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에게는 ‘한국문학의 세계 전도사’ ‘소설 파는 남자’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KL매니지먼트는 우리 문학작품의 해외출판에 가교 역할을 하는 전문에이전시다. 소설가 한강씨가 ‘채식주의자’로 영국 맨부커상을 수상한 데는 이 대표의 10년 가까운 인내와 고집이 한몫 했다.
문자텍스트가 다른 언어와 문화권에서 공감과 인정을 받으려면 작품을 잘 쓰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발군의 번역자는 기본이고 해외 출판사나 매체 등에 작품의 우수성을 알리는 숨은 조력자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한편의 작품이 번역돼 해외 독자와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수익성의 상당부분을 희생할 각오는 물론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대한 소신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한씨의 수상에 KL매니지먼트가 주목을 받는 이유다.
KL매니지먼트를 세운 이구용 대표는 한국외국어대 영어과를 나와 경희대 대학원에서 영미문학을 전공했다. 그가 일반인에게 비교적 생소한 출판에이전시 분야에 뛰어든 것은 박사과정 중 잠시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저작권 에이전시 임프리마코리아에 입사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외국 출판물을 국내에 소개하는 업무에 한계를 느끼고 거꾸로 국내 출판물, 특히 한국문학작품을 해외에 소개하는 전문 에이전시를 차려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수입이 아닌 수출에 더 매력을 느낀 것이다.
김영하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비롯해 미국 뉴욕타임스 소설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른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그의 손을 거쳐 해외 출간됐다. 한국문학이 영미권에서도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2011년 KL매니지먼트를 차렸다. 그 뒤 공지영, 정유정, 조경란 등 국내 유수의 작가들의 많은 작품들이 KL매니지먼트를 통해 해외 독자들과 만났다. 정유정 작가의 장편 ‘7년의 밤’은 지난해 독일에서 현지 언론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편혜영 작가의 장편소설 '재와 빨강'(ASHES AND RED)'도 KL매니지먼트를 통해 내년 상반기 미국에서 출간된다.
한씨의 채식주의자는 2007년 국내에서 첫 출간된 작품인데 지난해 영국에서 출판되고 이번에 상을 받기까지 9년이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국제상 수상이 최종목표는 아니다. 하지만 외국독자들에게 한국문학작품의 우수성을 알리는 효과가 크고 이는 수익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대표는 한씨의 수상이 결정된 뒤 "외국에 한국문학을 소개하면서 내건 목표 중 하나가 같이 일하는 작가가 국제적인 인지도를 지닌 문학상을 받는 것이었다"며 해외 진출을 생각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에게 길을 터준 것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더 많은 독자들이 한국 작품을 읽고 출판시장에서도 잘 팔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문화콘텐츠를 다루지만 순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문학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지만 문학작품도 수출산업에서 시장이 요구하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면 작가나 작품에 대해 편견을 지녀서는 안된다고 보는 것이다.
개그맨 출신 작가 김용의 장편소설 ‘루루’의 해외 출간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용킴이란 필명으로 쓰인 이 소설을 눈여겨보고 해외에이전시들에게 적극 소개해 태국과 베트남에서 출간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김씨는 ‘유머1번지’ 등에서 활약한 개그맨인데 작가의 꿈을 국내에서 이루기란 쉽지 않았다.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을 한 주인공이 딸과 만나는 과정을 그린 추리소설이란 이유도 있지만 한국문학계의 '보이지 않는' 폐쇄성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독자들은 재미있는 소설을 원한다”고 말했다. 외국독자들이 우리 문학을 사랑하도록 만들려면 한국독자들이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강’ 현상에 열광하는 국내 출판문화계와 독자들이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