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의 힘] 미국 (1)
위치. 첫째도 위치, 둘째도 위치. 만약 당신이 복권에 당첨돼서 살고 싶은 나라에 땅을 사고 싶다고 해보자. 부동산 중개인이 가장 먼저 소개해 주는 곳은 바로 미합중국이리라.
마크 트웨인은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엉터리 기사를 언급했지만, 그라면 미합중국이 종말을 맞을 거라는 과장된 기사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었을 것이다.
그곳은 멋진 동네다. 경치도 좋고 인공 폭포도 몇 개 있다. 교통망도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그렇다면 이웃들은? 이웃들 도한 하나같이 훌륭해서 전혀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의 생활공간을 좀 더 세부적으로 쪼개본다면 그 가치는 심각하게 하락하고 만다. 특히 임차인들이 모두 같은 언어를 쓰는 것도 아니고 임대료도 저마다 다른 통화로 지불한다. 하지만 한 가정만을 위한 집이라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미국에는 50개 주가 있지만 오히려 28개 주권 국가들의 모임인 유럽 연합은 결코 이루지 못할 방식으로 하나의 국가가 되었다. 대다수 유럽연합 국가들은 미국의 주들보다 훨씬 강하고 분명한 민족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프랑스 사람을 예로 들면, 그는 첫째가 프랑스인이요 유럽인은 그 다음이다. 유럽이라는 개념에 그다지 헌신하지 않는 프랑스 사람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반면 미국인은 유럽인과는 달리 합중국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이 현상은 미국의 지리적 특성과 통합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흔치 않은 지리적 위치를 확보한 나라
이 방대한 나라의 국토를 동쪽부터 서쪽까지 붓으로 대충 칠해보면 대략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먼저 애팔래치아 산맥 방향으로 향하는 동부 연안의 평원(대서양 연안 평원) 지대다. 이 지역은 길지는 않지만 항해가 가능한 강들 덕에 수원이 풍부하고 토양이 비옥하다. 좀 더 서쪽으로 목을 빼고 보면 로키 산맥 방향으로 뻗어가는 대평원이 나온다. 이 지역 안에 거대한 뱃길을 자랑하는 미시시피 유역이 펼쳐져 있는데 이 강은 플로리다 반도와 몇몇 섬들이 호위하는 멕시코 만으로 흘러들어간다. 일단 대규모 산지인 로키 산맥을 넘어가면 사막이 나오고 이어 시에라네바다 산맥, 그리고 좁은 연안 평지가 나온다. 그리고 마침내 태평양의 파도가 눈앞에 펼쳐진다.
북쪽, 즉 오대호(Great Lakes, 북아메리카 대륙의 동부에 있는 거대한 호수군) 위로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선캄브리아대 암석지구인 캐나다 순상지가 펼쳐져 있다. 이 지역의 상당 부분은 인간이 정착하기에 어려운 장벽이 차지하고 있다. 남서쪽은 말 그대로 사막이다. 한 국가가 도달할 수 있고 ‘대서양부터 태평양에 이르는 땅’을 지배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전적으로 지리적 특성이 결정한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이 나라는 유사 이래 가장 강력한 세력이 된다. 일단 그럴 힘을 얻는다면 연방은 무력으로 침범키 어려운 존재가 된다. 여기에는 방어 부대가 뒤로 물러날 수 있는 ‘전략적 깊이’가 존재한다. 설사 미국을 침공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품었더라도 생명과 자유, 행복 추구권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때 쓸 수 있는 수백만 정의 총기들이 이 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게다가 이 나라에는 가공할 위력의 군대와 주 방위군, 주 경찰, 그리고 최근에 보았듯 신속하게 군부대로 모일 수 있는 도시 경찰이 있다. 만에 하나 침공을 당했을 때 모든 폴섬, 페어팩스, 파머빌 등은 순식간에 이라크 팔루자를 방불케 하는 저항의 요새가 된다.
캐나다의 면적은(이보다 작은 멕시코도) 어찌 보면 미국에게는 귀한 자산이다. 해양에서 접근하는 적대 세력이라면 상상을 초월하는 긴보급로를 확보해야 한다. 빤한 얘기지만 비슷한 규모의 육상 부대라도 별수 없다. 재래식 공격에도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을 이 흔치 않은 지리적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만한 규모의 공간을 확보한 다음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한쪽 연안에서 반대쪽 연안까지 거리가 4,828킬로미터나 되는 대륙임을 감안할 때 ‘통합’이라는 성취를 그 짧은 시간 안에 이뤘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17세기에 이 땅에 처음 발을 내딛고 정착을 시작한 유럽인들은 이 처녀지 동부 연안이 천연 항만과 비옥한 토지를 갖춘 곳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여기야말로 그들의 모국과는 다릴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중에 그들의 후손들은 원주민들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초기 정착민들은 그럴 의도는 없었다. 미 대륙의 지리적 특성이 여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을 대서양 너머로 끌어들였다.
1732년 조지아 주를 마지막으로 초기 13개 식민지 주가 성립됐다. 이 13개 주는 차근차근 독립의 열망를 키워가다가 결국 독립전쟁(1775-1783)을 일으켰다. 이 시기 초반, 조금씩 연결망을 넓혀가기 시작한 13개 주는 북쪽은 매사추세츠에서부터 1천 6백 킬로미터, 남쪽은 조지아까지 뻗어나갔는데 이곳에 거의 250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모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들 13개 주는 동쪽으로는 대서양부터 서쪽으로는 애팔래치아 산맥에 이르는 지역을 하나로 묶었다. 길이가 장장 2,414킬로미터에 달하는 애팔래치아 산맥은 어마어마한 규모이긴 하지만 높이 면에서는 로키 산맥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확보한 영토를 하나로 묶어 다스리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했던 초기 정착민들이 서쪽으로 전진하는 데는 엄청난 장벽이었다. 한편 식민주의자들에게는 또 다른 장벽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정치였다. 영국 정부는 애팔래치아 산맥 서쪽 지역에 주민들이 정착하는 것을 금지했다. 교역이나 세금을 확실히 징수하려면 동부 연안을 넘지 않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독립선언문(1776년)은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한 국민이 다른 국민과 연결된 정치적 결합을 푸는 것과 자연법과 자연의 신의 법이 부여한 독립과 평등의 지위를 책임지는 것이 필요할 때, 인류의 신념에 대한 엄중한 고려로 우리는 독립을 요구하는 명분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다.”
노예 소유라는 아이러니가 슬그머니 생략됐지만 적어도 독립선언문에 자세히 기술된 대의명분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만들어졌다는 자기 확신의 표현인 것은 분명하다. 이 고귀한 생각이야말로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새로운 국가를 탄생케 한 원동력이었다.
1800년대 초반, 이 신생 국가의 지도자는 자신들이 남쪽 바다 혹은 태평양에서 1천 6백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자취를 따라가던 일부 탐험가들은 대담무쌍하게 애팔래치아 산맥부터 미시시피에 이르는 길을 돌파했다. 그들은 이 여정을 통해 대양으로 이어지는 물길과, 현재 텍사스와 캘리포니아까지 포함한 태평양 연안과, 남서부를 탐험했던 스페인 사람들이 보았던 광활한 땅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