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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말기에 일어난 태평천국 운동은 우리나라 동학과 비슷한 시기에 반봉건 반외세를 기치로 일어난 민중 봉기 사건입니다. 그런데 동학과는 달리 사이비 종교 냄새도 나고, 그 지도부의 도덕성이나 부패상이 자신들이 부정하고 멸망시키려고한 당시 청나라의 부패한 관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처럼 보여 마냥 긍정하기가 어렵습니다.
팟빵의 역사팟캐스트 <역사공작단> 에서 12부작으로 태평천국을 주제로 방송하고 있는데 재미있게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샀던 책 조너던 스펜서의 <신의 아들, 홍수전과 태평천국>과 굽시니스트의 역사만화 <본격 한중일 세계사 >를 다시 찾아 읽었습니다. 예전에 읽을 때는 설렁설렁 읽어서 내용을 잘 이해못하고 읽었는데 팟캐스트 방송을 겨우 1부 들었을 뿐인데도 다시 읽으니 책 내용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동학도 처음에는 '동학난'으로 불렸지만 현재는 '동학혁명'이나 '동학농민전쟁'으로 그 의의를 높여 부르고 있는 것처럼 태평천국도 처음에는 '태평천국의 난'으로 불렀지만 현재 중국에서는 '태평천국 운동'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태평천국 운동의 원인이나 전개과정, 결과는 팟빵 <역사공작단> 방송을 들으시면 더 재미있게 알게 될 것 같습니다.
홍수전이 과거를 두번째 치르기 위해서 광동성의 광저우에 갔을 때 서양인 기독교(여기서 기독교는 개신교) 선교사가 기독교를 전도하면서 책을 나눠주고 있었는데, 그 책은 중국 최초의 목사 양아발이라는 사람이 쓴 기독교 교리 요약집인 권세양언(勸世良言: 세상에 권하는 좋은 말씀)이었습니다. 그 책을 받은 홍수전은 과거에 낙방한 후 집에 돌아와서 그 책을 대충 읽고 집 한 구석에 아무렇게나 방치했다고 합니다.
다음해 세번째 과거에 낙방한 후에 너무나 상심해서 집에 돌아와서는 아버지에게 죽을 것 같다고 유언을 하고 병석에 쓰러져서 40일 동안 앓았는데 병상에서 이상한 꿈(환몽)을 꾸게 됩니다. 꿈에서 머리는 금발이고 수염을 배 아래까지 늘어뜨린 한 노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상제(上帝)이고 너는 내 아들이다. 요마에 의해 도탄에 빠진 중국 민중을 구할 사람은 바로 너다"라고 하면서 요마(妖魔)를 무찌를 수 있다는 칼 <운중설 : 雲中雪>을 선사하고, 옆에 있던 장년의 사나이를 소개하면서 "너의 형"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홍수전이 40일 동안이나 앓으면서 밤낮으로 이상한 소리를 하고, 방안을 왔다갔다 하기도 하고 갑자기 시를 읊기도 해서, 그의 가족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해서 방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교대로 문을 지켰다고 합니다. 40일만에 병상에서 일어난 홍수전은 멀쩡했고 얼굴도 좋아진 것 같고 소극적이었던 성격도 대범해지고 넉넉해졌다고 합니다.
멀쩡해진 홍수전이 바로 태평천국 운동에 나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다시 과거시험 공부를 6년이나 하고 네번째로 과거를 치렀으나 역시 낙방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저번처럼 상심하지 않고 동네에서 서당 선생을 하게됩니다. 그리고 자기처럼 똑같이 과거에 여러번 낙방한 친구 풍운산과 사촌동생인 홍인간하고 대화하다가 자기 꿈이야기도 하고 방 한구석에 처박아 뒀던 <권세양언>도 찾아서 다시 읽어보면서 이들은 깨닫게 됩니다. <중국은 요마가 설쳐대는 암흑천지이고 홍수전은 야훼 상제의 둘째 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동생이라는 것을. 자신들은 요마를 무찌를 책무가 있다는 것을.>
중국사람들이 기독교 성경을 처음 번역할 때 <야훼>를 상제(上帝) 또는 천주(天主)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상제는 물론 옥황상제에서 나온 말입니다. 카톨릭에서는 교황청이 <천주>로 통일하기로 해서 카톨릭을 <천주교>라고 합니다. 개신교에서는 <상제>로 여전히 번역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웃긴 것이 나중에 태평천국이 한참 청나라 군대와 전쟁할 때 <청나라 황제>라는 말이 나오면 태평천국 측에서 감히 야훼 상제의 이름인 帝를 썼다고 불경하다면서 적의를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황제라는 호칭은 진시황이래 2000년 동안 이미 사용된 호칭이고, 기독교에서 성경 번역을 위해 상제를 차용한 것은 200여년 밖에 안되는데 마치 요마들이 상제를 모독하기 위해 황제를 사용한 것 처럼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홍수전과 그의 동지들이 요마를 처단하기 위해 맨 처음 시작한 일은 자기가 학동들을 가르치고 있는 서당에서 공자와 공자의 제자의 위패를 철거한 일이었습니다. 공자를 존숭해서 만세사표(萬世師表)라고 쓴 강희제가 하사한 어필을 모사한 편액도 없애버립니다. 홍수전은 이때까지는 중국의 요마를 우상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공자상과 불상, 신선상, 장군상등 온갖 신상을 없애는 것이 우상숭배를 금지한 상제의 뜻을 따르는 것이고 요마를 퇴치하는 것으로 생각한 듯 합니다. 마을에서는 당연히 난리가 났습니다. 공자의 위패를 없앤 것을 안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을 서당으로 보내지 않아 홍수전의 서당은 자동으로 문을 닫게되고 마을 사람의 비난으로 고향땅에 있을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홍수전과 풍운산은 고향 광동성 옆에 있는 광서성으로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광서성은 광동성보다 가난하고 궁벽진 시골이 많은 곳이었고, 소수민족과 다른 지역에서 쫓겨온 사람들도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었습니다. 소수민족들은 각자 고유의 신앙이 있어 온갖 신상을 숭배하고 있었는데, 홍수전과 풍운산은 여전히 신상을 부수고 모욕하는 일로 요마퇴치 운동을 했습니다. 처음에 주민들의 반발로 전도에 큰 효과를 얻을 수 없어서 홍수전은 실망해서 고향인 광동성으로 돌아가지만, 풍운산은 더 깊은 산골로 들어가서 끈질긴 전도 끝에 2000명의 신자를 얻게되어 이 종교의 이름을 <배상제회>라고 이름 붙여서 홍수전에게 이 조직을 넘기게 됩니다. 풍운산은 배상제회의 2인자이지만 사실 홍수전 보다 더 뛰어난 사람으로 친화력이 있고 언변이 뛰어나서 배상제회를 사실상 조직한 인물로 태평천국군이 남경을 공략하기 위해 북상할 때, 중간에 청나라 군대의 포사격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풍운산이 끝까지 살았다면 태평천국 운동이 성공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00명의 신도를 얻은 것에 만족한 홍수전은 배상제회에 관련한 글을 저술하고 전도에 더욱 힘을 쓰게 됩니다. 상주 지역에 영험한 효험을 발휘한다는 감왕(甘王)이라는 신상을 때려부수고 옷을 찢고 감왕을 멸시하는 글을 벽에 붙이는 행동을 해서 상주 지역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오히려 배상제회의 신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영험하다는 신상을 부쉈지만 천벌을 받아야 할 홍수전 일행은 멀쩡했기 때문에 홍수전의 말이 진실하다는 증거로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상을 모욕한다고 해도 당연히 어떤 천벌이 없을터인데 그 때 사람들은 홍수전이 야훼 상제의 둘째 아들이 맞다는 증거로 생각했습니다.
광서성에서 배상제회의 신도가 늘어나자 그에 반발하는 토착민과 향신( 鄕紳 : 중국 지방의 실질적인 지배세력으로 주로 향시에 합격한 사람들과 토착지주들)들의 고발로 풍운산이 지방 관아의 감옥에 투옥됩니다. 홍수전이 양광총독(광동성과 광서성의 지방행정 총책임자)에게 풍운산의 석방을 청원한다면서 광서성을 떠나 광동성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자 배상제회의 신도들은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배상제회의 1인자와 2인자가 없는 상태에서 현의 관리에게 뇌물을 써서 풍운산을 석방시키고 신도들의 동요를 가라앉힌 두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양수청과 소조귀라는 사람인데 숯쟁이로 비록 문맹이었지만 이번 사태로 신망을 얻어 배상제회의 지도자로 부상하기 시작합니다.
더구나 이들은 놀라운 이적을 선보입니다. 놀랍게도 상제께서 하늘에서 직접 내려와서 양수청의 몸으로 들어가 계시를 내리는 것입니다. 무당들이 신내림을 받으면 그 신이나 사람으로 빙의되어 말하는 것 처럼 양수청은 상제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니 배상제회의 신도들은 놀라워 하면서 모두 양수청을 경배하면서 그 말씀에 복종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천부하범(天父下凡)이라고 합니다. 천부는 홍수전의 아버지이므로 하느님이 양수청의 몸속으로 내려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소조귀도 갑자기 신들림을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예수님이 소조귀의 몸속으로 내려와서 계시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천형하범(天兄下凡)이라고 합니다. 홍수전의 형인 예수님이 소조귀의 몸으로 내려왔다는 뜻입니다.
천부하범과 천형하범이 시전되는 행사를 본 홍수전과 풍운산은 경악하지만 이미 양수청과 소조귀가 신도들을 많이 장악한 상태에서 천부하범과 천형하범이 엉터리 가짜라고 배척하면 배상제회가 분열되어 세력이 약해질 수도 있어 홍수전은 진짜로 상제님과 예수님이 두사람의 몸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인정합니다. 그래서 천부하범과 천형하범이 일어날 때는 홍수전과 풍운산도 엎드려서 그들이 빙의되어 하는 하느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고 계시된 말씀대로 행동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묘한 상태가 됩니다. 평시에는 홍수전이 배상제회의 제1인자이지만, 천부하범이 일어날 때는 양수청이 제1인자가 되어 홍수전은 그말에 복종해야 했고, 천형하범이 일어날 때는 소조귀가 제1인자가 되어 홍수전이나 양수청도 엎드려서 복종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서열이 다시 정리되어 홍수전이 상제님의 둘째 아들, 양수청이 상제님의 셋째 아들, 소조귀가 상제님의 넷째 아들, 풍운산은 배상제회의 넘버 투에서 졸지에 서열 4위로 밀리게 되어 상제님의 다섯째 아들이 되고맙니다.
마침내 <배상제회>의 전도활동은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농민들, 객가인들(강북지역에서 강남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들로 토착민들에게 차별대우를 받았음), 광부들, 유랑민들, 반청복명을 외치던 천지회의 회원들(이들은 후에 삼합회의 조폭이 됩니다), 아편전쟁 후 영국의 단속에 쫓겨 장강으로 들어와 이제는 수적이 된 해적들 등등이 점차적으로 배상제회에 입교하게 됩니다. 대부호였던 위창휘라는 사람이 자신의 전 재산을 배상제회에 헌납하고 입교합니다. 그 덕분에 배상제회는 자금 걱정없이 무기를 구입하는 등 전쟁 준비를 할 수 있게됩니다. 객가 가문 출신 중에 석씨 가문도 입교하는데, 그 중에 전략 전술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석달개는 겨우 19살이었습니다.
신도가 늘어남에 따라 청나라 관리들과의 마찰도 늘어나서 갈등이 점차 심화되자, 1851년 1월에 광서성 <금전촌>이라는 곳에서 마침내 국호를 <태평천국>이라고 선포하고 청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한 봉기를 일으킵니다. <만청의 황제와 만주족의 귀족들, 만청 황제에 아첨해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한족의 관료들이 처단해야할 요마>가 됩니다. 이때부터 우상파괴 종교활동에서 반정부 혁명전쟁으로 전환이 됩니다. 이때 봉기한 태평천국의 군대 규모가 약 2만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겨우 이정도의 병력으로 청나라를 전복시킬 생각을 하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종교적 환상이었지만 엄격한 군기와 광신적인 신앙으로 죽음을 불사하는 태평천국 군의 기세를 썩을대로 썩은 청의 군대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태평천국의 군대 규모가 점점 커져서 나중에 전성기 때는 50만명 까지 늘어납니다.
배상제회가 태평천국을 선포할 때의 주요 지도부는 천왕 홍수전( 37세, 황제와 동급), 동왕 양수청(28세), 서왕 소조귀(31세), 남왕 풍운산(36세), 북왕 위창휘(31세), 익왕 석달개(20세)였습니다. 나이들을 보면 태평천국 운동은 청년들이 일으킨 혁명이었습니다. 특히 석달개는 이제 막 20살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사람을 지도부로 영입했는지 신기합니다. 그리고 석달개는 이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장군이었고 나중에 지도부가 사치와 향락에 빠질 때도 엄격하게 자기 관리를 해서 태평천국의 지도부 중에서 신도들에게 가장 신망받는 지도자였습니다.
여섯명의 태평천국 지도부 중에서 가장 능력이 부족하고 띨띨한 사람은 홍수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홍수전이 <상제의 둘째 아들이고 예수의 동생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시하여 혁명운동을 촉발시켰지만 정치, 행정이나 전쟁에는 무능한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천왕이 되고 남경에 입성해서 한 일은 황제 못지 않은 온갖 사치와 향락을 즐기면서 88명이나 되는 후궁들과 변태적 행위를 하고, 중국어로 번역된 기독교 성경을 태평천국에 맞게 뜯어고치는 일이였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가 하느님의 독생자>라는 구절을 장생자(큰아들)로 바꾸는 등의 작업을 했습니다.
양수청은 <천부하범>을 꾸며낼 정도로 대담하고 판단력이 뛰어나고 권력욕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정세 판단은 대체적으로 정확하고 태평천국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지만 결국 홍수전을 넘어 1인자가 되려다가 역습을 당해 죽게됩니다.
소조귀도 양수청의 <천부하범>을 뒤따라서 <천형하범>을 시전할 정도로 기민하고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전략 전술에도 괜찮은 능력을 보였지만 태평천국 군이 남경함락을 위해 북상하는 도중에 청나라 군대의 사격에 죽고맙니다. 예수의 아바타가 죽었으니 뭐라고 신도들에게 설명했는지 궁금합니다.
위창휘는 자기의 전 재산을 헌납할 정도로 신앙심이 깊고 큰 뜻이 있었고 야망이 있는 사람으로 행정능력도 뛰어난 사람입니다.
처음 태평천국을 선포했을 때의 지도부인 6왕체제가 계속 유지되었다면 청나라를 멸망시키는 대업을 이뤘을지도 모릅니다. 이들 6왕이 서로 견제하면서 대체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태평천국을 이끌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능력도 안되는 홍수전이 상제의 둘째 아들이라는 권위로 함부로 행동을 할 수도 있었지만 천부하범과 천형하범으로 적절하게 홍수전의 독단을 제어할 수 있었고, 양수청의 지나친 권력욕은 소조귀와 풍운산의 눈치를 봐야해서 쉽사리 표출하기 어려웠는데, 도중에 풍운산과 소조귀가 죽는 바람에 결국 지도부간에 죽고 죽이는 살상전이 벌어져서 태평천국 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에서 태평천국 운동이 일어난 기간(1851년~1864년) 동안에 죽은 사람이 2000만명에서 7000만명 사이라고 합니다. 중국은 뭐든지 큰 걸 좋아한다고 하더니 사망자 수도 그 규모가 입을 딱 벌릴 정도로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런데 사망자수가 500만명에서 800만명 사이라는 자료도 있다고 합니다. 태평천국 군과 청군이 얼마나 악귀처럼 상대를 죽였길래 몇천만명 단위로 죽일 수 있을까 하는 끔찍한 생각이 들어서 5~800만명 정도 사망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자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500만명이 죽었다고 해도 엄청난 숫자입니다.
1851년 금전 봉기 부터 태평천국 군은 장강 지류를 따라 북상하면서 여러 도시를 점령했고, 성을 함락시키지 못할 때는 그냥 지나쳐서 드디어 강소성의 성도이고 강남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이며 중국 전체 조세의 반을 담당한다는 남경을 공략해 1853년에 드디어 점령합니다. 도중에 풍운산과 소조귀가 청군의 사격으로 사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만, 이들의 사망에 대한 복수심에 사기는 더 높아져서 태평천국 군은 청군을 더 치열하게 공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 전투에서 청의 군대는 군기가 문란한 무력한 모습을 보여 겨우 2만명의 태평천국 군에게 연달아 패배해서 태평천국의 남경 진격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태평천국 군이 어느 도시를 점령하면 그 도시의 주민들에게 배상제회에 가입할 것을 강요하고 재산을 몰수했습니다. 강요받아 배상제회의 신도가 된 사람도 있을테지만 태평천국의 승리를 보고 자발적으로 가입한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남경을 점령할 때 태평천국의 병력은 20만명이 넘어섰고, 남경을 태평천국의 수도로 선포하고 천경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청나라의 정부는 청의 관군으로는 태평천국 군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지방의 향신이 조직한 의용대를 정식 군대로 인정해서 한인(漢人)인 증국번, 이홍장, 좌종당에게 벼슬을 주어 만주족에게만 주어지던 군대 지휘권을 갖게합니다. 그나마 간간히 태평천국 군을 이기는 청의 군대는 증국번의 의용대인 상군이었습니다. 증국번도 태평천국 군에 여러번 패배해서 두번이나 자살을 기도하지만 죽지않고 살아나서 결국 태평천국의 천경을 무너뜨리고 승리하게 됩니다.
태평천국의 군대가 남경을 점령한 1853년 부터 청의 군대가 남경을 탈환하고 태평천국 운동을 진압하는 1864년 11년 동안 양쪽 모두 결정적인 승기를 잡지 못하고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소모전에 돌입하게 됩니다.
남경에 근거지를 마련한 이 후, 태평천국 정부에서 권력을 휘두른 사람은 홍수전이 아닌 동왕인 양수청이었습니다. 홍수전이 후궁들과 향락에 빠져 국정에 관심이 없을 때, 양수청은 내정과 외정의 대사를 혼자 결정했고, 심지어 홍수전이 결정해야 하는 종교적인 행사까지 간섭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대사가 있을 때만 양수청의 몸을 빌려 내려오던 상제께서 시도 때도 없이 내려와서, 새벽에도 천부하범이 일어나서 꼭두새벽에 홍수전 이하 태평천국의 주요 지도부가 헐레벌떡 달려와서 양수청 앞에 무릎끓고 상제의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상제의 말씀도 갈수록 세세한 일에 대한 지시까지 내려 "둘째아들 홍수전이 너무 사치하니 검소하게 생활하라."고 하니 이에 대해 북왕 위창휘가 "천왕이 그 정도는 해야지 너무 째째하신 것 아니냐"고 했다가 불경스럽다고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 등, 특히 위창휘에게 모욕적인 행동을 많이 합니다. 아마도 양수청과 천경에서 권력투쟁을 할만한 사람은 위창휘 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석달개는 항상 청군과 전쟁하기 위해 전쟁터에서 있었기 때문에 위협이 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천부하범으로 내려오신 상제께서 "위창휘가 잘못했으니 태형 30대를 맞아야 한다."고 해서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치욕스럽게 태형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또 상제께서 홍수전이 후궁과 궁녀들에게 너무 가혹하게 대했다면서 태형 30대를 언도했다가 용서하고 올라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양수청이 천부상제의 권위로 자신의 지위를 홍수전과 동일하게 만들려고 하니, 이에 위협을 느낀 홍수전과 위창휘등이 기습공격하여 양수청을 죽이고, 양수청을 따르는 부하와 신도들을 모조리 죽이게 됩니다. 원래 석달개와 모의할 때 동왕 양수청만 죽이기로 약속했는데, 위창휘가 폭주하여 수만명을 죽이는 참상이 벌어지게 되었고, 뒤늦게 전쟁터에서 남경으로 돌아온 석달개가 항의하자 위창휘는 석달개마저 죽일려고 합니다. 가까스로 석달개는 탈출하지만 그 휘하 부하들과 가족권속들은 몰살당하게 됩니다. 위창휘의 폭주가 계속되자 홍수전이 위창휘를 급습하여 역시 죽이게 됩니다. 1856년에 일어난 이 사건을 천경사변이라고 합니다. 이 사건으로 금천봉기 때 부터 같이 행동한 태평천국 군의 정예 중의 정예와 배상제회에 대한 충성심과 신앙심이 강한 신도 등 10만명이 죽게됩니다. 이 사건 후에 태평천국은 이수성이나 진옥성등 젊은 명장들이 나타나서 8년간 전쟁을 지속했으나 천경사변으로 이미 망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중국의 걸출한 혁명가들인 손문, 장개석, 모택동이 모두 태평천국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청나라의 수명을 단축했다는 공로외에는 별로 본받을 것이 없어 보입니다. 반봉건이라고 할만한 진보적인 강령이 있다고 해도 자신들이 다 위반했고, 무자비한 탈레반 식의 신정정치를 추구한 사이비 종교의 광신집단이 수천만명의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전대미문의 동란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난 해가 1894년이므로 태평천국 운동이 진압된 후 겨우 30년 후에 일어났는데 어떤 경로로든 태평천국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동학이 관군과 일본군에 의해 패퇴한 후에 살아남은 동학농민군을 위로하고 모아서 새로운 종교를 창시한 강일순(강증산)은 자신을 상제로 자처하게 됩니다. 상제께서 이 땅에 석가도 보내보고 공자도 보내고 예수도 보냈지만, 민중의 고통이 여전해서 상제가 직접 내려왔다는 것인데, 거기에 상제의 둘째아들인 홍수전까지 보냈다고 하면 아귀가 더 맞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