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소설,수필
양은도시락
2005/12/08 오후 9:15 | 창작소설,수필 | [호야]
양은도시락
글-淸幽 김수미
시장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눈에 띈 양은 도시락
나도 모르게 "어머" 하는 외마디 탄성과 동시에
손이 얼른 양은 도시락을 부여잡았다.
누런 빛깔의 사각 도시락.
정겨운 학창시절이 물밀듯이 떠오른다.
가게 아저씨는 2000원이라며 요즘 잘 팔리는 추억의 도시락이라고
설명까지 덧붙인다.
얼른 2000원에 추억이 담긴 도시락을 냉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친숙한 도시락이
바로 양은 사각 도시락이었다.
어머니는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셔서 부뚜막에 양은도시락 4개를
나란히 놓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가득히 담아주시곤 하셨다.
도시락 한 귀퉁이에는 양은 칸막이가 있어서 멸치볶음이나, 콩자반 등을
반찬으로 담아주시곤 했다.
그리고 유리병엔 김치를 썰어서 넣어주시고는 혹시라도 국물이
샐까 싶어서 비닐로 입구를 단단히 봉하고는 다시 라면 봉지 안에
김치 병을 담아서 책가방에 넣어주셨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 들으랴, 하얀 교복칼라에 비 안 맞게 하려고 안절부절
못하며 버스에 오르곤 했다.
어쩌다 근사한 남학생이 책가방이라도 받아줄 때면, 가방 속에 김치 병에서
국물이 새어나오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맘으로 가방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내가 다른 학생 책가방을 받아줄 때도 반찬국물이 흐를까 봐 가방을 세워서
받아주곤 했다.
정겨운 점심시간이 되면 양은 도시락을 열고 서로 반찬을 나눠 먹으며
깔깔거렸고, 가끔은 친구들과 밥을 조금 덜어내 놓고는 도시락에 가져온 반찬을
다 섞어 넣고는 고추장 한 수저 넣고 양은 도시락 뚜껑을 닫고는 지금의
칵테일 하듯이 도시락을 좌우상하로 흔들어댔다.
그러면 어느 결에 밥이 골고루 섞여서 비빔밥이 되곤 했다.
또한, 그 시절엔 혼,분식 장려운동이 실시되면서 도시락에 밥을 담을 때 보리가 50%
이상 섞여야만 도덕 점수에 10점을 더해주었다.
그래서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보리밥이 싫어 흰 쌀밥에 보리밥으로 살짝 위만 덮어
가지고 다녔는데 걸리면 손들고 벌을 서야했다.
그리고, 가끔은 달걀프라이를 밥 위에 얹어서 도시락을 싸오는 날이면
가장 행복한 맘으로 뚜껑을 활짝 열고 자랑하면서 먹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 중엔 동그란 분홍 소시지를 달걀에 부쳐서 반찬으로 싸오는 아이가 있는데
그러면 왜 그렇게 그 소시지가 맛있어 보이는지...,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보통 대부분의 아이들은 콩자반, 오이지무침, 콩나물무침, 멸치볶음 어묵볶음 등이
주요 반찬이었기에 동그란 분홍소시지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닌데도 그때는 왜 그리 부러운지.
추운 겨울이면 양은도시락이 아침에 아무리 따끈한 밥을
넣어왔다 해도 식어서 차가워졌다.
그때는 보온 도시락이 무척 귀했던 시절이라 거의 모두가
양은 도시락을 사용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겨울철 조개탄을 때는 난로 위에 2교시가 끝난
다음부터 양은도시락을 난로위에 얹어져서 밥을 데우곤 했다.
그날의 당번은 쉬는 시간마다 도시락을 위아래를 바꿔 놓아주며 태우지 않게
하는 수고로움도 해야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도시락을 먹은 후 그 양은 도시락에 물을 받아서 마시면
숭늉이 따로 필요 없었다.
양은도시락 덕분에 추억으로의 여행을 한 것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 신기한 듯 웃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때의 조개탄 난로며, 누렇게 탄 양은 도시락들과 시린 손 호호 불며
난로 주위에 모여서 재잘거렸던 그때 그 시절이 왜 이렇게 눈물겹도록 그리운지.
몇 십년을 거슬러 올라간 추억의 그 자리 그 친구들은 지금 다들 어찌 사는지.
모두 건강하게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잘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해본다.
2005. 06. 20.
첫댓글 추측컨대, 이 아줌마 땔감이나 반찬 내용으로보아 우리보다 5~10년정도 아래, 뜻모를 호를 가진걸로 보아 꽤 높은 경지의 붓글씨를 쓰는듯 하고, 콩나물 값 아낀 돈으로 거금을 쾌척한 걸로보아 나만큼 "과거 반추병"이 중증인듯하며, 아무튼 멋쟁이 아줌마 일 것임엔 틀림없다. 근데 가만, 너무 칭찬 하다간 얻어 맞겠지 ?
촌놈이 서울와서 놀랜건 도시락에 계란 후라이를 넣어 오는것 이였다. 시골에선 계란은 짚으로 소중히 엮어 시장에 팔아야 하니까 명절에나 찐계란 반쪽으로 썬것을 맛볼 수 있었다. 또 쏘세지는 구경도 못했고, 혼,분식 강조 안해도 의례 보리밥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