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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강해 (9)
성경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4:13~18
제목 :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최근 아기를 낳자마자 버리는 부모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40년 전 살기가 어려웠던 시절에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어쩔 수없이 자기 아이를 남의 집에 양자로 보내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강간 또는 미혼모에 의한 혼외임신, 부부관계의 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이혼하면서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때어나자마자 버려지는 아기를 위한 베이비 박스를 운영하는 교회가 매스컴을 통해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아기를 버린 엄마는 “꼭 다시 데리러오겠다”는 편지를 함께 남기지만 그 약속을 지킬 부모가 얼마나 될까요? 베이비 박스 상단에 기록된 성경말씀이 네 시선을 빼앗았습니다. 시편 27:10절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버려지는 아기는 일정기간동안 보호하다가 친부모가 나타나지 않거나 데려가지 않으면 결국 어린이보호시설로 옮겨지게 됩니다.
지난 2019년 9월 19일 EBS 다큐 [시선]에서 “열여덟 세상 밖으로”가 방영되었습니다. 그 내용에 의하면 버려진 아이들을 어린이보호시설에서 만18세까지 보호하지만 만18세가 되면 퇴소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2018년에 보호 종료 아동의 숫자가 2,606명에 달하는데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이들 중 90% 정도가 퇴소 6개월 만에 다 빈곤층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저들은 어른들에 대한 불신과 증오심, 냉혹한 사회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보호시설에 있는 아이들은 이런 말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 엄마 아빠가 돈을 벌면 저를 데리러 온다고 했어요. 우리 엄마 아빠는 꼭 올꺼예요.” 과연 그 아이의 소박한 기대가 과연 이루어질까요? 과연 그들의 부모가 그 아이들을 다시 찾으러 올까요? 나를 낳으신 부모는 나를 버리고 떠나갈지라도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다시 오시어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영접하실 것을 믿습니다.
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둘이 항상 함께 학교에 다녔는데 그날따라 학교 수업을 마친 후에도 한 아이가 집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한 아이만 먼저 집으로 돌아가고, 남아있던 아이는 해가 어두컴컴해 질 무렵에야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을까요? 사실 그 날은 수능시험 결과표를 받는 날이었습니다. 먼저 집에 들어간 아이는 좋은 결과가 나와서 빨리 집에 들어가 부모님께 자랑하고 칭찬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늦게 집에 들어간 아이는 결과가 나빠서 부모님께 혼이 날까 고민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수능 결과가 잘 나온 아이가 일찍 귀가하여 부모님의 칭찬과 격려를 기다리듯 우리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맡은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다가 신랑되신 우리 예수님 다시 오실 그 때에 상급과 칭찬을 얻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맞아주시고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고 악을 행하던 자들에게는 심판과 저주의 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사도신경을 통해 우리가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게 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고, 장사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하셨고, 하늘에 오르시어 지금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려고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이라는 예언이 신약성경에 약300회나 됩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실 때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26:64)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승천하심을 쳐다보고 있을 때 천사가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 약속이 환상이나 이론이 아니라 예수님의 승천을 너희들이 눈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다시 오실 때에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4:16)라 하였고, 사도 요한도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계1:7) 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라 믿고 고백합니다. 그때에는 죽지 않고 살아있는 자들과 이미 죽어서 무덤에 있는 자 모두 예외없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때에는 ‘구원받을 자와 버림을 당할 자’를 구별하시고,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종’을 구별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는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아 영원토록 기쁨과 감사를 누리게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죄를 범하여 죄의 종이 된 자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에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진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이요, 둘째 죽음 이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있는 자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동안 나에게도 죽음은 반드시 오게됨을 생각하고, 죽음 이후까지 준비하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이 세상의 것은 우리가 죽을 때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모두 다 불에 타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어려움과 희생과 핍박까지라도 기쁨으로 감당한 것은 영원한 상급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다 기억하시고 갚아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부귀와 영화를 마음껏 누렸던 지혜의 왕 솔로몬은 “너희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1,7-8)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죽음은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는 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말합니다.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12:18-20) 죽음이 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다 죽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장사된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하늘에 오르시어 지금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이 세상에 오실 것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죽음과 천국 사이의 중간지점에 연옥(煉獄)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연옥에 일단 머물렀다가 땅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미사나 기도를 드리면 연옥에서 빠져나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바로) 심판이 있게 될 것’(히9:27)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부자도 죽고 그 대문 앞에 살던 거지 나사로도 죽었습니다. 부자가 죽고 나서 눈을 떠보니 자신은 지옥에 떨어져 있고,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습니다. 연옥이란 곳은 없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한 강도가 회개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이 두 말씀을 통하여 죽음 이후 천국과 지옥 사이에 연옥이라는 중간지대는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사람은 다 죽습니다. 그리고 예외없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하루하루의 삶을 진지하게 살아갑니다. 허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일생’(一生)이라 하는데 이 말의 뜻은 우리 인생에 연습이 없고, 한 번 지나버린 시간은 다시 돌이킬 수가 없으며, 우리는 단 한 번밖에 살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짧은 세월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기준으로 영원한 천국과 심판이 결정되어집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이 세상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하여 많은 이단이 등장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것이라.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살후2:1-3) 하였습니다. 계속하여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하심이니라”(살후2:11,13) 하였습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미혹하는 자들을 우리에게 보내시고 또 사람들이 미혹을 받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온전히 순종하지 않고 자신의 정욕대로 사는 자들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 자칭 예수, 자칭 재림주라 주장하는 사이비 교주가 30여명에 달합니다. 이단과 사이비가 활개를 치는 모습을 볼 때 미혹당하지 말고, 예수님의 재림이 더욱 가까웠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4:3~4) 하였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선택하여 듣고자 합니다. 자기의 욕심을 이루기 위한 스승을 찾아 다닙니다. 이것은 허탄한 이야기라고 말씀합니다. 최근 코로나로 인하여 비대면 예배를 드리면서 성도들이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 나오기보다 유튜브로 자기가 좋아하는 설교자의 설교, 듣고 싶은 주제의 설교를 골라서 듣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이는 자칫 건강한 신앙을 저해할 수도 있습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3-2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세상의 것에만 소망을 두고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고 성공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인생이 끝나는 순간 이 모든 것들은 아무 유익이 없으며,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영원한 지옥의 심판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소망가운데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대를 말세 중의 말세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징조를 보면서 그 날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짐작하게 할 뿐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는 날마다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산 제물로 헌신되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3:3절에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는 이유로 핍박과 어려움을 당하십니까? 조금만 참으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워졌습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10:22) “현재 당하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가 없도다”(롬8:18) 예수님께서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영광스럽게 심판주로 오실 그 날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대로 큰 상급과 면류관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가지만 우리의 소망,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향은 바로 저 천국입니다.
주님의 오시기를 기대하는 우리 성도들은 고린도전서 15:58절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말씀을 함께 봉독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을 앎이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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