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토끼
김 유 정
나는 한 마리 토끼 때문에 자나깨나 생각하였다. 어떻게 하면 요놈을 얼른 키워서 새끼를 낳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이었다.
이 토끼는 하나님이 나에게 내려주신 보물이었다.
몹시 춥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내가 아직 꿈속에서 놀고 있을 때 어머니가 팔을 흔들어 깨우신다. 아침잠이 번이 늦은 데다가 자는데 깨우면 괜스레 약이 오르는 나였다. 팔꿈치로 그 손을 툭 털어버리고
“아이 참 죽겠네!”
골을 이렇게 내자니까
“너 이 토끼 싫으냐?” 하고 그럼 고만두란 듯이 은근히 나를 당기고 계신 것이다.
나는 잠결에 그럼 아버지가 아마 오래만에 고기 생각이 나서 토끼고기를 사오셨나, 그래 어머니가 나를 먹이려고 깨우시는 것이 아닐까, 하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뻑뻑한 눈을 떠보니 이게 다 뭐냐. 조막만 하고도 아주 하얀 옥토끼 한 마리가 어머니 치마 앞에 폭 싸여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눈곱을 부비고 허둥지둥 다가앉으며
“이거 어서 났수?”
“이쁘지?”
“글쎄 어서 났냔 말이야?” 하고 조급히 물으니까
“아침에 쌀을 씻으러 나가니까 우리 부뚜막 위에 올라앉아서 옹크리고 있더라. 아마 누 집에서 기르는 토낀데 빠져나왔나 봐.”
어머니는 언 두 손을 화로 위에서 비비면서 부척 기뻐하셨다. 그 말씀이 우리가 이 신당리로 떠나온 뒤로는 이날까지 지지리지지리 고생만 하였다. 이렇게 옥토끼가 그것도 이 집에 네 가구가 있으련만 그중에다 우리를 찾아왔을 적에는 새해부터는 아마 운수가 좀 피려는 거나 아닐까 하며 고생살이에 찌든 한숨을 내쉬고 하시었다.
그러나 나는 나대로의 딴 희망이 있지 않아선 안될 것이다. 이런 귀여운 옥토끼가 뭇사람을 제치고 나를 찾아왔음에는 아마 나의 심평¹이 차차 피려나 보다 하였다. 그리고 어머니 치마 앞에서 옥토끼를 끄집어내 들고 고놈을 입에 대보고 뺨에 문질러보고 턱에다 받쳐도 보고 하였다.
참으로 귀엽고도 아름다운 동물이었다.
나는 아침밥도 먹을 새 없이 그러고 어머니가 팔을 붙잡고
“너 숙이 갖다주려고 그러니? 내 집에 들어온 복은 남 안 주는 법이야. 인내라 인내.”
이렇게 굳이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덜렁거리고 문밖으로 나섰다. 뒷골목으로 들어가 숙이를 문간으로 (불리 만나보면 물론 둘이 떨고 섰는 것이나 그 부모가 무서워서 방에는 못 들어가고) 넌지시 불러내다가
“이 옥토끼 잘 길루.” 하고 두루마기 속에서 고놈을 꺼내주었다. 나의 예상대로 숙이는 가손² 진 그 눈을 똥그랗게 뜨더니 두 손으로 답싹 집어다가는 저도 역시 입을 맞추고 뺨을 대보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가슴에다 막 부둥켜안는 데는 나는 고만 질색을 하며
“아아, 그렇게 하면 뼈가 부서져 죽우. 토끼는 두 귀를 붙들고 이렇게…….” 하고 토끼 다루는 법까지 가르쳐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라는 대로 두 귀를 붙잡고 섰는 숙이를 가만히 바라보며 나는 이 집이 내 집이라 하고 또 숙이가 내 아내라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였다. 숙이가 여자 양말 하나 사다 달라고 부탁하고 내가 그래라고 승낙한 지가 달 장근³이 되련만 그것도 못하는 걸 생각하니 내 자신이 불쌍도 하였다.
“요놈이 크거든 짝을 채워서 우리 새끼를 자꾸 받읍시다. 그 새끼를 팔구 팔구 허면 나종에는 큰돈이…….”
그러고 토끼를 쳐들고 암만 들여다보니 태체 숫놈인지 암놈인지 분간을 모르겠다. 이게 적이 근심이 되어
“그런데 뭔지 알아야 짝을 채우지!” 하고 혼자 뚜덜거리니까
“그건 인제…….”
숙이는 이렇게 낯을 약간 붉히더니 어색한 표정을 웃음으로 버무리며
“낭중 커야 알지요!”
“그렇지! 그럼 잘 길루.”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담 날부터 매일 한 번씩 토끼 문안을 가고 하였다.
토끼가 나날이 달라간다는 숙이의 말을 듣고 나는 퍽 좋았다.
“요새두 잘 먹우?” 하고 물으면
“네. 물찌꺼기만 주다가 오늘은 배추를 주었더니 아주 잘 먹어요.”
하고 숙이도 대견한 대답이었다. 나는 이렇게 병이나 없이 잘만 먹으면 다 되려니, 생각하였다. 아니나 다르랴 숙이가
“인젠 막 뛰어다니구 똥두 밖에 가 누고 들어와요.” 하고 까만 눈알을 뒤굴릴 적에는 아주 훤칠한 어른토끼가 다 되었다. 인제는 짝을 채워줘야 할 터인데, 하고 나는 돈 없음을 걱정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돈을 변통할 길이 없어서 내가 입고 있는 두루마기를 잡힐까 그러면 뭘 입고 나가나 이렇게 양단⁴을 망설이다가 한 닷새 동안 토끼에게 가질 못하였다. 그러자 하루는 저녁을 먹 다가 어머니가
“금철 어매게 들으니까 숙이가 그 토끼를 잡아먹 었다더구나?”
하고 역정을 내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우리 어머니는 싫다는 걸 내가 들이졸라서 한번 숙이네한테 통혼을 넣다가 거절을 당한 일이 있었다. 겉으로는 아직 어리다는 것이나 그 속살⁵은 돈 있는 집으로 딸을 놓겠다는 내숭이었다. 이걸 어머니가 아시고 모욕을 당한 듯이 그들을 극히 미워하므로
“그럼 그렇지! 그것들이 김생⁶ 귀여운 줄이나 알겠니?”
“그래 토끼를 먹었어?”
나는 이렇게 눈에 불이 번쩍 나서 밖으로 뛰나왔으나 암만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제 손으로 색동 조끼까지 해 입힌 그 토끼를 설마 숙이가 잡아먹을 성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 숙이를 불러내다가 그 토끼를 좀 잠깐만 보여달라 하여도 아무 대답이 없이 얼굴만 빨개져서 서 있는 걸 보면 잡아먹은 것이 확실하였다. 이렇게 되면 이놈의 계집애가 나에게 벌써 맘이 변한 것은 넉넉히 알 수 있다. 나중에 같이 살자고 우리끼리 맺은 그 언약을 잊지 않았다면 내가 위하는 그 토끼를 제가 감히 잡아먹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한참 도끼눈으로 노려보다가
“토끼 가지러 왔수. 내 토끼 도루 내우.”
“없어요!”
숙이는 거반 울 듯한 상이더니 이내 고개를 떨어치며
“아버지가 나두 모르게……” 하고는 무안에 취하여 말끝도 다 못 맺는다.
실상은 이때 숙이가 한 사날 동안이나 밥도 안 먹고 대단히 앓고 있었다. 연초 회사에 다니며 벌어들이는 딸이 이렇게 밥도 안 먹고 앓으므로 그 아버지가 겁이 버쩍 났다. 그렇다고 고기를 사다가 몸보신시킬 형편도 못 되고 하여 결국에는 딸도 모르게 그 옥토끼를 잡아서 먹여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속은 모르니까 남의 토끼를 잡아먹고 할 말이 없어서 벙벙히 섰는 숙이가 다만 미웠다. 뭘 못 먹어서 옥토끼를,
하고 다시
“옥토끼 내놓우. 가져갈 테니.” 하니까
“잡아먹었어요.”
그제야 바로 말하고 언제 그렇게 고였는지 눈물이 똑 떨어진다. 그리고 무엇을 생각했음인지 허리춤을 뒤지더니 그 지갑(은 우리가 둘이 남몰래 약혼을 하였을 때 금반지 살 돈은 없고 급하긴 하고 해서 내가 야시에서 십오 전 주고 사 넣고 다니던 돈지갑을 대신 주었는데 그것)을 내놓으며 새침히 고개를 트는 것이다.
망할 계집애. 남의 옥토끼를 먹고 요렇게 토라지면 나는 어떡하란 말인가. 허나 여기서 더 지껄였다가는 나만 앵한 것을 알았다. 숙이의 옷가슴을 부랴사랴 헤치고 허리춤에다 그 지갑을 도로 꾹 찔러주고는 쫓아올까 봐 집으로 힝하게 달아왔다. 제가 내 옥토끼를 먹었으니까 암만 저의 아버지가 반대를 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제가 설혹 마음에 없더라도 인제는 하릴없이 나의 아내가 꼭
되어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생각하고 이불 속에서 잘 따져보다 그 옥토끼가 나에게 참으로 고마운 동물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인제는 틀림없이 너는 내 거다!’
-끝-
2016년 6월 8일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