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강지나 지음. 돌베개 펴냄.
가난의 양면성 / 인생은 지금부터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리고 나약했던 시절의 나.
서울 변두리 산동네에서 살다 아버지의 직장 근처로 이사를 왔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이었나. 3층짜리 빌라의 반 지하. 계단을 내려가면 총 다섯 집과 창고가 하나 있었다. 각 집에는 단칸방과 부엌이 있고 화장실은 외부에 공용화장실을 써야 했다. 이제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오던 아버지와 매일 같이 살아야 한다. 그건 나에게 일주일에 이틀만 긴장하면 되던 날이 매일 같이 이어진다는 의미였다.
아버지는 너무나 무서운 존재였고 나와 동생들은 매일 혼나거나 매를 맞았다. 또 엄마와 아버지는 자주 다투셨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나는 언제나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아이였다. 더욱이 전학을 가서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었고 기댈 곳이 아무 데도 없던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해 친구도 깊게 사귀지 못했다. 삶의 의욕이 별로 없었고 잘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나는 조금씩 변했던 것 같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니 살만했다. 중학생 이후 엄마가 아버지에게 아이들을 때리지 말라며 방어막이 되어 준 덕분이기도 했다. 그걸 빌미로 엄마와 아버지는 더 자주 싸우게 되셨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가난했던 나의 생활에서 한 가지 득이라면 독립심이 강한 사람이 된 것이다. 부모님은 먹고살기에 바쁘셨기에 맏딸인 나는 많은 일들을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시점부터 대학을 가고 직장을 구하는 일까지 부모님과 상의하는 일보다 친구 따라 강남 간 경우가 더 많았다. 그렇게 내가 결정했기 때문에 끝까지 내가 책임을 져야 했고, 따라서 책임감도 덤으로 따라왔다.
그런데 독립심이 강하고 책임감도 강한 성향이 때로는 독이 되기도 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 받는 걸 몹시 사양한다. 남을 도와주는 건 언제나 마다하지 않으면서 정작 부탁은 잘 못한다. 다른 사람에게 완벽해 보이려고 애쓰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흔이 넘어보니 이제 좀 알 것 같다. 세상은 서로 도와주고 도움 받으면서 의지하며 사는 거라는 걸, 때론 좀 허술해 보여도 괜찮다는 걸.
가난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나의 어린 시절은 내가 어쩔 도리가 없다. 진짜 내 인생은 어른이 된 이후부터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 갈 수 있다. 하지만 그냥 바뀌지는 않는다.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바뀐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가장 큰 빈곤은 마음의 빈곤이다. 마음의 빈곤을 채우는 데 나의 경우엔 책이 큰 몫을 했다. 아이를 낳고 나의 부모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면서 나의 마음을 성장시켜 준 데에는 반드시 책의 힘이 있었다고 믿는다.
가난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물질적으론 가난할지 모르지만 지금의 가족이 있고 나를 알아주는 지인들이 있어 행복하다.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성장한 나를 스스로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인생의 초반부는 암울했지만 중반부는 내 스스로 개척해 나가고 있다. 초반에 힘들었으니 이젠 나아질 일 밖에 남지 않았나.
“나는 성장하고 싶은 어린 생명이 가난이란 굴레와 가족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고 굴절되고 다시 일어서는지 그들의 목소리로 기록하고 싶었다. 그 안에는 세상에서 흔히 통용되는 가난에 대한 인식이나 이미지와 다른,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가 있었다.” (p.7)
첫댓글 그 날 주옥같은 코멘트를 받아 더 좋은 글로 퇴고해주시리라 믿으며!!!
새벽까지 글 쓰느라 애쓴 영경쌤, 칭찬해!
자라느라 애쓴 영경쌤을 마음으로 꼭 안아드립니다!! (너무 멋진 사람)
ㅎㅎㅎ 정인 샘, 고마워요~~❤️
퇴고중이에요~ 송아 샘,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