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 수산시장인 전남 여수 중앙시장은 아침부터 분주하다. 21일 아침에 찾아간 시장은 오가는 인파와 키조개 두드리는 소리, 상인들과 손님들의 흥정으로 활기가 넘친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 보니 겉으로 보이는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손님들은 물건 값을 몇 번이나 물어보고 엊그제 왔을 때보다 비싸다며 쉬 지갑을 열지 않는다. 상인들은 장사가 안 된다며 울상이다. 중앙시장 초입에서 새조개를 까고 있던 할머니는 손님이 지나갈 때마다 싱싱한 새조개를 사가라며 권한다.
"새조개가 풍년이래요"
▲ 새조개
새조개는 그 생김새가 새의 부리를 닮았다. 뾰쪽한 부분은 새조개의 발이다.
"조갯살이 진짜 새를 닮았네요." "그란께 새조개제." "이거 2만원에 갖고 가씨요." "2kg만 주세요." "아저씨! 보씨요, 2kg가 넘어요." "아~ 쪼끔 더 주씨요." "아이고! 그걸 또 집어갑니까?"
오가는 실랑이가 정겹다. 정종율(60)씨는 서울에 사는 동생네한테 보내려고 사간다고 한다. 정씨는 새조개를 살짝 데쳐 회로 해먹고 샤브샤브를 해먹으면 정말 맛있다고 알려준다.
할머니네 가게는 새조개 껍질이 깨지지 않은 최고상품만 취급한다. 사진을 한 장 찍자고 하자 곁에서 일하고 있는 사위에게 물어봐야 된단다. 할머니는 사진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기자가 의아해 하자 사위는 얼마 전 파파라치가 시장 일대를 돌며 사진을 찍어 고발한 사건이 있어서 그렇다며 이해를 구한다.
"우리는 좋은 것만 판께." "새조개 껍질이 영 이삐다."
▲ 껍데기를 까서 깨끗하게 손질해 놓은 새조개
▲ 새조개를 까는 할머니
모닥불을 피워놓고 새조개를 손질하던 할머니는 좀 사가라고 한다.
"좀 사실라요. 많이 드릴께." "만원어치만 주세요." "그렇게는 안 파는디, 1kg에 2만원이여."
만원어치는 안 파는데 준다며 새조개를 손으로 쭉 훑어 내어 똥을 빼고 먹으라고 자세히 알려준다. 아주머니 한 분이 가격만 물어보고 그냥 가자 할머니는 산다고 해놓고 그냥 간다며 서운해 한다.
▲ 새조개, 쫄깃하고 달콤한 늪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랄까. 뭐~ 그런 맛이다.
그럼 새조개의 맛은 어떨까? 새조개는 뭐니뭐니 해도 샤브샤브의 맛이 단연 으뜸이다.
새조개 샤브샤브는 무, 파, 다시마, 팽이버섯, 시금치 등을 냄비에 넣고 물이 보글보글 끓으면 새조개를 살짝 익힌다. 이때 육수에 새조개를 담가 약 5초 정도 흔들어 익히면 적당하다. 너무 익히면 질겨진다. 그냥 살짝 데쳐 초장에 찍어 먹어도 맛이 그만이다.
제철에 먹는 새조개 조갯살의 식감은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래도 꼭 한마디 듣길 원한다면, 쫄깃하고 달콤한 늪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랄까. 뭐~ 그런 맛이다.
새조개는 초콜릿색이 진할수록 싱싱하다. 새조개, 그 달달하고 쫄깃쫄깃 씹히는 맛에 반했다. 다 먹고 난 다음 취향에 따라 국수사리나 라면사리를 넣고 끓여먹으면 그 또한 별미다.
가게마다 산더미처럼 쌓인 키조개
▲ 키조개 싱싱한 조갯살이 가득하다.
숟가락 모양의 공구로 키조개껍데기를 톡톡 쳐 깨뜨려 키조개를 깐다. 키조개는 한 망에 1만4천원이다. 한 망에 커다란 키조개가 40여 개정도 들어 있다. 이는 조개를 까는 수고비를 포함하지 않은 가격이다.
"값이 물량에 따라 달라요. 날마다 1~2천 원씩 올랐다가 내렸다가 그래요. 오늘 들어온 것은 서해안 군산 바닥에서 온 거예요."
자신의 가게 앞에서 키조개를 까고 있던 손갑수(59)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사진을 찍자 그의 아내가 놀라 손사래를 친다.
"게지(키조개) 까고 있다고 소문나면 얼마나 안 좋겄소? 자식들이라도 보면 어쩔라고…."
▲ 껍데기를 제거한 키조개
▲ 키조개를 까고 있는 손갑수씨
▲ 키조개를 손질하고 있다.
아낙들은 키조개 손질로 분주하다. 올해는 키조개 생산량이 많아 예년에 비해 가격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단다. 그러나 소비자가 느끼는 가격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가게마다 키조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물가는 비싸고, 몸 하나 누일 곳이 없어 하루 종일 이렇게 나앉아 있어."
한 할머니의 푸념 섞인 한탄이 귓가를 맴돌며 영 떠나질 않는다. 마음이 언짢다. 시장은 싱싱한 해산물로 넘쳐나는데 상인들은 바닷물에 염장되어 숨죽은 배추이파리다.
커다란 대합, 대사리고둥, 싱그러운 성게, 바지락, 주꾸미, 제철 맞은 어패류들이 다 있다. 한쪽에서는 아주머니들이 난장에 삥 둘러앉아 아침밥을 먹고 있다.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면 사는 게 뭔지,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