 트윈(banishing twin)처럼 다른 한 쪽을 감추고 있는 원초적 공포의 사회적 포장일 뿐이라는 점에서도, 이 냉소라는 문화적 기호에 과람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자제해야할 듯하다.
또 한가지. 내가 애용하는 용어로 표현하자면, 진보의 문화(文化)를 냉소의 문화(文禍)와 혼동하거나 새로움을 가벼움과 혼동하는 짓도 마찬가지다. 일찍이 니체가 언급했듯이, 답답한 지형을 깨고 진보의 물꼬를 트는 데에 가벼움의 전략이 유효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오늘같은 넷 시대, 클릭(click)과 넷서핑(net-surfing)의 가벼움이 모여 새로운 형태의 진보를 위한 시민사회적 토대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에 열린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심지어 까불면서 해방과 평등의 통기(通氣), 혹은 그 실마리를 얻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특히, 압제의 무게나 그 밀도가 극심해서 정상적인 맞대거리가 어려울 때 까붐, 혹은 까부름의 몸짓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자유와 평등의 틈을 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가벼움의 전략은 한시적일 수 밖에 없으며, 우리는 중력을 느끼며 길을 걸어가야 하고, 결국 진보는 '뿌리깊은 것'이어야 한다. 뿌리깊은 나무일수록 그 잎의 움직임이 더욱 섬세하듯이 말이다. 부박(浮薄)을 진보의 표징으로 착각하는 것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진보로 오인된 이 부박의 중요한 한 유형이 바로 냉소인(일 수 있는) 것.
무거움을 진보로 착각하는 짓, 이른바 '중력의 정신'을 재계몽하기 위해서 우리는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근대의 반성이라는 움직임의 일부는 이같은 메타포 아래 이루어져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 그 노력의 성격상 어느 정도 당연한 결말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부풀려진 거품들이 범람하게 된다. 그리고 그 거품들의 유연성과 기동성이 종종 '진보'의 표징인양 오인되었다. 그러나 그 거품들은 다만 기원을 숨긴 풍경에 지나지 않을 뿐, 미래를 위한 유지가능성(sustainability)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내가 다른 글에서 '강다귀'로 이름붙이기도 한 '까부는 학생'들의 유형이 진보의 표징인 듯 오인되는 냉소의 한 사례가 될 듯하다. 살다보면 이런저런 일이 생기는 법이니, 내 주변에 '까부는' 학생이 생기는 경우가 있어 이상한 일도 아니다. 까부는 짓도 그 종류가 여럿이어서, 일관하는 동기와 행태를 규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상 까불어 이쁜 짓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까부는 짓은 결국 '까부르며', 그리고, 그래서, '까부순다.' 그간 내가 만난 학생들 중에는, '까불고 까부르며 까부숨'으로써, 이른바 반체제적, 반권위주의적, 우상파괴적 효과를 전파하는 이들이 있었다. 대체로 이들은 영리하고 과감했으며, 그리고 다소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곤 했다. 물론 그 냉소는 이들의 첫인상이 아니다. 대체로 이들은 우선 나를 둘러싸고 한동안 꽤 열정적인 '인정투쟁'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재주는 제철맞은 벛꽃같지만 그 도근(道根)이 성근 이들은, 결국 내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서서히 냉소적으로 등을 돌리게되고, '까불고 까부르며 까부숨'의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
까붐, 그리고 이와 관련된 냉소가 내게 비효율적으로 보이고, 때로 한시적인 성가심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때때로 무
능력과 자기분열의 강박적 징후로 읽히기 때문이다. 내가 이것을 '무능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권위와 권위주의를 분별하면서 자신의 처지에 적절한 생산적 권위를 찾고 만나고 사귀는 방식이 바로 학력(學力)의 중요한 일부라고 보기 때문이다. '가치'를 코 앞에 둔 채 '값'만을 따지는 것이 냉소이기 때문이다. 또 그것이 '자기분열'인 것은, 그 냉소의 실체가 격렬한 애증(愛憎)의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냉소의 현상은 흔히 '권위와의 관계'에서 생겨난다. 자신의 열정을 온전히 붙잡아둘 수 있는 생산적 권위를 만나지 못한 채, 덜 떨어지고 시대착오적인 권위주의들만이 주변에서 버벅거릴 때, 바로 그 권위와 권위주의 사이에서 냉소는 서식하게 된다. 이들은 권위주의 체제에 편승하거나 그와 '쪽팔리는' 타협이 불가피한 인정투쟁의 궤도에서 자발적으로 걸어나와 버린다. 그리고는 냉소하다가 지쳐 필경 '냉소주의'에 빠져버린다.
그러나 냉소주의에 빠진 냉소는 마치 표절로 흘러내리는 패스티쉬처럼 자멸을 가지고 노는 강박적 자학과 유사하다. 권위 전체를 무분별하게 권위주의로 매도한 채 자기 혼자 흘리는 냉소는 인문적 삶의 지긋한 형식으로 내려앉지 못한다. 인정투쟁은 세속적 권력의 배분양식이고, 그 투쟁의 고전적인 형식은 '친구'의 관계일 것이다. 그것은 실로 '존재의 부재'에 다름 아니다. 이에 비해서 냉소는 인정투쟁을 포기한 상태에서 엮어내는 '부재의 존재'인 셈이지만, 그 운용의 방식은 환멸과 자학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개인주의인 점에서 결코 '동무'의 연대를 엮어내지 못한다.
인정투쟁이 자본주의적-관료적 권력투쟁의 궤선을 타고 있는 한, 공적 대화성으로 연대의 기초를 닦는 동무관계는 활성화되지 못한다. 그 속에는 '친구'라는 알리바이가 가끔 그 궤선을 미화하는 데 동원되기도 하지만, 그 관계는 연대 그 자체 속에서 향유와 성숙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동무'와는 다르다. 친구들이 흔히 내세우는 '의리'조차 많은 경우 실은 '사욕의 형평성'에 불과하다. 앞서 '야누스의 얼굴'이나 '배니싱 트윈'이라는 메타포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인정투쟁의 궤선에서 탈락한 냉소 역시 "환멸과 자학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동무'의 연대를 엮어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친구의 존재이건 부재이건, 결국 그 운용의 궤선은 한결같기 때문이다.
동무의 관계는 그 궤선, 즉 인정투쟁과 냉소가 오락가락하는 존재와 부재의 궤선으로부터 스스럼없이 걸어나오는 행위에서 시작된다. 각자의 '걷기'가 새롭게 교차하는 지평 위에서 우리의 관계는 서서히 체질개선의 기지개를 켤 수 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