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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통
우리나라 전통음식
1. 봄에 즐겨 먹던 음식
(1) 화전 : 봄철에는 진달래꽃의 꽃술은 따버리고 깨끗이 손질하여 화전을 만들어 먹었다.
(2) 쑥떡 : 어린 쑥을 절구로 찧어 부드럽게 만든 후, 찹쌀가루에 섞어 시루에 앉히고 푹
쪄서 만드는 떡을 말한다.
(3) 두견주 : 진달래꽃을 다른 말로는 '두견화'라고도 한다. 진달래로 담은 술을 '두견주'라
부르는데, 진달래꽃에는 다른 꽃보다도 꿀이 많아 술에 단맛이 난다.
2. 여름에 즐겨 먹던 음식
(1) 삼계탕 : 계삼탕이라고도 한다. 병아리보다 조금 큰 영계를 이용한 것은 영계백숙이라고
한다. 내장을 꺼낸 닭의 뱃속에 깨끗한 헝겊으로 싼 찹쌀·마늘·대추 등을 넣고, 물을 넉
넉히 부은 냄비나 솥에 푹 삶아 고기가 충분히 익었을 때 건져 내어 먹는 음식이다. 인
삼을 헝겊에 싸서 국에 넣고 푹 고아 인삼 성분을 우러나게 하여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고기와 국물을 먹는다.
(2) 수리치떡 : 단옷날(음력 5월 5일) 쑥이나 취같이 짙은 초록색의 산나물을 떡가루에 섞어
수레바퀴모양의 둥근 떡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고 먹는다. 단오가 우리나라 말로 '수리'
라고 하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며 '수리떡' 이라고도 한다.
(3) 수단 : 멥쌀가루로 흰떡을 쳐서 잘게 썬 것에 녹말가루를 묻혀 찬물에 헹구어 꿀이나 오
미자물에 띄워 먹는 한국 고유의 화채이다.
(4) 밀쌈 : 유두날(음력 6월 6일)에 먹는 음식의 하나이다. 구절판을 만드는 재료들을 볶아
서 넓적하고 얇게 부친 전병에 말아 알맞게 썰어 먹는다. 구절판을 간소화시킨 듯 한 음
식으로 봄과 여름철에 술안주나 교자상 음식으로 좋다.
3. 가을에 즐겨 먹던 음식
(1) 송편 : 멥쌀가루를 익반죽하여 알맞은 크기로 떼어 거기에 소를 넣고 반달 모양으로 빚
어 솔잎을 깔고 찐 떡이다. 소는 깨 ·팥 ·콩 ·녹두 ·밤 등이 사용된다. 본래는 추석 때 햅
쌀과 햇곡식으로 오례송편(추석에 햇곡식으로 빚은 것)을 빚어 한 해의 수확을 감사히
며 조상의 차례상 등에 받치던 명절떡이었는데, 요즈음에는 계절에 관계없이 만들어
먹는다.
(2) 국화전 : 찹쌀가루에 노란 국화잎을 섞어 반죽하고 참기름으로 부쳐 화전을 만든 후, 그
위에 어린 국화잎을 얹어 다시 부친 것이다
(3) 화채 : 뜨겁게 끓여서 마시는 것이 보통 '차'라면, 차게 해서 마시는 것을 화채라고 한다.
꿀이나 설탕을 탄 물이나 오미자 물에 각종 과일을 썰어 넣거나 꽃잎을 넣고 실백을 띄
워서 만든다. 일반적으로 화채는 띄우는 건더기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2. 겨울에 즐겨 먹던 음식
(1) 팥죽 : 옛날에는 동지가 큰 명절이었으나, 최근에는 제사는 안 모시고 팥을 삶아 으깨어
거른 물에 쌀을 넣고 쑨 붉은 팥죽을 나누어 먹는 풍속만이 있다. 붉은색은 귀신이 꺼리
는 색이라 하여 나쁜 귀신을 물리치고 집안의 평안함과 탈 없음을 빌 때 많이 쓴다.
(2) 떡국 : 원래는 새해 첫날에 먹던 음식으로, 설날 아침이면 누구나 떡국을 먹는다. 묵은
해가 가고 천지만물이 다시 살아나는 날은 엄숙하고 청결하여야 한다는 원시 종교적
의미에서 비롯되었다.
(3) 부럼 : 음력 정월 보름날 밤에 까먹는 잣 ·날밤 ·호두 ·은행 ·땅콩 등을 일컫는 말이다.
대개 자기 나이 수대로 깨문다. 여러 번 깨물지 말고 한 번에 깨무는 것이 좋다고 하여
한번 깨문 것은 껍질을 벗겨 먹거나 첫 번째 것은 마당에 버리기도 한다. 깨물면서 1년
동안 무사태평하고 만사가 뜻대로 되며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기원한다. 이렇게 하면 1
년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으며, 이가 단단해진다고 한다. 보름날의 부럼을 위해서 14일
밤에는 미리 과실을 준비해 두고, 땅 속에 묻은 밤을 꺼내어 깨끗이 씻어 놓는다.
(4) 오곡밥 : 음력 정월 대보름에 먹던 대표적인 음식으로 한국 전통의 찹쌀 ·차조 ·붉은 팥 ·
찰옥수수 ·검은콩 등을 섞어 5가지 곡식으로 지은 밥이다.
(5) 아홉 가지 나물 : 정월 대보름에 먹던 음식으로 가을에 말려 두었다가 물에 불려 삶아
무치거나 볶는 아홉 가지 나물을 말한다.
(6) 수정과 : 생강·계피·통후추를 기호에 따라서 넣고 끓인 물에 설탕이나 꿀을 넣어 끓여 식
힌 후, 곶감을 넣고 잣을 띄워 마시는 한국 고유의 음료이다.
(7) 강정 : 견병이라고도 하여 약과 ·다식 등과 함께 잔칫상 ·큰상 ·제사상에 오르던 과자이
다. 찹쌀가루를 술로 반죽하여 일구어서 여러 모양으로 썰고 그늘에 말린 후 기름에 튀
겨 꿀과 고물을 묻혀서 만든 것이다. 속이 비어 있고 단맛과 연한 맛이 나는데, 고물의
재료나 모양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전통메주의 역사
메주의 역사는 2,000년을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되며,
고 추 장
고추장의 역사
고추장은 고추가 유입된 16세기 이후에 개발된 장류로서 조선 후기 이후 식생활 양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고추는 임진왜란(1592년)을 전후로 하여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초기의 이름도 '왜개자(倭芥子)'라 불리었고, 귀한 식품이라 하여 '번초'·'약초'라 불리워졌으며, '고추'라는 이름은 후추와 비슷하면서 맵다 하여 '매운 후추'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초기 고추의 사용은 술 안주로 고추 그 자체를 사용하거나, 고추씨를 사용하다가 17세기 후기경에는 고추를 가루로 내어 이전부터 사용했던 향신료인 후추, 천초(초피나무 열매 껍질)를 사용했다. 천초를 섞어 담근 장을 '초시(川椒醬)'라고 한다. 점차 고추재배의 보급으로 일반화되어 종래의 된장, 간장 겸용장에 매운맛을 첨가시키는 고추장 담금으로 변천 발달되었다.
고추장 담금법에 대한 최초 기록은 조선 중기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1766년)에 기록되어 있다. 막장과 같은 형태의 장으로, 여기에는 고추장의 맛을 좋게하기 위해 말린 생선, 곤포(昆布, 다시마)등을 첨가한 기록이 있다.
영조 때 이표가 쓴 <수문사설(松聞事說)>(1740년) 중 식치방에 '순창 고추장 조법'에는 곡창지대인 순창지방의 유명한 고추장 담금법으로 전복·큰 새우·홍합·생강 등을 첨가하여 다른 지방과 특이한 방법으로 담갔는데,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순창 고추장은 옛부터 나라 임금님께 진상(進上)하였다고 하는데, 순창 고추장의 맛과 향기는, 순창에서 사용하는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똑같은 사람과 똑같은 방법으로 타지방에 가서 담궈도 순창 고추장의 맛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순창 고추장의 맛은 오염되는 않은 순창의 물맛과 순창의 기후와의 조화(調和)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전통문화
1.쥐불놀이
정월 대보름의 하루 전날인 열나흗날이 되면 마을의 어린아이들이 논이나 밭두렁에 불을 붙이고 돌아다니며 노는 쥐불놀이를 한다. 특히, 밤에 아이들이 길다란 막대기나 줄에 불을 달고 빙빙 돌리며 다닐 때는 불育?혈란한 원을 그리며 장관을 이룬다.
쥐는 일년동안 땀흘려 지운 곡식을 축내고 때로는 못된 병균을 퍼뜨리기도 하는 고약한 짐승이므로, 이를 퇴치해야 하는데, 눈이 밝아 밤에 잘 다니는 쥐를 꼼짝 못하게 하려면 어두운 밤에 불을 밝혀서 그 눈을 멀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 데서 나온 놀이이다.
또 논두렁에는 한 겨울 동안 많은 해충이 숨어지내는 곳이므로 마른 잔디를 태워 일종의 소독을 하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이 쥐불놀이는 가끔씩 산불을 일으키기도 하는 위험한 놀이이므로 요즈음은 금지되어 있다.
2.널뛰기
음력 설날에 아녀자들끼리 모여서 즐기는 놀이의 하나이다.
길다란 널빤지의 양족 길이가 같도록 중간부분을 밑받침대 위에 걸친 다음, 양족 끈에 한사람씩 올라서서 번갈아 가며 뛰고 구른다. 고려시대 때에는 이 놀이가 매우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당시 봉건사회에서 행동의 제약을 많이 받았던 아녀자들이 설빔을 곱게 차려입고 마음껏 즐기며 맵시를 자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날이었으므로, 한적한 규중생활로 인한 운동부족을 해소하는 데에도 큰 의의가 있었다.
3.연날리기
연을 공중에 띄우는 놀이다.
연날리기는 오랜 옛날부터 전승되어 오는 민족전래의 기예의 하나로서 소년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성들의 흥미를 끌어 제2차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음력 정초가 되면 해마다 우리 나라 각처에서 성행하여 장관을 이루었던 민속놀이였다. 연을 날리는 데는 연실을 한없이 풀어내어야 하므로 연날리기는 주위에 장애물이 없는 데서 행하여진다.
서울에서는 옛날 청계천변이 중심지였고, 시골에서는 대개 신작로변이나 개울가 또는 동산 같은 데서 많이 날린다.
연을 날리는 시기는 음력 정월 초하루에서부터 보름까지가 본격적인데, 대체로 12월 20일경이면 벌써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연을 날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정월 보름 며칠 전이면 절정에 달하는데, 구경꾼들의 성원도 이때쯤에는 한층 더 열기를 띠게 된다.
아이들은 끊어진 연실을 걷느라고 서로 다투어 남의 집 담을 넘어 들어갈 때도 있고, 심지어 남의 집 지붕으로 올라가는 일도 있어 말썽을 빚기도 한다. 또 끊어져 나가다가 가라앉는 연을 줍느라고 논바닥 속으로 뛰어가다가 빠져서 옷을 버리기도 한다.
연날리기는 젊은이와 어른들도 많이 한다. 다른 연과 어울려서 끊어먹기를 많이 하므로 경기가 열기를 뿜는다. 다른 연을 끊어먹도록 하는 것을 ‘깸치 먹인다’고 하는데 이 끊어먹기는 대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청장년은 청장년들끼리 많이 한다.
연은 날리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한 곳에 머무르는 일이 없이 가로 세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기도 하고 뒤로 물러갔다 급전진하는 등 자유자재로 날린다. 끊어먹기를 할 때에 연을 잘 끊어먹도록 하는 것은 연을 얼리는 이의 기술에 달리기도 한다.
연날리기는 정월 대보름 며칠 전에 성황을 이루고, 보름이 지나면 날리지 않기 때문에 대보름이 되면 ‘액(厄)연 띄운다.’ 하여 연에다 ‘厄’자 하나를 쓰기도 하고, ‘送厄(송액)’이니 ‘送厄迎福(송액영복)’이라 써서 날리고는 얼레에 감겨 있던 실을 죄다 풀고는 실을 끊어서 연을 멀리 날려 보낸다. 그러므로 보름이 지나서도 연을 날리는 이가 있으면 ‘고리백정’이라고 놀려대고 욕한다.
4.윷놀이
본래 농경생활의 습속에서 시작되었다는 윷놀이는 그 기원이 삼국시대에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윷놀이의 끝수단위의 명칭은 ‘도, 개, 걸, 윷, 모’라 불리우고 있는데, 이는 일년 중 세초에만 행하는 윷놀이는 농사의 흉풍을 점치는 일종의 점술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정초에 가족과 친지가 모인 안방이나 동네의 공터, 시장터 등에서 남녀노소가 함께 즐기는 오락이 되어있다.
5.씨름
씨름은 오늘 날까지도 널리 행해여 오고 있는 민속놀이이다. 특히 음력 5월 단오절에는 바짐없이 씨름대회가 열리고 잇으며 4월 초파일, 7월 백중절과 8월 추석 등의 명절에 즐겨 행해지는 씨름은, 경기의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상품으로도 당시로서는 매우 귀중한 재산이 될 수 있었던 황소 한 마리를 주는 등 우리나라의 남성들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스포츠의 하나로 각광을 받아왔다.
서기 5세기경으로 추측되는 고구려시대의 고분(각저층)에 이미 씨름하는 장면이 벽화에 그려져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놀이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여려 문헌에도 그 기록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씨름의 종류는 샅바를 오른족 다리에 끼고 하는 ‘왼씨름’또 샅바를 왼쪽 다리게 끼고 하는 ‘오른씨름’, 그리고 허리에 띠를 매고 하는 ‘띠씨름’등 원래 세가지가 있었는데, 요즈음에는 대부분 ‘왼씨름’만을 한다. 상대방을 완력이나 여려가지 기술로써 제압하여 쓰러뜨리는 씨름은 다른 격투기처럼 상대방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지 않고도 이길 수 있으므로 매우 신사적이다. 경기의 기술은 손을 이용하는 ‘팔재간’과, 발을쓰는 ‘다리재간’, 두손과 다리를 사용하여 상대방을 땅에서 들어올리는 ‘들재간’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그 세부적인 기술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오늘날에는 씨름이 스포츠로서 체계화되어 공식적인 운동경기로 인정을 받고 잇으며, TV에서는 프로 경기로 정착하여 일년에 몇 차례 식 대회가 치루어지고 있다.
6.제기차기
제기차기는 사내아이들이 주로 겨울철에 행하는 놀이이다. 한가운데 구멍이 뚫어져 있는 엽전이나 쇠붙이 등에 한지, 헝겊, 털실을 달아서 만든 제기를 땅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회수를 거듭하여 발로 차 올리는 놀이로서, 가장 많은 회수를 기록한 사람이 우승을 차지한다. 제기차기는 반드시 겨울철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을 분 아니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놀이여서, ‘두발로 차기’, ‘땅에 한발 안대고 차기’등 기본적인 기술 외에도 갖가지의 놀이방법이 있다.
7.그네뛰기
북방의 유목민이 체력단련을 위하여 그네뛰기를 했던 것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까지 전해진 것이라 한다. 고려시대의 문헌에서 이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볼 수가 있는데, 당시는 남녀 모두가 즐기는 놀이였으며, 왕실과 권신들이 많은 돈을 들여 행사를 치룰 정도로 중시되었던 놀이이다. 조선시대의 소설 “춘향전”에서 춘향이가 그네를 뛰는 장면이 잘 묘사되어 있고, 또 이도령과 단오날 광한루에서 처음 만난 것이 그네뛰기하던 때로서 널리 알려져 잇듯이 많은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엮어낸 장소가 되기도 했다.
점차로 여성위주의 놀이로 흘러온 이 그네뛰기는 여성의 민속놀이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며, 지금도 향토의 제전이나 축제 행사의 하나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네는 한사람이 뛰는 경우와 두 사람이 함께 뛰는 경우가 있고, 경기를 벌일 때에는 가장 높이 올라가는 사람에게 가장 많은 점수가 주어진다.
8.강강술래
전라남도의 해안지방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강강술래는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을 전후하여, 달밤에 아녀자들이 노래와 함께 원무를 추는 놀이이다. 마침 추수를 거둔 시기여서 햇곡으로 지은 음식과 술을 차려놓고 조상에게 제례를 드린 후,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달빛이 휘황한 가을밤의 강강술래는 신비로운 느낌을 갖게 하는 환상적인 분위기속에서 진행된다.
남성이 참가하지 않는, 여성들만의 이 놀이는 동네의 아낙네들이 손에 손을 잡고 커다란 원을 그린 후, 빙빙 돌면서 춤을 추는데 도중에 ‘문턱넘기놀이’, ‘멍석말이놀이’, ‘남생이놀이’, ‘쥐잡기놀이’ 등을 함께 섞어서 한층 흥을 돋우기도 한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이순신장군의 일화와 관계가 있는 이 놀이는 병정들의 수가 모자라, 인근 마을의 부녀자들로 하여금 산 위에 올라서 원무를 추게하여 그 숫자가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왜적의 사기를 꺾었다는 이야기로 너무나 유명하다
9.놋다리밟기
해마다 음력 정월의 대보름날 밤에 몸단장을 곱게 한 젊은 부녀자들이 모여서 행하는 놀이이다. 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람들이 모이면 모두일렬로 늘어서서, 각자 앞사람의 허리를 두 손으로 껴안은 채 엎드린다. 그 다음에는 어린 소녀를 뽑아서 사람들의 등을 밟고 지나가게 하고, 키큰 사람 둘이서 양쪽으로 그 소녀의 손을 잡아 부축해 준다. 이 때, 놋다리 밟기의 노래가 불리워지며 그 가사 속에는 이 놀이가 생겨난 배경이 잘나타나 있다. 고려시대의 공민왕이 중국의 홍건적에게 쫓기어 안동지방으로 파천했던 일이 있었는데, 당시 함께 갔던 왕비인 노국공주가 시내를 건널 때, 쉽게 건널 수 있도록 사람다리를 놓았던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노래속에는 여러 가지 궁중의 의복, 집기, 음식 등을 지칭하는 말이 나오며, 이 ‘놋다리’라는 말의 뜻은 “시냇물 위에 놓은 다리”라고 한다.
10.지신밟기
지신밟기는 ‘마당밟기’, ‘매귀 굿’이라고도 하며, 음력 정월 초사흗날부터 대보름날 사이에 행하는 놀이로서 옛날에는 왕실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퍼져 있었다. ‘지신’은 집안에 우환을 몰고 온다는 잡귀.잡신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 지신을 발로 밟아서 진압시켜 그 해가 무사하기를 비는 것이다.
이 놀이는 선두에 ‘지신밟기’라고 쓴 깃발을 앞세워 행진하며, 농악대와 갖가지 모습으로 분장한 가장행렬(假裝行列)이 그 뒤를 따라다니면서 마을의 집집마다 방문하여 지신을 밟아 주는 일을 한다.
행렬이 집에 도착하면 먼저 마당에서 ‘마당놀이’를 한 다음, 큰 마루 앞에서는 ‘대청 지신 풀이’를, 큰 방 앞에서는 ‘큰 방 성조 풀이’를, 각각의 방마다에는 ‘각방치장풀이’를 하고, 부엌앞에서는 ‘부엌(조왕)지신풀이’를, 곳간 앞에서는 ‘곳간지신풀이’를 해주어 그 집의 재앙을 막아주는데, 그 답례로서는 집주인은 술과 음식 등을 내어 접대를 한다.
11.고싸움놀이
‘고싸움’이라는 말은 우리 전통의 상인 한복의 옷고름에서 보이는, 둥글게 말아 매듭을 지은 부분의 ‘고’와, ‘싸움’이라는 말의 합성어라고 한다. 즉, 볏짚으로 거대한 모양의 ‘고’를 만들어 이웃 마을끼리 편싸움을 벌이는 놀이이다.
‘고’가 만들어지면 이웃마을과 함께 굿놀이를 하여 자기 마을의 승리해 달라고 기원을 올리고, 그 다음에는 싸움의 대책회의를 열어 자기편의 고싸움을 지휘하게 될 ‘줄패장’을 선출한다. 줄패장은 ‘고’위에 올라서서, 상대편의 ‘고’를 밀어 붙이거나 혹은 내리 눌러서 땅에 닿게끔 하도록 자기편을 지휘한다. 고가 밀려서 땅에 닿으면 싸움에 지게 되므로, 상대방이 거세게 밀어 붙이면 후퇴를 하거나 좌우로 돌아 공격을 피하고, 상대편이 불안정하고 통일된 행동을 잃을 때에는 기회를 보아 돌진하도록 한다.
고싸움은 줄다리기와 같은 덕목을 지닌 마을의 대농놀이이며, 준비 기간도 길고 또 ‘고’를 만드는데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큰 규모의 민속놀이로서 아직까지도 그 명맥을 잘 유지하고 있다.
12.차전놀이
차전놀이는 고려왕조의 태조 왕건과 견훤이 싸운 고사에서 유래한다고 전하며 이것의 기원에 대해서는 뚜렷한 기록이 없다. ‘동체싸움’이라고도 불리는 이 놀이는 경북안동지방에서 가장 잘 전승되고 있으며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국의 여려 지방에서 매년 열리는 향토 문화행사에 등장하고 있다.
이 놀이를 행하는 방식은 ‘쇠머리대기’와 거의 비슷하며, 다만 나무로 만든 소머리 대신에 ‘동체’라 불리는 기구를 사용하는 것이 다른 점이다. 동체는 약 10미터쯤 되는 통나무 두개를 사다리 모양으로 교차시킨 다음, 그 윗부분을 새끼줄로 단단하게 묶고, 사다리꼴의 안쪽에는 폭이 1미터쯤 되도록 판자를 얹어 고정시켜 만든 것이다.
이렇게 하여 동체가 완성되면 마을을 대표하는 대장이 그 위에 올라타서 지휘를 하게 되는데, 동체는 처음에는 수평으로 있다가 싸움이 시작되면 양쪽 머리부분이 맞물려 수직 방향으로 일어서게 되므로, 몸통 부분에 부착시킨 줄을 왼손으로 단단하게 쥔 채 오른손을 내저어 지휘를 한다. 차전놀이는 동체만으로도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고, 동체를 메지 않은 장정들도 앞쪽에 진을 치고 있다가 상대편에게 격렬한 몸싸움을 벌여서 동체가 앞으로 잘 진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느 한편의 동체가 상대편의 동체를 내리 눌러 땅에 닿도록 하면 승리를 거두게 되며, 이때 승리한 쪽에서는 자기가 신고 있던 짚신을 하늘로 던져 올려서 기쁨을 표시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문화]
우라나라의 문화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유산의 문화
유네스코 세계 유산
[ 문화유산 ]
1. 창덕궁(1963년 사적 제 122호로 지정,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창덕궁은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궁궐입니다. 창덕궁은 광해군 때부터 경복궁이 다시 지어진 고종 때까지 경복궁을 대신하여 역대 임금들이 나랏일을 보시던 정궁으로 사용되었으며, 후원을 비롯하여 다른 부속건물이 비교적 원형으로 남아있어 조선시대 궁궐의 모습을 알아 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2. 수원화성(1963년 사적 제3호로 지정,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수원화성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성벽입니다. 조선 정조대왕 때 지어졌습니다. 거중기, 녹로 등 근대 과학적 기구를 축성에 활용하였으며, 성곽의 전돌, 건조물의 기와 등이 독특한 방법으로 제작되었고,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지산성의 형태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성괄 시설의 기능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어 동양 성곽의 으뜸이라 할만합니다.
3. 석굴암(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석굴암은 신라 때 오악의 하나인 토함산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석굴사찰입니다. 1962년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었으며 정식 문화재 명칭은 석굴암석굴입니다.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891번지에 있는 석굴암은 한국의 국보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문화유산입니다.
4. 불국사(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석굴암과 함께 토함산에 자리잡고 있는 불국사는 사적 및 명승 제1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1995년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록되었으며 경내면적은 11만 7541평 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대규모의 개수공사를 실시하여 다보탑의 해체보수, 법당의 중수 등을 실시하였는데 이때 다보탑 속에 있던 사리장치가 행방불명되었습니다. 불국사는 독특한 예술적 혹은 미적인 업적, 즉 창조적인 재능의 걸작품을 대표하는 유산이며 가장 특징적인 사례의 건축양식으로서 중요한 문화적, 사회적, 예술적, 과학적, 기술적 혹은 산업의 발전을 대표하는 양식입니다.
5. 해인사 장경판전(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해인사 장경판전은 13세기에 만들어진 세계적 문화유산인 고려 대장경판 8만여 장을 보존하기 만든 판전으로 해인사 경내에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통풍의 원활, 방습의 효과, 실내 적정 온도의 유지, 판가의 진열 장치 등이 매우 과학적이며, 합리적으로 되어 있는 점은 대장경판이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6. 종묘(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의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왕가의 사당입니다. 서울 종로구 훈정동에 있는 종묘는 1963년 사적 제12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종묘는 원래 정전을 가리키며, 태묘라고도 불리우며 신라때에는 5묘제, 고려에는 7묘제로 하였으며 조선초기에는 7묘제도를 따르다가 중기 이후부터는 치적이 많은 왕은 7대가 지나도 정전에 그대로 모셨습니다.
7. 경주역사 유적지구(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경주역사유적지구는 경상북도 경주시 일원에 흩어져있는 신라시대 유적을 지구단위로 분류한 역사유적지구입니다.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으로 등록되었으며 역사유적들은 유적의 성격에 따라 5개 지구로 나뉘는데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이들 5개 지구를 통틀어 일컫습니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전체를 통틀어 52개의 지정문화재가 세계문화유산 지역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8. 고인돌유적(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고인돌유적은 한국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이며 영어로는 돌멘 (Dolmen)이라고도 한다. 고인돌은 선사시대 문화상을 파악할 수 있고 나아가 사회구조, 정치체계는 물론 당시인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선사시대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보존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고창, 화순, 강화의 선사유적들은 거대한 석조로 만들어진 2,000∼3,000년 전의 무덤과 장례의식 기념물로서 선사시대 문화가 가장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당시의 기술과 사회현상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적이다.
9. 조선시대 왕릉(王陵) 40기 (2009년 06월 27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조선 왕릉은 유교사상과 토착신앙 등 한국인의 세계관이 반영된 장묘(葬墓) 문화 공간이고 자연경관을 적절하게 융합한 공간 배치와 빼어난 석물(石物) 등 조형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며 제례 의식 등 무형의 유산을 통해 역사의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는데다 왕릉 조성이나 관리, 의례 방법 등을 담은 국조오례의, 의궤, 능지 등 고문서가 풍부하고 조선 왕릉 전체가 통합적으로 보존 관리되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 기록유산 ]
1. 훈민정음(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훈민정음은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에 보관되어있으며 책으로서의 훈민정음에는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니…”라고 한 [훈민정음예의본] 과, 글자를 지은 뜻과 사용법 등을 풀이한 [훈민정음해례본]이 있다.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2. 조선왕조실록(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각 왕 별로 기록한 편년체 사서로서 1973년 12월 31일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활자본(필사본 일부 포함)으로 2,077책이며 1413년(태종 13)에 《태조실록》이 처음 편찬되고, 25대 《철종실록》은 1865년(고종 2)에 완성되었습니다.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3. 직지심체요절(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1372년 경한(1299~1375)이 부처와 조사(祖師)의 게송, 법어등에서 선의 요체를 깨닫는 데 필요한 내용을 뽑아 엮은 책입니다. 수고본에 직접 초록한 것으로 상렷?2권으로 이루어졌으며 정식 서명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나, 주로 《불조직지심체요절》, 《직지심경(直指心經)》 등으로 관용되고 있습니다. 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4. 승정원일기(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조선시대에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승정원에서 매일 취급한 문서와 사건을 기록한 일기입니다. 1999년 4월 9일 국보 303호로 지정되었으며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습니다.승정원에서 편찬한 일기로 필사본이며, 3,243책입니다. 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5. 동의보감(2009년 07월 31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보물 제1085호인 동의보감은 1610년(광해군2년)에 25권 25책으로 완성된 것으로 현재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소장 중이다.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로 등재된 이유는 국가기관에 의해 제작된 뒤 보존 관리되었고, 중세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한 뒤 현재까지 동양의학 발전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어떤 의서보다 체계적으로 기술된 독창성, 지금까지 정확한 원본이 전해오고 있는 비대체성, 희귀성, 원형성 등이 있다.
6..조선왕조의 의궤 (2007년 6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의궤는 조선시대 600여년에 걸쳐 (1392-1910) 왕실의 주요 행사, 건축물 조성과 왕실문화활동 등에 대한 기록이 그림으로 남아져 있어 600여년의 생활상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희소성을 가지고 있다. 총 3,895 여권의 방대한 분량에 이르는 의궤는 왕실의 주요한 의식이 시기별,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어서, 조선왕조 의식의 변화 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를 비교연구, 이해하는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7.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 (2007년 6월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고려대장경판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정확하고 가장 완벽한 불교 대장경판으로 산스크리트어에서 한역된 불교대장경의 원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송나라 대장경을 비롯하여 고려대장경 이전에 중국 및 일본에서 제작된 경전과 비교해 볼 때 고려대장경의 학술적 내용 및 품질 관리에 투입된 심오한 노력은 오늘날과 비교해도 놀라운 수준이다.
[ 무형유산 ]
1.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2001.5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 )
종묘제례란 종묘에서 행하는 제향의식으로, 조선시대의 나라제사중 규모가 크고 중요한 제사였기 때문에 종묘대제라고도 불립니다. 종묘제례악은 조선왕조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종묘에서 제사를 드릴 때 의식을 장엄하게 치르기 위하여 연주하는 기악과 노래, 춤을 말합니다.
2. 판소리 (2003.11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 )
민속악의 하나로 광대의 소리와 그 대사의 총칭입니다. 1964년 12월 24일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으며, 2003년 11월 7일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세계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어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판소리는 조선 중기 이후 남도지방 특유의 곡조를 토대로 발달한, 광대 한 명이 고수 한 명의 장단에 맞추어 일정한 내용을 육성과 몸짓을 곁들여 창극조로 두서너 시간에 걸쳐 부르는 민속예술형태의 한 갈래입니다.
3. 강릉단오제(2005.11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 )
강원도 강릉시에서 단오날을 전후하여 서낭신에게 지내는 마을굿.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장장 50일 간에 걸친 대대적인 행사로, 단오굿과 관노가면극(官奴假面劇)을 중심으로 한 그네.씨름.줄다리기.윷놀이.궁도 등의 민속놀이와 각종 기념행사가 벌어진다. 옛날에는 관(官)에서 주도하여 행하여졌으나, 지금은 민간주도형으로 바뀌었다. 강릉단오제의 근원설화로는 대관령산신으로 모신 김유신 설화와 대관령국사서낭신인 범일국사 설화가 있다. 그리고 후대로 내려와 국사서낭신과 부부신이 여국사서낭신에 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2005년 유네스코에서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했다.
4. 강강술래 ( 2009. 9. 30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 )
강강술래는 중요무형문화재 8호이다. 전통적인 전승지역은 한반도의 서남부 지역으로, 1966년 국가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이래 전라남도 해남군 및 진도군 일원에서 전통적인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는 전통 예술 공연을 통해 국내외에 많이 소개되고 있다. 강강술래의 다른 명칭은 강강수월래, 광광술래, 광광광수월래, 오광광광수월래이다. 강강술래는 인류 문화 다양성의 원천을 보여 주었고 인류의 창의성을 증명하는데 기여 했으며 해당 유산을 보호하고 증진할 수 있는 보호조치, 즉 정부의 적극적인 보존지원 정책 부문을 충족했다고 볼 수 있어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5. 남사당놀이 ( 2009. 9. 30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 )
남사당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이다. 조선후기 남사당패가 농ㆍ어촌을 돌며 주로 서민층을 대상으로 했던 놀이로 풍물놀이, 버나(대접 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보기(탈놀이), 덜미(꼭두각시놀음)가 이어진다. 양반사회의 부도덕성을 놀이를 통해 비판하고 민중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전통적으로 특정한 전승지역은 없으며,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남사당놀이는 서울무형문화재 전수관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전승활동을 하고 있으며, 경기도 안성을 중심으로 안성남사당놀이가 전승활동을 하고 있다. 남사당놀이는 인류 문화 다양성의 원천을 보여 주었고 인류의 창의성을 증명하는데 기여 했으며 해당 유산을 보호하고 증진할 수 있는 보호조치, 즉 정부의 적극적인 보존지원 정책 부문을 충족했다고 볼 수 있어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6. 영산재 ( 2009. 9. 30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 )
영산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이다.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를 중심으로 전국 사찰에서 초종파적으로 거행되고 있다. 49재의 한 형태로 영혼이 불교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극락왕생하게 하는 의식이다. 해금, 북, 장구 등을 연주하고 바라춤, 나비춤 등을 추며 영혼에 제사를 지낸다. 영산재는 인류 문화 다양성의 원천을 보여 주었고 인류의 창의성을 증명하는데 기여 했으며 해당 유산을 보호하고 증진할 수 있는 보호조치, 즉 정부의 적극적인 보존지원 정책 부문을 충족했다고 볼 수 있어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7. 제주칠머리당영등굿 ( 2009. 9. 30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 )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이다.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신당인 칠머리당에서 마을 수호신에게 하는 굿으로 영등신에 대한 제주도 특유의 해녀신앙과 민속신앙이 담겨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해녀가 하는 굿이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인류 문화 다양성의 원천을 보여 주었고 인류의 창의성을 증명하는데 기여 했으며 해당 유산을 보호하고 증진할 수 있는 보호조치, 즉 정부의 적극적인 보존지원 정책 부문을 충족했다고 볼 수 있어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8. 처용무 ( 2009. 9. 30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 )
처용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이다. 궁중무용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 형상의 가면을 쓰고 추는 춤으로 가면과 의상 음악 춤이 어우러진 무용예술이다. 통일신라 시대 처용이 아내를 범하려던 역신(疫神.전염병을 옮기는 신) 앞에서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서 귀신을 물리쳤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처용무는 인류 문화 다양성의 원천을 보여 주었고 인류의 창의성을 증명하는데 기여 했으며 해당 유산을 보호하고 증진할 수 있는 보호조치, 즉 정부의 적극적인 보존지원 정책 부문을 충족했다고 볼 수 있어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자연유산 ]
1.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 2007. 6 지정)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지역은 한라산, 성산일출봉, 거문오름용암동굴계 3개이다. 제주도의 동굴은 학술, 문화, 산업 및 관광 자원의 면에서 매우 중요하고, 수많은 측화산 및 용암동굴은 지구의 화산 생성과정 연구에 있어 큰 학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제주도는 수많은 측화산과 세계적인 규모의 용암동굴, 다양한 희귀생물 및 멸종위기종의 서식지가 분포하고 있어 지구의 화산 생성과정 연구와 생태계 연구의 중요한 학술적 가치가 있으며,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의 아름다운 경관과 생물?지질 등은 세계적인 자연유산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