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요즘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 빠져있습니다. 바로 <나는 가수다>란 프로그램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임재범이란 가수가 부르는 <여러분>을 들으며 울컥 뜨거운 눈물이 났습니다. ‘내가 너의 벗 되리라.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야’ 가사에 알알이 박힌 정서가 제 안에 어떤 슬픔을 끄집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노래를 들으며 계속해서 반문합니다. 노래를 들으며 떠오르는 화가와 작품이 있었습니다. 지난 3월 11일, 그러고 보니 얼마 되지 않았군요. 미국의 화가 조지 투커(George Tooker)가 작고한 날입니다. 그는 마술적 리얼리즘, 사회주의 리얼리즘 회화의 대가입니다. 1950년대 미국 사회에 팽배한 <조직인Organization Man>의 황폐한 정신적 초상을 아련하게 그려내 반응을 얻었습니다. 미국사회에서 조직인이란 용어가 등장하는 것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재임기간 동안이었죠. 대기업은 텔레비전과 자동차, 우주여행, 패스트푸드와 같은 신기술을 쏟아냈고, 핵가족화가 세포분열하듯 이뤄지며, 도시 근교로의 집단이주와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탄생시킵니다. 개인의 희생과 조직목표의 성취라는 집단논리가 지상의 명제가 되었습니다. 1920년대부터 정교해지기 시작한 앙리 페이욜의 관리 원칙은 이 당시 조직이론의 정점을 찍습니다.
. ‘수직적 집권화’가 원칙의 핵심입니다. 조직의 목적을 위한 편제는 스태프(Staff)와 라인(Line)기능을 낳죠. 투커의 그림은 이러한 시대, 조직 내의 권력을 향한 줄서기가 치열해지는 시대의 초벌 그림입니다. 조지 투커는 집단주의 문화 속에 길을 잃은 개인의 모습에 눈을 돌립니다. 투커는 영국계 아버지와 쿠바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생적으로 다문화적 속성을 뼛속 깊이 가지고 있던 그는 예술적인 감성이 풍부해서 어려서부터 예술대학에 가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희망에 따라,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요. 와중에도 그는 회화를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1942년 대학을 졸업하고 해군에 입대하지만, 안타깝게 건강상의 이유로 중도하차를 합니다. 오랜 동안 감리교 신자였던 그는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울타리의 바깥 세계를 보기 시작합니다.

그는 뉴욕의 지하철을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익명의 인간들, 표정을 잃은 현대인의 모습에서, 자본주의 생활양식이 잉태한 도시공간과 조직 속 인간의 면모를 그려내기 시작하지요. 맨 위에 있는 <인물이 있는 풍경>이란 그림을 보세요. 사무실 큐비클 속에서 게슴츠레 졸린 눈으로 앞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일 겁니다. 오렌지 빛 따스한 벽면의 기억이 딱히 좋지 않은 느낌이죠. 사람들을 나누는 칸막이는 마치 고공 빌딩들의 수직적 무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바로 내 옆에 사람이 살고 있는지, 숨을 쉬는지 잊고 사는 우리들의 모습, 조직인이 된 우리들의 초상이 있습니다. 그에게 지하철은 익명성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공간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마치 번호표를 들고 어딘가로,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혹은 공황 장애를 겪으며 지향점을 잃은 우리들의 모습이 드러나지요. 투커는 이 그림에서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이미지들을 함께 배열해 사용합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대도시는 무덤과 같은 공간입니다. 특히 지하철은 신화 속 미노타우로스의 미로처럼, 비현실적인 거울의 홀 같은 느낌도 들지요. 삶의 무거운 무게가 어깨를 누르는 공간 같기도 합니다. 지하로 연결되는 계단은 지하의 세계로 연결된 통로처럼 느껴지고, 상부로 연결된 계단은 상승의 이미지를 담지만 닫혀있어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꼼짝없이 갇혀 있는 것이죠.
1950년대는 미국의 산업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조직화를 통해 인간의 효용을 계량화 하던 시절입니다. 경영학사를 읽어보면 본격적인 현대적 매니지먼트의 이론들이 대부분 이때 등장합니다. 우리가 경영의 구루라고 칭하는 피터 드러커도 사실 이 시대의 산물입니다. 조직체계 속에서 부품처럼 살아가는 쓸쓸한 인간의 이미지. 각자의 점심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보이네요. 외로울 때, 누군가 나를 위로해주고 곁에 있어주는 일 조차도 서비스 산업의 일환으로 치환한 자들의 세계에서 우리는 처절한 고독에 시달립니다. 왜 임재범의 노래를 반복해 듣게 되는지 이제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


지난 20여 년의 시간, 무대에서 노래로 사람을 만났어야 할 한 남자가 절제된 목소리로 노래를 해왔습니다. 지난 번처럼 그는 울부짖지 않았습니다. 상처는 드러낸다고 돋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감내하고 더 큰 향기가 나도록 기다릴 수 있을 때, 더 큰 선물이 되는 법 입니다.
저는 임재범의 노래를 들을 때, 세상 최고의 향이라 불리는 용연향을 생각합니다. 용연향은 침향, 사향과 더불어 인간세계 최고의 향입니다. 향유고래가 짝짓기 시간이 되면 소화기능이 약해지면서 자신의 창자에 고여있던 음식물을 토해내지요. 이 토사물 덩어리가 광막한 바다의 표면 위를 10여 년 떠돌아 다니며 따스한 햇살과 바다의 미풍을 맞으며 나쁜 향이 빠지고 나면, 그때 등장하는 향이 바로 용연향입니다. 임재범의 노래에는 이 용연향이 주는 끌림이 있습니다.
그는 감정을 토해내지만, 그것은 단순한 토사물이 아닙니다. 용연향이 되기 위해, 대왕오징어 토사물이 오랜 세월 광막한 바다의 현음을 들으며, 견딘 후, 인간의 손에 발견되듯, 그는 지난 세월 겪고 감내해야 했던 상처를, ‘억’ 한 감정을 햇살에 말리고, 달보드레한 시간의 미풍에 씻어, 세상 어느 것 보다 향기로운 향을 만들어 우리에게 피워주고 있습니다.
그에겐 그의 노래가 주는 향에 취한 사람들이 친구 되어 옆에 있게 되겠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 그 경계선을 연결하는 정서의 커넥터는 다름 아닌 향기입니다. 글을 쓰다 보니, 예의 쓸쓸함이 엄습합니다. 이 어두운 시간 내 곁에는 누가 있어줄지. 투커가 그린 <포옹>이라는 작품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 날입니다. 임재범의 노래가 그림 속 따스한 포옹처럼 우리를 안아주네요. 오늘 페이스 북에서 9년 전 캐나다 유학시절부터 제 블로그의 독자였던 분을 만났네요. 작가가 되길 꿈꾸었던 시절, 출판업을 하던 그 분은 저를 위해 블로그의 글을 갈무리해 책으로 만들어 보내주신 분입니다. 작은 선물이었지만 큰 힘이었습니다. 생은 이런가 봅니다. 돌고 돌며 언젠가는 다시 얼굴에 도장을 찍게 되는 행보의 삶. 그러니 내게 다가온 사랑의 기회, 절대로 놓치지 말고 표현하고 껴안고 격려하며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노래 속 향기가 제게 말을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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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댓글 선생님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웬지 모를 눈물이 흐를 때에 ..." 나는 궁궐지킴이다 " 라는 선언이 또한 그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