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과 저승을 오고가는 반야일구(般若一句)
이승과 저승을 오고가는 반야일구(般若一句),
반야용선(般若龍船)이다.
이승에서 살다가 때가 되면 누구나 저승으로 간다.
그때 잊지 않고 해야 할 한마디가 없을까,
뭘 의지해서 저승으로 갈까?
이승과 저승에서 두루 통할 수 있는 일구가 도대체 뭘까?
그렇다, ‘금강경’이며 ‘반야심경’이고
더 줄여서 ‘나무마하반야바라밀다’이다.
이 한 구절이면 족하다.
어느 곳, 어느 때라도 알맞다.
말 그대로 불모(佛母)가 아니신가!
그 길에는 부족해도 안 되지만 넘쳐도 안 된다.
오로지 영원과 청정의 원만구족이다.
시방삼세(十方三世)에 두루 통하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나무마하반야바라밀다’이고, 초출(超出)의 일구임에랴.
오래 전 불자(佛子), 중국 당대의 측천무후(則天武后)가
반야일구(般若一句)를 위해
앞장서서 자신의 발원을 온 천하에 펼치고 있다.
황제의 위세가 아닌 반야(般若)의 위덕(威德)을 발원하고 있다.
無上甚深微妙法 위―없이 심히 깊은 미묘법이여
百千萬劫難遭遇 백―천― 만겁인들 어찌 만나리
我今聞見得受持 내―이제 보고듣고 받아지니니
願解如來眞實義 부처님의 진실한 뜻 알아지이다.
이승에서 저승 갈 때, 저승에서 이승으로 올 때,
오직 한 구절 “나무마하반야바라밀다”를 부른다.
열 번을 부른다.
반야용선을 타고 생사의 바다에 출몰한다.
불망념(不忘念)의 한 생각이 바로 ‘나무마하반야바라밀다’이다.
열 번은 덤이다. 한 번이면 된다.
이것이 불교의 총결(總結)이고
그야말로 통념(通念)이고 통찰(通察)이다.
통념일구가 있어야 통찰의 삶이 된다.
(송암 지원 스님 칼럼)
작성자 : 목야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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