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다마

[민들레]

호사다마(好事多魔) 

     서계숙 

  나에겐 두 아들이 있다. 이들이 어렸을 때는 엄마인 나의 말을 곧잘 듣더니  이젠 그들만의 문화를 즐기려 한다. 모처럼 하루 여행을 같이 가자고 해도 다만“다녀오세요.” 한 마디면 다시 말을 붙이기도 그랬었다. 그런데 엊그제 작은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번 아버지 생신을 맞아 주말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있으니 아버지 승낙을 받아달란다.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번거롭게 그럴 것 없다며 거절하시더라는 것이다. 남편은 내심 나의 수고가 뒤따를 것을 염려해서 그런 모양이다. 이러한 사정을 아는 아이들은 아무 것도 준비 하지 말고 옷만 챙겨서 모처럼 편히 쉬었다 오자고 당부한다.

  작은 아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기 뜻을 펴기 위해 더 공부를 해야 한다고 대학 졸업 후 몇 해째 사회에 출항을 늦추고 있었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내 놓지는 못하고 내심 그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았었다. 그런데, 지난 해 말, 갑자기 항로를 바꾸더니, 국내 어느 기업에 취업이 되어 뒤늦게나마 출항을 시작했고, 이제 어엿한 봉급을 받아 부모에게 효도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그날 밤. 남편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가족 여행의 승낙을 받아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날, 전주에 밤늦게 도착한 두 아들과  여행을 떠난다.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작은 아들이 인터넷으로 충남 태안반도에 있는 어느 펜션을 예약해 놓고 운전대를 잡는다. 아이들은 여행 기간 동안 식사는 현지에서 해결하자며 나에게 먹을 것 준비를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나는 몇 가지 반찬을 준비해서 차 트렁크에 실었다.  이날따라 날씨가 심통을 부리는지 마지막 꽃샘추위가 녹녹치 않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더욱 쌀쌀하다. 체감 온도는 가는 겨울을 붙잡고 있다.

  우리가 도착한 지역은 이제 개발이 시작되고 있었다. 해변 가로 나 있는 길은 좁고, 포장이 되어있지 않아 요철이 심하다. 날씨 탓도 있겠지만 교통이 불편해서인지 아직은 사람들이 북적대지 않았다. 덕분에 한적한 오후가 가슴으로 한 아름 안겨진다. 역시 자연은 그대로가 제일 아름답고 정겹다.  점심때가 되어 둘러보니 식사를 할 만한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저 여기저기  펜션 만 보인다. 간신히 한 집 있는 횟집을 찾아들어가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주인이 권하는 대로 자연산 회를 택했다. 상차림을 보니 돈을 주고 나오기가 아까울 정도로 상술만 보였다.  예약된 펜션을 찾아갔는데 아이들은 실망한 눈치다. 원룸 형태라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겠다고 차를 돌린다. 모처럼 쉬려고 왔는데 서로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한 모양이다. 요즘은 한 방에서 여러 식구들이 부대끼며 살아보지 않아서 원룸 생활이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나는 그 곳의 전경에 매료되어 그냥 여장을 풀자고 고집을 부렸다.  펜션 앞마당에 펼쳐진 넓은 잔디밭이 끝나는 곳에는 바다가 맞닿아 있고, 내 머리 숱만큼이나 성글게 서 있는 갈대가 바람에 나부끼며 나에게 다가오라고 손짓을 한다. 저쪽에는 푸른 옷을 입은 조각배와 어선 한 척이 침묵으로 갯벌에 발이 묶여 있다. 아직은 파란 싹이 나지 않은 노란 잔디밭 한켠에는 예쁜 까치 한 쌍이 가끔씩 통통 튀면서 한가로움을 줍고 있다. 디카를 꺼내어 여기저기 마구 찍어대는 나를 보고 차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고 있던 두 아들이 연신 즐거운 웃음을 바람 속에 흩날린다. 방에 들어가 여독을 내려놓자 남편과 두 아들은 어느 결에 한밤중이 되었다. 아직 한낮인데도 사위는 조용하다.    우리가 들어 있는 집은 남향이다. 동쪽으로 난 창 밑에 식탁이 놓여 있고, 그 예쁜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와 정원수 사이로 행복이 손짓한다. 잠으로 허비하기엔 너무도 기분 좋은 시간과의 만남이다. 나는 가지고 간 시집을 꺼내 읽으면서 시상을 떠 올려 보지만 얄팍한 표현력은 전혀 나의 감정을 뒷받침 해 주지 못한다. 아무래도 좋다. 그냥 이 시간을 만끽 해본다. 

 비싼 점심값을 지불하고도 기대치에 못 미친 서운함을 메우기 위해 챙겨 간 반찬으로 저녁상을 차렸다. 그곳에 구비되어 있는 오지그릇이 더욱 품격 높은 식탁을 만들어 우리를 초대한다. 아무 것도 준비하지 말라던 가족들은 즐겁게 식사를 한다. 오랜만에 가족이 한 방에 있는 그 자체가 좋다. 이곳은 외딴 곳이기도 하지만 외부에서 들려오는 잡음이 전혀 없다. 밤이 되니 천정 바로 밑 아치형으로 난 창문으로 밤하늘이 보인다. 가물가물 속삭이는 별들의 이야기가 우리가 누워 있는 방 안으로 쏟아져 내린다.  세상이 온통 잠들어 있다. 오랜만에 느끼는 적막과 고요다.  지금껏 이런 고요는 느껴본 적이 없다. 멀리서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는 물론, 개 짓는 소리도  없다. 어쩜 세상의 모든 고요가 모두 모여 있는 듯 적막하다. 모처럼 가족이 불을 끄고 한 방에 누워있다.  한참 후에 남편이 어둠 속에서 적막을 깨며 이제 성인이 되어버린 두 아들에게 그 동안 함구해 오던 가족사를 밝힌다. 아이들은 관심 있게 귀를 기울이며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그 사이 포근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보니 머리도 몸도 아주 가볍다.  동쪽으로 난 창문이 환해지기에 밖으로 나가보니 어제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썰물이 되어 맨살을 드러내 놓고 있던 갯벌이 잔잔한 물결 옷을 풍성하게 입고 있었다. 상큼한 기운이 밀려오는 물결만큼이나 가슴이 충만해진다.

  늦은 아침을 먹고 오전 11시에 출발했다. 두 아들은 아직 마지막 이벤트가 남아있다고 서울로 가잔다. 만찬을 분위기 좋은 음식점에  예약해 놓고 우리 부부를 초대한 것이다. 그날 저녁은 또 다른 의미의 행복을 포식했다.  아이들 집에서 자고 아침 일찍 귀로를 서두르는데 먼저 현관을 나섰던 큰아들의 얼굴이 심상치 않다. 밤사이 집 앞에 주차해 놓은 우리 차에  누군가 큰 상처를 내 놓았다. 양심을 버리고 간 흔적은 행복했던 기분을 다 망쳐 놓았다. 모처럼 아이들하고 보낸 시간이 너무 즐거워 감사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찌그러진 차를 몰고 오는 우리 부부의 기분은 양심을 버리고 간 그 사람이 너무 미워 마구 저주를 퍼부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망가진 차를 몰고 오는 남편이 속이 상한지 정도 이상으로 속력을 낸다. “속도를 줄여주십시오”하는  지피에스(GPS)에 녹음된 아가씨 소리가 우리 차의 속도를 따라 온다. 내가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말을 걸었다. “방금 한 말을 전라도 말로 하면  찬찬히 가. 그래도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찬찬히 가랑개”혼자서 말을 했더니 말대꾸로 “그래도 속력을 내면 뭐라고 할까?” 하기에 “너 뒈질레”하겠지. 그 말을 듣고 남편이 피식 웃으며 속력을 줄인다. 다음 날, 망가진 차를 공업사에 맡기고 돌아온 남편은 엄청난 수리비에 어이없어 한다. 어감으로 보아 아직도 기분이 풀리지 않은 듯 했다. 그래서 “여보!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 있잖아요.  비록 1박2일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이번 여행 덕분에 한 동한 쌓였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 버리고 소모된 기운이 충전 된 것 같아서 너무 좋은데” 했더니 남편이 그러면 됐어 하며 웃는다. 전화벨이 울린다. 작은 아들이다. 아버님 생신 선물로 형하고 봉투를 준비했는데 아침 일찍 출발하시기에 깜빡 잊어버리고 못 드렸다면서 다음 번 집에 내려가서 드릴 테니 차 수리비는 염려하지 말란다. 사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는데....... 부모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예쁘고 금전적인 것을 먼저 따지는 것처럼 비쳐진 우리 태도가 미안하여 대신 뺑소니친 사람을 미워했던 마음을 추슬러 본다.

2007.3.13

[사루비아]

민들레언니~ 너무 행복하십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해 주는 가족은 세상 어느 것하고 바꿀 수 없는 귀한 보배 이지요.언니 가족 모두 영원한 행복과 웃음, 건강이 가득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사랑]

이하동감입니다. 가족과의 평화가 곧 행복이지요. 온가족이 모두 건강하셔서 민들레님의 얼굴에 항상 밝은 미소가 있기를 빌어드립니다.

[이수]

너무 정겹고 행복한 가족 나들이가 너무 좋습니다. 정말 좋은 아들을 두셨습니다. 님의 가족이 언제까지나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기도합니다.

[추억속의 여인]

민들레언니의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봅니다, 행복은 늘 내 마음 속에서 잠자고 있으니 끄집어 내어 잘 황용을 해야 하겠습니다, 언니는 행복을 잘 쓰고 계시네요, 어쩜!! 그렇게 얼굴도 예쁘시고 글도 잘 쓰세요 부럽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빈배]

참으로 행복하시겠습니다. 중학생만 되어도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요즘, 두 아드님이 대견합니다. 저는 아들 하나입니다. 지금 고3 입니다. 민들레님 자녀처럼 잘 키워야 할텐데... 최선을 다 해 볼 뿐입니다. 행복한 글 .... 저도 행복해졌습니다.

[민들레]

사루비아님 하늘사랑언니 이수님 추억속의 여인님 빈배님 감사합니다 긴 졸작을 읽어 주시고 용기 주시니 ~~~

[나의 기쁨]

기대하시라 이제부터 민들레의 수필 실력이 슬슬 나오기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

[mini]

훌륭한 작품이라 그런지~~행복이 그대로 묻어 나 있습니다...저희 애기도 초등6학년인데 벌써 부터 엄마하고의 시간을 조금씩 줄이는것 같아서 서운하기도하고 그래요. 저도 훌륭하게 잘 키워야 할텐데~~선생님 자제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