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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참 내 제자가 되리라
본문 : 요한복음 8:31-36절
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8: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8: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설교 작성노트
본문의 중심점은 “참으로 내 제자가 되리라”에 있고, 핵심은 “진리를 알지니”에 있다. 그러면 두 가지를 묻게 된다. 첫째는 “참 제자”(弟子)의 자격이 무엇인가? 둘째는 “진리”(眞理)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이를 증언하려는 것이 내용목적이다. 주님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리라”하신다. 그러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 거하는 진짜 제자들인가?”고 묻게 된다. 여기에 적용목적이 있다 하겠다.
강론
본문 30절을 보시면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반가운 일입니까? 우리는 그러면 다 된 줄로 여기고 안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31-32)고 말씀하셨다는 문맥입니다. 바클레이는 그의 주석에서(기독교문사)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의 모습을 가장 명쾌하게 말씀하신 대목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참 제자의 자격이 무엇인가고 묻게 됩니다. 주님은 믿지 않는 자가 아니라 “자기를 믿는”자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고자 하는 우리에게도 심각한 문제로 다가옵니다.
“많은 사람이 믿더라”했는데 그것만으로는 참 제자가 아니라는 말씀이죠. 어찌하여 그들이 “참 제자”가 아니란 말인가? ㉠ 첫째는 그들의 “믿음”이 “진리를 알고 믿는” 진리(眞理)에 근거한 믿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둘째는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하신 “말씀에 거하는” 믿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점에 분명하기 위해서 2:23절로 가보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하고 여기서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24)합니다. 무슨 뜻인가?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믿음은 “진리를 알고, 진리의 말씀에 거하는”, 즉 믿음의 뿌리를 진리에 깊이 박은 믿음이 아니라 꺾어다 꽂은 꽃과 같은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믿음은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되는지 6:66절을 보겠습니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 하더라”합니다. 상황이 변하게 되면 떠나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진리를 알고, 진리의 말씀에 거하는” 믿음이 참 제자라 하시는 것입니다.
이점에서 인식해야 할 점은 “내 말에 거하면”한 “거한다”는 뜻과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벧전 1:25)한 “있도다”가 같은 메노(Meno)라는 단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믿음은 “진리의 말씀 곧 세세토록 변함이 없는 주의 말씀”에 뿌리를 박은 “메노”(Meno)의 믿음이 아니라 기분과 감정에 좌우되는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① 그러므로 오늘 설교는 나 자신이 주님의 진짜 제자인가를 점검하게 하는 체크리스트와 같은 중요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심점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하신 32절에 있다 하겠습니다. 첫째는 “진리(眞理)를 알지니”하신 진리를 알아야합니다. 둘째는 “너희를 자유(自由)롭게 하리라”하신 자유함을 얻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셋째는 “내 말에 거하면”, 즉 들락날락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깊이 박은 메노(Meno)의 믿음이 참 제자라는 것이 됩니다.
㉠ 그러므로 최우선적으로 탐색해야 할 점은 “진리가 무엇인가”하는 점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진리”라는 말이 24번이나 등장합니다. 8장에만 7번 나오는데 “진리가 무엇인가”를 깨닫는다는 것은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진리가 무엇이냐”에 대한 정의가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철학자의 “진리”가 다르고, 과학자의 “진리”가 다르고, 예술가의 “진리”가 다르고, 시민단체가 말하는 “진리”가 다르고 심지어 신학자들이 말하는 진리가 각기 다른 것이 오늘의 실정입니다.
㉡ 예를 들어 연세대학교의 교훈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입니다. 연세대학교는 선교사들에 의해서 세워진 학교입니다. 그렇다면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이해하고 있는 “진리”와 주님께서 “진리를 알지니”하신 의미가 같은 뜻이겠습니까? 심지어 교회 내에서도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말하는 진리와 복음주의자들이 증언하는 진리가 다른 것이 사실입니다.
“성령도 한 분, 주도 한 분, 하나님도 한 분, 성경도 하나”인데 오늘날 많은 교파로 갈라지게 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리”는 세상적인 진리도 아니요, 철학적인 진리가 아니라 주님께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하신 “진리”가 무엇인가 하는 성경신학적인 의미인 것입니다.
② 요한복음 18장에 보면 주님께서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세상에 왔노라 하시자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37-38)고 묻는 것이 나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눅 11:1)함과 같이 우리도 주님께 “진리를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 주님,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하셨는데 듣는 것이 둔하오니 “진리”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십시오.
㉮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나를 알지 못하느냐”(요 14:9), “내가 곧 진리”(요 14:6)니라.
㉡ 그러면 주님이 어떤 의미에서 “진리”가 되시는지 자세히 가르쳐주십시오.
㉯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추방당한 자들을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진리”라 하는 것이다.
㉢ 그러면 주님, 복음이 진리가 아닙니까?
㉰ 이제야 눈이 좀 열리느냐? 그래서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요 16:13)고 말씀한 거란다.
㉣ 주님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복음의 진리”(갈 2:14)라 말하고 구원의 복음을 “진리(眞理)의 말씀”(엡 1:13)이라고 증언했군요.
㉱ 그렇다. 그래서 32절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한 것을 36절에서는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고 말씀한 거란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진리=아들”을 동일시(同一視)하고 계십니다.
③ 그러면 다음으로 확고해야 할 점은 “하나님의 아들, 즉 복음진리”가 우리를 무엇으로부터 “자유롭게”해주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 주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이 무어라고 반박했는지 8:33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고 반격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은 종이 아니라 자유인(自由人)이라는 거죠.
㉡ 이에 대해 주님의 답변이 무엇인지 8:34절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유대인들은 빚 때문에 팔린 종, 나라가 망해서 종이 되는 육적인 “종”만을 생각하고 있으나 주님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즉 죄 값에 팔려 사탄의 종이 된 영적인 종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 이점을 8:44절에서 직설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밝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사탄의 종이다”라고 말씀하신 셈입니다.
좀 더 말씀을 드려야 분명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어찌하여 육신을 입고 임마누엘 하셨습니까? 히브리서 2:14-15절은 두 마디로 되어 있는데 첫째는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기” 위해서요, 둘째는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하신 “자유”(自由)인 것입니다.
④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야만합니다. 왜냐하면 “종노릇”하는 우리들을 그냥 자유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놓아주셨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죽음”을 통해서 해방과 자유를 주셨는지 여러분은 대답할 수가 있습니까?
㉠ 로마서 8:4절은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대답합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신 복음진리는 율법을 폐하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죄 값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요구를 우리 대신 자기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이루시고 주신 것입니다.
무엇을 깨닫게 되셨나요? 그렇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여주신 일, 우리를 해방시켜주신 일, 우리를 자유하게 행해주신 일은 진리대로 행해주신 정정당당한 구원이라는 점입니다.
㉡ “진리를 알지니”하신 진리에 대해 좀 더 말씀을 드려야 안전할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1:14절을 보겠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질문입니다. “진리”만이 아니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하고 “은혜+진리”를 결합을 시켰는데 무슨 뜻인지 말해줄 수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는 그냥 된 것이 아니라 “진리”대로 행해주신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진리로 번역이 된 “아레테이아”라는 말에는 “참되게 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2:10절에서는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구원)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그리스도)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合當)하도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비공식이나 불법적으로 행해주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자기 아들의 대속적인 죽음을 통한 “합당하게, 진리대로” 행해주신 “은혜”라는 점에 확고하시기를 바랍니다.
㉢ 이에 확고하기 위해서 한 곳만 더 인용을 하겠습니다. 시편 111:7-9절입니다.
그의 손이 하는 일은 진실과 정의이며 그의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무궁토록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속량하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설명을 하지 않아도 뜻을 아시겠지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셨다는 말이 두 번 강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해주신 일은 “진실(眞實), 정의(正義), 법도”(法道)대로 행하신 바라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이렇게 행해주셨다는 말씀입니까? 자기 “백성을 속량”하신 일입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신 일입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일입니다. 왜 이렇게 행해주셨습니까? “영원한 언약”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공의에 손상을 입으시면서 행해주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자기 아들의 대속을 통한 정정당당하게 “진리”대로 행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전할 말씀이 남았습니다. 무엇일까요? “거하면”하신 뿌리를 내린 믿음입니다. 이점을 시편 92:13절에서는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뜰에 심겨진 나무가 걸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이 “거하는” 자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 “진리를 알지니”하신 진리를 깨닫게 되셨습니까? ㉡ 그래서 “자유롭게 하리라”하신 사탄의 권세에서, 죄책감에서 자유하게 되었다는 점을 확신하게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리라”하신 복음진리에 거하시는 “메노”(Meno)의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오시는 날까지, 그리고 세세토록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참 내 제자가 되리라”는 뜻입니다.
신자 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신자 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46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