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낮 12시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삼성전자 이재용(45) 부회장과 신종균 사장,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최지성 실장(부회장) 등 삼성 수뇌부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맞은 편에는 래리 페이지 구글(Google) CEO와 그 일행이 함께 앉아 식사를 했지요. 이 자리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래리 페이지에게 이런 요지의 말을 했습니다.
“닷새 전 바로 이 장소에서 빌 게이츠 MS(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와 만찬을 함께 했다. 그 다음날 빌 게이츠는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는데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악수했다. 빌 게이츠 본인은 아무 생각없이 습관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악수했을지 모르겠으나 한국 문화에는 매우 예의없어 보이는 행동이었다.”
이 부회장으로부터 이 말을 들은 래리 페이지는 이날 오찬 직후 청와대를 예방해 박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그후 공개된 사진을 보셨나요? 래리 페이지는 두 손으로 깍듯하게 ‘아주 공손한 악수’를 했습니다. 이 부회장의 코칭(?)이 효험을 발휘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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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위에 사진 왼쪽)과 구글 래리 페이지 최고경영자/ 출처=조선일보 (아래 사진)박근혜 대통령이 4월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래리 페이지 구글 최고경영자(CEO)를 접견해 악수하고 있다./출처=뉴시스
이 부회장은 이날 래리 페이지와의 오찬 회동 직후, 수십명의 사진기자들 앞에서 어깨동무를 함께 하는 포즈도 취했습니다. 쇼잉(showing)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일각에서 제기됐던 삼성과 구글의 관계 악화설을 불식시키고 보다 탄탄한 협력관계로 나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략적 행동’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요즘 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입니다. 동시에 리더로서의 경영 보폭(步幅)도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래리 페이지 등 세계 IT업계 거물(巨物)은 물론, 세계적 제약회사인 미국 머크사(社)의 케네스 프레이저 회장, 영국 최대 가전유통업체 딕슨의 최고경영자인 세바스찬 제임스 회장, 미국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과 프랑스의 플뢰르 펠르랭 중소기업·혁신·디지털경제 장관 등 한국을 방문하는 주요 인사들을 모두 만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 지인이 많고, 삼성전자가 세계 전자(電子)업계에서 명실상부한 챔피언급 기업이 되다 보니 한국을 찾는 외국 유명 인사들은 그를 만나고 가는 게 ‘방한(訪韓) 필수코스’가 된듯 합니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전 세계 거물급들과 친분 다져, 일본 시장 공략에도 직접 나서
이 부회장을 잘 아는 재계 인사들은 “래리 페이지의 악수 조언에서 볼 수 있듯, 요즘 이 부회장은 삼성의 이익을 넘어 국가적인 관점에서도 지인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등 예전보다 많이 성숙해진 것 같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 부회장은 2005년부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비롯해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 왕치산(王岐山) 정치국 상무위원 등과 수시로 만나 중국 수뇌부와도 깊은 교분을 다져오고 있습니다. 이 부회장은 2005년 당시 시진핑 저장(浙江)성 당서기가 삼성전자 수원 사업장을 방문하면서 인연을 맺기 시작해 지난달 초 해남도(海南島)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서 두차례 면담했는데, 두 사람은 중국 사업에 대한 장기협력 방안 등을 논의할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 한정 당서기와 만난 이재용(왼쪽) 부회장. /상하이시 당위원회 홈페이지
이재용 부회장의 주변 사람들은 “요즘 이 부회장에게 자신감과 활기가 넘친다”는 얘기를 자주 합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면(前面)에 나서는 경우가 드물었으나 올 들어서는 그룹을 찾는 주요 인사들을 직접 만나 사업을 논의하는 등 많이 달라졌다는 이유에서죠. 부친인 이건희(71) 삼성전자 회장을 보필하는 ‘조용한 존재’에서 그룹 현안부터 미래전략까지 챙기는 ‘적극적 리더’로 변신했다는 것입니다.
재계 소식에 정통한 한 인사는 “이런 배경에는 지난해 12월 부회장으로 승진한 영향이 일차적이겠지만, 삼성가(家)의 상속 소송도 일정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삼성 안팎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형(兄) 이맹희씨 등이 제기한 4조원대의 유산 상속 소송에서 “한 푼도 줄 수 없다”며 강경하게 나간 것도 아들인 이 부회장을 배려해서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이건희 회장의 생전에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3세들의 시대에는 이 문제가 더 크게 불거질 수 있으므로 본인이 확실하게 정리하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죠. 이 소송이 계속 진행 중이긴 하지만, 1심에서 삼성의 완승으로 끝나자 이 부회장은 크게 안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통 외부의 공동 적(敵)과 싸우다 보면 내부 결속이 단단해지는데,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이건희-이재용 부자(父子) 관계가 훨씬 더 끈끈해졌다고 미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부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4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의 첫 해외순방길 경제사절단 동행을 위해 김포공항으로 출국하고 있다.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성과가 좋습니다. 이 부회장이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삼성전자는 매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한국 기업 최초로 매출 200조원을 달성했고, 매 분기 사상 최대 실적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증권사들은 올 2분기에는 삼성전자가 사상 처음으로 10조원 벽을 깨고 11조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특히 최근 삼성전자의 액정디스플레이(液晶·LCD) 사업 분야에서 최대 숙적(宿敵)이던 일본 샤프와의 ‘합작’을 성사시켰습니다. 이 일을 놓고 국내 재계는 물론 일본 전자(電子)업계도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이 건은 어떻게 이뤄졌을까요? 지난해 12월12일 이재용 부회장은 부회장 승진 이후 첫 해외 출장지로 일본, 그것도 오사카를 택했습니다. 당시 귀국길에 김포공항에서 기자와 만난 이 부회장은 “오사카에 있는 삼성전자 가전연구소 등을 둘러봤다”고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이 부회장의 당시 오사카 출장에는 한층 중요한 비즈니스 일정이 있었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올 3월 삼성전자가 일본 LCD기업인 샤프사에 100억엔(약 1150억원)을 출자해 샤프의 지분 3.04%를 인수해 5대 주주가 됐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 언론은 “한·일 전자 대기업이 자본 제휴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크게 보도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샤프 입장에서 볼때 LCD사업 분야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입니다. 액정 기술을 놓고 소송(訴訟)까지 벌인 견원지간(犬猿之間)이었지요. 샤프는 그래서 당초 대만 업체인 훙하이(鴻海)와 자본·업무 제휴를 추진했었습니다. 액정TV 등 디지털 제품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삼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지난해 3월부터 훙하이와 제휴를 모색했던 것입니다. 이 협상이 지지부진한 틈새를 이재용 부회장이 파고든 것이죠. 이 부회장의 지난해 연말 오사카 출장은 샤프 공략의 시발점이었던 것입니다.
라이벌이던 샤프와 합작 성사 등 승승장구, 극복해야 할 도전도 만만찮아
이 부회장은 오사카에 있는 샤프 본사를 찾아 오쿠다 사장과 가타야마 미키오 회장을 직접 만났다고 합니다. 두 회사 수뇌부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 부회장은 “(TV용 대형 패널을 생산하는)사카이 공장에 삼성이 출자(出資)할 수 없겠습니까”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그러면서 ‘윈-윈 체제를 구축하자’며 투자 의향을 비쳤다고 합니다.
샤프 내부에서는 반대 의견이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 샤프가 경영상 어려움에 빠진 것은 삼성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으로으로부터의 출자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는 반발이 컸던 것이죠. 삼성이 당초 400억엔 정도를 제안했으나 최종적으로 100억엔에 그친 것은 이런 사내 분위기를 배려한 조치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부회장 승진 후 첫 출장을 통해 한·일 전자 기업간 협력의 돌다리를 놓음으로써 이 부회장은 추진력과 돌파력, 협상력을 증명해 보인 셈입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18일에도 일본을 방문해 마사요시 손 소프트뱅크 회장, 가토 가오루 NTT도코모 CEO, 다나카 다카시 KDDI CEO 등 일본내 3대 통신사업자 수장들과 잇따라 만나 협력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 부회장이 차기 주력 스마트폰 갤럭시S4를 앞세워 한국 가전제품이 외면당하는 ‘한국 전자 제품의 무덤’인 일본 시장 개척에 직접 발벗고 나서고 있는 것이죠.
이 부회장은 평소 아침 5시에 일어나 매일 신문 기사를 꼼꼼히 챙겨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ooo 기사는 깊이가 있다", "ooo 기사는 잘못된 부분이 있다"라는 의견을 가끔 직접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핸디캡 6정도의 싱글 골퍼인 이 부회장은 2011년 세계 최고의 명문골프클럽인 R&A(영국왕립골프협회)의 세번째 한국인 정회원이 됐고 10년여 간격으로 지금까지 세 차례 홀인원을 했다고 합니다. 사이클링 버디(파 3·4·5홀 연속으로 버디하는 것)도 수차례 했는데, 요즘엔 업무가 폭주해 골프를 즐길 여유 조차 잘 없다고 합니다. 이 부회장은 한때 자신의 취미가 고지도(古地圖) 수집이라고 공개한 적이 있는데, 이는 대학 전공(서울대 동양사학과)과 관련있다고 합니다.
최근 삼성전자의 호조세만 보면 이 부회장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어깨 위에는 무거운 숙제들도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이익이 휴대전화 사업분야에 편중돼 있고 스마트폰 이후 새 성장 동력이 분명하지 않은 게 대표적입니다. 외부적으로는 기업지배구조 선진화와 오너 일가의 투명 경영 등 경제민주화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것도 부담입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초 보아오포럼에 참석후 귀국하면서 “삼성이 더 잘해야 한다. 큰 책임감을 느끼고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여러 안팎의 도전들을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나갈지 주목됩니다.
첫댓글 역시 한사람의 역할로 태도가 바뀔수 있음을 느끼게 하는군요..
조력자..조언자가 필요~
항상 누군가 소중한 사람을 만날때..조언자가 필요함을 느끼게 합니다!
공감합니다...
로마가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구굴 ㅡCEO...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