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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꿈을 꾸자!
180304 출 13:3-10
1. 잠꼬대 아닌 잠꼬대
우리 교단 목사님으로 한신대학교에서 구약을 가르치시던 고 문익환목사님은 꿈을 꾸는 분이었습니다. 이 시간에 문익환목사님의 시를 한 편 소개해 드립니다.
잠꼬대 아닌 잠꼬대
문익환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누가 시인이 아니랄까봐서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
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
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 거라고
가기로 결심했다구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 있지 않아
모란봉에 올라 대동강 흐르는 물에
가슴 적실 생각을 해보라고
거리거리를 거닐면서 오가는 사람 손을 잡고
손바닥 온기로 회포를 풀어버리는 거지
얼어붙었던 마음 풀어버리는 거지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인민이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
동무라는 좋은 우리말 있지 않아
동무라고 부르면서 열 살 스무 살 때로
돌아가는 거지
아 얼마나 좋을까
그땐 일본 제국주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이천만이 한마음이었거든
한마음
그래 그 한마음으로
우리 선조들은 당나라 백만 대군을 물리쳤잖아
아 그 한마음으로
칠천만이 한겨레라는 걸 확인할 참이라고
오가는 눈길에서 화끈하는 숨결에서 말이야
아마도 서로 부둥켜안고 평양 거리를 딩굴겠지
사십사 년이나 억울하게도 서로 눈을 흘기며
부끄럽게도 부끄럽게도 서로 찔러 죽이면서
괴뢰니 주구니 하며 원수가 되어 대립하던
사상이니 이념이니 제도니 하던 신주단지들을
부수어버리면서 말이야
뱃속 편한 소리 하고 있구만
누가 자넬 평양에 가게 한대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구
객쩍은 소리 하지 말라구
난 지금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산다는 것 말이야
된다는 일 하라는 일을 순순히 하고는
충성을 맹세하고 목을 내대고 수행하고는
훈장이나 타는 일인 줄 아는가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구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로 드높이
나부끼는 일이라고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고
이 양반 머리가 좀 돌았구만
그래 난 머리가 돌았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
머리가 돌지 않고 역사를 사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 머리가 말짱한 것들아
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음 그만두라고
난 걸어서라고 갈 테니까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가는 거지
1989년 첫 새벽에
1989년 새해 벽두에 이런 시를 쓰시고는 실제로 그해 1989년 3월 25일에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문목사님은 꿈을 꾸고 그 꿈을 실제로 사셨습니다. 이 방북사건은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켰고, 또 보수적인 여론의 뭇매를 맞았으며, 실제로 이 일로 문목사님은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목사님과 같은 이런 선배 목사님들, 교수님들로 말미암아 한국기독교장로회와 한신대학교는 비록 작은 교단이고 학교지만, 세인들이 함부로 볼 수 없는 교단과 학교가 되었습니다. 대학생 때까지도 예장 통합측 교회에서 자란 제가 기장교단 신학교로 진학하여 기장 목사가 된 것도 이런 목사님들의 신학과 신앙의 모습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 본문 이해
오늘 본문에는 무교절에 관한 규례, 규정이 나옵니다. 무교절은 없을 무(無) 자에 삭힐 교, 삭힐 효, 혹은 술밑, 술지게미 교(酵) 자를 써서, 무교(無酵), 즉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 발효되지 않은 빵을 먹는 절기를 말합니다. 발효되지 않은 빵은 어떨까요? 매우 딱딱하지요. 먹기가 고약합니다. 그런데도 이레 동안, 한 주간 동안이나 발효되지 않은 빵만 먹으라고 합니다. 이는 고역입니다. 왜 이렇게 하라고 하는 것일까요? 출애굽의 고통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발효되지 않은 빵은 다급함을 의미합니다. 빵을 구워 발효시킬 그런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급박한 상황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13:8입니다.
그 날에 당신들은 당신들 아들딸에게, ‘이 예식은, 내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일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이다’ 하고 설명하여 주십시오.
이렇듯 무교절은 출애굽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하여 마련된 절기입니다. 우리 민족이 어디서 어떻게 나온 민족인지, 누가 우리 민족을 이끌어 만드셨는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무교절과 관련된 유월절은 온 가족이 양을 잡아 식사를 하는 의식을 하는 날인데요, 이 역시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는 의식입니다. 그런데 유월절 저녁 식사는 한 번이고, 이 날로부터 일주일간 무교절이 이어지기 때문에 유월절과 무교절은 연속된 하나의 절기입니다. 우리나라 정월(正月) 초하루, 음력 1월 1일과 정월 대보름, 음력 1월 15일도 하나로 이어진 절기였다고 하지요. 이 보름동안의 기간이 정초(正初)고, 이 기간 동안에는 어른을 찾아 세배를 하는 것이 전통이었답니다. 이처럼 유월절과 무교절도 하나로 이어지는 절기입니다. 유대인이 쓰는 달력으로는 아빕월, 첫째 달, 즉 1월 14일 저녁이 유월절이고, 그로부터 일주일, 21일 저녁까지가 무교절입니다. 한 주간 동안 이어지는 절기인 것이죠. 만일에 이 기간에 누룩을 넣은 빵을 먹는다면 어떻게 되느냐? “…첫날부터 이렛날까지 누룩을 넣은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스라엘에서 끊어진다.” 출 12:15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처럼 해마다 일주일 동안 출애굽의 사건을 회상하면서 기념해야 했습니다.
지난 목요일은 삼일절이었습니다. 삼일절은 매우 중요한 절기입니다. 국가에서 정한 공휴일 가운데 절과 날, 혹은 일이 어떻게 다른지 아십니까? 어린이날, 한글날, 현충일 등이 일반적인 기념일이라면, 절은 나라의 건립, 수립, 건국과 관련된 중요한 의미를 담은 기념일입니다.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모두 나라의 수립, 정체성과 관련된 중요한 절기이지요. 삼일절은 날이 아니고 절입니다. 삼일절은 우리나라의 건국, 정부수립의 모체, 나라의 정체성과 관련된 날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간 삼일절 기념식에서 대통령은 의미 있는 기념사를 했습니다. 3.1운동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억하고,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 사실을 명백하게 밝혔으며, 독도 침탈에 대하여 분명하게 지적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의 처사에 대해서도 그 부당함을 지적하였습니다. 일본이 과거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에 대해서 진정으로 반성하고, 피해국과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며, 새로운 자세를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정말 삼일절에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들, 분명히 해야 할 것들, 다짐해야 할 것들을 잘 지적하였다고 생각합니다.
3. 통일의 꿈을 꾸자!
저는 요즘 목 디스크 이상증세가 심해져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정형외과를 다녔는데 도움은 됩니다만 큰 진전이 없는 듯해서 한의원을 찾아가 추나 요법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 아래 등, 어깨를 만진 한의사가 말하기를 상당히 아팠겠다고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생활했느냐고 합니다. 우리들이 보통 오랜 시간에 걸친 병세는 잘 의식하지 못합니다. 으레 그러려니 합니다. 아픈데요, 아픈 줄을 모릅니다. 아픈 것에 익숙해진 겁니다. 장애가 오래 지속되면 장애인 줄을 모르게 됩니다.
제가 병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사는 모양이 꼭 그렇단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마감되었는데요, 여기에 참가한 북한의 응원단 및 공연단(선수단 비용은 원래 주최국에서 제공합니다.)의 체류비, 입장료 등을 우리가 부담하는 것에 대해 아깝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론조사로는 체제비용을 우리가 부담하는 것에 대하여 국민들의 54%가 찬성했고, 41%가 반대했답니다. 사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2005년 인천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당시에도 우리 정부가 남북협력기금을 사용해 북한 응원단의 체류비용을 전액 부담했었습니다. 이번에도 남북협력기금에서 부담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남북협력기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까워하면서 국방비에 대해서는 아까운 줄 모릅니다. 올해 2018년도 국방비가 43조원입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남북협력기금에서 나가는 29억 원은 아까워하면서 43조 원은 아까운 줄 모릅니다. 만 배가 넘는 규모입니다. 1원은 아까워 죽겠는데 만원은 아까운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29억 원이 아깝다면 43조원은 더 아까워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언제까지 분단된 나라에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합니까? 북한의 집권자들이, 남한의 집권자들이 아무리 엉망진창일지라도 우리 민초들은 통일에 대한 염원을 저버려선 안 됩니다. 한반도는 장애를 극복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두 동강난 채 살아야합니까?
저는 꿈을 꿉니다. 일본을 가듯이, 중국을 가듯이 백두산과 금강산, 개성과 평양을 갈 수 있는 그런 날을 꿈꿉니다. 젊은이들이 의무적으로 모두 군대를 가서 동족의 가슴을 겨누어야 하는 그런 군대가 아니라,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누구일지 모르는 외적으로부터 이 강토를 지키기 위하여 뜻하는 젊은이들이 자기의 인생을 걸고 군사력으로 무장하는 그런 군대를 꿈꿉니다. 남한의 경제력, 기술력과 북한의 자원, 인력이 결합하는 강대한 나라를 꿈꿉니다.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증오와 불신이 기본으로 교육되는 그런 한반도가 아니라, 신뢰와 사랑, 선의와 봉사가 기본이 되는 그런 풍토의 한반도를 꿈꿉니다. 자기네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어떻게든 한반도를 분단시킨 채로 유지하면서 이익을 챙기려는 미, 일, 중, 러 강대국들이 하나로 통일된 남북한의 눈치를 보게 되는 그런 날을 꿈꿉니다.
이것이 과대망상일까요? 우리 민족 모두가 꿈을 꾸게 될 때, 아니 적어도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꿈을 꾸게 될 때, 통일은 이루어집니다. 남과 북의 지도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국민들, 인민들이 문젭니다. 모두가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꿈을 꾸는 일에 교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어쩌다 보니 이제는 한국 교회가 역사와 민족을 돌아보지 않고 개인의 영혼문제만 다루는 몰역사적이고 몰사회적인 집단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한국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연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국민족교회형성사론’이라는 책에서 민경배교수가 쓴 내용의 일부를 인용해드립니다.
“일제는 합병이전부터도 교회가 민족정기의 연수(淵藪)라 해서 그 근절(根絶)을 시도하였고, 교회를 정신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에 걸친 민족적 전통의 곬이라 간주하여 그 안팎에서 박멸을 공작하고 있었다. … 중략 …
구한말의 비운이 격하면 격할수록 그 정서의 넘치는 호소력의 통로는 혈성(血誠)으로 뚫리듯 넓혀졌고, 그 아픈 체험에서 맺혀진 일체감과 혈연감은 독실(篤實)해져, 솟아오르는 신앙고백은 단일성과 현실감으로 훨씬 토착적(土着的)일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이었고, 이것이 우리 선배들의 신앙이었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에게 민족 문제를 떠나 교회의 사명을 이야기하는 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역사 속에서 이 민족 앞에 자랑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립선언문에 선언한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독일은 1990년도에 통일되었지요. 그 한해 전 1989년 열린 제44회 세계성체대회 참석차 방한한 서독의 안론 슐렘바하 주교는 ‘분단국가와 교회’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교회는 분단의 벽을 넘는 연결고리”라며 서독교회가 지속적으로 동독교회와 교류하고 지원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전쟁의 기억과 과거를 증오가 아닌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으로 이어가는 것이 분단교회의 사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서독교회의 노력은 독일 통일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분단국가인 우리나라 교회의 사명도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가 분단의 벽을 넘는 연결고리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하늘샘교회가 통일의 꿈을 꾸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우들 모두가 민족 통일의 꿈을 꾸는 신앙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의 상황, 나라가 멸망한다고 울부짖으며 예언한 예레미야를 정부 당국은 오히려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정말 아무 소망도 가질 수 없던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간절히 꿈 꿀 때, 우리의 꿈이 정말 간절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이루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사순절 셋째 주일, 하나님의 은혜가 성도들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