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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냐, 노예냐
부제: 고려 팔관회를 중심으로
默土 吳 鍾 洪
1.여는 말씀
우리 한겨레 역사를 돌아보면 크게 '주인으로 살 것이냐, 노예로 살 것이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인' 으로 살았을 때 자존을 지켰고 정신문화생활도 꽃을 피웠으며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웠습니다. 그러나 남의 밑으로 자진하여 들어가 섬기고 굴종하며 노예, 종으로 살았을 때는 자존은 사라지고 삶도 가난했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러한 교훈을 너무나 잘 알기에 깨어있는 푸른역사 삼태극은 '주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현재의 역사를 읽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눈으로' 역사를 발굴하고 현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예측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까페의 지도이념을 '실사구시 주인정신'으로 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깨어있는 푸른역사 삼태극’이 특정 리념에 치우쳐 있다며 '좌파, 빨갱이, 종북주의'에 매몰된 불순한 모임으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아래에서는 고려와 리조선의 역사를 비교하면서 삼태극을 리념적 잣대로 깎아내리는 것이, ‘실사구시 주인정신’이라는 관점에서 얼마나 모순인지 살펴보고 ‘깨어있는 푸른역사 삼태극’의 정체성을 다시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http://cafe.daum.net/mookto
2. 고려의 팔관회
참역사를 발굴하면서 '고려시대'이전으로 올라가는 역사에서도 주인정신이 올 곧게 나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정신문화적 측면에서 ‘실사구시實事求是 주인정신主人精神’을 자세히 알려주는 기록은 고려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사료입니다. 비록 리조선 정권이 고려를 깎아내리고 차이나, 명나라를 떠받들기 위한 수단으로 편찬하였지만, <고려사, 고려사절요> 같은 고려시대 역사를 남겨 놓았고 이런 1차 사료에 조각으로 나마 '실사구시 주인정신'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고려는 궁예의 태봉국 정신을 계승한 자주 '제국'이었습니다. 그 증거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곳곳에 나타납니다. 특히 관직명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3성6부'제가 이를 말해줍니다. 리조선은 명나라의 속국, 노예국(번국, 제후국)을 의미하는 '3정승 6조'제를 채택한 것과 비교됩니다. 고려는 제국帝國에서 볼 수 있는 '천수, 천복, 광덕' 등의 년호를 사용했습니다. 또한 '제制' 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황제가 이르는 말임을 알리고 있고, '태후, 태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려임금은 환구단圜丘壇에 제사를 올렸습니다. 여기서 환구단의 환圜은 하늘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황제국의 천자나 행하는 의례인데 고려는 이 환구단을 만들어 여기에서 하늘에 굿을 올린 것입니다. 그리고 고려시대 편찬되었다는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고조선편은 ‘한인-한웅-단군’으로 이어지는 개국신화를 소개하며 우리겨레가 하늘자손, 하나님의 자손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터잡아 홍익인간, 재세이화라는 국가 지도리념을 보여주며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닌 모두 다 주인이라는 사상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개국신화가 고려시대에 수집되었다는 점에서 당시 생민들의 가슴에 새겨져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이 시대에는 생민 모두 하늘자손이라는 주인의식, 자주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더구나 고려제국의 범국가적 큰 잔치, '팔관회八關會'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고려가 실사구시에 바탕을 둔 자주, 주인의식으로 가득한 제국이었음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고려는 개국 때부터 위화도 반란군 수괴, 리성계가 고려 마지막 황제 '공양왕'을 폐위시켜 살해하고 고려를 무너뜨릴 때 까지 이 팔관회를 성대하게 치루고 있었습니다. 팔관회를 보면 먼저 고구려의 하늘굿(제천행사), 동맹을 기리고 고려의 정신적 지주로 삼았던 고구려의 조상을 섬기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서경西京팔관회를 열었습니다. 개최일은 음력으로 10월 15일 입니다. 그리고 음력11월15일에는 고려의 황성, 개경에서 팔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팔관회는 보통 3일간 계속되었습니다.
팔관회의 주요 내용을 보면 고려태조 왕건의 유훈에 따라 먼저 '천령天靈, 오악五嶽, 명산名山, 대천大川, 용신龍神' 에게 굿을 합니다. '천령'은 하늘 즉 하나님을 말하고 '오악, 명산'은 우리 민족의 영혼의 쉼터이자 하늘로 이어지는 상징성을 갖고 있는 산인데, 이곳은 하늘에서 하나님=신이 내려오는 신성한 공간입니다. 또한 이는 하늘과 대비해서 땅신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천, 용신'은 물을 상징하는데 하늘, 땅, 바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민족의 삼태극 삼사상과 연결되어 3신 체계 중의 하나인 물신 곧 여신을 의미하는 신입니다. 마고여신과도 연결됩니다. 이 굿에서는 고려의 '기우제'에서 엿볼 수 있듯이 수백명의 무당들이 동원되어 아득한 옛날부터 내려오는, 지금은 알 길이 막막한 신성한 굿을 올립니다. 미르치아 엘리야데의<샤마니즘>이라는 책을 빌리자면 대부분 신성한 춤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 춤 중의 하나가 깨어있는 푸른역사 삼태극의 ‘한겨레참역사’방에 올라와 있는 삼태극춤(호선무)입니다. 조선의 하늘 굿(제천행사) 이름이 무천舞天인데 이 이름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에 춤을 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온 근본인 하나님에게 춤으로 보답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먼저 하늘 과 땅 그리고 물신에게 굿을 하고, 고려 황제는 황실의 태자와 기타 구성원들 그리고 신하들에게 하례를 받고 이어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번국(제후국)의 사신들과 상인들이 올리는 방물을 받고 하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가무백희歌舞百戱'를 온 나라 백성들과 함께 3일 밤낮을 즐깁니다. 세계 각국에서 신하국들의 사신들이 몰려오고 축하물건들을 바치고 하례를 하는 모습에서 <부도지>에서 나오는 '신시神市, 조시朝市, 해시海市'라는 삼태극 삼사상의 3수리체계에 입각한 사해동포들의 큰잔치 장날과 닮아 있습니다. <부도지>를 보면 “팔택八澤에 해시를 열고 해마다 10월 아침에 드리는 조제朝祭를 여니 사해四海의 종족들이 모두 토산물을 바쳤다. 네 나루와 네 포구에 해시를 열었다.” 라고 합니다. 아득한 옛날 마고성을 떠난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 흩어졌고 나중에 마고의 장자, 황궁씨의 후예들이 흩어진 동포들을 정기적으로 모아 장을 열고 크게 잔치를 하며 조상님의 은덕을 기리고 자기뿌리를 기억하고 역사를 잇습니다. 그 아득한 옛날의 역사를 고려의 팔관회가 재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신시시대神市時代가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팔관회는 신시시대를 이어 조선의 하늘굿(제천행사)인 무천舞天, 그 뒤를 이은 부여의 영고迎鼓를 이어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사>는 이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려 덕종3년 10월 황제께서는 보신들을 서경에 보내어 팔관회를 열고 보를 2일 보내셨다. 서경은 규례에 따라 매우 추운 겨울 이 팔관회를 열었다. 11월(황성, 개경에)팔관회를 열고 황제께서는 신봉루에서 (문무신하)백관들에게 보를 하사하시고 다음날 (팔관)대회를 열고 보를 다시 내리시고 관람하고 즐기셨다. 동서의 두 서울과 동북병마절도사 및 4도호부 그리고 8목에서 각각 표문을 올리고 진설하며 축하를 드렸다. 송나라 상인과 동서번국 그리고 탐라국 역시 방물을 바치고 하례를 드리고 좌정하여 보며 즐겼다. 뒤에 이와 같이 늘 그러하였다(德宗三年十月遣輔臣賜西京八關會酺二日. 西京例以孟冬設此會.十一月設八關會御神鳳樓賜百官酺翌日大會又賜酺觀樂東西二京東北兩路兵馬使四都護八牧各上表陳賀宋商客東西蕃耽羅國亦獻方物賜坐觀樂後以爲常.高麗史69卷/志23/禮11/嘉禮雜儀/仲冬八關會儀).”
이와 비슷한 기록은 고려 정종 때의 기록에서도 여러 번 확인이 됩니다. 송나라 상인과 동서의 번국 즉 제후국들 그리고 탐라국이라는 기록에서 세계 수많은 나라들이 팔관회에 참여하고자 다투어 모여들었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리조선 정권이 애써 깎아내려 기록하여 이 정도로 나오고 있지만 실상은 그 규모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각종 박람회, 영화제, 세계축구대회, 올림픽제전 등 수많은 축제가 이 팔관회가 이어오고 있는 신시시대의 신시神市나 해시海市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봅니다. 고려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상업을 중시하는 중상주의重商主義 정책이 국시로 되어 있었고 이에 따라 세계로 뻗어 나갔고 여기에는 배를 이용한 무역이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오늘날 ‘코리아’ 라는 이름이 세계에 알려지게 한 것도 이 고려제국의 해상무역을 통한 중상주의 정책, 즉 ‘해양을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정신을 계승하여 이어 왔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바다를 무한히 활용하여 세계 모든 나라와 교류를 하고 있었기에 범세계적 국제행사인 팔관회를 열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팔관회의 팔8이라는 숫자에서 풍기는 상징성이 부도지에서 나오는 '팔려음'의 팔8과 통합니다. 팔관회의 8이나 팔려음의 8은 '모든 방향' 을 뜻합니다. 이8이라는 숫자를 통하여 고려가 모든 방향으로 다 통하는 사회, 다원화, 다가치가 존중받는 사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팔관회를 뜯어보면 우리의 뿌리에 바탕을 두고 외래의 수많은 이질적 문화와 종교가 함께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팔관회를 불교에서는 불교행사가 중심이고 나머지는 덧붙여진 것으로 보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불교적 요소가 있겠으나, 그 중심은 우리의 원뿌리사상입니다. 고려태조 왕건이 팔관회가 어떤 것인지 분명히 유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려태조 왕건은 분명히 연등회와 팔관회를 구분 짓고 연등회는 부처를 기리는 것이고 팔관회는 ‘천령, 오악, 명산, 대천, 용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후대에 이것을 갖은 이유를 들어 폐지하려는 간신이 있어도 반드시 행하라고 유시합니다. 여기서 ‘천령, 오악, 명산, 대천, 용신’에게 제사한다는 것은 우리의 뿌리문화인 무당이 주축이 되는 무당놀이(굿놀이)를 뜻합니다.
또한 팔관회의 팔8이라는 숫자는 여성수이기도 하여 고려시대까지 여성우위의 시대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려시대가 왜 여성 우위의 시대였는지 말해주는 풍습은 남귀여가男歸女家제도입니다. 지금은 '시집간다'고 얘기하지만 고려시대 까지만 하더라고 '장가간다'라는 말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남귀여가는 말 그대로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실제 고려사를 보면 이런 풍습이 무수히 나옵니다. 고려시대는 정치적으로는 남성이 형식상 지배하는 것 같았지만 그 실상은 여성이 지배하는 저 아득한 여신시대의 잔영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던 시대였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팔관회에서 가장 성대하고 풍성한 행사는 ‘가무백희歌舞百戱’라고 하는 굿 잔치입니다. 글자에서도 풍기고 있지만 노래와 춤 그리고 온갖 신명나는 ‘놀이’입니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 상고문화사>에서 이 부분을 우리 고대역사 1차 사료를 섭렵한 후 무슨 놀이를 즐겼는지 8개를 고증해 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수박희手搏戱라는 무예도 등장합니다. 몇 년전에 백두산 근처에 사는 어느 재중동포가 수박희를 하는 것을 방송으로 본적이 있습니다. 이런 무예도 이 백희에 들어 있었다는 것이고 이것은 고구려 무덤 벽화에서 나오는 풍습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단군)에 그 뿌리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예조차도 지금처럼 심각하게 수련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놀이로써 했다는 점에서 우리 겨레가 얼마나 풍류를 즐기고 락천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우리를 보고 신선이 사는 나라의 사람들이라고 했는지 모릅니다.
이 팔관회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진흥왕편에 보면 전쟁에 참여한 사졸들을 기리기 위해 7일간 팔관연회를 열었다고 하고 삼국사기 궁예편에서는 궁예가 이 팔관회를 개최하였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고려사에서는 전주前主, 즉 후고구려 태봉의 궁예의 뒤를 이어 팔관회를 개최하였고 그 내용을 열거하면서는 옛 신라의 고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살 떨리는 기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태조원년 10월 유사가 말하기를, 전주가 매년 정월 중동에 팔관회를 크게 열고 복을 빌었습니다. 그 제도를 엎드려 받드소서, 왕이 이를 따랐다. (이에 따라 팔관회에서는) 온갖 놀이와 노래와 춤이 (설치된 화려한 무대)앞에서 펼쳐졌다. 4명의 신선神仙이 즐기며 용, 봉황새, 코끼리, 말, 수레, 배를 거느리고 있는데 이것은 신라의 옛 일들이다(太祖元年十一月有司言, 前主每歲仲冬大設八關會以祈福. 乞遵其制. 王從之...百戱歌舞於前其四仙樂部龍鳳象馬車船皆新羅故事...高麗史69卷/志23/禮11/嘉禮雜儀/仲冬八關會儀).”
‘4명의 신선, 용봉, 코끼리, 말, 수레, 선박’ 이라는 말에 주목해 봅니다. 4라는 숫자는 8의 반수인데 ‘4방8방 안돌아 다닌 곳이 없다.’는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4가 곧 8과 같습니다. 곧 한겨레의 창세신화이자 현생인류의 창세신화를 담고 있는 <부도지>의 ‘8려음’과 맥이 닿습니다. 신화시대이니 아주 먼 시대이야기를 담고 있지요. 그 신화시대의 흔적이 고려시대에 까지 역사로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선仙이라고 하여 신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구려의 선인(선배=조의선인) 신라의 화랑과 같은 개념으로 봅니다. 신라 최치원이 말한 ‘현묘지도’ 의 ‘도’가 통한 사람들입니다. 고려에서는 높은집안의 여인내가 무당이 되면 ‘선관仙官’ 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선仙은 ‘무당’과도 연결됩니다. 무당을 스승이라고도 부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스승이라고 할 때 이 스승은 단지 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 선생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승은 여기에 더하여 ‘권능=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권능이라는 것은 실재로 ‘병치료’를 할 수 있거나 ‘예언을 적중’시키고 따르는 무리들 즉 신도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렇게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스승이고 그렇게 불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무당들이 지식으로 무장한 지성을 갖추고 권능을 갖고 있다면 이 시대의 ‘스승’이 되는 것이지요. 학교의 교사나 교수 등을 ‘스승’이라고 부르는데 엄밀히 따져보면 스승이라기보다는 선생이 맞습니다. 고려의 이 팔관회는 이렇게 스승의 자격을 갖춘 무당들이 이끌었습니다. 고려 상류층 여자가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되면 선관仙官이라고 했습니다. 이 선관이 팔관회를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무당이 상류층에서도 나오고 하층민에게서 나오는 것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고려사회가 ‘무당놀이’를 탄압했다기보다는 폭넓게 인정하고 장려하였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리조선 정권의 입맛에 따라 고려의 역사가 왜곡 날조되다 보니 마치 고려도 무당을 탄압하고 축출하는 정책으로 일관한 것처럼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위 기록에는 용봉龍鳳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흔히들 용은 ‘차이나=지나=중공’의 문화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들의 고향이라고 하는 황하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용유물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과는 너무나 다른 문화유적이고 현재는 우리와 더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내몽골 적봉지역 홍산문화유적에서 저들 것 보다 더 오래된 용유적이 발굴 되어습니다. 그리고 봉 즉 봉황은 우리 한겨레의 상징물로 알려져 왔지요. 무당놀이(굿놀이)에서 하늘과 사람을 이어주는 존재로써 새를 뜻합니다. 솟대위에 새가 반드시 앉아 있고 신라박혁거세 신화에서도 박혁거세가 태어나자 새가 춤을 추었다고 하고 그 아내, 알영이 태어날 때도 닭(계룡)으로 바뀐 새가 등장합니다.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머무는 청와대의 상징문양으로 봉황문양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용과 봉 모두 원래 우리 뿌리문화의 하나라고 팔관회에서는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위 기록에서는 뒤 이어 ‘코끼리, 말, 수레, 선박’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고려제국의 위상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기록입니다. 코끼리는 한반도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코끼리가 등장합니다. 고려제국의 영토가 코끼리가 있는 지역까지 뻗어 있었거나 최소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 만큼 고려는 세계제국이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말, 수레, 선박이 등장합니다. 다른 동물이 아닌 말이 나온다는 것은 우리 겨레가 기마민족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말을 많이 부리고 있었다는 것이며 그런 말을 많이 부릴 수 있는 공간은 한반도로 국한 할 수 없습니다.
<고려사절요>의 기록을 보면 우임금과 최영장군이 주축이 되어 고려조정에서 명나라 정벌군을 편성합니다. 그런데 다른 기록을 보면 기마병을 추정할 수 있는 말의 숫자가 나옵니다. 2만1천6백 82필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사절요>의 정벌군 숫자와 비교해 보면 정벌군의 절반이 훨씬 넘는 병력을 기마병으로 무장시키고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만 큼 기동력이 뛰어나 보병중심의 명나라 군대를 괴멸 시킬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만주 한겨레인 청나라가 초기에 만주 ‘싸얼후’에서 명나라 군대 20만을 거의 전멸 시켜 버렸는데 이 때 청나라 태조 금누루하치가 ‘내게 기마병1만을 주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고 하였답니다. 그만큼 기마병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더구나 명나라 정벌군이 말위에서 자유자재로 활을 쏠 수 있는 궁수들로 채워져 있었고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리지 않고 그대로 나아갔다면 명나라정벌은 성공하였고 명나라는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몽골의 원나라가 세계를 재패할 수 있었던 것도 기마병 때문입니다. 고구려가 1천년 제국을 이어 갈 수 있었던 것도 강력한 기마병을 상시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군대 편제를 고려도 그대로 계승하여 고려 말까지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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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놀민속놀이 중에는 ‘재기차기, 그네뛰기, 널뛰기’가 있습니다. 재기차기를 해 보시면 알겠지만 대단히 힘이 들고 땀이 납니다. 그 만큼 체력 단련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그네뛰기는 주로 단오절에 큰 행사로 많이 하였는데 현재 애들 놀이터에 설치된 서양식의 그런 그네가 아니라, 그네 줄이 최소한 10미터가 넘는 긴 그네입니다. 현재 북쪽의 ‘김조선’에서 전통민속놀이로 시행하고 있는데 그네 대 높이가 11미터 가량으로 하는 것으로 봐서 이와같은 추정을 할 수 있습니다.그네위에 올라 힘차게 몇 번 저으면 하늘과 땅을 오가는 것처럼 시원시원합니다. 마치 요즘 서양놀이로 알려진 이른바 ‘번지점프’에서 느끼는 짜릿함이 몰려옵니다. 그 왕복 폭이 너무나 커서 어떤 사람은 멀미나서 그네를 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널뛰기도 공중으로 튀어오르는 높이가 상당합니다. 마치 기예를 하듯이 뛰어 오르기도 하는데 균형감각을 길러 주고 담력을 키워준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런 재기차기, 그네뛰기, 널뛰기가 사실은 말 타기를 위한 준비놀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놀이를 함으로써 말馬 적응력을 높이고 쉽게 말타기를 배우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전통민속놀이 속에서도 우리겨레의 기마민족의 역사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팔관회가 그 흔적을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팔관회는 ‘수레’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레에 대한 기록은 고구려가 벽화그림으로 남겨놓아 고구려가 수레의 나라였음을 알 수 있고 교통과 운반수단으로 사용하였기에 수레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전라남도 지역에서 발견된 고구려 이전의 이른바‘마한’의 수레 유물이 나왔는데 얇은 여러 살로 채워진 옻칠을 한 수레바퀴였습니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정교한 수레였음을 고증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수레기술이 고려에서도 그대로 이어 졌음을 말해 줍니다. 육상에서의 교통과 운반수단기술이 수레로 대표되는데 이 기술이 가장 앞선 고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고려사>에 보면 ‘충렬왕’이 팔관회에 가기위해서 행차를 하는데 길 위에 고려황제를 기리는 “성스러운 제왕이여 만세를 누리소서.”라는 글자가 보이고 만세를 외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때 황제가 타는 수레(輦)가 등장합니다(고려사69권/지23/례11/가례잡의/중동팔관회).이런 사례를 통해서 고려도 수레의 나라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나타나는 것이 배(船)입니다. 고려의 배는 당시에 세계최고수준을 자랑하였음을 <고려사>나 일본의 고기록이라는 <소우기>문헌에서 찾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고려 원나라의 일본원정 기록을 보면 고려의 군함의 위력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의 배 만드는 기술은 당시 세계 최상을 달리고 있습니다. 또한 배 만드는 속도도 상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단지 4개월 만에 9백척을 만들어 냈고 큰 배는 길이가 36.6미터에 달했고 배 밑바닥에 돌을 넣어 아무리 강한 바람과 파도가 쳐도 뒤집어지거나 가라앉지 않고 다시 바로서는 최고의 배를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또한 군함 같은 경우는 과선戈船이라고 하여 배 겉에 창 같은 것으로 튀어나오게 하여 적이 배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며 정면에는 쇠뿔을 달아 적배로 돌진하여 부딪치면 적선이 파괴되도록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흔히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이 이 고려전함을 본 따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일본의 <소우기>라는 책에 “고려의 함선에서는 말이 달릴 만하다.” 라고 하는 기록이 있다고 하고 세계최초로 군함에 화포를 장착했습니다. 고려원나라 일본정벌군이 1차 원정 때는 일본육지에 들어가 일본군과 교전을 하였는데 고려군함에서 뿜어대는 함포사격에 일본군이 혼비백산하여 전의를 상실하고 완전히 패퇴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록을 볼 때 고려제국이 얼마나 강력한 나라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미국제국주의와 같은 영광을 구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계는 로마로 통한다가 아니라 이때는 ‘세계는 고려로 통한다’의 역사를 이끌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른바 ‘팍스 코리아나’를 구현한 대 제국, 고려였습니다. 이러한 고려제국의 실체를 <고려사>의 팔관회기록은 압축하여 담고 있습니다. 이 팔관회는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 때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반란군 세력의 수괴 리성계와 그 일당들이 고려를 무너뜨리고 리조선을 개국하면서 완전히 폐지해 버립니다. 주인의 나라 ‘명국’에서나 하는 제천행사를 종의 나라(노예국) 리조선이 감히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고려는 처음부터 자주, 주인정신으로 시작하였고 마지막까지 이런 정신을 이어 갔습니다. 팔관회가 이러한 정신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몽골 원나라와 전쟁을 치루면서 강화를 하고 고려황제의 이름이 ‘~왕’ 으로 불려지고 있으나 이것은 형식상 그런 것이고 실재는 처음 개국할 당시의 황제국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었습니다. 일제가 만들어 준 학교국사에서 말하는 데로 원나라에서 ‘다루가치’를 파견하고 정동행성이니 쌍성총관부니 하는 것을 설치하여 간섭을 했다고 하지만 <고려사>기록에 남아있는 황제국의 흔적을 종합해 보면 우리가 학교국사에서 배워온 것처럼 원나라의 속국이 절대 아니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고려는 이러한 주인정신을 처음부터 이어왔기에 고려시대 전 기간 동안 주인의 역사를 써내려 갔습니다. 고려원나라 연합군이 일본정벌을 할때 고려군 사령관 김방경은 자주적 면모를 강하게 나타냅니다. 일본정벌용 고려전함은 원나라에 정복당한 송나라에서 만드는 방식으로는 안 되고 우리는 우리식의 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2차 원정 때 태풍을 만나 원나라 배는 모두 파괴되어 버렸는데 고려의 전함은 거의 피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고려의 자주, 주인정신을 잘 나타내 주는 사례입니다. 또한 이러한 자주의식이 있었기에 거란 요나라의 침공을 모두 막아내고 동아시아의 중심으로 우뚝 서서 실리를 확보하고 국제평화를 담당합니다. 또한 세계를 정복한 원제국의 침공 앞에서도 당당히 폐퇴시켜 원나라의 부탁으로 ‘평화조약’을 맺어 전쟁을 끝냈고 원나라에게 침략당한 나라 중 유일하게 그 원형을 그대로 지킵니다. 반면에 원나라에게 침공당한 다른 나라들은 모두 지구상에서 그 이름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민생도 풍요로웠음을 알 수 있는 기사들이 여러 문헌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남녀상열지사’라는 노래를 통해서 고려사회가 얼마나 개방되고 자유로웠는지 알 수 있고 남녀가 한여름에 냇물에 모두 옷을 벗고 같이 목욕을 하였다는 <선화봉사 고려도경>의 기록을 통해서도 고려사회의 생민들의 풍요로움을 엿볼 수 있고 복색에서도 하층민들 까지 화려한 오색 옷을 입고 있었던 것에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주, 주인의식을 잃지 않고 지킬 때 그 사회나 국가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자존을 지키고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음을 고려의 팔관회가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3. 노예국을 자청한 리조선
이미 우리 까페 ‘리조선5백년’방에서 객관적으로 고증된 자료들이 많이 올라와 있듯이 리성계와 공자유교사상에 물든 무리들이 세운 리조선은 철저히 큰 나라를 섬기고 그 그늘 아래서 그 큰 나라의 보호를 받고 작은 나라는 이에 보답하는 틀을 국시로 채택하였습니다. 지금 미제기독교 목사교 세력이 국정을 장악하고 이 한국사회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면서 정신적인 모국, 미국을 어버이나라로 섬기며 미제가 하라는 대로 군말 없이 따라가는 것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리조선시대에는 공자유교가 당시 지배세력의 정신세계를 장악하고 있었고 지금은 미제기독교회의 사상이 저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고려는 신라 그리고 태조 왕건이 몸담았던 궁예의 태봉에서 우리의 원 뿌리가 되는 것은 모두 전통문화로 이어 받아 더욱 살찌우고 꽃피웠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팔관회 입니다. 그런데 리조선은 고려를 뒤 엎으면서 이런 '팔관회' 와 같은 전통문화유산을 모두 파괴해 버리고 밖에서 들여온 이민족의 공자유교사상을 정신적 지주로 삼고 아예 판을 갈아 엎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기정신이 아닌 남의 정신으로 살고자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리조선 정권은 고려시대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길을 리조5백년동안 이어갔습니다. 이렇게 되자 국토도 한반도 중심으로 줄어들었고, 정신세계도 명나라 외에는 다른 세계를 그릴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바다는 명나라의 허가를 받아 나갈 수 있는 해금海禁시대를 맞이합니다. 그래서 리조선 성립 후 몇백년이 흐른 뒤에 네덜란드 하멜이라는 백인이 제주도에 표류하자 ‘저게 사람인지 짐승인지’ 처음에는 구분이 안 갔다는 류의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우물안 개구리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국방도 어버이 나라 명국明國이 지켜줄 것으로 믿고 자주국방체제를 소홀히 한 결과 ‘임진왜란’이라는 참화를 당하였고 임금이라는 자가 나라를 버리고 명국으로 넘어가기 일보직전에 몰리기도 합니다. 그 뒤에도 정신 못 차리고 공자유교지배세력은 그 안에서 핵분열을 거듭하며 당리당략에 정신이 팔려 정변만 일삼다가 결국 ‘병자호란’을 또 당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다시 일본에게 나라를 팔아먹는 것으로 리조선은 막을 내립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 민생들의 삶은 어떠했을 까요, 고려시대와 리조선 시대의 민중봉기 건수를 비교해 보면 리조선시대가 생민들을 얼마나 피폐한 생활로 몰아갔는지 보여줍니다. 고려시대는 이른바 무인정권시대에 나타나는 민중봉기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리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리조 중기의 ‘임꺽정’ 사건, 그 뒤에 일어나는 ‘장길산’ 그리고 ‘홍경래’ 의 란 등 수없이 민중봉기가 일어납니다. 그 만큼 리조선 정권하의 민생의 삶은 바닥을 기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소설 ‘홍길동전’은 리조선 사회가 얼마나 비인간적 시대였는지 보여줍니다. 리조선 말기에 가서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리조선 사회의 병리현상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또한 정신세계도 공자유교유일사상만 주입시키고 그 외는 이단이라 하여 철저히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정책을 이어갔습니다. 공자유교를 섬기는 자만 정계진출과 권력에 접근 할 수 있었고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리명박 정권 들어서 정부 각 부처는 물론이요 전국 동장까지 미제기독교회 목사교도를 우선 채용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할 수없이 자기의 종교를 목사교라고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과 똑 같습니다. 리명박이 장로로 있는 소망교회소속의 교인이 장관이 되고 고위공직자로 발탁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현재 경찰청장도 목사교도입니다. 이렇게 리조선 정권이 제도적으로 특정사상만 강요하자 민중들은 살기위해서 할 수 없이 따르지 않을 수 없었고 수백년이 흐르자 이것이 전통이요 문화가 되어 버려, 오늘날 까지 우리의 삶 깊숙이 파고들어 아프게 찌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인이 아닌 노예, 종으로 살고자 할 때 개인과 국가는 자존은 사라지고 처참한 질곡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음을 리조선 시대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4. 리조선시대의 연장
리조선 시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좀 힘세거나 크면 이유 불문하고 꾸벅 죽고 섬기는 사대주의, 큰 자를 섬기니 큰 자의 눈치를 봐야 하고 지금까지 섬기던 자 보다 더 큰 자가 나타나면 언능 말을 갈아타는 기회주의, 큰자는 곧 자기의 주인이니 자기에게는 자주적인 판단을 내릴 생각자체를 못하고 시키는 대로 따라 해야 만 하는 숙명주의, 주인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해야 그나마 먹고 살수 있다는 거지노예근성, 노예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운명이니 미래가 없고 어떻게 해서든지 나 또는 내 가족만 잘 먹고 잘살면 되고 민족, 국가, 사회 등 운명공동체에 대하여는 신경 안 쓴다는 이기주의, 노예는 자발적으로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고 주인의 힘이 미칠 때라야 마지못해 움직이는 엽전근성, 노예는 허구헌날 주인에게 얻어터지니 여기에서 생기는 피해의식, 비관주의 등 입니다.
이런 문화와 풍토는 왜구침략기에 더욱 심화되었고 서기1945. 8. 15. 정치적 해방이후에 이런 습성이 뼈 속까지 스며든 일제부역반민족 세력이 그대로 한국사회의 지배세력으로 둔갑하면서 현재까지 청산되지 않은 채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리조선의 공자유교망령을 대신하여 미제기독교회망령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5. 삼태극 리념논쟁에 대하여
가. 박정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지금 까지 고려의 팔관회와 리조선의 국시를 통해서 주인과 노예의 운명을 살펴봤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이번 삼태극 리념논쟁의 주요 인물인,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축을 이루는 박정희를 비추어 보고 건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박정희는 왜국침략기에 일본군 장교로 활동하면서 일제의 황국신민주의에 맹세하고 그렇게 평생을 살기를 결심하고 철저히 왜색으로 자신의 영혼을 물들인 인물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다카키 마사오, 오카모토 미노루’라고 하여 철저히 일본인으로 살고자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의 세계관, 인생관은 일제황국신민주의입니다. 일본제국주의와 한 몸입니다. 일제황국신민주의, 일본제국주의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한마디로 군인이 중심이 되는 병영사회체제를 이상적 세계로 하는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하는 세계를 말합니다. 획일적, 일원적 세계관입니다. 박정희는 또한 기회주의자입니다. 주인, 일본이 패망하자 주인을 잃은 그는 새로운 주인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서기1945. 8. 15. 정치적 해방 이후 이 땅에는 공산주의가 인기를 끌었는데 일제식민지 기간 동안 일제의 지주들에게 숱하게 수탈을 당한 민중들은 지주의 재산을 몰수해서 국가가 소유하고 공평하게 일하고 공평하게 나누어 갖는다는 공산주의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였고, 해방 후에도 공산주의에 우호적인 분위기였습니다. 박정희는 이러한 대세를 읽고 공산주의를 주인으로 섬기기로 하고 공산주의 남로당의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됩니다.
그러나 미군정이 들어서면서부터 정치적 목적에 따라 공산주의를 탄압하게 되었고 군내의 공산주의자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박정희도 잡힙니다. 그러나 하늘이 도왔는지 처형은 면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나중에 군으로 복귀한 박정희는 리승만의 자유당 정권을 거치면서 장군의 반열에 오르고 4.19. 혁명을 어부지리로 이용하여 서기1961.5.16. 군사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잡습니다. 그리고 과거 공산주의 전과로 반란성공이 원활하게 진행될 것을 두려워했는지, 국가기본시책을 ‘반공’으로 정합니다. 그리고 이 반공을 그 가 집권하는 동안 철저히 시행하여 그전에 크게 없었던 대북적개심이 민중들에게 주입되고 북한 정권은 악마로 주입되고 반드시 파멸시켜야 한다는 풍토가 이 땅에 만연하게 됩니다.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 이라는 표어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한 것을 보면 얼마나 철저히 주입 세뇌시켰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반공세뇌교육의 망령은 21세기 리념과 사상이 다원화 된 개화된 시대에도 한국 남한에서만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좌파, 빨갱이, 좌익, 친북, 종북주의자들’ 이라는 말로 바뀌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선거판에서 이 말을 하면 아직도 씨알이 먹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통일은 멀게만 보이고 아직도 남과 북은 지난 서기 2011. 3. 그리고 11.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포격사태에서 보듯이 피를 더 흘려야 하는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가 오늘날 경제적으로 이만큼 살만하게 만들었으니 인정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박정희의 지도력을 배워야 하며 오늘 이 혼돈의 시대에 박정희 지도력이 다시 필요하다며 부활론을 외치며 박정희 찬양, 숭배 성 글과 방송이 수시로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렇게 경제가 성장한 것은 박정희 외에 그 시대에 다른 정권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표면적으로는 인과관계가 있음으로 박정희의 공로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4.19.민주혁명정부는 박정희가 실시한 이른바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이미 짜 놓고 있었고 실행단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박정희가 갑자기 나타나서 총칼로 민주혁명정부를 무너뜨리고 자신이 이 정책을 가져다가 대신 실행 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정책을 잘 실행에 옮겼으면 그의 공적으로도 인정을 할 수 있겠는데, 극소수 친일반민족 재벌류의 세력에게 일방적 특혜를 주는 형식으로 재벌중심의 경제체제를 구축해 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 똑같이 뒤지라고 고생하고 그 열매는 재벌로 대표되는 친일반민족세력 등 극히 일부에게 부가 집중되는 기형적인 체제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양극화를 초래했고 상대적 박탈감, 위화감으로 결국 심각한 피해의식에 시달려 오늘날과 같이 하루 평균40명이 넘는 자살자를 양산하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피말리는 살인경쟁사회를 초래하였습니다.
박정희가 더욱 위험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세계관, 인생관이 일제황국신민주의, 군국주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화를 모르고 화합과는 거리가 먼 획일적, 일방 통행적 경직된 체제로서 경쟁력이 떨어져서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박정희의 주인, 일제군국주의 체제가 결국 다원화가 상대적으로 잘된 미제에게 멸망한 것이 이를 잘 설명해 줍니다. 김재규가 아니더라도 박정희는 그 자신이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이러한 황국신민주의에 바탕을 둔 정권을 이끌어 가는 한 다른 원인에 의해서 역시 살해되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느 모로 봐도 박정희는 이제 과거의 역사로 사라져 버린 악몽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사회가 혼돈스럽다고 다시 박정희 지도력 운운하며 다시 도입해야 한다고 떠들어 대는 인간과 집단이 활개를 치며 나팔수 언론을 이용해서 귀가 따갑도록 보도해서 생민들을 세뇌마취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새해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 나올 것이 확실한 박정희 딸을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욕심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지난 17대 대통령선거에서 친일숭미매국역적 세력이 ‘뉴또라이’라는 조직을 결성하여 대통령 만들기에 환장하더니 결국 전과14범을 대통령으로 세웠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 친일반민족매국역적세력이 박정희 지도력 운운하며 다시 그러한 사회분위기 조성에 성공한다면, 이 나라는 한 때 잘나가던 남미의 여러나라나, 필리핀처럼 결국 나중에는 삼류 만성적 후진국으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또한 박정희 지도력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박정희의 정신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며 이것은 일제황국신민주의, 군국주의 병영체제로 돌아가는 것이고 이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일제식민지 총독체제로 돌아가 신일제식민지 시대를 열자는 것과 같습니다. 한마디로 동토의 왕국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역사를 바로 알아 역사를 바로잡자면서 박정희를 추종한다면 이처럼 무지하고 어처구니없는 일도 없을 겁니다. 박정희는 결국 리조선 노예사상의 한 부류에 지나지 않는 자입니다. 앞서 리조선의 특징은 사대노예사상과 이에 터 잡은 기회주의라고 했습니다. 박정희의 일생을 돌아보면 여기에 정확히 들어맞습니다. 리조선정권이 유교성리학적 유일사상 지배체제를 고수하여 결국 왕족과 귀족세력만 배지 개기름 흘리면서 호위호식 한 것처럼, 박정희도 일제황국신민주의에 기초한 경직되고 획일적인 ‘반공방첩’과 ‘일인독재체제’를 이끌면서 친일반민족세력 등 일부 극소수 세력에게 주체할 수 없는 부를 안겨주고 나머지 대다수 생민들에게는 오늘날과 같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며 하루 평균 40명이상이 살기 어려워 목숨을 끊는 사회구조를 고착시켜 놨습니다.
나. 金조선은 대한민국에게 무엇인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삼태극에서는 왜 ‘김조선’이라고 부르는지 설명드리겠습니다. 우리역사에는 여러 ‘조선’이 등장합니다. 가장 오래된 조선은 개국신화에 등장하는 단군이 개국한 조선입니다. 그 뒤로 기자조선, 위만조선, 그리고 기타 조선이 나오며 이성계가 만든 조선이 최근 1백여년 전까지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한반도 북쪽에 스스로 ‘조선’이라고 부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조선을 어떻게 부를까 하는 고민에 빠집니다. 단군께서 개국하신 조선 말고 그 뒤에 나오는 조선들을 당시에는 그냥 조선으로 불렀고 현재 북쪽에 있는 나라도 자기를 그냥 ‘조선’으로 부릅니다. 그런데 다 조선이라고 부르면 구분이 안 됩니다. 그래서 역사적 용어로 정리를 해야 했고 원래의 조선은 시조로서 당연히 ‘조선’이라고 표현하고 그 뒤에 생기는 조선은 ‘조선’ 앞에 수식어를 붙이자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기자조선, 위만조선에 이어 리성계가 새운 조선은 창업자의 성을 따서 ‘리조선’ 이라고 하고 마찬가지로 현재 북에 있는 조선도 그 창업자 김일성의 성을 따서 ‘김조선’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입니다. 만약에 단군이 개국하신 조선을 ‘단군조선’이라고 하고 지금 공공연하게 통용되고 있는 이성계의 조선을 그냥 ‘조선’이라고 부른다면 이는 아버지와 자식의 순서가 뒤바뀐 폐륜적 상황이 됩니다. 아버지가 아들이 되고 아들이 아버지가 되는 꼴입니다. 그러므로 단군께서 개국하신 조선 이후에 생겨난 조선은 모두 그 앞에 수식어를 붙여야 옳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김조선은 서기1945.8.15. 우리겨레가 일제로부터 정치적 해방이 된 이후 한반도 38도선 이북에서 수립된 나라입니다. 정식 국가명칭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입니다. 김조선은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일제가 폐망한 후 남과 북으로 들어온 미군과 소련군에 의해서 반도가 분단되고 이들 외세의 뜻에 따라 세워진 나라입니다. 서구열강 제국주의는 남과 북을 열강의 제국주의 경쟁의 재물로 삼았고 결국 김조선의 김일성은 스탈린의 약속만 믿고 전면 남침을 감행하여 남과 북 생민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 놨습니다. 이러한 열전을 치루고 난 후 김조선은 자기의 운명을 남에게 맡겼다가는 반드시 댓가를 치루어야 하고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고 서기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주국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이른바 ‘주체사상’과 ‘4대군사노선’ 등을 외치며 자력갱생에 박차를 가합니다. 그 결과 김조선은 서기197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보다 더 잘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 핵개발을 하면서 미제로부터 온갖 제재를 받기 시작하였고 여기에 천재지변까지 겹쳐 점점 피폐해져 갔고 결국 남북한의 경제력은 뒤집어 졌고 시간이 흐를수록 남북한 격차는 점점 벌어지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러는 과정에서 김조선은 핵무기 보유국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주국방을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미제국주의의 입맛에 따라 놀아나는 꼴을 당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마음 것 내며 원하는 것을 거침없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라크와 아프칸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비극을 김조선은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예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주체사상에 따라 김일성 개인숭배를 떠나 다른 부문에서는 확실히 자주적이고 주인정신에 터잡아 대한민국에서 하지 못하는 우리의 전통뿌리를 찾아 발전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평양에 단군릉을 만들어 놓은 것인데 이것은 한민족 말살공작인 동북공정을 정면으로 까부수는 일대 쾌거입니다. 그리고 김조선은 우리말을 발굴,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말이 이제 영어에 거의 잡아먹힐 운명에 처해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룹니다. 기타 군사첨단 무기개발에 따른 첨단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하지 못한 인공위성 발사체를 자체 개발하여 단방에 쏘아 올려 성공시켰습니다. 김조선은 남한과도 대화와 평화를 추구하였는데 박정희 정권 때는 정권홍보용으로 남북이 몇 번 교류를 하였지만 서기1990년대 들어서서는 전쟁을 통해서는 남과 북이 얻는 것은 고사하고 같이 멸망하는 길 밖에 없다는 인식하에 ‘남북공동 합의서’까지 이끌어 내며 남북공생의 길을 갑니다.
그래서 로태우 정권하에서 남과 북은 유엔에 동시에 가입하여 상호불가침을 원칙으로 하여 국제사회에서 독립국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김대중, 로무현 정권 10년 동안에는 6.15.와 10.4. 선언을 통해 확실하게 남북공영의 기틀을 세웁니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이 만들어지고 동과 서에서 한국전쟁으로 그동안 끊겨 있던 남북한 철도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각종 관광사업이 줄을 잇습니다. 이렇게 하여 장기적으로는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단계까지 꿈꾸게 됩니다. 물론 그 사이에 서해교전이니 하는 불협화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조선의 확고한 방침은 ‘남한과 전면전쟁은 절대 안 한다.’는 것이며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며 도울 것 있으면 서로 도우며 열심히 살아보자, 그리고 때가 되면 단계적으로 조금씩 합쳐가자’입니다. 이것은 조금만 관심을 갖고, 국내 수구반민족, 반통일 나팔수 언론이 남과 북을 이간질 시키고 김조선을 헐뜯는 기사로 도배하는 소리에만 목매달지 말고 능동적으로 김조선을 보면 금방 보입니다. 남과 북은 이 분단된 상태로는 주변 열강의 동네북으로 남아 그들의 종살이 운명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인재가 나오고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개발해도 결국 이들에게 좋은 일 만 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황우석박사의 줄기세포 사건입니다.
그러니 남과 북은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자존을 지키며 번영할 수 있습니다. 통일한국의 경제력과 국력을 예측한 외국의 연구 자료를 보면 통일한국이 되면 우리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장차 세계의 중심지가 동아시아로 오는 때에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그때가 되어도 지금처럼 분단된 상태로 되어 있다면 그 좋은 기회 다 놓치고 중공만 좋은 일 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은 필수적인 과제인데 어떻게 하냐는 것이겠죠. 아직도 ‘좌파, 빨갱이, 종북주의자’를 외치는 세력은 김조선이 망하고 남한 중심으로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남북현대사를 보면 불가능한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김조선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 미제의 침략으로부터 김조선을 지키려는 자위수단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적화통일을 하겠다는 의지라고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통일은 커녕 남북이 다시 원수가 되어 피터지게 싸움만 한다는 것을 지난 리명박 정권 3년6개월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럼 왜 이 친일숭미 매국역적세력은 실상을 알면서도 이렇게 외쳐되는 것일까요, 이들의 기득권 때문입니다. 통일되면 자기들의 부와 권력이 모두 사라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속 남북이 분단되어 있기를 어쩌면 바라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고려의 팔관회와 리조선의 역사는 이 친일숭미 반민족역적세력이 잘못짚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세력의 특징은 외세 의존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리조선의 역사는 ‘그렇게 했다가는 다 망한다.’ 입니다. 무지하기 때문에 자기도 결국 망하는 줄 모르고 당장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지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지도 모르고 날뛰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참역사를 발굴하고 역사를 바로잡자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세력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삼태극이 김조선이 잘하는 것을 칭찬하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면 ‘좌파, 빨갱이, 종북주의자’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참역사에 바탕을 두고 실사구시 주인정신으로 깊이 생각하고 동포애로써 관심을 보이는 것을 이렇게 매도해 버립니다.
결론적으로 김조선은 아무리 우리가 싫다고 해도 함께 가야 할 운명공동체의 구성원입니다. 아무리 부정해도 한 식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으로 김조선을 바라 볼 때 길이 보입니다. 사실 최근의 역사를 보더라도 이렇게 바라볼 때 대한민국에 이익이 되었습니다. 김조선과 친하게 지낼 때는 평화와 번영이 찾아 왔고 김조선을 때려잡아야 할 '마귀'로 보고 적대시 할 때는 불행이 찾아왔고 뒷걸음질 쳤습니다. 김조선과 친하게 지낸 사례는 최근의 김대중. 로무현 정권기입니다. 그리고 김조선과 적대관계로 지낼 때는 지난 박정희 정권 때와 전두환 정권 때 그리고 김영상 정권 때입니다. 로태우 때는 물타기시대라고 봅니다.
전자 때는 이미 설명 드렸듯이 6.15. 와 10.4. 선언이 말해주듯이 남북교류가 활성화 되어 평화는 기본이었고 장차 중국시장을 대체할 경쟁력 있는 상품을 생산하여 마구 내다 팔아 떼돈을 벌 기초를 닦아 놨죠. 바로 개성공단이 대표 사례입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김신조로 대표되는 김조선 특수부대가 침투하여 청와대 코앞까지 오고, 8.18. 판문점 도끼살해 사건이 났고, 전도한 때는 대한항공 여객기가 폭파되어 수 백명이 목숨을 잃었고, 아웅산에서 우수한 인력들이 살상되었으며, 김영삼 때는 강릉에 잠수함이 침투하여 한참 공포에 떨었고, 현재 리명박 정권하에서는 천안함사태와 연평도 포격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자, 그렇다면 정상적인 생각이 있는 생민들이라면 김조선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답이 나왔습니다.
6.결론-깨어있는 푸른역사 삼태극의 리념과 로선
지금 까지 고려의 팔관회와 리조선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도구는 ‘주인이냐 노예냐’입니다. 우리가 주인으로 살때는 인간의로서 기본 자존을 지킬 수 있었고 생활도 번영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예로 살고자 할 때는 인간자존은 고사하고 처참하게 외세에게 뜯기는 가운데 고통에서 허우적 거렸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바탕으로 삼태극에서 불거진 리념 논쟁을 보건데, 삼태극을 리념편향이라고 비판하며 심지어는 빨갱이 좌파 종북주의 세력이 우글대는 곳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삼태극은 참역사를 발굴하여 그 속에 녹아있는 조상님들의 얼과 전통을 바르게 캐내서 이에 입각하여 역사를 바로잡고 현실을 진단, 해석하며 미래를 예측, 설계합니다. 그런데 뭐 할라고 이러는 것일까요, 역사를 단순히 발굴하여 알고 바로잡는 것에 머문다면 그것은 죽은 역사놀음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역사를 토대로 현실에 적용시켜 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해석 작용으로 까지 나아간다면 현실에 도움이 되는 것이며 이것은 곧 살아있는 역사가 됩니다. 그것도 어느 특정세력을 위한 해석 작용이 아니라, 할 수 만 있다면 모두가 잘 먹고 잘사는 세상을 위한 것이라면 더욱 옳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홍익인간, 이화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삼태극이 창설되었으며 지금까지 왔습니다. 결론적으로 깨어있는 푸른역사 삼태극은 잃어버린 우리의 참역사를 발굴 연구하여 생민들에게 알리고 이 참역사를 바탕으로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진단, 해석하고 앞날을 내다보고 모두가 골고루 잘사는 세상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위대한 역사에 동참하고자 하는 식구들께서는 아낌없는 성원과 후원을 해 주십시오. 주위의 미혹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함께 할 식구들이 많이 오실 것으로 믿습니다.
역사를 바로 알면 세상이 바로 보입니다.
깨어있는 푸른역사 삼태극 http://cafe.daum.net/mookto
☞ 깨어있는푸른역사 삼태극 공식후원계좌
우리은행 1002-991-671217 예금주 : 오 종 홍
덧붙이는 말씀 - 리념논쟁의 발단
이번 리념논쟁과 운영자(삼신할미님) 탈퇴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까페지기가 우호적으로 보고 배울 점이 많다고 여긴 ‘환타임즈’라는 인터넷 언론매체가 있습니다. 여기에 올라오는 기사들을 보며 ‘삼태극’과 뜻이 맞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삼태극 차림표에 이름을 등록 시켜 놨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들어가 보니 박정희기사가 올라와 있었고 박정희 관련 소식보도라는 형식을 빌어 박정희 지도력이 이 시대에 왜 필요한가라고 하며 사실상 박정희를 찬양 숭배하는 기사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첫 기사가 올라왔을 때 많은 회원들이 환타임즈와 맞지 않으니 자제할 것을 부탁하는 댓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박정희 찬양숭배가 더 심한 기사가 책 소개라는 명분으로 또 올라왔습니다. 까페지기는 그 글을 보고 ‘깨어있는 푸른역사 삼태극’과 맞지 않는 다고 판단하고 마지막으로 왜 그 기사가 부당한지 조목조목 반박댓글을 달았습니다. 그런데 그 기사를 올린 당사자도 아닌 조선생님(삼신할미)님이 까페지기의 댓글에 다시 댓글로 재반박하는 글을 올리셨습니다. 그리고 삼태극에 오셔서 삼태극을 탈퇴하신다는 글을 전체회원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사실 현대사와 관련하여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처한 입장과 세대별로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리고 북쪽의 ‘김조선’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이냐를 갖고도 의견차이가 많습니다. 아마도 조선생님과 까페지기가 이 점에서 생각을 달리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익히 삼신할미님(조선생님)의 글을 보아온 식구들께서도 아시다시피 그 외에는 완전히 우리까페와 생각이 같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존경해 왔고 삼태극을 창설한 계기도 조선생님의 ‘무속에 살아있는 우리상고사’ 책의 영향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결과적으로 까페지기가 원인제공을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가 없습니다. 그동안 까페 운영을 하시느라고 너무나 고생하셨는데 일을 이렇게 만들어 버리고 나니 정말 너무나 충격이고 고통스럽습니다. ‘다시 모시고 올수 만 있다’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나 큽니다. 다시 오신다면 까페를 운영하는 무거운 짐보다는 예전처럼 ‘무천문화’방에서 주옥같은 글을 올려주셨으면 하는 바램 간절합니다.
도움 자료
- 정인지 외, 고려사, 리조선출판
-김부식, 삼국사기, 김종권역, 도서출판 신화사,1983.
-일연, 삼국유사, 최호역,홍신출판사,2005.
-김종서 외 지음, 고려사절요,민족문화추진위원회,2004.
-박재상, 부도지, 김은수 역주, 한문화사, 2003.
-신채호, 조선상고 문화사, 박기봉 옮김, 비봉출판사, 2008.
-김선적, 대천명, 한국위원회, 2005.
-조흥윤, 巫와 민족문화, 민족문화사,
-미르치아 엘리아데, 샤마니즘, 이윤기역, 까치, 2007.
-기타 인터넷 게시물
도움 주신 분
-서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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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의미를 알기를 북은 남쪽의 비디오,TV 를 본 것 만으로도 인민을 공개 처형을 시킨다 남쪽에서 TV,비디오 북쪽 것 봤다고 사형 시키는가 안 시키는가 어디가 살기좋은 사회인지 구분 못하나 좌파라고 무조건 욕 하는 것은 아니다 좌파라도 국익을 위해서 손해보고 양보 한적 있는가 국민의 미래를 위해서 욕먹으면서 일 한적은 있는가 국가와 국민의 자긍심을 위해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자존심을 지켜 국민의 자긍심에 빛을 준적이 있는가 그런 적이 있다면 존경한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좌파에게는 없다 반대로 분노를 이르키는 하수인 행동은 많이 봐 왔다 하수인 행동 하면서 큰 소리 치지 말라 진정 존경 받게 행동 했는지 생각 하라
나의 조모 조부 외조부 외조모 또한 그 시기에 창씨개명하고 일본 군관들이 행차할때 길가에 주르륵 둘러서 일본찬가를 일본어로 불렀다고 합니다.왜 그랬는지 여쭤봤지요,.,그땐 다 그랬답니다..어찌할수 없어 한게 친일인가요??
친일 지금 시점에서 아무리 따져 본들 원조 친일파 다 사라진 때 무슨 효과가 있조 국논 분열의 이간책이조 진짜 애국자라면 친일파 가지고 시비 할 때가 지남을 알고 친일유산 타파에 앞장 스겠조 친일문화 벗어나기에 앞장은 안 서 면서 자가 지지 안 하는 존경 인물에게 딴지걸어 흠집 내자조 본인이 지지하는 사람은 개뿔 아무거도 없나요 경쟁자 흠집을 내어야 이기는 사람인가요 스스로 좋은 일하여 스스로는 못 이기는 폼만 잡는 종자인가 아니라면 당당하게 겨루지 그렇지 못 하고 상대방을 흠집을 내야만 이길수 있다면 값어치없는 사람이니 모두다 사양을 해야 합니다 현실은 그 흠집에 속아 훌륭한 분을 죽이는 것이조 ,,,,,,,,,,,
사대는 종이고 자주는 주인임이 분명하거늘 독립군을 토벌하고 외세에 의존했던 위정자를 어찌 이곳에서 찬양하리오. 박정희가 미국의 승인을 받고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 분명하고 미국의 반공주의 세계패권전략이 남한이 놀아났음에 이제 반성할 때도 되었건만 친일 매식자들이 아직도 버젓이 학계에서 왜곡조작질을 하고 무슨 뉴라이트연합이니 하면서 이제는 공공연히 친일에 이어 친미를 부르짖으니 이를 용납할 수 없음이다. 운영진께서 매서운 회초리로 단죄하시라.
수구꼴통이란 말이 왜 생겼겠습니까~!! 그들의 의식을 한마디로 말하는 것이지요... 사실 수구보다는 꼴통이라는 말이 더 진지하게 다가옵니다. 게다가 친미 사대주의 자들이 자신들을 칭하는 세력에 대해 반하는 말로 종북좌빨이라는 말이 생겨 났습니다. 친미 사대주의 수구꼴통들은 원래 그렇죠~! ㅋㅋ 우스운 족속들입니다. 괜히 꼴통이 아니죠~! 이념 논쟁은 누구도 싫습니다. 어차피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돌아가는 나라인데... 빨갱이라니... 허구도 이런 허구가 어디있습니까~? 노무현의 책을 보면 정말 그는 진정한 시장경제론자라는 것이 팍팍 느껴집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종북좌빨이 될 수 있고,
사회주의자가 될 수 있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과연 지금의 수구꼴통들이 얼마나 우편향 적이기에 중도우파마져 좌파가 될 수 있는지... 지금 한국은 극우세력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겁니다. 어디 한곳 성한 곳이 없네요... 극우파가 제발 좀 청산된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 중도우파와 중도좌파가 서로 정책대결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 역사 역시 자존의 역사를 적는 나라... 종속적이지 않은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정치가 안타깝고 한스럽습니다. 지금의 역사는 사대적입니다. 미국에...!! 지금의 정치는 내일의 역사겠지요... 내일의 역사역시, 주체적이길 빕니다....
동감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강자에게 아첨하는 간사한 무리가 있는가하면 자신의 이익보다 전체의 행복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체면, 권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쓸데없는 고집과 아집으로 일관된 주장을 하는 鉛(납)과 같은 사람도 있으니 세상은 요지경이요, 의식이 살아있는 사람이 제대로 살자면 한숨이 나오는 세상이라 ........ 너무 지나치지 않는 언어로 너무 격렬하지 않는 토론을 하였으면 하오이다. 가끔 너무 지나친 언어가 춤추는 것은 감정다스림에 좋지 않는 일이라 ...... _()_
박정희 신드롬? 현실을 직시하지 못함입니다. 그는 민족 반역자요(친일),국가 반역자요(쿠데타,긴급조치등 헌법유린),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 죽인 살인마요,그의 추종자들이 가장 적대시하는 빨갱이입니다. 그는 삼족이 멸해야 하는 반역죄를 저지른 자입니다. 그런데 이런 극악무도한 자를 찬양한다고요? 무지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박정희가 어떠했든 그 딸이 아버지로 인해 대통령이 될 수 있다 한다면 그것은 김일성 아들이어서 당연히 김정일이 통치하는 북의 상황과 같은 것 아니겠는가. 대체 박근혜가 지금까지 한 것이 뭐가 있길래...수구들께서 북이 문제라고 본다면 박정희를 찬양한다고 하여 박근혜를 지지한다는 그 개념은 북하고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다시 재고해야 할 것이다 -_-
그런 연결고리를 토대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신가봐요? 아버지는 아버지고 딸은 딸이지..최종적인것은 그의 이념일뿐입니다.
김일성이도 남침시 중공 쏘련에 허락 받고 남침 했다 그것은 사대 아닌가 쏘련에 빌부터 있다가 쏘련이 러시아가 되자 중공에 빌 부터 있다 김정은이 휴계자 인정 받기 위하여 중공 방문 몇번인지 아는가 이것은 사대 아닌가 남북회담 북에서 약속 이행 안 해서 무산이 되었지 남에서 무산 시키것은 없다 북에서 말도 안되는 트집으로 약속 불 이행을 정당화 한것은 무수히 많다 김정일도 어면히 사대를 하고 있는걸 왜 자꾸 바꾸어 말하는지 모릇겠다 북은 인권 탄압이 엄청심하고 심하지만 어찌하여 남쪽이 더 심한 탄압국으로 보이는지 모르겠다 흑색선전이 있다 흑색은 사실성은 필요 없다 반대세력에게 무조건 흑색선전만 하면 된다
태양해님! 흑색 선전은 박정희 가 많이 했어요. 반달 각도기 님처럼 딸은 딸이지만 현재 뉴또라이들 처럼 박정희의 추진력이좋고 일본에서의 식민지 생활이 좀더 오래했으면 더발전 할 수 있었다는 괴 변을 토로하는 당에 몸담아 있다는것은 딸은딸이다로 가름하기 곤란 한겁니다. 같은 계통 이지요. 오히려 추진력하면 일본놈들이 더 좋지요. 말 안듣는사람 죽이면되는 것이고 빈정대는놈 있으면 죽도록 패서 보내면 다 말 잘 듣지요! 추진력을 그런것으로 한다면 맞는 말 이지만 그것이 추진력이 아니지요 다만 억압이지요 억압과 추진력을 분간도 못하는 녀석들이 추진력을 논한다는것은 어처구니 없는것과 같은 것입니다. 즉 그것이 수구 꼴
통이라는 것입니다. 태양해님! 당신도 반공에 생을 건 사람이군요. 나도 반공을 외칠때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학교다닐때 웅변대회, 외우기대회에서 일등도 했지요. 그당시 반공하지 않으면 용공으로 징역 살았어요 그런 공산당 이론을 잘 써먹은 사람이 공화당 이였지요. 김일성 득을 많이본사람이 박정희 입니다. 개독의말처름하면 은혜입은 것이지요! 만약 내가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죽이고 잘난. 딸을 애첩으로 당신돈으로 집도지어주고 거느린다면 당신은지하에서도 날 주님으로 모실 겁니까? 그참 좋은생각이군요!!!
흑색선전 박정희가 많은지 김일성이가 많은지 제대로 비교 했습니까 김일성이는 사람죽여 가면서 흑색선전 할 정도면 누가 흑색이 쌘지 알 것 입니다
종북주의자 들이 욕 먹어야 하는 이유는 사실을 왜곡하여 문제의 본질을 바꾸어 버려 엉뚱한 결과가 생기게 합니다 주체성도 없고 자긍심도 없어 북의 하수인 행동만 합니다 다른 행동은 있는지 국익을 위해서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하는 일은 없습니다 일 하는 척 쑈 뿐이조 종북주의자가 판에 들어와 좋은 결과 본적 있습니까 언제나 이간질 되어 싸움 뒤끝으로 서로 분노 할 뿐 ,,왜 분노만 남는 것이 수상하다고 생각 안 합니까 목청이 크면 정의가 되는 사회는 비극이조 불의도 목청만
->크면 정의가 되는 사회가 문제조 진정으로 나라를 생각 한다면 이런 결과 물들이 판 치게 놔둘까요 그러니 무슨수를 써서라도 이기기만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여기는 것은 비 민주주의적인 사고를 가진자는 아니 겠지요 수단과 방법이 잘 못 되면 이제는 시민에게 피해가 생기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러니 반 정부운동이 무조건 정의라고 왜치는 시대는 이미 끝이 났다고 봅니다 하수인들의 행동에는 시민도 이젠 분노 하기 시작 합니다
스스로 생각 해봤나요 입으로만 말하지말고 자기 의 모순은 선반위에 올려놓고 이데오르기만 풍성하면 뭐하겠노 이시대의 진정한 진보가 또어디있고 진정한 보수가 어디에 있는가를 다들 모순덩어리 가 뭐를 어찌 하겠다고 하는지를 아이구 참!!! 진정한역사는 도도히 흘러갈것이다 어디에함몰하지않고 쭈~~~~~~~~~~~욱 ㅎㅎㅎㅎㅎ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요. 스스로 생각해 봤나요, 자기 모순은 선반위에 올려놓고 ... 할 말없으면 '악악'대는 그 전형이군요.. 의외로 이런 앞뒤 콱막힌 중생들이 많다는 것에 새삼 놀랍니다. 걍 .... 쭈~~~~~~~~~~~~욱 그렇게 가세요....ㅋㅋㅋㅋㅋㅋㅋ
아직도 식민사관 반도사관에다 사대주의사관에 빠져들 살아가니 참 기막힌 나라입니다 ㅠㅠ 이념을 누가 그렇게 오매불망 부르짖었나요 이승만부터 해서 장기독재를 하다 총맞아죽은 박정희 군부독재세력 그리고 총칼로 광주시민 학살하고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그리고 그 후예인 한나라당 아닌가요 역사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역사적 진실은 정치사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념이란 말보단 진실이 무엇이냐? 그말만 하는게 어떨까요!!!
총맞아 죽은 박정희..... 압권입니다. 앞으로 박정희 이름 앞에는 총맞아 죽은 박정희라는 수식어를 반드시 붙입니다.
동감합니다...올바은 역사가치관을 위해. 어떤정권이던간에 쓴소리 바른소리을 그들에게 해야 합니다 정의 진실이 곧 역사이고 역사가 바로 현제로 미래입니다 기득권을 비판 반대한다고 적, 빨갱이로 매도하는 자야 말로 민족과 역사의 배반자입니다
항상 이꼴은 변치 않을 조선 백성임이 자랑스럽습니다 항상 살만하면 내분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다 내분으로 넘의 침탈받는 중복되는 우리가 자랑스럽습니다 항상 넘이 아닌 우리가 넘에게 빌미를 보여 당하는 자랑스런 수모의 역사 !!!또 멀지 않은 제2의 독립군과 친외세력의 등장이~~~ 자기가 사는곳 보다 넘의떡이 맛있고 좋게 보이면 그곳으로 가는기```` 미국이 좋으면 미국으로 유럽이~~~일본이~~~중국이~~~ 소련이~~~ 김조선이~~~같은 민족끼리도 종교가 다르다고 내전하는 비참한 나라들의 실상을 우리눈으로 보고 있지 않나요 실사구시란 이런데에 갔다 붙이는 용어가 아닌듯~~~어느 조직 사회 체제에서도 기득권자는 있게 마련 다만
항상 사회란 이끄는자와 그 구성원들간의 거리와 괴리의 원근이 중요!!! 말과 논리는 다 이끄는자들의 유희에 지나지 않음에 구성원들의 사는 모습과의 일치감 즉 실생활과의 일치가 진정한 실사구시이며 실용인듯 여러 종족이 모여 한체제에 살아도 한나라요 한 종족이 다른 체체로 살면 다른 나라이고 각기 나라별로 이끄는자 (여기선 기득권자라 하데요) 와 그 구성원의 간의 거리와 괴리는 다 있는것 그 거리와 괴리를 구성원들이 논할수 있고 얘기하고 바꿀 방법이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속에 있는 이곳이 그나마 구성원(민족)의 본류가 아닌감요 주체조선등 어떤 민족애를 담고있고 주장하는 말들의 유희가 춤추는곳 보다도~~~
이글 제목이 주인이냐 노예냐 인것 같은데 우리 민족 끼리 살아도 주인이 아니요 넘의 나라에 종속되어 살아도 노예가 아님이 외세에 시달려 온 우리 역사가 보여주지 않나요 대다수 구성원들은 노예 같은 삶을 사는 외세의 침탈에 기생해서 사는 주인(앞잡이들)도 있고 한민족이라는 주인 같은 체제의 울타리속에서도 소수의 주인(기득권자)과 대다수의 구성원들을 주인과 핍박받는 노예로 이분법화하면 ~~우리네 인생이 아니 이 대자연의 생존 법칙이 약육강식이요 적자생존이요 만물의 영고성쇠가 다 우주의 룰인바 노력해도 다 성공할수 없고 당성이 좋다고 다 통치자가 될수없는 이런세상임을 모르실리 없는 삼태극 동지분들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이 뭔지요, 종교인들이 하는 전형적인 뜬구름 잡는 소리로 밖에 안들리는데, 저만 그런가요?
몇년째 회원으로서 역사를 공부하고있는 사람중에 한사람입니다만, 순수한 역사의 방 이였으면 합니다.
현정치나, 이념적인 것들은 논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모두가 사상이나 이념은 다 다를 수 있는 것을 목청 높혀 논하지 않는 순수한 역사의 방이 되길 기원합니다.
네 아주아주 맞는 말씀이십니다 꼭 몇몇 님들이 편가르기 하면서 ㅎㅎㅎㅎㅎㅎ자기들은 죄다 로맨스 남은 불륜 ㅎㅎㅎ
운영자분들이 누구신지는 모르겠으나, 삼태극 카페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사상과이념을 교묘히 전파하면서 마치 전통사상과 우리 고유의 역사가 종북과 좌빨의 역사인것처럼 홍보하고 있는듯한 거에 대해서 흔들리는 분들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념과사상을 떠나 순수한 목적의 삼태극이 되었으면 한다는데 대해서 지나친 욕심일까요 ?
한번씩 찾아오는 곳입니다. 여기들어와 글을 읽어보면 거의 비판내용입니다.
머리가 허허 거리는 것같습니다. 몇달전의 삼태극과 지금의 삼태극이 많이 달라졌다 라고 생각입니다.
운영자님, 그리고 회원님,,수고하십시요...
저도 이 글에 동감합니다. 분명 .. 역사에 대한 진신을 알려주는 것 역시 .. 의의가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판만 난무하고, 대안이 없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삼태극의 운영진은 분명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 주는 곳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삼태극의 카페를 홍보해서 .. 친구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 내용이 방대하고, 핵심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가 어렵다."라고 합니다. 분명 이것은 .. 기존의 운영진들께서 유심이 봐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
삼태극카페가 저에게는 넘 좋았습니다
저의 쉼터였지요
이젠 아닌것 같습니다. 조금더 양보하고 아름다운 미덕으로 처음으로 돌아가면 않될지??
안타까우네요
비판도 좋치만 대안은 없고 역사의 흐름을 교묘히 이용하는 장소가 되여갑니다 씁씁하게 ㅎㅎㅎ
어제와 오늘은 나눌 수 없는 하나이니, 역사를 논하며 오늘을 논하지않음은 역사를 껍데기로만 아는 어리석음이 아닐까? 우리얼을 살려나가려는 삼태극님의 애씀이 고맙습니다.
'역사를 껍데기로만 안는 어리석음' 정확한 진단입니다. ^^
삼태극 님의 글은 며칠전에 봤지만 제 컴퓨터가 한글 입력이 안되 PC방에 와서 한글로 댓글을 달게 되었습니다.
많이 배우고 느낌이 많습니다.
실사구시 주인정신 홍익인간 리화세계 ...
카페지기인 삼태극님과 .. 카페 운영자이신 삼신할미님 .. 저는 두 분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왜냐하면 역사에 대한 관심은 곧 나라의 대한 애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 삼태극이라는 카페에 오고 싶지가 않습니다 .. 예전에 순수한 역사를 알기 위해 왔던 .. 삼태극이 .. 지금은 이념의 싸움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고등학생인 제가 보기에도 이럴진대, 어른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제가 나이가 어리고 학식이 부족하여 논리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 지금의 모습은 설립 당시의 취지와는 매우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삼태극님은 .. 분명,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진 .. 애국자이십니다 .. 또한, 카페 운영자인 삼신할미님께서 뜻이 다르지만, 돌아오시길 바란다는 말씀에서 아.. 이 분은 진정으로 삼신할미님을 존중하고, 포용력이 있는 사람이구나.. 하면서 그 크신 그릇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모두 존재합니다. 역사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 카페지기인 삼태극님꼐서 하신 말씀에 .. 분명 틀린 점은 .. 찾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 그만큼의 역사에 대한 관심과 학식이 저보다 뛰어나시 때문이십니다. 하지만 .. 삼태극님 ..
저는 역사를 배우고 있는 학생으로서, 저의 글을 삼태극님이나 운영진이 주의 깊게 봐주실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삼태극이라는 카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 그 취지를 믿기에 .. 절대로 탈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 글을 끝까지 읽지 않고 .. 무조건 삼태극님이 올리셨다고 맞다고 하는 그런 신봉주의자적 성격을 버리시길 바랍니다. 글의 어디 부분이 마음이 와닿았다는 식으로 표현해야지 .. 아 .. 무조건 삼태극님이 올리셨으니 .. 옳습니다.라고 하시는 듯한 투의 어조는 삼태극님과 운영진들의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삼태극님의 말씀도 옳다고 생각하고, 삼신할미님의 말씀도 옳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 두 분의 열정이 저의 마음에도 와닿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간 .. 삼태극에서 삼신할미님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왜 어린 녀석이 어른들의 말씀에 토를 다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나이를 떠나서 민주주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저의 의견을 표현 한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모독적으로 발언하시는 것은 .. 지양해주시길 바랍니다. 글을 반박하되, 사람은 모독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을 모욕하는 자 .. 그 또한 인격의 모독을 받을지어다.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의 말씀으로 .. 글의 끝을 맺고 싶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패망한지 5년도 안되어 6.25동란을 일으켜, 국제적으로 일본을 살아나게 만든 김일성이 항일투쟁을 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만약 했다고 하더라도 해방이후에 자손에게 물려줄 권력을 잡기위해 300만 민족을 살상시켜 일본을 살려주고 물러갔던 미군을 불러들이기 위해 6.25 동란을 일으킨 김일성 일당은 일본제국주의와 미제국주의에 민족을 팔아먹은 민족반역자이며 스파이로서 단죄되어야 합니다.
골때리는 본인도 모르는 이념 말 좀 그만하고 선거때 투표나 하시죠 다들
박정희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이해하기 쉽게
간략히 써주신 글 고맙습니다 .....그리고 읽기쉽게 간추려 주셔서 한결 이해가 쉽습니다.
삼태극님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역사에 부끄러운줄 모르는 사람들은 아무리 말을 하고 좋은글을 보여줘도 깨닫지 못하는 듯..... 삼태극님 힘내세요
잘 보아네요 노예 보다 주인 의식으로 살아갈것을 우리가 제롓상에 올리는 대추도 왕이 아니라 줏대 가진 주인의식으로 살아가라고 말 합니다 대추 젯사상상에 올린 이유가 바로 그것이지요
관심이 많다는것은 좋은 일 이지요! 역사를 배운다는것은 오늘을 반성하고 보다나은 미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요! 역사를 배우는 목적이 이러할 진대 오늘의 현실중 잘못된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잘한것은 잘 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하다면 박정희가 잘한것이 무었입니까? 경재? 경재의 발달이 박정희 때문이라고? 어째서? 추진력이 있기때문에? 추진력하면 일본놈이지요 위에서 말했듯이 여호아가 했다고 하듯이 물(홍수)과 불(지진)로 온생명을 다 죽이는 그런짓을 하고도 은혜입었다고 찬송하는 개독과 같이 노예로서 주인 안에서 행복하다고 쥭는것이 역사를 공부하는사람들의 태도라고 보는분이 많은데 허허 기가찰
노릇이네요 역사를 공부하는것은 어제의 잘못을 또다시 재연하지 말자는 것이고 바른것을 본받아 보다좋은 내일을 만들자는것 이지요. 그렇지 않다면 궂이 역사공부는 왜하나요? 배워야 하는것이 한없이 많은데.... 터키나 우리나라와 같이 지리적으로 요충지에 있는 나라는 외세의 침략도많이 받고 여러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더더욱 이런 논의는 많이 해야하지 않을까요?!1 역사를 배우는 목적이 힘있다고 숭상하는것 입니까? 이것이 잘못이라고 하는것이 역사를 배우는 목적이고 역사속에서 우리의 바른 길을 찾자는것이 아닐까요?
지금의 정치인이 본 받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